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너클볼 마스터, 필 니크로

필 니크로 Ⓒ MLB.com
필 니크로는 메이저리그 역대 최고의 너클볼 투수이자,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프랜차이즈 스타입니다. 니크로는 1964년부터 1987년까지 24시즌 통산 318승 274패 5,404이닝 3,342탈삼진 평균자책점 3.35를 기록했고, 올스타 5회, 골드글러브 5회, 다승왕 2회, 방어율왕 1회, 탈삼진왕 1회, 노히터 1회를 달성했는데요. 니크로의 등번호 35번은 애틀랜타의 영구결번으로 지정됐고, 그는 1997년 80.3%의 득표율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습니다.
니크로는 메이저리그에서 300승 고지를 점령한 유일한 너클볼러입니다. 한편, 니크로는 동생인 조 니크로(통산 221승)와 함께 539승을 기록했는데, 이는 MLB 역사상 형제가 합작한 최다 승수 기록이죠. 흥미로운 점은 니크로의 통산 318승 가운데 121승은 만 40세 이후에 거둔 승수라는 겁니다. 한편, 니크로의 5,404이닝은 라이브볼 시대 이후 가장 많은 투구 이닝인데요. 이는 '너클볼(Knuckleball)'이라는 구종의 특수성에서 기인합니다.
현대판 마구 : 너클볼
너클볼의 그립 Ⓒ MLB.com
너클볼은 투수가 던지는 모든 구종을 통틀어 가장 이질적인 구종입니다. 너클볼은 손끝으로 채서 던지는 다른 구종들과는 달리, 손가락 관절(Knuckle)로 밀어서 던지기 때문에 붙은 이름인데요. 이렇게 던지면 공에 회전이 거의 걸리지 않기 때문에 공 주변의 공기 흐름은 솔기에 걸려 난기류가 되고 불규칙한 움직임을 만들어냅니다. 따라서 타자의 입장에선 마치 '나비가 춤을 추듯이 날아오는 것'처럼 느껴지는거죠.
문제는 이러한 특징이 타자가 공을 치기 어렵게 만들지만, 투수 또한 공을 원하는 곳에 던지기 어렵게 만든다는 건데요. 이는 투수가 던진 공을 안전하게 잡아내야 하는 포수와 공이 스트라이크인지 볼인지 판별해야 하는 심판에게도 적용됩니다. 따라서 폭투 또는 포일이 될 위험이 높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단점은 높은 구사 난이도죠. 너클볼은 모든 구종을 통틀어 가장 느린 구종 중 하나입니다.
너클볼의 구속은 투수별로 약간씩 편차가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시속 70마일(약 113km) 내외에서 형성되는데요. 따라서 회전이 조금만 더 걸리면 배팅볼이나 다름없는 공이 됩니다. 실제로 이상적인 너클볼은 투수의 손을 떠나 홈 플레이트까지 한 바퀴 또는 한 바퀴 반 정도 회전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렇게 공을 던지기 위해선 엄청난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너클볼에 대한 격언 중엔 이런 말이 있습니다.
"가르치는 데는 10분, 배우는 데는 평생(Ten minutes to teach but a lifetime to learn)". 그만큼 너클볼을 주무기로 삼는 투수들은 다른 구종을 익히기 힘들고, 따라서 일정 수준의 구위를 갖춘 투수라면 너클볼에만 초점을 맞추는 위험한 도박을 할 이유가 없습니다. 너클볼러가 희귀한 이유죠. 하지만 너클볼에는 여러 이점도 있는데요. 그중 하나는 다른 구종보다 팔의 부담이 적기 때문에 투수의 수명을 늘려준다는 겁니다.
광부인 아버지에게 너클볼을 배우다

필 니크로 Ⓒ MLB.com
실제로 대부분의 너클볼러는 나이가 들거나 부상으로 인해 구위가 쇠퇴했을 때 최후의 수단으로 너클볼을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니크로는 달랐죠. 그는 야구를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너클볼이라는 '한 우물'만 팠고, 그렇기에 여타 너클볼러와는 완성도 자체가 다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너클볼을 처음으로 던진 투수는 아니었지만, 니크로는 너클볼을 전문으로 던지는 너클볼러의 원조이자 모든 너클볼러의 스승입니다.
