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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어깨동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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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어깨동무
피 위 리즈세상을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방법에 대하여

 

 

 

 
ᄃᆞᆯ하 노피곰 도ᄃᆞ샤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져재 녀러신고요

어긔야 즌 ᄃᆡ ᄅᆞᆯ 드ᄃᆡ욜셰라

어긔야 어강됴리

 

어느ᅌᅵ다 노코시라

어긔야 내 가논 ᄃᆡ 졈그ᄅᆞᆯ셰라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달하 노피곰 도다샤

달하 노피곰 도다샤로 시작하는 정읍사(井邑詞)’는 삼국시대의 고대가요로 현존하는 유일한 백제 문학입니다. 달님이 높게 떠올라 그 빛으로 길을 환히 비추어 행상 나간 남편의 무사 귀가를 기원하는 내용입니다.

 

 

ⓒ 정읍사문화공원의 망부상

 

 

하지만 끝내 남편은 돌아오지 못했고 하염없이 기다리던 그의 아내는 망부석(望夫石)이 되어 버렸다는 백제 여인의 애달픈 사랑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전북 정읍의 정읍사문화공원에 가면 여인의 망부석을 재현한 망부상을 볼 수 있습니다.

 

 

 

 

 

ⓒ BoA 2집(NO.1) 앨범

 

 

한편 아시아의 별보아(BoA*)2002년 발표한 NO.1은 유로팝 스타일의 경쾌한 리듬과 파워풀한 퍼포먼스가 어우러져 많은 사랑을 받은 곡입니다. 일본에서 큰 성공을 거두고 돌아온 보아는 NO.1으로 2002년 가요대전에서 최연소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NO.1은 단순한 댄스곡이 아닌, 실연의 아픔을 겪은 소녀(화자)가 자신의 처지를 모두 알고 있는 달(청자)에게 헤어진 그를 미워하지 말고, 오히려 그가 가는 길을 배웅해달라는 애절한 마음을 담은 곡입니다. 뮤직비디오 시작 장면부터 큰 보름달이 나오고, 중간중간에도 달이 자주 등장합니다. 점점 작아지는 달처럼 자신의 슬픔도 작아지길 바라는 마음을 표현하고 있는데, 바로 백제가요 정읍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입니다. 이 곡은 우리 문학을 대중가요에 녹여냈다는 점에서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아 음악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어깨동무

영어사전에 어깨동무라는 단어는 없습니다.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어깨동무 장면 혹은 그 장면을 형상화한 동상은 미국에서 나온 것으로 보입니다. 2005111미국 브루클린 코니아일(Coney Island)MCU Park(Maimonides Park)에는 두 사람의 모습을 형상화한 청동 조각상이 세워졌습니다. 동상의 주인공은 브루클린 다저스(LA 다저스)의 영구결번자이자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피 위 리즈(#1, Pee Wee Reese)’재키 로빈슨(#42, Jackie Robinson)’입니다.

 

 

 

ⓒ A statue of Jackie Robinson and Pee Wee Reese(The Epoch Times)

 

 

1947513 신시내티(Cincinnati) 크로슬리필드(Crosley Field). 그날도 관중석과 더그아웃에서는 최초의 흑인 메이저리거인 재키 로빈슨에 대한 비난과 야유가 쏟아지고 있었는데, 그때 팀 동료였던 피 위 리즈재키 로빈슨에게 다가가 어깨동무를 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순간 크로슬리필드는 누군가 음소거 버튼이라도 누른 듯 정적에 휩싸입니다. 피 위 리즈는 당시 노골적인 인종차별 정책을 펴던 켄터키주()의 중심 도시인 루이빌(Louisville) 출신이어서 그 파급력은 더 컸습니다.

