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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리그 유일 두 경기 연속 노히터 밴더 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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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조니 밴더 미어(Johnny Vander Meer)라는 투수가 있었습니다.
MLB 사상 유일하게 2경기 연속 노히트노런을 기록한 진기록의 보유자입니다. 

 

야구에서 노히트 노런(No-hitter)은 9이닝 이상 던지면서 안타를 하나도 내주지 않고 경기를 끝낸 경우 인정을 받는, 투수에게는 평생 한 번 이루기 힘든 대단한 훈장 같은 경기를 의미합니다.

 

공식 기록에 따르면, 1876년 이후 MLB에서 총 326번의 노히트노런이 기록됐습니다.
149년 동안 326번이 나왔으니 평균 1년에 약 2.2번이 조금 안되는 노히터가 나온 셈입니다.
이 중에는 투수 혼자 완투한 노히트노런뿐 아니라, 여러 투수가 이어서 기록한 ‘합작(Combined) 노히트노런’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합작 노히트노런은 총 21번 있었습니다.)

 

그중에 두 번 이상의 노히트노런을 기록한 투수는 35명 있었습니다. (정규시즌 및 포스트시즌 포함)
강속구 투수의 대명사이던 놀란 라이언(Nolan Ryan)은 무려 7번의 노히트노런을 던진 전설을 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두 경기 연속 노히터를 기록한 투수는 딱 한 명, 밴더 미어뿐이었습니다.

 

신시내티 레즈의 좌완 투수이던 조니는 당시 빅리그 2년차인 23세 신예였습니다.
그런 그가 1938년 6월 11일 보스턴 비즈와의 크로슬리 필드 홈경기에서 9이닝 무피안타, 볼넷 3개, 탈삼진 4개, 단 28명의 타자 상대하며 3-0 노히터 완봉승을 거뒀습니다.
3회까지 9타자 연속 범타에 이어 4회에 진 무어를 볼넷을 내보냈지만 포수 견제로 아웃. 그리고 빈스 디마지오의 중앙을 뚫을듯한 타구는 밴더 미어의 글러브에 맞고 3루수 루 릭스의 앞으로 굴러 1루에서 아웃되며 큰 위기를 넘기기도 했습니다.
5회 볼넷 2개 위기를 넘긴 후 7회부터 9타자 연속 범타로 첫 노히터를 달성했습니다.

 

그리고 나흘 뒤인 6월 15일 브루클린 다저스전은 더욱 극적이었습니다.

이 경기는 다저스 홈구장 애버츠필드의 사상 최초의 야간 조명탑 경기로 큰 관심을 모으기도 했습니다.
이날 유료 관중만 38,748명이 입장했는데, 약 1만 명 이상이 표를 못 구해 운동장 밖에서 돌아갔습니다. 올림픽 스타 제시 오언스의 시범 경주와 홈런왕 베이브 루스까지 등장했던 빅 이벤트 경기에서 조니는 두 경기 연속 노히터를 완성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경기 기록을 보면 절대 쉽지는 않았습니다.
9이닝 동안 안타는 하나도 내주지 않았지만 볼넷을 8개나 내주면서 고전했습니다.
특히 마지막 9회말 6-0 리드 속에 마운드에 올랐지만 1아웃에 펠프스-리바제토-카밀리에게 연속 볼넷을 내주며 만루 위기에 몰렸습니다.
당시 빌 매키크니 감독이 마운드를 방문 ‘너보다 그들이 더 무서워하고 있어!’라며 격려한 후일담도 유명합니다.
그리고 밴더 미어는 내야 땅볼로 홈에서 주자를 잡고 투아웃 후에 다저스 감독 겸 선수 레오 드로셔가 친 공이 중견수 해리 크래프트에 잡히면서 전무후무한 ‘2경기 연속 노히터’라는 대기록을 이뤄냈습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조니는 이 대기록을 수립한 덕에, (혹은 탓에) 과소평가된 부분이 있었습니다.
13년 통산 빅리그 성적은 119승 121패 2세이브에 ERA 3.44로 충분히 훌륭했지만, ‘2연속 노히터 투수’라는 훈장에는 조금 못 미치는 성적이라는 세간의 평가를 받았습니다.
실은 무서운 강속구와 엄청난 커브를 던지는 투수였지만, 제구력이 좋은 투수는 아니었기에 그런 평가를 부채질한 점도 있어 보입니다. 실제로 두 번째 노히터 경기에서도 8개의 볼넷을 내줬고, 통산 볼넷이 1132개로 9이닝 당 4.8개였을 정도로 볼넷이 많은 투수이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조니는 1941년부터 3년 연속 NL 삼진왕에 올랐을 정도로 구위가 뛰어난 투수였습니다.
두 번째 노히터를 합작한 포수 어니 롬바르디는 경기 후 “그의 공이 포수 글러브에 꽂히는 소리가 전 구장에 울렸다. 단지 스트라이크 존 근처로만 와주길 바랄 뿐이었다.”라며 그의 구위와 아슬아슬 제구력을 솔직히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저평가에는 조니의 지나친(?) 겸손도 한 몫을 했습니다.
 두 번째 노히터 후 기자 인터뷰에서 조니는 “나는 9회 만루 상황에서 무너질 줄 알았다. 하지만 운이 따라줬다(Luck was with me).”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은퇴 후에도 이 대기록으로 여러 곳에 초청을 받고 강연도 다니고 했는데, 늘 한결같이 “나는 그저 평범한 투수였다. 단지 그 두 날만은 특별했을 뿐이다.(I was just an ordinary pitcher. Those two days were special).”라며 쏟아지는 극찬에 겸연쩍은 미소를 짓곤 했습니다.

