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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연재 : 카드로 보는 MLB Story ⑰] 누가 죄인인가 [Ty Cobb 특집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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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타이 콥알 스텀프, 누가 죄인인가
[Ty Cobb 특집 ②] ‘타이 콥’을 둘러싼 오해와 진실에 대하여

 

 

 

 

Inspired by 뮤지컬 영웅》

 

 

전 세계 어디서나 같은 숫자가 적힌 달력을 넘기지만, 달력 위에 기록되는 이야기는 모두 다릅니다.

 

18762 미국에서 메이저리그(MLB)가 시작됐을 때, 조선과 일본 사이에서는 최초의 근대적 불평등 조약인 강화도 조약이 체결됐습니다.

 

 

ⓒ 강화도 조약 체결 장면

 

 

1886 美 조지아주()의 작은 시골 마을 너러스(Narrows)에서는 훗날 MLB의 판도를 바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꼽히는 타이 콥(Ty Cobb, Tyrus Raymond Cobb)’이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학교 교사이자, 조지아主 상원의원임과 동시에 지역 신문 The Royston Record》의 편집자였습니다. 같은 해 조선에서는 최초의 주간 신문인 한성주보가 창간됐습니다.

 

1903MLB 역사상 첫 월드시리즈가 열렸고, 아메리칸리그 우승팀 보스턴 아메리칸스(現 보스턴 레드삭스)가 내셔널리그 우승팀 피츠버그 파이리츠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1904엔 월드시리즈가 열리지 못했습니다. 내셔널리그 우승팀인 뉴욕 자이언츠(現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아메리칸리그는 하위리그라고 주장하며 월드시리즈 출전을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월드시리즈 개최는 의무사항이 아닌 자율적 협약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팬들과 언론의 거센 비난으로 인해 1905부터는 월드시리즈 개최가 정례화됐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1994년은 파업으로 무산). 1905타이 콥MLB 데뷔 시즌이기도 합니다. 그야말로 MLBMLB를 대표하는 선수의 태동 시기였습니다.

 

 

ⓒ 1903년 MLB 첫 월드시리즈(Northeastern Global News)

 

 

반면 러·일전쟁이 한창이던 1904822, 한성(現 서울)에서는 대한제국의 내정(內政)을 개선한다는 명목 아래 일본과의 1차 한일협약이 체결됐습니다. 이어 1905엔 외교권을 박탈당한 을사늑약(2차 한일협약), 1907엔 내정을 장악하고 군사권마저 일본에 넘어간 정미늑약(3차 한일협약)이 차례로 맺어지며, 대한제국은 국가 주권의 핵심을 모두 상실했습니다. 결국 1910년 한일병합조약으로 일본은 대한제국을 강제로 합병했고, 이로써 일제 강점기의 서막이 오르게 됩니다.

 

을사늑약을 주도한 일본제국주의의 상징인 이토 히로부미는 제거 대상 1호였습니다. 190632일부터 1909613일까지 4년여 동안 통감부 통감으로 우리나라를 통치하면서 제왕에 버금가는 권세를 부리고 의병학살, 토지 수탈 등 만행을 일삼았습니다. 190932 러시아 의병활동을 하던 안중근은 동지 11명과 함께 단지회(斷指會)라는 비밀결사(秘密結社)를 조직합니다.

 

 

ⓒ 안중근 의사의 수인(왼손 무명지 한 마디가 없음*)
* 동지 11명과 함께 단지동맹을 맺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할 것을 맹세하며 손가락을 잘라 혈서를 썼음.

 

 

 

이후 이토 히로부미가 하얼빈을 방문한다는 첩보를 입수, 19091026 915분경 하얼빈역에서 6발의 총탄을 발사해 그중 3발을 적중시켰습니다. 당시 안중근은 심문을 받으며 자신이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15가지 이유를 나열하기도 했습니다. 1910214 안중근에게 사형 선고가 내려졌는데, 안중근은 이에 항소하지 않았습니다. 조선의 지사가 목숨을 구걸했다는 인상을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일본은 동정 여론이 거세질 것을 우려, 그의 사형 집행을 앞당겼습니다. 이후 326 오전 10시 교수형으로 순국했습니다.

 

 

 

뮤지컬 영웅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1년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200910월 초연 이후 누적 관객 수는 100만을 돌파했고,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영화로도 제작됐습니다. 특히 영화 영웅 OST 14번 트랙 누가 죄인인가라는 곡에 당시 안중근 의사의 심정이 잘 담겨 있습니다.

