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스팔딩(Al Spalding)이라는 인물에 대해 들어보신 적이 있나요?
연재
미국 스포츠 용품사 '스팔딩' 하면, 아! 하시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릅니다. NBA 프로농구의 공인구가 지난 2021년까지 38년간 스팔딩사 제품인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회사의 설립자인 알버트 굳윌 스팔딩은 잘 알려진 비즈니스맨이기도 하지만 MLB 출신의 야구선수였습니다. 그것도 대단한 스타 플레이어였습니다.
내셔널 어소세이션의 보스턴과 내셔널리그 시카고 컵스에서 투수로 뛰면서 251승 65패 ERA 2.31을 기록한 특급 투수였습니다.
그런데 스팔딩이 메이저에서 활약한 기간은 총 7년, 그나마 마지막 해에는 4경기밖에 뛰지 않았으니 6년에 251승을 거뒀습니다.
그의 최고 시즌을 보면 탄성이 절로 나옵니다. 1875년 보스턴에서 마지막 시즌에 스팔딩은 54승 5패에 ERA 1.59를 기록했습니다.
그해 등판한 72경기 중 62번 선발로 나서 52번의 완투와 7번의 완봉승에 9세이브도 기록했습니다. 그 시즌에 570.2이닝을 던졌는데, 그의 최다 이닝 시즌은 1884년으로 617.1이닝을 던지고 52승 16패를 기록했습니다.
상상도 안되지만 야구를 그렇게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

1850년 9월 2일 미국 일리노이 주 바이런에서 태어난 그는 고향 록포드의 Forest City 팀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1871년부터 보스턴 레드스타킹스에서 뛰며 1875년까지 4년 연속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1876년에는 시카고 화이트 스타킹스로 이적해, 새로 시작된 내셔널리그의 인기몰이에 톡톡히 한몫을 했습니다. 당시 투수는 타자에게 공을 치도록 맞춰주는 언더핸드로 공을 던지던 시절이었는데, 그는 사이드암 유형으로 당시로서는 엄청난 제구력과 구속을 자랑했습니다. 거기에 보스턴이 워낙 강팀이었고, 그는 거의 1인 선발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엄청난 성적을 올린 것입니다.
그가 뛰었던 두 팀은 현재 보스턴 레드삭스와 시카고 컵스의 전신입니다.
그런데 그는 1877년 시즌에 4경기밖에 뛰지 않더니 돌연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그의 나이 만 27세, 모두가 놀랄 뉴스였지만 당시 프로야구 선수라고 돈을 크게 벌던 시절도 아니었고 그는 다른 포부가 있었습니다.
보스턴 시절 그의 연봉은 1500 달러였고, 시카고로 이적하며 감독겸 선수로 연봉 3000 달러에 보너스 1000 달러는 합쳐 4000 달러를 받았습니다.
당시 4000 달러는 현재 가치로는 약 12~15만 달러 정도 된다니까 우리 돈으로 약 2억 원 가까이 되는 꽤 큰 돈이었습니다.

그러나 스팔딩은 당시 슬슬 야구용품의 시대가 열린다는 것을 내다보고는 선수 생활을 접고 스포츠 용품 회사를 차리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1876년 시카고에서 형제와 함께 A.G. Spalding & Bros.라는 스포츠용품 회사를 설립했고, 이후 뉴욕 지점과 전국적 유통망까지 확장했습니다. 미국에서 야구용구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기업으로 성장했으며, 공식 가이드북과 각종 교본도 출판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스포츠 종목으로 시장을 넓혀 미국 굴지의 대중적인 스포츠 용품사로 현재로 자리를 굳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스팔딩 하면 떠오르는 두 가지 사건이 있습니다.
그는 자기 회사의 야구용품을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 팔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웁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야구를 세계화가 우선 과제라고 생각했고, 세계 야구 투어에 나서기로 합니다.
은퇴 후 자신이 구단주였던 시카고 화이트 스타킹스와 MLB 선수로 구성된 올아메리칸 팀을 꾸려 뉴욕항에서 배를 타고 떠납니다.
1874년에 영국과 아일랜드 등에서 첫 미국 팀의 야구 시범 게임을 이끌었고, 1888~1889년에는 아예 '야구 세계 일주 투어'를 조직해 영국 런던과 리버풀, 프랑스 파리, 이탈리아 로마와 나폴리, 이집트 카이로(피라미드 앞에서 경기!), 스라링카(당시 실론), 호주 시드니와 멜버른, 뉴질랜드, 하와이왕국, 일본 요코하마와 도쿄, 홍콩을 거쳐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이어진 이 투어는 야구의 국제적 보급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1800년대 말에 야구 세계 일주라니 정말 대단한 발상이지 않습니까?
이렇게 성공적인 사업가였던 스팔딩은 야구와의 인연도 계속 이어갑니다.
그리고 미국 야구 흑역사의 주역이 되기도 했습니다.
19세기 말 미국에서는 야구의 기원에 대한 논란이 있었습니다. 영국 크리켓의 아류 정도 아니냐는 비아냥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순수한 미국의 스포츠라는 인식도 강해졌습니다.
그러자 MLB는 스팔딩을 필두로 '야구의 기원 소위원회(Baseball Origins Committee)', 일명 '밀스 위원회(Mills Commission)'를 만들로 조사에 돌입합니다
'야구는 미국에서 완전히 독자적으로 창조된 스포츠' 임을 강하게 주장했던 스팔딩은 전직 내무부 장관이던 애브너 밀스와 야구인 출신인 스팔딩의 지인들로 위원회를 구성했습니다. 역사학자나 중립적인 학자는 없었습니다.
사실상 야구가 미국에서 창조된 것이라는 결론을 미리 정해놓고, 그에 부합하는 증거를 수집하는 것이 목적이었음 일반인들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3년여의 조사 끝에 1907년 결론이 발표됐습니다.
야구는 1839년 뉴욕 주 쿠퍼스타운에서, 애브너 더블데이(Abner Doubleday)가 창안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데블데이가 밀스의 친구였다는 건 밝히지 않았습니다.)
그 근거로는 엘리아스 브라운이라는 한 노인의 증언뿐었는데, 어린 시절 더블데이가 공놀이를 가르쳤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아주 오랫동안 미국의 스포츠 야구는 애브너 더블데이가 창안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이 정설로 내려왔습니다.
100주년인 1939년에는 쿠퍼스타운에 명예의 전당이 설립됐고, 지금까지 야구의 명소로 큰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후대의 야구 역사가들에 의해 당시 발표는 사실과 거리가 있음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더블데이는 1839년 당시 웨스트포인트 사관생도였고, 쿠퍼스타운에는 있지도 않았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데블데이는 남북전쟁 당시 북군의 장군으로 명성을 떨친 군이었는데, 1907년 결과가 발표됐을 당시에는 이미 고인이 된 후였습니다.
젊은 나이에 야구를 접은 알 스팔딩은 스포츠용품사를 설립해 큰 부를 얻었고, 1915년 9월 9일 캘리포니아 포인트 로마(Point Loma)에서 사망했습니다. 1939년에는 명예의 전당 멤버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만들었던 야구의 기원은 허구로 핀명나 다시 원점이 됐고, 아직 야구의 명확한 기원에 대해서는 밝혀진 것이 없습니다.
야구는 참 미스터리한 스포츠이지 않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