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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롤리와 미키 맨틀, 스위치 히터와 아버지의 관계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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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현시점에서 최고의 선수를 꼽는다면 뉴욕 양키스의 애런 저지와 LA 다저스의 오타니 쇼헤이 가운데 하나로 의견이 모아집니다. 하지만 올 시즌 최고의 화제가 된 선수라면 시애틀의 포수, 칼 롤리로 선택을 좁혀도 무방합니다.

 

 

메이저리그 홈런 선두가 포수라는 사실만으로도 놀라운데, 무늬만 포수가 아니라 각 리그 최고의 수비 실력자에게 주어지는 '플래티넘 글러브'를 받은 선수라면 더 주목하게 됩니다. 여기에 스위치 히터라는 독특함까지. 최고 수비상을 받은 스위치 히터포수 홈런왕, 좀처럼 상상하기 어려운 수식어의 조합이 바로 칼 롤리입니다.

 

롤리는 숱한 기록을 새로 썼습니다. 살바도르 페레스가 2021년 세운 한 시즌 포수 최다 홈런(49)을 넘어섰고, 뉴욕 양키스 레전드 미키 맨틀이 남긴 한 시즌 스위치 히터 최다 홈런(55)도 갈아치웠습니다. 그리고 97년과 98년 켄 그리피 주니어가 기록했던 시애틀 구단 한 시즌 최다 홈런(56)마저 앞지른 뒤 60홈런 고지까지 밟았습니다. 올스타전 홈런 더비 우승은 으로 봐도 될 정도입니다.

 

 

롤리가 더 주목받는 이유는 스위치 히터가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 때문입니다. ‘디애슬레틱에 따르면 2024년 메이저리그에 등록된 스위치 히터는 58명으로 최근 50년간 가장 적었습니다. (실제 출전한 선수를 기준으로 하면 50명이 채 되지 않는다는 보도도 있습니다.) 100명이 넘었던 2005년과 비교하면 20년 만에 절반 수준으로 줄어든 셈입니다. 효율성이 최고의 가치로 인식되는 시대 흐름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정해진 시간과 자원으로 가장 높은 효율을 산출해야 하는 환경에서, 스위치 히터로 준수한 기량을 유지하려는 시도는 절대적으로 비효율적이기 때문입니다.

 

롤리는 아버지의 의지로 스위치 히터가 됐습니다. 미국 대학 야구 코치인 아버지 토드 롤리는 아들이 걸음마를 떼기도 전에 야구 배트를 가지고 놀게 했습니다. (홈런 더비에서 롤리에게 배팅볼을 던져 준 바로 그 분입니다.) 그리고 아들이 배트를 휘두를 수 있게 되자 스위치 히터로 연습시켰습니다. 롤리도 자연스럽게 양손 타격을 구사하는 포수, 제이슨 배리텍을 롤모델로 삼고 빅리거의 꿈을 키워 대기록까지 이뤘습니다.

 

 

롤리가 보고 자란 배리텍이 스위치 히터가 된 사연도 흥미롭습니다. 4형제였던 배리텍은 어릴 때부터 야구에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형제들과 동네야구를 할 때도 당연히 남달랐습니다. 그래서 공평한(?) 경기 진행을 위해 오른손잡이인 배리텍만 왼손으로 타격하는 규칙을 적용했습니다. 이것이 어릴 적부터 왼손 타격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 계기가 됐습니다. 이후 학창 시절 코치의 조언 속에 배리텍은 스위치 히터로 성장해 보스턴에서만 15년을 뛰었습니다. 공교롭게 2010년 한 시점에 보스턴은 배리텍 이외에도 빅터 마르티네스와 재로드 살탈라마키아 등 스위치 히터 포수 3명을 보유한 이색 기록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한 팀에 스위치 히터 포수 3명이 등록된 것은 2010년 보스턴이 역대 세 번째입니다.)

 

스위치 히터는 1870년 처음 등장한 것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다만 어떤 시각으로 봐도 스위치 히터가 대세였던 적은 없습니다. 항상 ‘별종’ 취급을 받던 스위치 히터는 20세기 중반 화제의 중심에 서게 됩니다. 미키 맨틀의 등장 때문이었습니다.

 

미키 맨틀의 스위치 히터 선택은 지독할 만큼 전략적인 아버지의 결정이었습니다. 프로 선수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비루한 광부의 삶을 살던 맨틀의 아버지는 아들이 태어나기도 전부터 자신의 아이를 야구 선수로 키우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메이저리그에서 확실히 성공하려면 좌우 투수를 모두 공략할 수 있는 스위치 히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완벽한 스위치 히터가 되기 위해서는 어릴 때부터 조기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믿었습니다대선수 미키 코크레인에서 아들의 이름을 따온 것도 미리 준비한 것이었습니다.

