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츠의 전설, 300승을 양키스타디움에서 따내다
뉴욕 양키스와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경기가 열린 1985년 8월4일은 '필 리주토 데이'였다.
리주토는 조 디마지오, 요기 베라, 미키 맨틀과 함께 7번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일군 양키스의 전설적인 선수였고, 처음으로 'Holy Cow'라고 외친 스타 해설가였다.
경기가 열린 양키스타디움에는 5만4000명이 넘는 관중이 입장했는데, 양키스 팬보다 메츠 팬이 더 많았다(화이트삭스 팬도 일부 있었다). 그들이 사랑한 선수, 톰 시버가 화이트삭스 유니폼을 입고 300승에 도전한 경기였기 때문이다.
메츠 최초의 슈퍼스타로 '더 프랜차이즈'로 불린 시버는 1977년 6월15일 한밤중에 신시내티로 트레이드된다. 시버는 샌디 코팩스에 이어 두 번째이자 우완으로는 최초로 사이영 3회 수상자가 됐지만, 친구이자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는 놀란 라이언(캘리포니아 에인절스)보다 연봉이 크게 적었다.
시버는 구단 회장인 도널드 그랜트와 갈등 관계에 있었는데, 그랜트와 친한 기자가 '라이언의 부인과 친한 시버의 부인이 라이언의 연봉을 질투해 시버를 부추긴다'는 내용의 기사를 썼다. 이를 모욕으로 받아들인 시버는 그랜트에게 찾아가 기자와 자신 중 한 명을 택하라고 했고, 그랜트는 시버를 신시내티로 보냈다. 메츠 팬들은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트레이드 중 하나인 시버의 레즈행을 '한밤중의 대학살(Midnight Massacre)'로 불렀다.
1983년 시버는 다시 트레이드돼 메츠로 돌아왔다. 하지만 더 큰 충격이 그와 메츠 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당시는 FA 선수를 영입하면 보상 선수를 내줘야 했는데, 메츠는 빌 라키와 계약하면서 시버를 보호 선수로 묶지 않았다. 나이도 많고 연봉도 많은 시버를 데려가지 않을 것으로 생각해서였다. 하지만 화이트삭스는 시버를 지명했고, 시버와 메츠 팬들은 두 번째 이별을 해야 했다.

그 날, 시버가 상대한 양키스의 1,2,3,4번은 리키 헨더슨, 켄 그리피 시니어, 돈 매팅리, 데이브 윈필드였다. 시버는 7회까지 1실점으로 호투했고, 화이트삭스는 4-1로 앞섰다. 하지만 8회말 2사 1,3루에 몰렸고, 4번 타자 윈필드가 등장했다.
투수코치 데이브 던컨이 퇴장 당한 토니 라루사 감독을 대신해 시버를 교체하러 올라왔다. 시버는 이닝을 끝내고 싶다고 했고, 윈필드를 삼진으로 잡았다.
9회말 시버는 또 위기를 맞았다. 헤롤드 베인스가 윌리 랜돌프의 큰 타구를 잡아줬는데도 2사 1,2루에 몰렸다. 시버는 힘이 다한 것 같았다. 던컨이 마운드에 올라왔을 때, 포수 칼튼 피스크가 먼저 나서 시버에게 경기를 맡기자고 했다. 던컨은 이번에도 혼자 내려갔다.
시버는 대타 돈 베일러를 공 하나로 잡아내고 300승을 달성했다. 9이닝 7K 1실점의 완투승이었다. 화이트삭스는 4-1로 승리했고, 시버의 등번호는 41번이었으며, 패전을 안은 양키스 선발 조 카울리의 등번호도 41번이었다.
톰 시버와 칼튼 피스크는 40세와 37세일 때 처음 만났지만, 금세 서로를 존경하게 됐다.
시버는 엄청난 훈련량과 함께 학구파로도 유명했는데, 피칭에 대해 쓴 책 만 세 권에 달한다. 시버는 패스트볼이 왜 떠오르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베르누이의 법칙(Bernoulli's Law)을 인용하기도 했다.
철인 포수로 유명했던 피스크는 "나는 시버처럼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로 완벽하게 준비된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경기 중 자신에 대한 판단을 그렇게 냉철하게 하는 사람도요"라고 했다.
시버는 피스크에 대해 "그는 수정 구슬을 가지고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를 알아내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난 피스크의 사인에 고개를 거의 흔들지 않습니다. 퍼지(피스크)가 타자에게 혼란을 주려고 일부러 흔들라고 시킬 때를 제외하고는 말이죠. 그는 마운드로 올라와서 내 엉덩이를 걷어차야 할지가 언제인지를 아주 알고 있습니다. 나는 퍼지가 내려가라면 내려가고, 더 던지라고 하면 더 던집니다. 그 뿐입니다"라고 했다.
1992년 1월, 시버는 98.84%라는 역대 최고 득표율로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430명 중 5명이 시버에게 표를 던지지 않았는데, 세 사람은 피트 로즈의 후보 자격 박탈에 항의해 백지 투표를 했고, 한 사람은 심장 수술에서 회복 중이어서 투표에 불참했으며, 나머지 한 사람은 베이브 루스가 100%가 아니기 때문에, 100%는 절대 있을 수 없다는 사람이었다.
시버는 300승, 3000K, 2점대 ERA를 달성한 두 명 중 한 명(다른 한 명은 월터 존슨)으로, 세 번째 달성 선수는 영원히 없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