 

 

 

 

피고 안중근! 마지막 변론의 기회를 주겠다!

 

 

우선, 이토를 살해한 것을 하느님의 이름으로 사죄드리오.

 

하지만 개인이 아닌 대한제국 의병군 참모중장으로서,

이토 히로부미를 살해한 이유를 밝히고 싶소. 

 

그 이유는 바로,

 

 

대한의 국모 명성황후를 시해한 죄
대한의 황제를 폭력으로 폐위시킨 죄
을사늑약과 정미늑약을 강제로 체결케 한 죄
무고한 대한의 사람들을 대량 학살한 죄


(누가 죄인인가? 누가 죄인인가?)


조선의 토지와 광산과 산림을 빼앗은 죄
일본은행권 화폐를 강제로 사용케 한 죄
보호를 핑계로 대한의 군대를 강제 무장 해제시킨 죄
교과서를 빼앗아 불태우고 교육을 방해한 죄

 

안중근, 우덕순, 조도선, 유동하
위 4명에 대한 살인피해사건에 대하여
본 법정은 모든 심리를 끝내고, 다음과 같이 판결한다.

피고 우덕순! 징역 3년에 처한다!

 

(누가 죄인인가? 누가 죄인인가?)


한국인들의 외교권을 빼앗고 유학을 금지한 죄
신문사를 강제로 철폐하고 언론을 장악한 죄
대한의 사법권을 동의 없이 강제로 장악, 유린한 죄
정권을 폭력으로 찬탈하고 대한의 독립을 파괴한 죄


(누가 죄인인가? 누가 죄인인가?)
(누가 죄인인가? 누가 죄인인가?)

 

피고 조도선! 피고 유동하!
각각 징역 1년 6개월에 처한다!

 

(누가 죄인인가? 누가 죄인인가?)
(누가 죄인인가? 누가 죄인인가?)

 

대한제국이 일본인의 보호를 받고자 원한다며
세계에 뻔뻔스러운 거짓말을 퍼뜨리며 세계인을 농락한 죄
현재 대한이 태평 무사한 것처럼 천황을 속이고
밖으로는 세계 사람들을 모두 속인 죄
동양의 평화를 철저히 파괴한 천인공노의 죄 때문이다.

 

(누가 죄인인가? 누가 죄인인가?)
(누가 죄인인가? 누가 죄인인가?)

(누가 죄인인가? 누가 죄인인가?)
(누가 죄인인가? 누가 죄인인가?)

 

피고 안중근! 피고 안중근은 사형에 처한다!

 

 

모두들 똑똑히 보시오!
조선의 국모, 명성황후를 살해한 미우라는 무죄.
이토를 쏴 죽인 나는 사형.
대체 일본법은 왜 이리 엉망이란 말입니까!


한 나라의 국민으로 태어나 조국을 위해 죽는 것
이것이 참된 영광이니 나 기꺼이 받아들이나
여기 계신 모든 분들, 저들의 거짓과 야욕에 속지 마시고
그들의 위선과 우리의 진실을 세계에 알려주시오!

 

 

당시 안중근 의사는 국제법상 전쟁 포로 혹은 정치범에 해당함에도 불구하고, 일본 당국으로부터 테러리스트 취급을 당했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무고한 민간인을 죽인 것이 아니라 정치적·군사적 표적을 겨냥한 것이며, 정당한 교전자로서 재판 절차와 처우를 받을 권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재판은 19091221일부터 1910214일까지 일본 군사 법정에서 진행됐고, 이는 공정한 재판을 가장한 정치적 처형에 가까웠습니다. 안중근 의사가 재판 과정에서 밝힌 이토 히로부미15가지 죄목은 모두 역사적 사실에 부합했으며, 무엇보다 오늘날까지도 안중근 의사의 유해가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일본에 묻혀 있는 현실이 더욱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이런 안중근 의사를 떠올릴 때마다 억울함을 넘어 원통함이 밀려옵니다.