 

 

 

 

ⓒ 영화 <42>의 한 장면(Warner Bros. Entertainment)

 

 

이 장면은 재키 로빈슨의 일대기를 담은42라는 영화에도 재현돼 있습니다. 결국 메이저리그는 피 위 리즈재키 로빈슨의 용기 있는 행동 덕분에 미국에서 가장 다양성을 갖춘 프로스포츠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나아가 베이브 루스가 야구를 바꿨다면, 재키 로빈슨은 미국을 바꿨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재키 로빈슨은 야구를 넘어 미국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로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1999.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의 장면으로 회자되는 두 선수의 어깨동무 장면을 재현한 동상을 세우려는 움직임이 포착됩니다. 그해 814 피 위 리즈가 세상을 떠났는데, 당시 뉴스데이(Newsday)의 칼럼니스트인 스탠 아이작스(Stan Isaac)가 라디오 방송을 통해 그 순간을 기념하는 동상을 세우자고 제안했고, 뉴욕 포스트(New York Post)잭 뉴필드(Jack Newfield)가 그 아이디어를 기사화했습니다. 당시 시장이었던 루돌프 W. 줄리아니(Rudolph W. Giuliani)가 이를 검토한 후 본격적으로 동상 건립을 추진하기 시작했고, 이후 수많은 기부자들이 동참한 것입니다. 동상의 주인공은 모두 세상을 떠났지만, 동상 제막식 행사에는 그들의 아내와 가족들이 참석했습니다.

 

 

리즈가 오늘 여기 함께 있었으면…

“I just wish he were here today.”

 

 

동상을 덮고 있던 노란 천이 걷히자 피 위 리즈의 아내 도티 리스(Dorothy Dottie Reese)’남편의 행동은 단순한 우정의 몸짓이었을 겁니다. 그게 이렇게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가 오늘 여기 함께 있었으면 좋겠네요라며 눈물을 훔쳤습니다. 재키 로빈슨의 아내인 레이첼 로빈슨(Rachel Annetta Robinson) 팀 동료이자 주장이었던 피 위 리즈가 공개적으로 우정을 표현해주어서 남편에겐 정말 큰 위안이 되었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구슬 하나로 루이빌 골목을 접수한 땅꼬마 피 위 리즈

피 위 리즈의 본명은 해럴드 헨리 리스(Harold Henry Reese)’1918723 켄터키주() 에크론에서 태어났습니다. ‘Pee Wee’작다는 의미입니다. 실제로 피 위 리즈의 신체조건(178cm, 72kg)도 그리 크지 않아서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의 별명은 작은 체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 1951년 구슬치기 챔피언을 차지한 아이와 피 위 리즈(Wide World Photos)

 

 

피 위 리즈는 어린 시절 마블 게임(Marbles, 구슬치기)을 아주 잘했는데, 12살 때 루이빌 신문사(Louisville Courier-Journal)에서 열린 구슬 대회에 나가 준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당시 루이빌 지역에서는 작은 유리 구슬‘Pee Wee’라고 불렀습니다. 구슬치기를 잘해 붙은 어린 시절 별명이 자신의 닉네임이 된 것입니다.

 

 

 

 

ⓒ 아이들의 사인 요청에 응하고 있는 피 위 리즈(Sports Collectors Digest)

 

 

피 위 리즈는 덩치는 크지 않았지만 구슬 하나로 루이빌 골목을 접수하며 동네 아이들로부터 많은 부러움을 샀습니다. 한편 피 위 리즈는 어린 시절 신문 배달과 도시락 판매로 가족을 부양했고,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전화회사의 케이블 접속공 견습생으로 일한 특이한 경력도 갖고 있습니다.

 

1940년부터 1958년까지 다저스에서 활약했으며(1943~1945년 해군 복무), 선수 생활 동안 7번의 내셔널리그 우승과 1번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특히 1955년 우승 다저스 최초의 월드시리즈 우승이었습니다. 또한 올스타에 10차례 선정됐고, 내셔널리그 MVP 투표에서도 8번이나 ‘Top 10’에 들었습니다. 1949년부터 1958년까지 10년간 팀의 주장을 맡기도 했습니다.

