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를 송두리째 바꿀 뻔한 존슨-리베라 트레이드

조회 370

연재

 

1985년 2라운드 지명을 받고 몬트리올 엑스포스에 입단한 랜디 존슨은 강속구 유망주로 이름을 떨쳤다. 하지만 제구가 문제였다.
 
1987년 존슨은 더블A에서 128볼넷 168삼진(140이닝)을 기록했다(8.2볼넷 10.5삼진). 1988년에 데뷔했고 1989년 개막 로테이션에 이름을 올리지만, 7경기 4패 6.67에 그쳤고 26개의 삼진을 잡는 동안 26개의 볼넷을 내줬다. 몬트리올은 존슨의 제구를 잡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존슨에게 준 선발 기회는 10경기였다. 

 

1989년 5월, 승부수를 던진 몬트리올은 정상급의 좌완 선발인 마크 랭스턴을 받는 대신 존슨이 포함된 세 명을 시애틀로 보냈다(단장 데이브 돔브로스키). 트레이드 직후 존슨은 이렇게 말했다(시애틀 타임스).

 

"부담감 같은 건 없어요. 난 마크 랭스턴이 아닙니다. 그는 7,8년을 뛰었지만 나는 이제 풀타임 첫 시즌입니다. 메이저리거가 되기 위해 정말 열심히 노력했어요. 언젠가는 마크 랭스턴이나 혹은 다른 누군가가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이 곳(시애틀)에서 편안함을 느낍니다. 몬트리올에서 난 정밀 관찰 대상(under microscope)이 아니었어요. 그들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빨리 나를 포기했어요. 몬트리올은 현재를 위해 미래를 희생했지만 시애틀은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는 팀이에요. 이 팀에 있을 수 있어 기쁩니다. 아 그리고, 더 이상 프랑스어 사전을 보지 않게 되서 좋아요. 프랑스 돈을 안 써도 되고... 아, 캐나다 돈 말이에요."

 

시애틀은 존슨을 지극정성으로 대했고, 존슨은 자신의 말대로 빠르게 성장했다. 본인의 노력에 놀란 라이언의 기술적인 조언과 스티브 칼튼의 정신적인 조언이 더해져, 존슨은 랭스턴보다 훨씬 위대한 투수가 됐다.

 

1995년 존슨은 시애틀 역사상 처음이자 사이영상을 수상했다. 시애틀이 창단 첫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한 것도 존슨의 활약이 결정적이었다. 존슨이 294개의 삼진을 잡아내면서 볼넷을 65개밖에 내주지 않은 장면은, 존슨의 제구를 잡을 수 없다고 판단한 데이브 돔브로스키에게는 큰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1996년 존슨은 시즌 내내 허리 통증에 시달리며 선발 8경기에 그쳤고 시즌 후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이듬해 멋지게 부활했다.

 

두 번의 19K 경기를 했으며, 대학 선배인 마크 맥과이어에게 530피트(161.5미터)짜리 홈런을 맞은 1997년, 존슨은 19승으로 선발 등판 일정을 마쳤다. 시즌 막판 손가락 건염 부상으로 선발 네 경기를 놓친 것이 아쉬웠다. 그 때까지 20승 투수가 한 번도 없었던 시애틀은 존슨을 20승 투수로 만들고 싶었다. 이미 우승을 확정지은 시애틀은 오클랜드를 상대한 161번째 경기에서, 루 피넬라 감독이 7-2로 앞선 5회초에 존슨을 올렸고, 존슨은 2이닝 무실점의 구원승을 챙겨 시애틀 최초의 20승 투수가 됐다.

 

존슨의 1997년 활약은 엄청났다. 유일한 흠이라면 다승(20) ERA(2.28) 탈삼진(291)에서 모두 2위를 한 것이었다. 로저 클레멘스는 다승(21) ERA(2.05) 탈삼진(292)에서 모두 존슨을 제치고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다. 사이영상도 클레멘스의 차지였다. 하지만 1997년의 클레멘스는 약물 선수라는 의혹을 받고 있다.

 

시애틀은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가 된 존슨을 잡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FA까지 1년이 남은 존슨은 그 해 겨울 트레이드 시장에 나왔다.

 

존슨을 데려가고 싶어 가장 몸이 단 팀은 양키스였다. 양키스는 플로리다의 케빈 브라운, 몬트리올의 페드로 마르티네스, 시애틀의 랜디 존슨을 영입 대상으로 잡았지만, 마르티네스는 보스턴, 브라운은 샌디에이고에게 빼앗겼다. 보스턴이 마르티네스를 얻었기 때문에 에이스 영입의 필요성은 더 커졌다.

 

시애틀은 양키스에게 스물다섯의 나이에도 정상급 좌완 선발이 된 앤디 페티트를 요구했다. 하지만 1996년에 사이영 2위, 1997년에 사이영 5위를 한 페티트는 양키스가 줄 수 있는 선수가 아니었다. 양키스가 시애틀에게 대신 주겠다고 한 선수는, 놀랍게도 마리아노 리베라였다. 

 

하지만 시애틀은 마무리보다 선발을 원했다. 1997시즌 말에 있었던 리베라의 어깨 부상도 불안하게 생각했다. 리베라 카드가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안 양키스는 결국 트레이드를 포기하고 한 쿠바 투수를 영입했다. 포스트시즌 8연승을 달리면서 가을 에이스가 되는 올란도 에르난데스였다.

 

만약 존슨-리베라 트레이드가 성사됐으면 어땠을까. 존슨은 1998년 중반 휴스턴으로 트레이드된 후 11경기 10승1패 1.28이라는 충격적인 활약을 했다. 1999년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에 입단해서는 4년 연속으로 사이영상을 따냈다. 하지만 양키스가 1998년부터 2000년까지 월드시리즈 3연패를 할 수 있었던 데는 포스트시즌에서 18세이브 노블론 0.65를 기록한 리베라의 활약이 결정적이었다.

 

얄궂게도 2001년 디백스와 양키스는 월드시리즈에서 만났다. 존슨은 양키스를 상대로 2차전에서 9이닝 11K 무실점 완봉승, 6차전에서 7이닝 7K 2실점 승리를 따냈고, 다음날 7차전에서는 커트 실링을 구원해 마지막 아웃카운트 네 개를 잡았다. 그리고 시작된 9회말은 리베라가 루이스 곤잘레스에게 월드시리즈 7차전 끝내기 안타를 맞는 것으로 종료됐다. 

 

트레이드가 성사됐다면, 2001년 존슨은 양키스의 유니폼을, 리베라는 디백스의 유니폼을 입고 있었을 것이다. 메이저리그의 역사 또한 크게 바뀌었을 것이다.

 

이 게시판의 다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