 

 

 

 

언론에 미운털 박힌 타이 콥… 명예 회복을 위한 그의 선택

MLB에도 수많은 조작과 왜곡으로 인생 전체가 송두리째 부정당한 억울한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타이 콥입니다. 그는 데드볼 시대(1900~1919)’의 제왕이었습니다. 특히 1905년부터 1928년까지 활약하며 기록한 통산 타율 0.366은 영원히 깨지지 않을 기록입니다. 또한 명예의 전당에 최초로 헌액될 정도로 미국 야구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이지만, 그는 여전히 인종차별주의자, 관중 폭행범, 미치광이, 비열한 사기꾼 등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특히 현역 시절 언론과 관계가 좋지 못했는데, 언론은 실제 타이 콥의 성격이나 업적보다 그의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에피소드만 부각시켰습니다. 게다가 베이브 루스(Babe Ruth), 루 게릭(Lou Gehrig), 테드 윌리엄스(Ted Williams), 조 디마지오(Joe DiMaggio), 미키 맨틀(Mickey Mantle) 등 새로운 스타들이 리그에 등장하면서 그의 존재는 점점 잊혀져 갔습니다.

 

타이 콥은 말년에 MLB와 언론으로부터 점점 고립된 존재가 됐고, 자신이 오해 속에 파묻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특히 야구에 인생을 걸었던 남자로서,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팬들에게조차 미치광이로 기억되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평소 활자의 힘을 빌려 마음을 전하곤 했던 타이 콥자서전을 통해 자신의 명예 회복과 진실된 기록을 남기려는 시도를 합니다.

 

 

 

 

타이 콥의 사망 … 발톱 드러낸 대필작가 알 스텀프

타이 콥이 세상을 떠나기 전인 1959~1961년은 세간의 오해와 비난이 극심하던 시점이었습니다. 그의 건강 역시 많이 악회된 상태였습니다. 타이 콥은 자서전 집필을 위해 스포츠 전문작가인 알 스텀프(Al Stump, Alvin John Stump)대필작가(Ghost Writer)로 고용합니다. 알 스텀프는 당시 대중지에 스포츠 칼럼을 기고하던 인물로, 글솜씨는 인정 받았지만 윤리·진실성 면에선 물음표가 지워지지 않은 글쟁이였습니다.

 

 

ⓒ 알 스텀프(Al Stump)

 

 

알 스텀프는 자서전 집필을 위해 타이 콥과 수개월을 함께 했다고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불과 며칠 혹은 2주 남짓한 시간에 불과했습니다. 타이 콥1961717 사망했는데, 그로부터 2달 뒤 더블데이(Doubleday)’라는 출판사에서My Life in Baseball : The True Record》라는 책이 출간됐습니다.

 

 

 

 

ⓒ 《My Life in Baseball : The True Record》

 

 

사실 타이 콥은 책이 출간되기 전 원고의 어조와 책 속 오류들에 분노해 출판사 측에 항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알 스텀프를 해고한 후 책을 처음부터 다시 쓸 것을 요구한 것입니다. 하지만 출판사는 답장하지 않았고, 타이 콥은 출판사를 고소하겠다고 경고까지 했습니다. 타이 콥은 전립선암, 당뇨 합병증, 고혈압 등 오랜 병마와 싸우다 사망했는데, 어쩌면 잘못된 자신의 책 내용들을 바로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다 생을 마감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 《True》 1961년 12월호 표지

 

 

하지만 이는 불행의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알 스텀프타이 콥이 세상을 떠나자 그의 말년 이야기를 담은 기사를 True》라는 잡지사에 4,000달러를 받고 팔았습니다. 해당 기사(196112월호)에서 타이 콥공포의 타이러스(Tyrus the Terrible)’라 불리는데, 물처럼 위스키를 들이붓고, 모텔 창밖으로 총을 쏴 사람들을 겁주며, 돈 문제로 시비를 걸고, 자신이 디트로이트 거리에서 사람 하나를 죽였다고 자랑하는 미치광이로 묘사돼 있습니다. 해당 기사는 3부작으로 연재됐으며, 모든 면에서 과장된 허구에 가까운 이야기였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이 잡지의 이름은 진실(True)’이었습니다.