니크로의 본명은 '필립 헨리 니크로(Philip Henry Niekro)'로, 미국 오하이오주 블레인에서 폴란드계 미국인 필립 니크로와 헨리에타 니크로 부부의 삼 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니크로의 아버지인 필립은 광부였지만 젊은 시절에는 준 프로 야구에서 투수로 활약했었는데요. 강속구 투수였던 그는 팔을 다치면서 패스트볼을 못 던지게 되자, 마이너리그 출신 팀 동료였던 닉 맥케이로부터 너클볼을 전수받습니다.
훗날 니크로는 "아버지는 광부셨어요. 탄광에서 돌아온 아버지의 모습이 기억나요. 아버지는 그냥... 온통 까맣고 치아만 보였어요. 아버지는 집에 오면 제일 먼저 현관에서 기다리는 저희에게 간식을 나눠주셨어요. 그다음엔 뒷마당으로 가서 저희와 캐치볼을 해주셨어요. 저희는 어두워질 때까지 공을 던진 후 저녁을 먹고 목욕을 했죠. 그리고 나면 아버지는 야구 중계를 들으며 잠이 드셨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어느 날 아버지가 어떤 공을 던져 주셨는데 제가 잡지 못했어요. 아마 무릎이나 어딘가에 맞았을 거예요. 그러니까 '이게 뭐지?'하고 궁금해졌어요. 아버지가 알려주셨죠. 잡는 법도 보여 주셨고요. 당시 저는 너클볼에 대해서도, 메이저리그에 대해서도 몰랐어요. 별로 생각 안 했어요. 그냥 아버지로부터 배운 그 공(너클볼)을 계속 던지기만 했죠. 그러다 보니까 던지는 데 꽤 능숙해졌어요"라고 회고했습니다.
쉽지 않았던 프로 초창기
필 니크로 Ⓒ MLB.com
니크로는 너클볼 하나로 고교 무대를 제패했는데요. 그는 브리지포트 고교 시절 투수로서 활약하며 17승 1패를 기록했는데, 유일한 패배는 신입생 시절인 1954년 틸턴스빌 고교에 1-0으로 진 경기였습니다. 해당 경기에서 그의 실점은 3년 선배인 빌 마제로스키(피츠버그의 전설적인 2루수)에게 허용한 솔로 홈런이 전부였죠. 당연하게도 졸업을 앞둔 시점에서 니크로는 여러 대학으로부터 전액 장학금 제안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니크로는 프로야구 직행을 위해 장학금 제안을 거절했고, 고교 졸업 후 지역 준-프로 팀에서 투수로 활약했습니다. 이듬해인 1958년 7월 오하이오주 벨레어에서 열린 밀워키 브레이브스의 트라이아웃 캠프에 참가한 그는 브레이브스의 스카우트인 빌 모운으로부터 계약금 500달러, 월급 275달러, 매일 2달러의 식대를 제안받았는데요. 훗날 니크로는 이때를 야구 인생에서 가장 짜릿했던 순간으로 회고했습니다.
하지만 프로 생활은 기대만큼 달콤하지 않았죠. 니크로는 1959년 뉴욕-펜실베이니아 리그(클래스 D)의 웰스빌에서 10경기 2승 1패 평균자책점 7.46에 그쳤는데요. 그러자 웰스빌의 감독인 해리 마이너가 그를 사무실로 불러 방출을 통보했습니다. "그 순간, 아버지처럼 탄광에서 일하는 제 모습이 떠올랐어요. 그리고 팀에 남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다시 한번 기회를 달라고 간청했죠" 니크로는 말했습니다.
니크로의 진지함은 마이너 감독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그는 필에게 두 번째 기회를 주기로 결정했습니다. 이후 브레이브스는 그를 반 단계 아래인 네브레스카 리그(클래스 D-)의 맥쿡으로 보냈는데, 그곳에서 니크로는 23경기 7승 1패 평균자책점 3.12이라는 준수한 성적을 남겼습니다. 힘겹게 첫해를 마친 니크로는 이후 매년 조금씩 발전하는 모습을 보였고, 1963년에는 미국 육군에 입대해 병역 의무도 마쳤습니다.
