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짝 은퇴를 선언한 '신의 두 번째 왼팔'
브루클린에서 태어나 자랐으며, 농구 장학금을 받고 신시내티 대학에 입학한 꺾다리 유태계 청년이 있었다.
건축가를 꿈꾼 청년의 소원 중 하나는 서부를 여행하는 것이었다. 청년은 서부 원정을 떠나는 야구 팀 코치에게 자기도 데려가 달라고 했다.
코치는 버스에 자리가 없다고 했다. 농구 팀의 스타였지만, 야구 팀에서는 후보 1루수였던 청년은 자신을 투수로 데려가 달라고 했다. 그가 코치 앞에서 던져 보인 공은 서부행 티켓이 됐다.
야구 팀이 원정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청년은 샌디 코팩스라는 좌완 투수가 되어 있었다.
1955년 코팩스가 입단했을 때, 다저스는 코팩스의 고향인 브루클린에 있었다. 하지만 1958년 코팩스는 팀과 함께 서부로 아주 긴 여행을 떠났다. 다저스가 뉴욕을 떠나 LA로 옮긴 것이었다.
1965년은 다저스와 코팩스에게 잊지 못할 해였다. 다저스는 16경기를 남겨 놓고 1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 4경기반이 뒤진 3위였다. 하지만 마지막 16경기에서 기적 같은 15승1패를 기록함으로써 자이언츠를 끌어내리고 극적인 우승을 차지했다.
코팩스는 같은 기간 6경기에 나서 4승 1세이브 1.38의 대활약을 했다. 하지만 월드시리즈 1차전 등판을 거부했다. 유대교 명절 욤 키푸르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다저스는 돈 드라이스데일이 나선 1차전을 패했고, 코팩스도 2차전에서 패전투수가 됐다. 하지만 코팩스는 5차전에서 9이닝 10K 무실점 완봉승, 이틀 휴식 후 나선 7차전에서 다시 9이닝 10K 무실점 완봉승을 따냄으로써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코팩스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 우승이었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2005년. 다저스는 신인 드래프트에서 큰 낭패를 봤다.
다저스는 테네시대 우완 루크 호체이버를 전체 40순위로 지명했다. 다저스가 가진 가장 빠른 지명권이었다. 다저스는 데릭 로와 계약했기 때문에 26순위 지명권을 잃었고, 애드리안 벨트레가 시애틀과 계약하면서 40순위 지명권을 얻었다.
호체이버는 다저스가 고교 시절부터 오랫동안 눈독을 들인 투수였다. 호체이버는 다저스와 계약을 반대하는 보라스를 해고하고, 다저스가 제시한 298만 달러 보너스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다음날 마음을 바꿔 보라스에게 돌아갔다. 이는 다저스가 신의 첫 번째 왼팔인 코팩스에 이어 '두 번째 왼팔'을 얻게 된 시작점이었다.
이듬해 드래프트의 최대어는 제2의 랜디 존슨으로 불린 노스캐롤라이나대 좌완 앤드류 밀러였다. 밀러는 201cm의 큰 키와 강속구를 자랑했다. 1순위 지명권은 캔자스시티 로열스가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밀러의 몸값을 부담스러워한 로열스는 밀러 대신 호체이버를 뽑았다. 로열스는 드래프트 재수생인 호체이버가 3수는 할 수 없기 때문에 협상에서 유리할 것으로 생각했다. 로열스의 호체이버 지명으로 드래프트는 대혼란에 빠져들었다.
6순위 디트로이트는 졸업반 시즌에 구속이 크게 증가한 댈러스 출신의 고교 좌완을 뽑을 생각이었다. 클레이튼 커쇼였다. 하지만 5순위까지 팀이 밀러를 모두 지나치자 계획을 바꿔 밀러를 뽑았다.
7순위 지명권을 가진 다저스는 에반 롱고리아, 브래드 링컨, 커쇼 중 한 명을 뽑고 싶었지만 상황은 비관적이었다. 롱고리아는 3순위 탬파베이가, 링컨은 4순위 피츠버그가 데려갔고, 커쇼도 지명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5순위 시애틀이 예상 외의 선수였던 브랜든 모로를 뽑고, 6순위 디트로이트가 커쇼 대신 밀러를 뽑음으로써 커쇼를 지명할 수 있었다. 코팩스가 서부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투수가 되기로 결심한 일이 다시 한 번 일어난 것이다.
다저스가 커쇼를 7순위로 뽑은 같은 해, 자이언츠는 팀 린스컴을 10순위로 뽑았다. 린스컴이 2008-2009년 사이영상 2연패에 성공하자, 다저스의 한 지역 언론은 드래프트 책임자인 로건 화이트가 실수를 했다는 기사를 냈다. 린스컴이 남아 있는데 왜 커쇼를 뽑았냐는 비판이었다. 하지만 커쇼는 세 개의 사이영상과 리그 MVP(2014), 3000탈삼진을 달성한 역대 네 번째 좌완이 되는 것으로, 다저스의 선택이 옳았음을 입증했다.
2013년 디비전시리즈 4차전에서 있었던 일. 애틀랜타 브라이언 매캔은 땅바닥으로 떨어진 커쇼의 커브가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자 강하게 항의했다. 모두가 오심이라고 생각한 순간, 놀라운 장면이 만들어졌다. 방송사가 제공한 스트라이크 존의 맨 밑줄에 완벽한 점 하나가 떡하니 찍혀 있던 것이다. 코팩스의 커브는 커쇼의 손끝에서 부활했고, 부상 때문에 비운의 은퇴를 한 다저스의 32번 좌완은 22번 좌완으로 환생했다.
토미존 수술도 없던 시대에 팔꿈치 부상을 입어 도저히 공을 던질 수 없었던 샌디 코팩스가 당시 최고 연봉(10만 달러)을 포기하고 은퇴를 선언한 건 1966년 11월18일이었다. 그리고 2025년 9월18일. 이번에는 클레이튼 커쇼가 다저스에서의 18년을 정리하는 은퇴를 발표했다.
다저스에서 데뷔해 다저스에서 은퇴한 두 위대한 좌완의 역사도 그렇게 완성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