 

이 외에도 타이 콥이 과잉 청구를 한 응급실 의사들을 위협하고, 한밤중에 은행장의 집에 총을 들고 찾아갔으며, 술집에서 술을 바텐더에게 던지고, 병원에서 나와 바와 카지노를 돌아다니기 위해 자신(알 스텀프)에게 몰래 탈출을 도와달라고 부탁했다는 내용 등도 담겨 있었습니다. 심지어 1912년엔 타이 콥이 사람을 죽였다는 주장도 있었습니다. 기사는 이런 터무니없는 이야기들로 가득했지만, 정작 등장인물에 대한 이름, 장소 등 구체적 정보는 없었습니다. 오랜 시간 한 인물을 밀착 취재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세부적인 사항들을 묘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의 기사에는 그런 구체적인 내용이 전부 결여돼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 기사는 미국 전역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괴물로 재현된 영화 속 타이 콥

알 스텀프199579세의 나이로 사망했는데, 1994년 《Cobb: The Life and Times of the Meanest Man in Baseball》이라는 책을 출간했고, 사후인 1996에는 Cobb: A Biography》라는 책도 출간됐습니다. 이들 책 역시 30년 전 그의 허위 기사처럼 타이 콥을 만취자, 폭력배, 인종차별주의자, 살인자로 묘사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알 스텀프1994년 출간한 책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영화도 만들어졌습니다.

 

ⓒ 영화 Cobb(1994) 포스터

 

 

론 셸턴(Ron Shelton) 감독의 Cobb》이라는 영화였는데, 영화 또한 알 스텀프의 허위·과장된 이야기를 그대로 베끼다시피 했습니다. 특히 과격하고 난폭하며, 호텔 방에서 폭력을 행사하거나, 야구 스파이크를 갈고, 총을 난사하는 등 B급 영화적 요소를 과장되게 담았습니다. 평론가들은 미국을 대표하는 위대한 야구선수를 마치 괴물(Monster)’처럼 공포스럽게 표현했다고 지적했습니다. 론 셸턴 감독은 알 스텀프의 책과 기사를 토대로 타이 콥이 했을 법한 행동들을 허구로 각색했다고 밝혔는데, 이미 그 책과 기사 자체가 허구인 상황이라 그냥 허구에 허구를 더한 셈이었습니다. 다행히 이들 이야기는 훗날 한 인물 덕분에 역사적 근거가 없는 허구로 밝혀집니다.

 

 

 

 

타이 콥의 일대기 쓰려다가찰스 리어슨의 기자정신

타이 콥이 오해를 풀 수 있었던 건 찰스 리어슨(Charles Leerhsen)’이라는 한 기자의 순수한 역사적 의문과 기자정신 덕분이었습니다. 찰스 리어슨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Sports Illustrated), 에스콰이어(Esquire), 롤링 스톤(Rolling Stone), 뉴욕 타임스 매거진(The New York Times Magazine), 스미소니언(Smithsonian), 머니(Money), 피플(People), TV 가이드(TV Guide), 세븐틴(Seventeen) 등 다양한 매체에 글을 기고해왔습니다. 또한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피플, 어스 위클리(Us Weekly)의 편집자로 활동했으며, 뉴스위크(Newsweek)에서는 11년간 재직하면서 수석 기자로서 스포츠, 연예, 가족 관련 기사, 속보 등을 다룬 바 있습니다.

 

ⓒ 찰스 리어슨(NBC)

 

 

찰스 리어슨은 처음부터 타이 콥을 옹호하려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역시 타이 콥이 인종차별주의자이자 폭력적인 인물이라는 통념을 믿고 자랐습니다. 처음 타이 콥의 일생을 다룬 전기(Biography)를 쓰기로 했을 때, 본인 역시 혐오스러운 인물을 묘사하는 결과물이 나올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자료를 찾으면 찾을수록, 기존에 알고 있던 타이 콥은 실제 존재하지 않는 허구였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찰스 리어슨타이 콥과 관련된 신문 기록, 법적 문서, 인구조사 기록, 인터뷰, 증언 등을 샅샅이 분석했습니다. 어느새 단순한 야구 이야기가 아닌 역사 왜곡을 바로잡는 작업이라는 사명감을 갖게 됐습니다.

 

찰스 리어슨타이 콥에 대한 악의적이면서 과장된 이야기들이 대부분 허구에 기반한 것임을 입증하며 부정확한 주장들을 정면으로 반박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살인 주장의 경우 타이 콥이 살인을 저질렀다고 주장한 날짜의 신문 보도, 당시 호텔 경비원에 대한 인터뷰, 신원 미상자에 대한 부검 기록 등을 모두 뒤져 아무런 증거가 없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또한 타이 콥이 흑인을 혐오·증오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오히려 인종차별을 반대하는 선구자적인 인물이었다는 자료로 그 주장을 반박했습니다. 실제로 타이 콥의 증조부는 노예제를 반대하는 설교자였고, 그의 아버지는 흑인의 공교육 확대를 지지하던 인물이었습니다. 타이 콥1952재키 로빈슨(Jackie Robinson)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인종 통합을 공개적으로 지지한 스포팅 뉴스(Sporting News)와의 인터뷰 내용도 남아 있었습니다.

