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의 빅리그 데뷔와 '코리안특급' 별명의 유래
1994년 4월이니까 벌써 31년이나 지난 일입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LA의 다저스타디움 좌측 외야 불펜에서 힘차게 달려 나오던 그 선수의 질주하는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서 보듯 생생합니다.
정확히는 미국시간 1994년 4월 8일, 우리 시간으로는 4월 9일.
한국 야구선수로는 최초로 전세계 야구의 최고봉인 미국 메이저리그(MLB)에 출전하는 역사의 한 장을 쓴 주인공은 모두가 잘 아시는 우완 강속구 투수 박찬호였습니다
©️박찬호 다저스 입단 기사
한양대 재학 중에 전격 다저스와 계약으로 야구계를 놀라게 했지만, 그 누구도 이 젊은 선수의 성공을 예상하지는 못했습니다.
MLB는 미국에서도 '빅리그'라는 애칭으로 불릴 정도의 '넘사벽'의 엄청나게 큰, 세계 최고의 야구리그였고, 당시만 해도 야구 변방인 한국 출신 선수가 감히 넘볼 수 없는 수준이라고만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박찬호는 스프링 캠프부터 155km를 넘나드는 강속구를 던지며 주목을 받더니, 모두의 놀라움 속에 개막전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는 쾌거를 이뤄냈습니다.
1965년 MLB 드래프트가 생긴 이래 마이너리그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것은 박찬호와 동기 대런 드라이포트가 17, 18번째 선수였습니다. 30년 동안 20명도 안 되는 유망주들만 빅리그 직행을 했던 겁니다.
그리고 시즌 초반 불펜에서 계속 대기하던 박찬호가 출격 준비를 명 받은 경기가 바로 4월 8일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의 홈경기였습니다.
9회초 다저스가 뒤진 가운데 박찬호는 3번째 투수로 마운드에 올랐습니다.
매일 다저스타디움 기자실에서 언제나 박찬호의 모습을 보려나 고대하던 일이 시즌 4번째 경기 만에 현실이 되는 순간, 저도 모르게 손에는 땀이 났습니다.
시작은 힘겨워 보였습니다.
하필 4번 타자 왼손 프레드 맥그리프가 데뷔 첫 상대였는데, 연속 볼 3개 이후에 첫 스트라이크를 꽂았지만 5구째가 다시 볼이 되며 볼넷.
2번째 타자는 역시 펀치력이 있는 좌타자 데이빗 저스티스. 똑같이 5구만에 볼넷을 내주며 무사 주자 1,2루가 됐습니다.
그리고 6번에는 타격왕에 리그 MVP까지 수상했던 스위치 타자 테리 펜들턴이었습니다.
3연속 왼손 타자를 만난데다, 궁지에 몰린 박찬호는 정신을 가다듬고 공격적인 피칭을 했습니다. 초구 헛스윙, 2구 파울로 볼카운트 0-2에 볼을 하나 던진 후 4구째 곧바로 정면 승부! 그러나 노련한 펜들턴은 강속구를 예상하고 있었고, 정확한 배팅으로 좌측을 뚫는 라인드라이브 강타를 쳤습니다. 담장까지 공이 구르는 사이 맥그리프와 저스티스가 모두 홈을 밟았습니다.
이미 0-4로 뒤진 상태에서 0-6으로 점차는 벌어졌습니다.
그치만 펜들턴의 그 적시타가 박찬호에게는 '웨이크업 콜'이었습니다.
흔들리지 않고 더욱 집중한 박찬호는 포수 하비 로페스를 맞아 헛스윙-파울-볼-헛스윙으로 데뷔 첫 삼진을 뽑았습니다.
이어서 마크 렘키를 1루 땅볼로 잡은 박찬호는 꽤나 타격이 좋은 투수 켄트 머커를 초구 볼 후에 3연속 헛스윙 삼진으로 이닝을 끝냈습니다.
연속 볼넷을 내준 아쉬움은 있었지만 강력한 구위로 삼진을 2개 잡는 등 루키 강속구 투수의 면모를 과시하기도 했습니다.
그날 짧은 1이닝이었지만 한국 야구사에 기념할 만한 등판은 당연히 대한민국 언론에서 대서특필했습니다.
박찬호 현장 인터뷰와 토미 라소다 감독의 인터뷰, 그리고 제가 원정팀 클럽하우스를 찾아가 만난 첫 삼진을 당한 하비 로페스의 코멘트까지 모두 스포츠조선 지면을 장식했습니다.
경기 후 만난 박찬호는 "어떻게 마운드까지 갔는지 기억이 안 난다. 처음엔 무릎이 떨리고 포수의 미트가 잘 보이지 않았었다"라며 긴장된 순간을 표현했습니다. 씩씩하게 달려오는 줄 알았더니, 그렇게 긴장 속에 떨고 있었던 겁니다.
그러나 안타를 맞고나서 마음의 안정을 찾고 자기 강속구를 뿌리며 삼진 2개를 곁들여 추가 실점없이 이닝을 마쳤습니다.
실은 그날 경기는 애틀랜타 언론을 크게 장식한 경기이기도 했습니다.
브레이스브 좌완 머커가 다저스 타선을 상대로 노히트 노런을 기록한 경기였으니까요. 그러나 국내 언론에서는 머커의 노히터는 마지막에 한 줄 들어간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박찬호는 6일 후 세인트루이스 원정에서 구원 등판해 3이닝 3실점 후 더블A 샌안토니오행 통고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2년간 마이너리그에서 갈고 닦은 끝에 MLB 18승 투수로, 통산 124승의 정상급 선발 투수로 성장하게 됩니다.
그런데 박찬호 선수를 데뷔 때부터 취재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떠오른 별명이, 애칭이 있었습니다.
초창기 박찬호 선수에게 롤모델을 물었더니 MLB 최고의 강속구 투수 놀란 라이언이라고 했습니다. 박찬호 카드를 보시면 저 높은 하이킥의 동작이 딱 라이언을 닯기도 했습니다.
박찬호가 빅리그 데뷔하기 1년 전에 은퇴한 라이언은 통산 5714개의 탈삼진으로 MLB 최고 기록을 지금도 보유한 대투수였습니다. 무려 7번의 노히트노런이라는 대기록도 보유했고, 2795개의 볼넷으로 역사상 가장 많은 볼넷을 내준 투수이기도 합니다.
그의 별명이 'Ryan Express'였습니다. 라이언이 롤모델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곧바로 'Korean Express' '코리안 특급'이라는 명칭이 떠올랐습니다. 곧바로 기사에 그 애칭을 썼고, 그 후 모든 국내 언론에서 자연스럽게 '코리안 특급'이라는 애칭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마이너리그에서 갈고 닦으면서 박찬호는 저 하이킥을 버리게 됩니다. 그의 은사인 버트 후튼 코치가 제구력에 도움이 되지 않으니, 하이킥을 하지 말자고 조언한 것입니다.
다음번에는 엄청나게 매운 시카고의 추위 속에서 박찬호가 거둔 빅리그 첫 승 이야기도 소개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