 

 

 

ⓒ 1950년 중반경 빈 스컬리, 피 위 리즈, 월터 오말리(WALTEROMALLEY.COM)

 

 

은퇴 후엔 다저스에서 코치 생활을 했고, NBC 방송국에서 야구 해설자의 커리어를 쌓았습니다. 다저스의 목소리로 불렸던 빈 스컬리(Vin Scully)와도 호흡을 맞추며 유쾌하고 따뜻한 해설로 팬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후 야구배트 루이빌 슬러거(Louisville Slugger)’의 제조사인 힐러리치 & 브래즈비(Hillerich & Bradsby)’에서도 근무했습니다. 198471 다저스 구단은 그의 등번호 1영구결번으로 지정했으며, 같은 달 31일에는 쿠퍼스타운에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습니다. 노년기에 전립선암을 이겨내는 등 삶의 의지를 불태웠으나, 1997년 폐에서 악성 종양이 발견되고 고관절 골절까지 겹치며 공개석상에 나서는 모습이 크게 줄더니 1999814 루이빌 자택에서 81세의 나이로 별세했습니다. 그의 장례식에는 2,000여명이 참석했는데, 조 블랙(Joe Black)부터 돈 지머(Don Zimmer)까지 피 위 리즈의 거의 모든 팀 동료들이 그의 가는 길을 축복했습니다.

 

 

한편 피 위 리즈의 명예의 전당 명판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피 위 리즈는 1940~50년대 위대한 다저스 팀의 유격수이자 주장이었습니다. 경기장 안팎에서의 보이지 않는 리더십. 경쟁심과 프로로서의 자부심은 믿음직한 수비, 안정적인 주루, 그리고 클러치 히팅을 더욱 돋보이게 했으며, 다저스가 페넌트 레이스에서 7번의 우승을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누구보다 메이저리그 첫 흑인 선수인 재키 로빈슨이 인정받도록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PeeWee Reese was the captain of the great Dodger teams of the 1940s and 1950s. His subtle leadership, competitive fire and professional pride complemented his dependable glove at shortstop, reliable baserunning and clutchhitting as significant factors in seven Dodger pennants. As much as anyone, he was instrumental in easing the acceptance of Jackie Robinson as baseball’s first black ballplayer.” 

 

 

 

 

다저스 첫 월드시리즈 우승의 숨은 주역

다저스는 1884브루클린 애틀랜틱스(Brooklyn Atlantics)’라는 이름으로 출발해 브루클린 그레이스(Grays), 브라이드그룸스(Bridegrooms), 슈퍼바스(Superbas), 로빈스(Robins) 등의 이름을 거쳐 1932다저스(Dodgers)’라는 공식 명칭으로 확정됐습니다. 다저스는 1916(vs. 보스턴 레드삭스), 1920(vs. 클리브랜드 인디언스), 그리고 1941·1947·1949·1952·1953(vs. 뉴욕 양키스)년까지 무려 7번 월드시리즈에 진출했지만 모두 패배했습니다. 특히 1940년대 이후는 모두 숙적 뉴욕 양키스에게 무릎을 꿇었습니다. 이로 인해 당시 팬들은 “Wait ’til Next Year!*라는 자조적인 구호를 입에 달고 살 정도였습니다.

* ‘내년엔 반드시 해낼 것’이라는 의미

 

그리고 1955. 다저스는 내셔널리그에서 9855패로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했고, 압도적인 전력으로 월드시리즈에 올라갔습니다. 상태팀은 또 뉴욕 양키스. 시리즈 초반 양키스가 2승으로 앞서나갔지만, 끈질긴 추격 끝에 승부는 7차전까지 이어졌습니다. 마침내 1955104 양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운명의 7차전. 다저스의 선발투수는 23살의 좌완 조니 포드레스(Johnny Podres). 이 경기에서 조니 포드레스는 완봉승을 거두며 다저스의 영웅이 됐습니다.