 

 

“The Negro should be accepted wholeheartedly and not grudgingly.
The Negro has the right to play professional baseball and who's to say he has not?” 

 

 흑인은 마땅히 전폭적으로 받아들여져야 하며, 마지못해서가 아니어야 합니다.

흑인도 프로야구를 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 권리가 없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습니까?”

 

- Ty Cobb(타이 콥)

 
 
 
ⓒ Ty Cobb: A Terrible Beauty
 
 

수십 년간 실추됐던 타이 콥의 명예는 찰스 리어슨Ty Cobb: A Terrible Beauty》라는 책을 통해 회복될 수 있었고, 주요 매체는 이 책을 ▲가장 정밀하고 설득력 있는 타이 콥의 평전, ▲타의 콥에 대한 오해와 평판을 되돌린 최고의 작품, ▲루머를 잠재우고 도발적인 관점을 제공하는 필독서, ▲편견을 바로잡고 진짜 타이 콥을 복원한 연구 업적, ▲미국의 야구 역사학 관점에서 중요한 작품이라고 평가하며 찬사를 보냈습니다.

 

 

 

 

타이 콥을 위한 추가 변론

물론 타이 콥이 성인군자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타이 콥이 자주 싸움에 휘말리고, 과격한 플레이가 많았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당시 시대적 맥락에서 다시 생각해봐야 합니다.

 

예를 들어, 1900년대 초엔 관중들이 선수들을 향해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을 퍼붓는 일이 흔했습니다. 그리고 그 관중들 대부분은 도박꾼들이었습니다. 찰스 리어슨의 조사에 따르면, 피츠버그 파이리츠 감독 프레드 클라크(Fred Clarke)는 욕설을 하는 관중을 계단 아래로 밀쳤고, 필라델피아 필리스 코치 키드 글리슨(Kid Gleason)은 소다병으로 머리를 맞고 도망치는 관중을 뒤쫓기도 했습니다. 사이 영(Cy Young), 루브 워델(Rube Waddell) 등 명예의 전당 헌액자들도 관중석으로 돌진해 관중과 몸싸움을 벌인 전력이 있습니다. 베이브 루스(Babe Ruth)로저스 혼스비(Rogers Hornsby)도 팬들과 경기장 안팎에서 주먹다짐을 했습니다.

 

1912타이 콥이 관중석으로 뛰어올라 관중을 때렸다는 일화 역시 당시 기준으로는 이례적인 일이 아닌 것입니다. 다만 이 이야기에서 특이한 점은, 그 팬이 한 손은 손가락이 2개만 있고, 또 다른 손엔 손가락이 전혀 없는, 뉴욕 타임스 인쇄공으로 일하다 사고를 당한 인물이었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 또한 시간이 흐르면서 많이 왜곡됐습니다. 어떤 매체는 그 관중이 팔과 다리가 전혀 없는 장애인이었다고 말하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타이 콥이 그 관중을 향해 달려들기 전, 그가 장애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은 낮습니다. 그저 1년 넘게 자신을 조롱해온 관중이라는 사실만 인지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타이 콥은 이 사건으로 10일 출장 정지와 50달러의 벌금을 부과받았는데, 팀 동료들은 오히려 그를 지지하며, 경기 출전을 거부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비공식적이지만 MLB 최초의 선수 파업 사례이며, 타이 콥이 동료들 사이에서 왕따였다는 통념과도 어긋납니다.

 

 

 

 

 

타이 콥이 사소한 이유로 흑인 구장 관리인과 이를 말리는 흑인 여성까지 야구 배트로 폭행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주장에 대한 경찰 기록, 언론보도, 목격자 진술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으며, 이 역시 알 스텀프가 꾸며낸 이야기로 밝혀졌습니다. 타이 콥야구 배트를 가죽 케이스에 따로 넣어 보관할 정도로 그 애착이 대단했습니다. 원정 경기나 장거리 이동 시 여러 개의 배트를 직접 들고 다녔으며, 누가 만지지 못하게 자물쇠까지 채운 적도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야구기자인 프레드 리브(Fred Lieb)1977년 자신의 저서 Baseball As I Have Known It》에서 타이 콥은 자신의 야구 배트를 마치 의료기기처럼 포장했다고 회고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기록은 타이 콥야구 배트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정성을 들였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그런 그가, 그토록 아끼던 야구 배트를 사람을 폭행하는 데 썼다는 주장은 상식적으로도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타이 콥이 과격한 플레이어였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없습니다. 타이 콥이 포수를 향해 발을 들고 슬라이딩하는 유명한 사진이 하나 있는데, 그동안 이 사진이 그가 비신사적인 행위를 하는 선수였다는 증거로 종종 사용되곤 했습니다. 하지만 사진 속 상황을 보면, 포수가 아직 공을 받지 않은 채 홈 플레이트를 막고 있고, 타이 이 사용한 슬라이딩 기술은 당시 선수들이 교육받던 전형적인 방식이었습니다.