 

 

아버지의 계획대로 맨틀은 다섯 살 때부터 놀이가 아닌 훈련으로 야구를 접했습니다. 맨틀의 스위치 히터 훈련을 위해 왼손잡이인 아버지와 오른손잡이인 할아버지가 번갈아 공을 던졌습니다. 아버지의 기대에 걸맞게 맨틀의 자질도 훌륭했습니다. 훗날 맨틀은 자신이 "천부적으로 타고난 재능을 지닌 탓에 좋은 감독은 될 수 없는 사람"이라고 말했을 정도입니다. 재능과 노력에 혹독한 훈련까지 결합되면서 맨틀은 좌우 타석 모두 장타력까지 갖춘 특출난 스위치 히터가 됐습니다. 지금도 야구 역사상 가장 완벽한 스위치 히터는 이견없이 미키 맨틀로 통합니다.

 

피트 로즈, 에디 머레이, 아지 스미스, 팀 레인즈, 그리고 로베르토 알로마까지. 이후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스위치 히터들 모두 포스트 맨틀스위치 히터로 분류하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치퍼 존스도 역사에 남을 만한 스위치 히터였습니다. 타격왕과 MVP, 월드시리즈 우승을 경험하고 명예의 전당에도 이름을 올렸습니다. 존스의 기록 가운데 특이한 것은 좌타석에서 기록한 통산 타율(.303)과 우타석 통산 타율(.304)이 거의 같다는 것입니다. 역시 미키 맨틀을 보고 영감을 받은 아버지의 권유로 스위치 히터가 된 사례입니다. 존스는 자신이 40세까지 빅리거로 살아남은 이유를 양손 타격으로 설명했습니다.

 

 

지난 2001KBO리그 삼성에서 뛰었던 카를로스 바에르가도 맨틀의 팬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스위치 히터의 길을 택했습니다. 로베르토 알로마도 마찬가지입니다. 메이저리거 출신인 아버지가 리틀 리그 시절부터 스위치 히터로 훈련을 시켰다고 합니다. (이런 알로마를 보고 스위치 히터가 된 현역 선수는 프란시스코 린도어입니다.) 스위치 히터의 역사가 곧 미키 맨틀에서 확장됐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스위치 히터는 너클볼 투수와 비슷한 측면이 있습니다. 스위치 히터를 시도한다 해서 성적이 나아진다는 보장이 없고, 실전에서 필요한 노하우를 전문적으로 습득하기 어렵다는 점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자발적인 의지가 필수라는 게 너클볼 투수와 닮은 부분입니다. 당연히 실패 사례도 있습니다. 에릭 데이비스처럼 프로 초창기 스위치 히터를 시도했다가 포기한 선수도 있고, 스위치 히터 훈련이 너무 어려워 다시 태어나면 한쪽으로만 치겠다던 랜스 버크만의 경우도 있습니다.

 

세이버메트릭스가 발달하고 스탯캐스트 수치가 중요하게 여겨지면서 스위치 히터의 장점은 갈수록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KBO리그에서는 더 희귀합니다. NC 유격수 김주원이 유일하게 스위치 히터의 명맥을 잇고 있습니다

 

 

스위치 히터가 줄어드는 것이 아쉬운 상황에서 롤리의 활약은 더 신선하게 다가옵니다. 롤리는 미키 맨틀의 기록을 넘어선 날, 자신이 아직 그런 이름과 나란히 할 만한 선수가 아니라며 스스로를 낮췄습니다. 물론 통산 기록으로는 비교 대상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맨틀의 위엄을 떠올리는 계기를 만들어줬다는 점에서 롤리의 시즌을 의미있게 평가하고 싶습니다.

 

미키 맨틀은 현역 시절 여러 차례 초인적인 괴력을 선보인 것으로도 유명했습니다. 1953년에는 추정 비거리 172미터의 초대형 홈런을 날려 미국 전역을 들썩이게 했습니다. 당시 양키스 동료 밥 쿠자바는 이 홈런을 보고 “타구 하나를 15개의 단타로 나눠도 될 정도의 비거리라고 허풍을 떨기도 했습니다. 그 정도의 과장도 거부감이 들지 않을 만큼 위압감이 대단했습니다. 맨틀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할 수는 없지만 롤리가 양손 타격으로 60홈런을 넘어선 올해, 맨틀의 영향력과 위엄을 다시 떠올리는 정도는 괜찮을 것 같습니다. 칼 롤리의 아버지, 토드 롤리가 이어준 스위치 히터의 역사에 경의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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