마침내 메이저리그 선수가 되다

필 니크로 Ⓒ MLB.com
1964년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 채 스프링 캠프에 합류한 니크로는 밀워키 브레이브스의 감독 바비 브래건의 눈에 띄면서 개막전 로스터에 합류하게 됩니다. 그리고 1964년 4월 15일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원정 경기에서 3회 말 2사 1루 상황에 교체 투입되어 짐 데븐포트를 유격수 땅볼로 돌려세우며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치렀습니다. 마침내 오하이오 출신 광부의 아들이 메이저리그 선수가 된 겁니다.
당시 니크로의 나이는 만 25세, 프로 진출 후 6년 만이었죠. 니크로는 시즌 첫 달 동안 10경기 0승 0패 15이닝 평균자책점 4.80을 기록한 후 브래건 감독으로부터 "선발 투수가 돼라"라는 특명을 받고 마이너리그로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남은 시즌을 트리플 A에서 보내며 29경기(21선발) 11승 5패 172이닝 119탈삼진 평균자책점 3.45를 기록했는데요. 이는 그때까지 그가 프로 생활에서 경험한 가장 많은 이닝이었습니다.
이듬해인 1965년 메이저리그로 복귀한 니크로는 팀 사정으로 인해 불펜으로 뛰면서 41경기(1선발) 2승 3패 6세이브 74.2이닝 49탈삼진 평균자책점 2.89를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1966년에는 마이너리그(선발)와 메이저리그(불펜)를 오가며 28경기 4승 3패 2세이브 50.1이닝 17탈삼진 평균자책점 4.11을 기록했는데요. 니크로가 풀타임 메이저리거로 완전히 자리매김한 것은 1967시즌 만 28세가 되고 나서부터였습니다.
니크로는 1967년 불펜으로 시작했지만, 6월부터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해 46경기(20선발) 11승 9패 9세이브 207이닝 129탈삼진 평균자책점 1.87을 기록하며 NL 평균자책점 부문 1위에 오릅니다. 그리고 이해엔 니크로 가족에게는 또 다른 경사가 있었는데요. 삼남매 중 막내인 조 니크로가 시카고 컵스의 개막전 로스터에 합류하며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것이죠. 하지만 이 시점에서 조는 아직 너클볼러가 아니었습니다.
대기만성의 에이스

필 니크로 Ⓒ MLB.com
니크로는 다소 늦은 나이인 만 28세가 되어서야 기량을 만개했지만, 이후로는 거칠 것이 없었습니다. 니크로는 1968년 37경기(34선발) 14승 12패 256.2이닝 140탈삼진 평균자책점 2.59를 기록했고, 1969년에는 23승 13패 284.1이닝 193탈삼진 평균자책점 2.56을 기록했죠. 놀라운 점은 모든 구종을 통틀어 제구하기가 가장 어려운 너클볼을 주력 구종으로 던지면서도 9이닝당 볼넷이 1.6개밖에 되지 않았다는 건데요.
이를 바탕으로 니크로는 커리어 첫 올스타에 선정됐고, 뉴욕 메츠의 에이스 톰 시버(25승 7패 ERA 2.21)에 이어 NL 사이 영 상 투표 2위에 올랐습니다. 니크로의 활약에 힘입어 브레이브스는 1966년 애틀랜타로 연고지를 옮긴 후 처음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지만, NLCS에서 메츠에 3연패로 탈락했습니다. 한편, 니크로도 시버와 1차전 맞대결에서 8이닝 9실점(4자책)으로 무너지며 패전 투수가 됐습니다.
브레이브스는 이후 12년 동안 가을 무대를 밟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니크로는 1970년 34경기 12승 18패 229.2이닝 168탈삼진 평균자책점 4.27로 부진했던 것을 제외하면 꾸준한 활약을 펼쳤는데요. 특히 1973년, 두 가지 주목할 만한 사건이 있었다. 우선 1973년 8월 5일, 니크로는 샌디에이고를 상대로 커리어 처음이자 마지막 노히터를 달성했습니다. 그리고 이틀 후, 브레이브스는 동생 조를 영입했습니다.
이로써 항상 한 팀에서 함께 뛰길 원했던 니크로 형제는 마침내 그 꿈을 이루게 됐죠. 동생 조는 커리어 초기엔 패스트볼과 슬라이더를 던지는 투수였지만, 그다지 훌륭한 성적을 거두진 못한 채 1972년 디트로이트로부터 방출 대기(DFA) 처분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애틀랜타에서 형(필)과 만난 조는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배웠던 너클볼을 다시 접한 것을 계기로 훗날 221승을 거두는 투수로 성장하게 됩니다.