 

 

 

ⓒ 타이 콥의 홈 슬라이딩 장면

 

 

실제로 타이 콥은 상황에 따른 9가지 다른 슬라이딩 기술을 직접 연구해 구사했습니다. 그 어떤 슬라이딩도 상대를 고의적으로 다치게 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의 포수였던 월리 샹(Wally Schang)타이 콥을 아름다운 슬라이더라 불렀고, 팀 동료인 저머니 셰이퍼(Germany Schaefer)콥은 정정당당한 플레이어였으며, 결코 스파이크를 이용해 누군가를 의도적으로 다치게 한 적은 없었다고 회고했습니다. 이 사진은 단지 그 시대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을 뿐입니다.

 

타이 콥의 장례식에 야구계 인사가 단 3명만 참석했을 정도로 사회적으로 고립된 인물이었다는 주장도 거짓입니다. 가족들은 타이 콥의 장례식을 사적으로 진행하고 싶다고 미리 공표했고, 수백 통의 꽃과 조화, 추모 편지가 이어졌습니다. 꽃과 편지들을 관리하는 데에만 추가 인력이 필요할 정도였습니다. 장례식에 참석한 야구계 인사 4명은 레이 샬크(Ray Schalk), 미키 코크렌(Mickey Cochrane), 납 러커(Nap Rucker), 시드 키너(Sid Keener)였으며, 이들은 명예 의전자(honorary pallbearer) 자격으로 참석한 것이었습니다.

 

 

 

ⓒ 타이 콥의 장례식 당시 사진

 

 

그의 현역시절 기사나 증언들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자료가 아니고, 악의적인 거짓말들이 퍼져나갈 무렵 그는 이미 세상을 떠나 있었습니다. 그는 훌륭한 야구선수였고, 비상한 두뇌로 막대한 부를 축적했기 때문에 세간의 질투도 자주 샀습니다. 게다가 언론과 잘 소통하지 않는 인물이다? 타이 콥은 그들에게 좋은 먹잇감이었을 것입니다. 타이 콥은 언론 프레임, 저널리즘의 나태, 확인 없는 복제 보도에 의해 평생을, 그리고 죽어서까지 고통받았습니다. 찰스 리어슨은 자신의 책을 통해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어온 이야기 중에서 과연 진실은 얼마나 될까?”라는 화두를 던졌습니다.

 

 

“People don’t want the truth. They want the truth to be consistent with what they believe.”

 

사람들은 진실을 원하지 않는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진실이 자신들의 믿음과 일치하는 것이다.”

 

- Friedrich Nietzsche(프리드리히 니체)

 

 

 

타이 콥은 평생 수많은 기부와 사회공헌 활동에 헌신한 인물이었습니다. 조지아주() 로이스턴(Royston)에 병원을 짓기 위해 195010만 달러를 기부했고, 1953년에는 타이 콥 교육재단(Ty Cobb Educational Foundation)’을 설립해 조지아 출신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제공하기 시작했습니다.

 

 

ⓒ 지역사회(Royston)에 공헌활동을 많이 했던 타이 콥

 

 

그의 기부금은 생전과 유언을 통해 꾸준히 이어졌고, 재단은 현재까지 6,800명 이상의 학생들에게 약 2,100만 달러 이상의 장학금을 지급했습니다. 타이 콥은 생전 기부 사실을 대외적으로 알리려 하지 않았으며, 자신이 받은 것을 고향에 돌려주고 싶다는 신념으로 조용한 선행을 실천한 인물입니다.