 

그러나 대단히 뛰어난 투수였던 조니는 다음 등판인 6월 19일 보스턴전 4회 데브스 갬스에게 첫 안타 허용할 때까지 21.2이닝 연속 무피안타로 당시 NL 신기록을 쓰기도 했습니다. 이 기록은 76년 후인 2014년 LA 다저스의 클레이턴 커쇼가 한 타자를 더 잡으며 22이닝 연속 무피안타로 NL 기록을 새롭게 장식합니다. (통산 최다 이닝 무피안타 기록은 사이 영 (Cy Young, 보스턴 아메리칸스, 1904년)이 세운 24⅓이닝이 아직까지 이어집니다.)
이 경기까지 조니는 두 번의 노히터 포함 6경기 연속 완투승을 거뒀습니다.

 

1940 신시내티 레즈 월드시리즈 우승 멤버이기도 한 밴더 미어는 원래는 다저스가 뽑은 유망주였습니다.
18세 때인 1933년 다저스 스프링캠프에 첫 참가했지만 얼마 못가 제구 불안으로 방출됐습니다. 이후 레즈가 영입, 빌 맥키크니 감독의 조언으로 투구폼을 사이드암에서 오버핸드로 바꾼 후 구속은 더 빨라지고 제구도 한층 나아졌습니다. 스프링캠프 때면 전설와 좌완 레프티 그로브의 조언도 한 몫을 했습니다.

 

그가 두 번째 노히터를 기록한 후 지역 언론은 ‘기적의 밴더(Vander Meeracle)’라는 애칭으로 그의 업적을 칭송했습니다. 신시내티의 한 칼럼니스트는 도시 중심에 서 있던 ‘가필드 대통령 동상 대신 밴더 미어 동상을 세우자’는 농담조의 컬럼을 쓰기도 했을 정도로 인기가 대단했습니다. 

 

1943년 36번 선발 등판해서 36번 완투와 함께 2년 연속 21승을 거둔 조니는 3년 연속 삼진왕 기록을 뒤로 하고 2차대전으로 해군에 입대했습니다.
2년간의 공백 후 31세에 MLB로 복귀한 조니는 예전보다 구위는 약간 떨어졌지만 여전한 강속구와 파워 커브, 그리고 와일드한 피칭으로 5년을 더 현역으로 활동했습니다.
그리고 1951년 만 36세에 클리블랜드에서 딱 한 경기 등판한 것이 그의 빅리그 마지막 기록입니다.

그런데 잘 알려지지 않은 조니 밴더 미어의 마지막 영웅담이 있습니다.
빅리그는 떠났지만 1952년에도 조니는 야구를 계속했습니다. 그리고 1952년 7월 15일 마이너리그 텍사스리그 털사 오일러스에서 선발 투수로 나서 보몬트 러프넥스를 상대로 다시 노히트 노런을 기록한 것입니다.

 

그날은 악천후가 예보된 그야말로 폭풍 전야로, 구름이 자욱하고 비바람 예보까지 있었기 때문에 관중은 겨우 335명에 불과했습니다. 그 시즌 최저 관중이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그는 거의 4만 관중 앞에서 2경기 연속 노히터를 기록한지 14년만에 3백여명의 관중 앞에서 생애 3번쩨 노히트 노런을 기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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