 

 

 

ⓒ 다저스의 첫 월드시리즈 우승 기쁨을 만끽하는 조니 포드레스(Stuff Nobody Cares About)

 

 

물론 숨은 주역도 있었습니다. 6회 말, 양키스가 0:2로 뒤진 상황에서 빌리 마틴(Billy Martin)이 볼넷으로 출루, 길 맥더걸(Gil McDougald)이 번트 안타를 만들고 요기 베라(Yogi Berra)가 좌익선상으로 타구를 날렸습니다. 타점 2개를 올릴 수 있는 거의 완벽한 2루타성 타구였습니다.

 

그러나 다저스의 좌익수 샌디 아모로스(Sandy Amorós)가 빠른 발로 타구를 낚아챘고, 유격수였던 피 위 리즈는 이미 약속이라도 한 듯 좌익선상까지 마중 나가 있었습니다. 샌디 아모로스로부터 공을 이어받은 피 위 리즈는 재빨리 1루로 공을 던져 미처 귀루하지 못한 주자, 맥더걸을 잡아내며 더블플레이를 만들어냈습니다. 좌익수를 믿고 다음 플레이까지 생각하는 매우 영리한 수비였습니다.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아낸 선수도 피 위 리즈였습니다. 9회 말 2아웃 상황. 피 위 리즈엘스턴 하워드(Elston Howard)가 친 땅볼을 잡아 1루수 길 하지스에게 정확히 송구했습니다. 다저스가 숙적 양키스를 물리치고 역사적인 첫 월드시리즈 챔피언에 오른 순간이었습니다. 1루심이 아웃 제스처를 취하는 순간 모든 선수들이 그라운드로 뛰쳐 나와 서로를 부둥켜안고 우승의 기쁨을 만끽했습니다. 어린 시절 구슬 대회 준우승자였던 피 위 리즈. 만년 2인자에 머물던 다저스를 마침내 자신의 등번호(#1)와 같은 ‘NO.1’의 자리에 올려놓은 역사적인 장면이기도 했습니다.

 

 

ⓒ 1955년 월드시리즈 하이라이트(뉴욕 양키스 vs. 브루클린 다저스)

 

 

한편 조니 포드레스가 훌륭한 투수로 성장한 데에는 피 위 리즈의 지분도 상당했습니다. 한 번은 조니 포드레스가 팀 타선에 대해 불만을 토로한 적이 있었습니다. 자신이 아무리 잘 던져도 팀이 득점을 너무 못해 2:0 혹은 3:0으로 지는 경기가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피 위 리즈가 날카롭게 조언했습니다. 그럼 네가 1:0으로 이기는 법부터 배워.” 조니 포드레스는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고, 훗날 그의 일침이 좋은 교훈이 됐다고 회고하기도 했습니다.

 

 

 

 

 

이 야구배트는 1955피 위 리즈가 사용한 것으로, 다저스의 역사적인 첫 우승을 가져다준 중요한 아이템입니다. 피 위 리즈1955년 정규시즌 145경기에 출전해 .282의 타율과 156개의 안타, 10개의 홈런, 61타점, 99득점을 기록했습니다. 그해 월드시리즈 7경기에서도 .296의 타율, 8개의 안타, 2타점과 5득점, 2루타 2, 볼넷 4개를 기록하는 등 알토란 같은 활약을 했습니다.

 

 

 

 

ⓒ 피 위 리즈의 게임 유즈드 배트 중 네임 플레이트 부분을 삽입한 카드(카드 읽어주는 남자)

 

 

 

피 위 리즈의 야구배트의 브랜드는 루이빌 슬러거인데, 그러고 보면 피 위 리즈루이빌과 인연이 참 깊습니다. 그의 고향도 루이빌, 준우승을 차지했던 구슬 대회의 주최사도 루이빌 신문사였습니다. 메이저리그에 데뷔하기 전 몸담았던 팀도 루이빌 컬로니얼스(Louisville Colonels), 은퇴 후엔 루이빌 슬러그의 제조사 힐러리치 & 브래즈비에서 홍보 담당으로 근무했고, 그가 영원히 잠들어 있는 곳도 루이빌입니다.