 

 

ⓒ Ty Cobb Educational Foundation

 

 

또한 타이 콥재키 로빈슨(Jackie Robinson), 돈 뉴컴(Don Newcombe), 행크 애런(Hank Aaron), 윌리 메이스(Willie Mays), 로이 캄파넬라(Roy Campanella) 등 흑인 스타 선수들을 칭찬하고 존경했다는 기록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때때로 니그로 리그(Negro League) 경기를 직접 관람하고, 덕아웃에서 흑인 선수들을 격려했다는 자료와 증언도 많습니다.

 

그럼에도 알 스텀프는 이런 타이 콥을 인종차별주의자, 미치광이 등으로 묘사하며 수많은 부당이득을 취했습니다. 타이 콥의 자택에서 사인 야구공, 사인 배트, 녹색 잉크로 작성된 개인 서신들, 일기장, 가족사진, 각종 기념품 및 문서류, 처방전 및 의료기록 등을 몰래 훔치기도 했습니다. 스텀프는 자신의 글에 대한 신빙성을 높이기 위해 이들 물건을 활용했고, 경매·수집품 시장에 이러한 유품들을 팔아넘겼습니다. 물건을 훔친 것도 모자라 타이 콥의 서명을 위조해 일부 수집가들에게 판매한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타이 콥의 전기를 쓰면서 자신을 진실을 폭로한 정의로운 언론인처럼 포장했지만, 이는 영웅 행세에 가까운 자기 미화였으며, 진짜 영웅타이 콥의 명예를 훼손한 사기꾼에 불과했습니다.

 

 

 

  

알 스텀프, 타이 콥의 틀니까지 훔쳤다?

2021년 여름 골딘옥션(Goldin Co.)’에는 타이 콥이 사용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틀니가 경매에 올라왔습니다. 골딘 측은 설명문에 이 틀니타이 콥 박물관(Ty Cobb Museum)’에서 10년 동안 전시됐었다고 기재했는데, 해당 박물관의 전임 관장이 골딘 측에 공문을 보내 박물관 측에서는 해당 틀니의 진위를 보증하지 않으며, 설명문에서 박물관의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하게 됩니다. 이후 골딘 측은 몇 시간 만에 틀니를 경매 리스트에서 아예 제외시켰습니다.

 

ⓒ 2022년 9월 경매 물품으로 올라온 타이 콥의 위조 틀니(SCP Auctions)

 

 

그러나 2022년 다른 경매 사이트인 ‘SCP Auctions’에 해당 틀니가 다시 등장합니다. 해당 설명문에도 타이 콥 박물관에서 전시된 이력이 언급됐고, 박물관은 동일한 요청을 담은 공문을 보냈습니다. 이에 SCP 측은 박물관에 대한 언급은 삭제했지만, 대신 야구 명예의 전당 박물관에서의 전시 이력을 강조하며 2001년의 대여 계약서 이미지까지 첨부했습니다. 해당 틀니에는 총 12건의 입찰이 이뤄졌고, 최종 낙찰가는 18,840달러(한화 약 2,600만원)에 달했습니다.

 

틀니가 대중에 처음 공개된 것은 1995522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에 실린 프란츠 리즈(Franz Lidz)의 기사 ‘Sultan of Swap’에서였습니다. 이 기사에서는 수집가 배리 핼퍼(Barry Halper)의 방대한 수집품(베이브 루스, 윌리 메이스, 재키 로빈슨, 타이 콥 등)을 소개했습니다.콥어빌리아(Cobbabilia = Cobb + Memorabilia)’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낸 이 기사에는 타이 콥이 사용한 글러브, 유니폼, 파이프, 틀니, 산탄총의 사진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배리 핼퍼는 이 모든 수집품을 알 스텀프로부터 입수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다 1999년 이 틀니는 한 공개 경매를 통해 어느 치과의사의 딸인 캐런 세몬스키(Karen Semonsky)에게 낙찰됐습니다. 낙찰가는 6,500달러(한화 약 900만원). 그녀는 야구 기념품 수집가는 아니였으나, 아버지의 치과 경력을 떠올리며 입찰에 참여했다고 밝혔습니다. 2001~2003에는 그녀의 요청으로 야구 명예의 전당, 2003~2014까지는 타이 콥 박물관에 해당 틀니가 전시됐습니다.

