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아직도 그 공의 정체를 모른다' 필 니크로
연재
역사상 가장 난폭한 너클볼을 던진 투수는 필 니크로다.
광부였던 아버지는 두 아들에게 너클볼 던지는 법을 알려줬다. 너클볼에 심취한 쪽은 첫째인 필이었다.
너클볼로 고교 무대를 제패하자, 밀워키 브레이브스에서 입단 제안이 왔다. 계약금은 500달러에 불과했다(그보다 3년 전에 샌디 코팩스가 브루클린 다저스로부터 받은 계약금은 1만4000달러였다). 너클볼은 생명력을 다한 투수가 마지막 순간에 배우는 공이었다. 그런 공을 전문적으로 던지는 고등학생이 있다니, 브레이브스로서는 '아님 말고' 수준의 영입이었다.
마이너리그 타자들은 고등학교 타자들과 달랐다. 니크로의 너클볼은 배팅볼이 됐다.
니크로는 패스트볼 그립도 알지 못했지만, 너클볼을 포기하고 다른 투수들처럼 던지려고 했다. 하지만 감독의 말이 마음을 잡게 했다.
"너클볼을 던지든가, 아니면 집에 가든가(Throw the knuckler or go home)"
니크로의 너클볼이 유명해진 건 그로부터 8년이 지나서였다. 그리고 27년이 지날 때까지, 메이저리그에서 공을 던졌다.

니크로의 너클볼은 어떤 수준이었을까. 훗날 밀워키 브루어스의 전설적인 해설가가 되는 밥 유커(Bob Uecker)는 니크로의 너클볼을 받는 포수였고 걸걸한 입담으로 유명했다. 유커는 "내가 공을 한 번도 포구하지 못했는데, 니크로가 삼진을 잡은 적이 있었다. 나는 니크로 덕분에 홈 플레이트 뒤쪽 자리에 어떤 유명인사들이 앉아 있는지를 늘 확인할 수 있었다"고 했다. 실제로 니크로는 놀란 라이언(277) 다음으로 많은 226개의 폭투를 던졌고, 그 때마다 포수들은 홈 플레이트 뒤로 뛰어가야 했다.
포수보다 더 고역은 타자들이었다. "그 공은 웃으면서 나에게 날아온다. 그 비웃음을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릭 먼데이나, "그 공을 타격하는 것은 젓가락으로 젤리를 집으려는 것 같다"고 한 바비 머서의 말은 너무나 유명하다.
역대 최다 안타 1위(4256) 선수이자 트럼프 대통령 덕분에 사면 복권이 된 피트 로즈는 니크로를 상대하는 걸 극도로 꺼려했다. 로즈는 "내가 3주 동안 공들여 다듬은 스윙이 니크로를 만나자마자 망가져 버린다"고 했다. 니크로가 1차전에 나서 상대 타자들의 스윙을 엉망으로 만들면, 다음에 나서는 투수들이 이득을 봤다.
너클볼의 작동 방식은 문장으로 표현하면 간단하다. 로버트 어데어 교수(야구 물리학)는 너클볼을 <공의 회전을 극도로 줄임으로써, 솔기(실밥)의 비대칭으로 인해 힘에 큰 불균형이 발생하고 그에 따라 공의 궤적이 아주 이상해지는 공>으로 설명했다.
너클볼로 사이영상을 따낸 R A 디키는 아이들에게 "야구에서 투수가 던지는 공들은 최대한 많은 회전을 줘서 원하는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게 목적이란다. 하지만 너클볼은 그 회전을 없애는 게 목적이야"라고 했다. 너클볼처럼 회전이 최대한 억제된 공은 주변의 공기 흐름이 실밥에 걸림으로써 난기류가 발생하고, 이로 인해 불규칙한 움직임이 일어난다. 말로는 쉽다.
너클볼로 통산 318승을 따내고 3342개의 삼진을 잡은 니크로는 은퇴 후 이런 이야기를 했다.
"왜 공이 이런 움직임을 보이는지, 내게 제대로 된 설명을 해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공기역학에 대한 온갖 이야기를 들었고, 누군가는 내 너클볼로 대학 논문을 썼지만, 아무도 나를 이해시키지는 못했다."
"나는 평생 너클볼을 던졌지만, 내가 그 공을 마스터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니크로에게는 5살 어린 동생 조(Joe)가 있었다. 조는 처음엔 너클볼을 거부했지만, 결국 형처럼 너클볼 투수가 됐다.
1979년 마흔살의 니크로는 44경기에 선발로 나서 23경기를 완투하고 342이닝을 소화했다. 공을 많이 던져도 지치지 않는다는 건 너클볼 투수의 특권이었다. 그 해 니크로는 21승20패로 승리 1위이자 패전 1위였는데, 동생 조도 21승을 따내 형제 다승왕이 됐다. 필이 318승, 조가 221승을 따냄으로써, 539승은 형제 최고 기록으로 남게 됐다.
1976년 조는 필을 상대로 타석에 들어섰다. 형은 동생에게 "내가 진짜 너클볼을 보여줄테니, 넌 구경이나 하고 들어가라"는 농담을 했다. 하지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물 방망이로 유명한 동생이 형의 너클볼을 받아쳐 홈런을 날린 것이었다. 조는 너무 놀라 1루 베이스를 밟지 않을 뻔했다. 조가 통산 1165타석에서 기록한 유일한 홈런이었다.
동생 조에게는 랜스라는 아들이 있었다. 1루수였던 랜스 니크로는 2003년에 데뷔했지만 5년 동안 17홈런에 그쳤고 유니폼을 벗었다.
랜스는 은퇴 후 평범한 회사원 생활을 하다 애틀랜타 구단으로부터 '너클볼 투수가 되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아버지는 이미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큰아버지인 필 니크로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하지만 랜스는 너클볼투수가 되지 못했다. 너클볼은 아무나 던질 수 있는 공이 아니었다.
100마일이 나와도 무덤덤한 강속구의 시대에, 너클볼은 명맥이 끊길 위기를 맞고 있다.
2020년 필 니크로가 8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고, 2023년에는 57살의 팀 웨이크필드가 뇌종양으로 요절했다. 웨이크필드가 아꼈던 스티븐 라이트는 2019년에 은퇴를 했고, 톰 캔디오티가 도와준 샌디에이고 맷 왈드론(2024년 7승11패 4.91)이 자리를 잃으면서, 현재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있는 전문 너클볼 투수는 한 명도 없다.
어쩌면 니크로가 평생을 갈고 닦았는데도 마지막 순간까지 모르겠다고 한 그 공은,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