 

 

ⓒ 루이빌 슬러거 필드 앞 피 위 리즈의 단독 동상(The Courier-Journal)

 

 

심지어 신시내티 레즈의 마이너리그(AAA) 팀인 루이빌 배츠(Louisville Bats)의 홈구장인 루이빌 슬러거 필드(Louisville Slugger Field) 앞에는 피 위 리즈의 단독 동상도 세워져 있습니다. 동상을 세우는 일은 차가운 돌과 쇠를 다듬어 그 형상에 숨을 불어넣는 숭고한 행위입니다. 인류가 동상을 만든 이유는 기리고 싶은 인물이나 위대한 순간을 오래도록 기억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망각의 동물인 인간이 세운, 가장 단단한 기억인 셈입니다. 피 위 리즈의 숭고한 정신을 시대를 넘어서까지 간직하려는 루이빌 사람들의 노력에 깊은 경의를 표합니다.

 

 

 

 

피 위 리즈의 어깨동무, 진실 혹은 거짓

앞서 언급한 피 위 리즈재키 로빈슨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관중들과 더그아웃에 무언의 시위를 했다고 전해지는 1947513의 일에 대해 의문을 품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사실, 의문을 품는다기보다 당시의 사진이나 구체적인 자료가 없어 진위 여부를 확신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1947년이 아니라 1948년이다, 신시내티가 아니라 보스턴에서 일어난 일이다, 당시 백인 언론에서 관련 보도를 금지시켰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 그 위대한 일을 백인(피 위 리즈)이 해냈다고 포장하고 싶어 어깨동무를 했다는 식으로 과장했다 등 수많은 ()들만 난무했습니다. 하지만 팬들은 끝까지 진실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런 일이 없었다는 쪽으로 의견이 굳어질 때 즈음 야구기자이자 역사가인 크레이그 라이트(Craig Wright)는 그 어깨동무가 실제로 있었다고 굳게 믿고 관련 증거를 찾아 나섰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949재키 로빈슨이 자신의 인생에 관한 10부 연재물을 브루클린 이글(Brooklyn Eagle)’ 신문에 기고했었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그중 여덟 번째 글은 재키 로빈슨이 다저스에서 보낸 초창기 시절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다음은 재키 로빈슨이 직접 쓴 글의 원문입니다.

 

 

나는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상대 팀의 몇몇 시끄럽고 입만 산 녀석들이 피 위 리즈를 향해 공격을 퍼붓던 그 날을.

 

그들은 내가 있는 팀에서 나와 함께 뛰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내 곁에서 뛴다는 이유만으로 피 위를 아주 악랄하게 조롱하고 있었다.

 

분명히 말하지만, 그들은 나를 직접 향해 소리치지 않았다. 차마 그런 용기는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들은 피 위에게 아주 추악한 말들을 퍼부었고, 그 모든 말 한마디 한마디가 피 위에게 튕겨져 나와, 기관총 탄환처럼 내게 꽂혔다.

 

피 위는 내 안에서 피어오르는 절망적이고 죽은 듯한 감정을 어렴풋이 감지한 듯했다. 그는 내 곁으로 걸어와 한동안 내 옆에 서 있었다. 그는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나를 대신해 그에게 욕설을 퍼붓던 녀석들을 똑바로 노려보았다.

 

그는 내 곁에 서 있었다. 그 사실만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서서히 그들의 조롱은 잦아들기 시작했다. 마치 뱀을 조금씩 조금씩 죽여나갈 때처럼, 한 치씩 기운이 빠지더니 결국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 작은 사나이가 보여준 그 방식은 정말로 놀라웠다. 나는 결코 그것을 잊지 못할 것이다.

 

I’ll never forget the day when a few loud-mouthed guys on the other team began to take off on Pee Wee Reese.

 

They were joshing him very viciously because he was playing on the team with me and was on the field nearby.

