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의 월드시리즈 등판 'El Presidente'
연재
별명이 대통령(El Presidente)인 데니스 마르티네스(71)는 니카라과의 야구 영웅이다.
그가 올린 245승은 니카라과 선수들의 전체 기록인 493승의 절반에 달한다. 니카라과도 야구를 좋아하는 나라이지만, 도미니카공화국(100명) 베네수엘라(63명) 쿠바(26명) 푸에르토리코(16명)와 달리, 니카라과의 현역 메이저리그 선수는 세 명에 불과하다.
1991년 마르티네스는 13번째 퍼펙트게임의 주인공이 됐다. 비 미국인 선수로는 최초였다. 이후 베네수엘라 출신 펠릭스 에르난데스(2012)와 도미니카공화국 출신 도밍고 헤르만(2023)이 달성하긴 했지만, 지금도 24명 중 비 미국인은 세 명에 불과하다.
마르티네스가 44세 시즌까지 뛰면서 23시즌 동안 달성한 245승은, 2018년 바톨로 콜론(247승)이 넘어서기 전까지 라틴 아메리카 투수의 최다승 기록이었으며, 지금도 콜론에 이어 2위에 올라 있다. 후안 마리샬(243승) 페드로 마르티네스(219승) 등 시대를 지배했던 많은 히스패닉 에이스들이 마르티네스를 넘지 못했다.
니카라과 그라나다에서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마르티네스는 어린 시절 가난과 싸웠고, 전설적인 스카우트인 레이 포이테빈트의 눈에 띄어 볼티모어 오리올스에 입단했다. 포이테빈트가 말년에 보스턴 레드삭스의 스카우트를 지내면서 한국에서 데려간 투수는 김선우였다.
화려한 데뷔는 아니었지만 꾸준히 성장한 마르티네스는 27세 시즌이었던 1981년, 다승왕에 오르고 사이영 투표에서도 5위를 했다. 이듬해는 10번을 완투하고 252이닝을 소화하며 내구성을 선보였다. 하지만 1983년 마르티네스는, 처참하게 무너진다.
1983년 오리올스는 98승을 거둔 최고의 팀이었다. 둘 다 명예의 전당에 오르는 22살의 칼 립켄 주니어와 27살의 에디 머리는 MVP 투표에서 1위와 2위를 했다. 하지만 마르티네스는 7승16패 5.53에 그쳤고, 포스트시즌 로스터에서 탈락했다.
볼티모어는 99승 팀인 시카고 화이트삭스를 꺾고 월드시리즈에 올라갔다. 그리고 마이크 슈미트, 조 모건, 피트 로즈, 스티브 칼튼, 명예의 전당 선수 네 명이 있는 필라델피아 필리스를 꺾고 우승했다. 볼티모어의 마지막 우승이었다.
볼티모어가 축제를 즐기고 있을 때, 마르티네스는 찬물을 끼얹는 대형 사고를 친다. 음주 운전으로 체포된 것이었다. 마르티네스는 17살 때부터 술을 달고 살았고, 29살인 당시는 손쓸 수 없을 정도였다.
마르티네스는 자신의 아이들에게 수치스러운 모습을 보였다고 생각해 스스로 재활 치료에 들어갔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술을 끊고 나니, 경기에 집중할 수 없었던 것이다. 성적은 나오지 않았고, 1986년 6월 마르티네스는 몬트리올로 트레이드되는 것으로, 볼티모어에서 쫓겨났다.
술과의 싸움은 지루했고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최후의 승자는 마르티네스였다. 술을 마시지 않고도 경기에 집중할 수 있게 된 마르티네스는 1991년 37세 시즌에 ERA(2.39) 완투(9) 완봉(5) 1위에 올랐고, 사이영 투표에서 5위에 올랐다. 1981년 이후 10년 만이었다.
36세 시즌에 첫 올스타가 된 마르티네스는 이후 3년 연속 올스타전에 참가했고, 1991년에는 37세75일의 나이로 퍼펙트게임을 달성했다. 1940년 사이 영(37세37일)을 38일 차이로 경신한 역대 최고령 퍼펙트였다. 마르티네스의 기록은 2004년 랜디 존슨(40세251일)이 깨게 된다.
1994년 마르티네스는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 입단했다. 클리블랜드는 1980년대 최악의 팀이었고, 그들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 <메이저리그>가 만들어지기도 했지만, 팀의 전력이 다져지고 있었다. 마르티네스는 40세 시즌(1994)과 41세 시즌(1995)에 인디언스 선발진의 한 축을 담당했다.
1995년 클리블랜드는 보스턴 레드삭스와 시애틀 매리너스를 꺾고, 월드시리즈에 올랐다. 월드시리즈 진출은 1954년 이후 처음으로, 1차전에서 윌리 메이스의 '더 캐치'가 나온 전설적인 시리즈였다. 클리블랜드도 41년 만의 월드시리즈로 난리가 났지만, 알코올 중독과 부진으로 인해 1983년 우승을 같이 하지 못했던 마르티네스로서는 가슴 벅찬 월드시리즈였다.
클리블랜드는 오렐 허샤이저(36세)와 데니스 마르티네스(41세)가 나온 1,2차전을 모두 패했다. 상대 선발들은 전성기를 구가하던 그렉 매덕스와 톰 글래빈이었다. 3차전에서 존 스몰츠를 무너뜨리고 에디 머리가 11회말 끝내기 안타를 날려 첫 승을 거둔 클리블랜드는, 5차전에서 허샤이저(8이닝 1자책)가 매덕스(7이닝 4실점)를 꺾어 2승3패가 됐다. 6차전 선발은 마르티네스였다.
클리블랜드 마이크 하그로브 감독은 5회 무사 1,2루에서 무실점이었지만 투구수가 82개인 마르티네스를 짐 풀로 교체했다. 풀은 프레드 맥그리프를 삼진으로 잡고 실점하지 않았지만, 다음 이닝(6회)에서 데이빗 저스티스에게 홈런을 맞았다. 저스티스가 날린 솔로홈런은 그 경기에서 나온 유일한 득점이었다. 월드시리즈 MVP는 8이닝 1피안타 무실점으로 1-0 승리를 이끈 글래빈이었다.
1998년을 끝으로 대장정을 마친 마르티네스는 은퇴 후 해야 할 것이 있었다. 알코올 중독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해 금주 캠페인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이다.
마르티네스는 고국의 야구 발전에도 투신했다. 하지만 다니엘 오르테가 독재 정권은 Dennis Martinez National Stadium이었던 국립 야구장의 이름을 바꿨다. 마르티네스가 독재 정권에 대해 비판을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17살 때부터 시작한 알코올 중독을 29살 때 멈추고 44살까지 공을 던진 마르티네스는, 지금도 승부에 지치고 숨막혀 하는 선수들에게 큰 귀감이 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