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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과 방패의 대격돌' 1990년 월드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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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1990년 월드시리즈는 Brothers Boys의 대결이었다.

 

1987년 마크 맥과이어가 신인 최다 홈런(49)을 달성하고, 1988년 호세 칸세코가 최초로 40홈런 40도루를 달성한 오클랜드는 명실상부한 아메리칸리그 최강 팀이었다.

 

오클랜드는 1988년 월드시리즈에서 데니스 에커슬리가 커크 깁슨에게 대타 끝내기 홈런을 맞고 패했지만, 베이 시리즈로 치러진 1989년은 4연승 우승에 성공했다. ALCS에서 20득점 4실점(4연승)으로 보스턴을 박살낸 오클랜드는 1969-1971년 볼티모어 이후 처음으로 3년 연속 월드시리즈에 진출했다.

 

강하게 때리다(bash)는 의미로 배시 브라더스(Bash Brothers)가 된 맥과이어와 칸세코가 팀의 간판이었지만, ERA 역시 메이저리그 1위였을 정도로 빠지는 구석이 없는 팀이었다. 원투펀치인 데이브 스튜어트(267이닝)와 밥 웰치(27)는 메이저리그 이닝 1위와 다승 1위였고, 63경기 4볼넷의 에커슬리는 마무리 역사상 가장 완벽한 시즌을 만들었다는 찬사를 들었다(ERA 0.61). 월드시리즈의 Top Dog은 오클랜드였다.

 


오클랜드를 상대해야 하는 신시내티는 독특한 팀이었다. 하루도 1위를 내주지 않는 와이어 투 와이어(wire-to-wire) 우승을 했지만, 91승은 오클랜드보다 12승이 적었고, 30홈런 타자와 20승 투수가 한 명도 없었다. 하지만 신시내티는 내스티 보이스(Nasty Boys)로 불리는 최강 불펜을 자랑했다.

 

내스티 보이스는 놈 찰튼(좌완) 롭 디블(우완) 랜디 마이어스(좌완)으로 구성됐다. 마이어스는 스프링 트레이닝에서 찰튼과 디블의 피칭을 보면서 "저 친구들 참 험악하게(nasty) 던지는구먼"이라고 했고, 이는 셋의 별명으로 이어졌다. 마침 당시의 인기곡 중 하나는 자넷 잭슨의 였다.

 

셋은 무시무시한 공을 던졌고 승리를 위해서는 빈볼도 서슴지 않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험악한 놈'(Nastiest Boy)로 불린 디블은 팀의 감독인 루 피넬라와 난투극을 벌이기도 했다.

 

1992년의 어느날, 피넬라는 '왜 디블이 등판하지 않았나'라는 질문에 "그가 경기 전에 찾아와 팔이 불편하다고 했다"라고 답했다. 기자들이 디블을 찾아가 묻자, 디블은 "뻥치지 말라고 하슈"라고 했고, 기자들은 이 말을 다시 피넬라 감독에게 전했다. 둘은 클럽하우스에서 뒤엉켜 붙었고, 이 장면은 TV 카메라를 통해 생생히 중계됐다.

 

1991년의 어느날, 2점을 내주면서 간신히 세이브를 거둔 디블은 화를 참지 못하고 경기 종료와 동시에 마운드에서 외야 관중석을 향해 힘껏 공을 던졌다. 무려 400피트를 날아가 외야 2층 관중석에 꽂인 공은, 하필이면 한 여성을 강타했다. 공에 맞은 사람은 학교 선생님이었다. 4경기 출장 정지와 함께 1000달러 벌금을 내게 된 디블은 사과의 의미로 학교를 찾아가 선생님의 수업을 들었다.

 

이들에게는 신성한 의식이 있었다. 승리를 거둔 후 클럽하우스에서 마이어스가 MC해머의 를 틀면 함께 신명나게 춤을 추는 것이었다. 오클랜드 출신인 MC해머는 어렸을 때 오클랜드 콜리세움의 주차장을 뒤져서 찾은 야구공을 춤을 추면서 팔았고, 이를 목격한 찰리 핀리 구단주에 의해 배트보이가 됐다. MC해머가 된 것도 레지 잭슨이 행크 애런을 닮아서 붙여준 별명이었다(애런의 별명은 해머링 행크였다). 정말 묘하게도 오클랜드를 상징하는 MC해머의 히트곡을, 내스티 보이스는 자기들의 상징곡으로 썼던 것이다.

 

오클랜드에게 꺼림칙한 또 하나는 신시내티의 역사였다. 신시내티는 '빅 레드 머신'으로 불렸던 1975년과 1976년에 월드시리즈 2연패를 했다(이는 지금도 내셔널리그의 마지막 2연패 기록으로 남아 있다). 1975년에는 충격적인 6차전 패배를 당하고도 7차전을 승리해, 보스턴의 저주가 끊어지는 걸 막았고, 1976년에는 천하의 뉴욕 양키스를 4연승으로 돌려보냈다.

 

1990년 월드시리즈의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신시내티를 압도할 거라는 예상과 달리, 오클랜드는 1차전에서 스튜어트, 2차전에서 에커슬리가 무너졌고(10회말 끝내기 안타 허용), 벼랑 끝에 몰린 4차전에서는 7회까지 무실점이었던 스튜어트가 82실점을 하고 1-2로 패했다.

 

1976년에 이어 전승 우승을 하고 월드시리즈 9연승을 한 신시내티의 힘은 내스티 보이스였다. MC해머의 노래처럼 아무도 건들 수 없었던 이들은 8.2이닝 무실점을 합작했고, 포스트시즌을 24.1이닝 1자책(ERA 0.37)으로 마감했다.

 

하지만 신시내티의 구단주인 마지 쇼트는 4연승 우승에 격노했다. 쇼트는 시리즈가 일찍 끝나 입장 수입에서 큰 손해를 봤다고 생각했고, 우승 축하 파티의 비용을 지불하지 않았다.

 

1997년 오클랜드는 맥과이어를 세인트루이스로 트레이드했고, 맥과이어는 메이저리그의 영웅이 됐다. 1998년에 새미 소사와 한 홈런 대결이 야구의 인기를 크게 높였다. 하지만 맥과이어는 약물 논란에 휩싸였고, 명예의 전당 투표를 통과하지 못했다.

 

19904차전을 마지막으로, 콜리세움에서는 더 이상의 월드시리즈가 열리지 못한 채 애슬레틱스는 오클랜드를 떠났다. 맥과이어와 배시 브라더스로 대표되는 오클랜드 시대도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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