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타전 끝에 1점차 리드를 잡았고, 9회말은 마무리 맷 멘타이가 맡는 것이 당연한 수순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엉뚱한 벅 쇼월터 감독은 9회말 무명의 작은 동양 선수를 마운드에 올립니다. 미국인들이 발음도 잘못하는 Byung-Hyun Kim이 디백스의 5번째 투수로 등판했습니다. (후에 쇼월터 감독의 어린 아들이 김병현과 친해지며 BK라고 부른 것이 그의 애칭이 됩니다.)
메츠는 타순도 좋았습니다.
2번 에드가도 알폰소가 선두 타자로 나왔고, 초구는 볼.
2구째 스트라이크를 꽂은 후 연속 볼 2개로 3-1에 몰린 김병현은 5구째 다시 스트라이크.
풀카운트에서 알폰소는 연속 파울 2개를 쳤습니다. 그리고 8구째 승부구는 중견수 플라이로 잡혔습니다. BK의 빅리그 데뷔 첫 아웃카운트였습니다.
3번 타자는 기교와 힘도 갖춘 좌타자 존 올루드.
초구 볼 후에 김병현은 연속 스트라이크 2개를 꽂았습니다.
그리고 4구째 올루드가 잘 밀어친 공은 좌익수에게 라이너로 잡혔습니다. 투아웃.
다음 타자는 다저스에서 오래 활약했던 포수 마이크 피아자, 4번 타자였습니다.
그 시즌에도 홈런 40개를 치며 메츠의 주포로 활약 중이었습니다.
김병현이 초구 스트라이크를 꽂은 후 피아자는 3연속 파울을 쳤습니다.
당시로서는 MLB에서 듣도 보도 못한 BK의 독특한 스타일의 언더스로우 투구 동작에다, 깜짝 놀랄 150Km를 넘나드는 강속구와 춤추는 변화구에 타이밍을 맞추지 못하고 당황했습니다.
그리고 5구째 김병현의 ‘프리스비 슬라이더(Frisbee Slider)’에 피아자의 방망이는 허공을 갈랐습니다. 피아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타석을 벗어나더니 더그아웃으로 걸어가다가 다시 한번 마운드의 김병현을 쳐다봤습니다.
‘뭐 저런 괴물이 있어??!!’라는 피아자의 당혹스런 감정이 먼 기자실에서도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그때 파아자가 스윙한 배트와 김병현이 던진 공은 거의 30cm는 차이가 난다고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당대 최고의 타자가 생소하고 강력한 이 한국 투수의 공에 전혀 감을 잡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약관 스물의 김병현은 MLB 데뷔전을 세이브로 장식하며 만화처럼 빅리그에 등장했습니다.
그런데 애리조나는 왜 미국 야구에 갓 데뷔한 이 청년을 그렇게 빠르게 빅리그에 올렸을까요?
물론 220만 달러의 계약금을 안기며 김병현에 대한 기대치가 분명히 높기는 했습니다. BK보다 5년 전이었지만 박찬호의 계약금이 120만 달러였으니까요.
그러나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다가 미국 야구에 도전장을 던진 20세 젊은 투수였고 당연히 시작은 루키리그였습니다.
그런데 애리조나 루키리그에서 선발로 딱 1경기 2이닝을 던지는 것을 보고는 디백스는 BK를 곧바로 더블A 엘파소로 가라고 합니다. 보통 싱글A리그가 3단계 있는데 다 건너 뛰었습니다.
더블A부터가 진짜 프로라고 할 정도로 수준이 높습니다. 그런데 거기서도 오래 머물진 않았습니다.
10경기 구원 등판했는데 21.1이닝 동안에 삼진 32개를 잡으며 2승 무패. 도저히 타자들이 적수가 안된다는 평가에 디백스는 다시 BK를 마이너리그 최고 수준인 AAA로 승격시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선발로도 3경기 내보내며 다각도로 BK를 테스트했습니다. 결과는
11경기 30이닝 40K ERA 2.40에 4승 무패. 트리플A 조차 BK를 담을 수 없을 정도로 피칭 내용은 압도적이었습니다.
결국 미국에 진출한 첫 시즌 5월 하순에 김병현은 3개월 만에 마이너리그를 휩쓸고 빅리그에 데뷔했을 뿐 아니라, 첫 경기 데뷔전에서 마이크 피아자를 헛스윙 삼진으로 잡고 세이브를 거두는 인상적인 스타트를 끊었습니다.
그 후의 김병현의 빅리그 이야기는 야구팬들이 많이 알고 있습니다.
애리조나에서 2001시즌 중간에 마무리로 발탁되며 맹활약을 펼쳤고, 그리고 뉴욕 양키즈와의 월드시리즈에서 너무도 극적이었고, 자칫 비극적일 수 있었던 두 번의 블론세이브.
그리고 2002시즌 멋지게 리바운드하며 36세이브를 거두고 최고의 마무리 중에 하나로 떠올랐습니다.
그러나 BK는 늘 새로운 도전을 꿈꿨고, 선발 투수로 변신을 꿰했습니다. 지나고 보면, 그 길이 아니었으면 BK는 적어도 200세이브 내지는 300세이브도 달성했을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늘 도전의 갈증에 목말랐습니다. 목표한 바가 있으면 반드시 시도를 했습니다.
김병현은 애리조나에 이어 보스턴, 콜로라도, 플로리다, 애리조나 다시 플로이다 등을 거치며 9년간 메이저리그 통산 87번의 선발을 포함해 394경기에 나서 54승 60패 86세이브 ERA 4.42의 기록을 남겼습니다.
그후 독립리그, 일본리그 그리고 KBO리그의 넥센과 KIA를 거치며 계속해서 자신의 꿈인 피칭의 완성을 시도했고, 2019년 호주리그 멜번에서 뛴 것을 마지막으로 글러브를 벗었습니다.
거의 모든 프로야구 선수들이 그렇지만 특히 BK는 연습 중독수준이었습니다.
늘 최선을 다해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아주 성실한 선수였습니다.
클럽하우스에서 만화책을 보고, 구석에 누워 잠을 자는 엉뚱함도 매력이었지만, 정말 바르고 성실한 그러면서도 늘 도전 의식에 넘치는 친구입니다.
요즘은 방송에도 많이 출연하며 다른 면모를 과시하기도 하지만, 비즈니스에도 꽤나 소질이 있어서 선수 시절부터 지인들과 미국에서 식당을 열기도 했습니다. 요즘도 햄버거 식당 체인을 하고 있죠.
그리고 자녀 셋을 둔 아주 가정적인 가장이기도 합니다.
가끔 사석에서 만나 담소를 즐기는 김병현인데, 그래도 BK를 생각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그의 극적인 MLB 데뷔전과 헛스윙 삼진 후 어이없어하는 피아자의 표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