 

Mind you, they were not yelling at me; I suppose they did not have the nerve to do that, but they were calling him some very vile names and every one bounced off of Pee Wee and hit me like a machine-gun bullet.

 

Pee Wee kind of sensed the hopeless, dead feeling in me and came over and stood beside me for a while. He didn’t say a word, but he looked over at the chaps who were yelling at me through him and just stared.

 

He was standing by me, I could tell you that.

 

Slowly the jibes died down like when you kill a snake an inch at a time, and then there was nothing but quiet from them.

 

It was wonderful the way this little guy did it. I will never forget it.

 

이제 안도의 한숨을 쉬어도 될 것 같습니다. 구체적인 장소와 날짜는 명시되지 않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던 그 내용과 동일합니다. , 어깨동무를 했다는 언급만 없을 뿐 그 일은 실제 있었던 일입니다.

 

 

 

 

 

세상을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방법

피 위 리즈가 해군에서 복무하던 때였습니다. 괌에서 배를 타고 미국으로 돌아오는데, 그의 동료가 다저스가 흑인 선수와 계약했다는 소식을 들려주었습니다. 게다가 포지션도 피 위 리즈와 동일한 유격수. 당시 시대적 정서상 백인과 흑인은 함께 뛸 수 없었습니다.

 

 

ⓒ 해군 입대 당시의 피 위 리즈(Chevrons and Diamonds)

 

 

그러나 그 소식은 사실이었습니다. 그게 자극제가 됐는지 피 위 리즈는 1946다저스로 복귀해 152경기에 나와 타율 .284를 기록했고, 볼넷도 104개로 내셔널리그 1위를 차지하는 등 훌륭한 성적을 거뒀습니다. 피 위 리즈에게 재키 로빈슨은 흑인이 아니라 그저 자신의 포지션 경쟁자 중 한 명일 뿐이었습니다.

 

 

 

 

ⓒ 1950년 재키 로빈슨과 피 위 리즈가 아이들과 함께 수프를 만드는 모습(CNN)

 

 

재키 로빈슨이 데뷔하기 전, 1946년까지 총 16개 메이저리그 팀에 등록된 선수 400여 명은 모두 백인이었습니다. 피 위 리즈재키 로빈슨이 함께 뛰게 된 1947. 예상대로 언론, 팀 동료, , 이웃, 친구, 심지어 가족들도 흑인과 함께 뛰는 것을 반대했습니다. 하지만 피 위 리즈는 달랐습니다. 어린 시절, 그의 아버지는 한 나무를 가리키며 저 나무는 흑인을 교수형에 처할 때 쓰였다고 말했고, 그런 행위는 부당하다고 가르쳤습니다. 이런 경험 덕분에 그는 공정함에 대해 배울 수 있었고, 어떤 상황에서도 재키 로빈슨을 새로운 팀 동료로 받아들이겠다고 결심했습니다. 팀 내 일부 선수들이 재키 로빈슨과 함께 뛰는 것을 반대하는 청원서를 돌릴 때에도 피 위 리즈는 서명하지 않았습니다.

 

 

 

 

ⓒ 피 위 리즈와 재키 로빈슨(New York Post)

 

 

훗날 피 위 리즈재키 로빈슨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집니다. 있잖아, 재키. 난 너한테 특별히 잘해주려고 했던 게 아니야.” 이 말은 들은 재키 로빈슨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피 위. 아마도 내가 가장 고마웠던 건 바로 그 점일 거야. 당신이 나한테 일부러 잘해주려고 하지 않았다는 거.”