메이저리그 유일의 형제 공동 다승왕

필 니크로(좌)와 조 니크로(우) Ⓒ MLB.com
동생 조와의 만남은 형인 필 니크로에게도 커다란 동기 부여가 됐는데요. 그는 1974년 20승 13패 302.1이닝 195탈삼진 평균자책점 2.38로 다승·이닝·완투 부문 리그 1위를 차지하며 NL 사이 영 상 투표 3위에 올랐습니다. 1974년 이후 조는 휴스턴으로 떠났지만, 필은 1983년까지 애틀랜타에 남아 여러 대기록을 남깁니다. 안타까운 점이 있다면 소속팀 애틀랜타의 전력이 니크로를 뒷받침해 주지 못했다는 것이죠.
실제로 니크로는 1977년부터 1979년까지 3년 연속 선발 등판·완투·이닝 부문 1위에 올랐고, 다승왕·탈삼진왕을 각각 한 번씩 차지했는데요. 특히 1978년부터 1979년까진 2년 연속 WAR(승리기여도) 1위였습니다. 그런데도 니크로는 1977년부터 1980년까지 4년 연속 최다패에 그쳤습니다. 하지만 그 가운데에서 기쁜 일도 있었습니다. 바로 1979년 동생 조와 함께 나란히 21승으로 형제가 NL 공동 다승왕에 오르는 진기록을 남긴 것이죠.
그리고 1983년 만 44세의 니크로는 11승 10패 201.2이닝 128탈삼진 평균자책점 3.97을 기록하며 통산 다섯 번째이자, 마지막 골드글러브를 수상했습니다. 하지만 시즌 종료 후 애틀랜타는 니크로에게 은퇴를 권유했고, 이를 거절하자 그를 방출하는 충격적인 결정을 내리는데요. 이러한 구단의 결정에 애틀랜타 팬들은 분노했습니다. 니크로는 전성기에서 내려왔을지 몰라도, 구단 역사상 최고의 투수 중 한 명이었기 때문이죠.
니크로는 애틀랜타에서 방출된 후 양키스와 2년 계약을 맺었고, 1984년 16승 8패 215.2이닝 136탈삼진 평균자책점 3.09으로 통산 5번째이자 마지막 올스타에 선정됐습니다. 그리고 1985년 10월 6일 토론토를 상대로 완봉승을 거두며 통산 300승을 달성했습니다. 당시 니크로의 나이는 만 46세 188일이었는데, 이는 제이미 모이어(47세 170일)가 2010년에 경신하기 전까지 최고령 완봉승 기록이었습니다.
너클볼 마스터, 하늘의 별이 되다

필 니크로 Ⓒ MLB.com
흥미롭게도 해당 경기에서 니크로는 9회 말 2아웃까지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너클볼을 던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타자인 제프 버로우스에게 너클볼을 던져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경기를 끝냈죠. 니크로는 1985년을 16승 12패 220이닝 149탈삼진 평균자책점 4.09로 마친 후 양키스로부터 방출되자 클리블랜드와 2년 계약을 맺었고, 1986년 11승 11패 210.1이닝 81탈삼진 평균자책점 4.32를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1987년 클리블랜드에서 7승 11패 평균자책점 5.89에 그치자 토론토로 트레이드됐고, 토론토에서도 2패 평균자책점 8.25에 그친 후 방출됩니다. 이때 그에게 마지막으로 손길을 내민 건 '친정팀' 브레이브스였는데요. 애틀랜타는 그가 친정팀에서 선수 생활을 마감할 수 있도록 배려했죠. 그렇게 4년 만에 애틀랜타로 돌아온 니크로는 마지막 등판에서 3이닝 5실점을 기록했고, 시즌 종료 후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니크로는 마지막 선발 등판을 앞두고 애틀랜타의 영구 결번(35번)으로 지정됐고, 1997년 5번째 투표에서 80.3%의 득표율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습니다. 너클볼러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것은 호이트 윌헬름(1952-72년)에 이어 두 번째였죠. 니크로는 은퇴 후에도 팀 웨이크필드, R.A. 디키 등 후배 너클볼러들에게 노하우를 전수하며 '너클볼의 대부'로 불렸고, 2020년 12월 27일 향년 81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