 

 

 

  

ⓒ 대화를 나누는 피 위 리즈와 재키 로빈슨

 

누군가는 피 위 리즈재키 로빈슨에게 실제로 어깨동무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실망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의 옆에 그저 묵묵히 함께 있어 주었다는 사실이 훨씬 더 감동적으로 다가옵니다. 시인 에밀리 딕슨(Emily Dickinson)’때론 침묵이 훨씬 더 많은 말을 한다(Saying nothing sometimes says the most.)”는 명언처럼 말입니다. 분명 피 위 리즈백 마디 말보다 곁에서 자리를 지켜주는 것이 더 큰 위로와 위안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피 위 리즈는 생전에 뉴욕 헤럴드 티리뷴(New York Herald Tribune)의 기자이자 The Boys of Summer의 저자인 로저 칸(Roger Kahn)’에게 재키 로빈슨과의 일화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 그저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나은 곳으로 만들려고 했을 뿐이에요.

그게 인생에서 해야 하는 일이잖아요. 그렇지 않나요?”

 

“I was just trying to make the world a little bit better.

That’s what you’re supposed to do with your life, isn’t it?”

 

 

 

 

“You’re still my NO.1”

 

 여러 이유로 사람을 미워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이유가 단지 피부색 때문이어서는 안 된다.”   피 위 리즈

“You can hate a man for many reasons. Color is not one of them.”   - Pee Wee Reese

 

 

야구, 특히 메이저리그는 우리 사회에서 진정한 통합의 장이었습니다. 다른 어떤 제도보다도 먼저 인종의 장벽을 무너뜨렸습니다. 2025328 MLB 사무국이 공식적으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시즌 개막 로스터와 부상자 명단에 포함된 전체 954명의 선수 중 약 27.8%가 해외 출신 선수입니다. 1/3이 미국인이 아닌 해외 출신 선수인 것입니다.

 

피 위 리즈의 행동은 단순히 한 동료를 감싼 우정의 몸짓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메이저리그가 인종 장벽을 허물고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거대한 물줄기의 시작이었습니다. 이후 흑인 선수들이 대거 메이저리그 무대에 진입할 수 있었고, 이어 라틴 아메리카 선수들이 그 무대를 더욱 넓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아시아, 우리나라 선수들도 빅리그의 문을 노크할 수 있었습니다. 박찬호부터 류현진, 이정후 등에 이르기까지 총 28명의 한국인 메이저리거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것도, 따지고 올라가 보면 피 위 리즈재키 로빈슨이 보여준 그 용기와 맞닿아 있는 셈입니다.

 

한편 피 위 리즈의 장례식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 투수 조 블랙은 한 언론과 이렇게 인터뷰했습니다.

 

피 위는 제가 어릴 적 꿈꿨던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에서 뛰는 꿈을 이루게 해주었습니다. 피 위가 재키에게 다가왔을 때, 우리 니그로리그 선수들은 미소 지으며 백인이 우리를 처음 받아들인 순간이라고 말했죠. 제가 브루클린에 갔을 때, 피 위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흑인들은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이 재키에게 다가간 건 우리 모두에게 다가온 거니까요.’ 피 위의 유니폼에 있는 NO.1은 우리 마음속의 NO.1이기도 합니다.

 

Pee Wee helped make my boyhood dream come true to play in the majors, the World Series. When Pee Wee reached out to Jackie, all of us in the Negro League smiled and said it was the first time that a white guy had accepted us. When I finally got up to Brooklyn, I went to Pee Wee and said, ‘Black people love you. When you touched Jackie, you touched all of us.’ With Pee Wee, it was NO.1 on his uniform and NO.1 in our hearts.”

 

 

1999814피 위 리즈가 우리 곁을 떠난 날입니다. 벌써 26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보름달도 312 뜨고 졌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로부터 너무 많은 것들을 받았습니다. 보아NO.1 가사처럼 모든 걸 알고 있는 그 보름달이 못다 전한 우리의 사랑을 그에게 비춰주었으면 좋겠습니다.

 

 

 

ⓒ Retired Numbers Pee Wee Reese #1(EAT LIFE)

 

 

 

영원한 우리 마음속의 캡틴, NO.1 피 위 리즈. 당신은 여전히 우리의 NO.1입니다. 언젠가 미국 브루클린에 있는 그의 동상을 보러 가게 된다면 이 말을 꼭 전하고 싶습니다.

 

 

“You’re still my N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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