 

 

콥어빌리아(Cobbabilia)’로 불린 위조 수집품

그렇다면 알 스텀프는 이 틀니를 어디서 얻었을까요? 알 스텀프1961타이 콥의 자서전이 출간되고 약 20년 뒤에야 수많은 기념품을 수집 시장에 내놓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새로운 기념품을 내놓을 때마다 1961년 자서전 작업이 끝날 무렵 타이 콥에게서 직접 받았다고 주장했습니다. 야구 관련 소품부터 개인 물품, 서명된 편지, 사진, 잡지 페이지 등 그 범위가 매우 방대했는데, 1980알 스텀프가 제시한 그 목록에는 타이 콥이 사용했다는 틀니가 전혀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이는 그가 당시 실제로 틀니를 갖고 있지 않았을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합니다. 알 스텀프1980년 판매한 물품 중 다수가 결국 배리 핼퍼의 컬렉션으로 유입됐고, 지금은 그 대부분이 가짜 혹은 위조품으로 드러났습니다.

 

2001년 야구 명예의 전당은 타이 콥1946년 일기장을 대대적인 홍보와 함께 전시했는데, 이 일기장 역시 배리 헬퍼알 스텀프를 통해 입수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필적(서명) 감정 관련 전문가들이 그 진위에 의문을 제기했고, FBI가 조사한 결과 이 일기장은 위조품으로 판명됐습니다. 가짜 일기장 제작자는 예상대로 알 스텀프였습니다.

 

 

ⓒ 알 스텀프가 위조한 1946년 타이 콥 일기장

 

 

일부 전문가들은 타이 콥이 사용했다고 주장하는 틀니의 추가 조사를 위해 해당 사진을 치과의사 등 전문가에게 보냈습니다. 전문가들은 해당 틀니는 마치 사용된 적이 없는 것처럼 너무 깨끗하며, 명예의 전당 대여 영수증 하나만으로 이 틀니가 진품이 될 수는 없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타이 콥의 손자인 허셸 콥(Herschel Cobb)’에게도 틀니에 관한 질의를 했는데, 그의 대답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저는 1954년부터 1958~1959년까지 매년 여름 캘리포니아의 자택이나 네바다주() 케이브 록(Cave Rock)에 있는 오두막에서 할아버지와 시간을 보냈습니다. 할아버지가 틀니를 착용하거나, 빼거나, 청소하거나, 어떤 식으로든 틀니를 사용하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연극부터 영화까지… 배우 타이 콥에 대하여

타이 콥이 연극과 영화에 출연한 배우였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베이브 루스(Babe Ruth), 루브 워델(Rube Wadell), 캡 앤슨(Cap Anson) 등 일부 유명 메이저리거들은 비시즌 동안 보드빌(vaudeville) 공연에 출연해 큰 돈을 벌기도 했습니다. 보드빌이란 노래, , 토크쇼, 마술, 코미디 등 다양한 무대 예술을 결합한 일종의 단막극을 말합니다.

 

 

ⓒ 타이 콥이 출연한 《The College Widow》 연극 광고

 

 

타이 콥도 예의는 아니었습니다. 1911~1912년 비시즌 동안 여배우 수 맥매나미(Sue MacManamy)와 코미디 연극 The College Widow》에 출연한 것입니다. 타이 콥은 미식축구 영웅 빌리 볼튼(Billy Bolton) 역(役)을 맡았는데, 무대 위에서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나와 결혼해요. 그러면 누구보다도 행복한 연인이 될 거예요(Marry me and we’ll live happier than any lovebirds.)”라는 불멸의 대사를 씩씩하게 뱉어냈다고 합니다.

 

당시 타이 콥디트로이트 타이거즈로(Detroit Tigers)부터 연 9,000달러의 연봉을 받았는데, 이 연극 출연료가 연봉보다 더 많은 10,000달러였습니다. 실제 배우만큼의 연기력을 기대할 순 없었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반응은 뜨거워졌습니다.

 

 

ⓒ 타이 콥 주연의 영화 《Somewhere in Georgia》 포스터

 

심지어 5년 후엔 상업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한 최초의 프로 스포츠선수가 되기도 했습니다. 1917년 개봉한 Somewhere in Georgia》라는 흑백 무성영화였습니다. 타이 콥은 영화에서도 실제 자신의 이름을 사용했는데, 조지아의 시골 마을 은행원이자 아마추어 야구선수 역을 맡았습니다. 뛰어난 야구 실력으로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지만, 고향에 남겨둔 연인을 잊지 못한 타이 콥은 귀향하게 됩니다. 그 사이 은행의 동료 직원이 콥의 연인을 가로채려 음모를 꾸미고, 타이 콥은 납치되는 위기에 처합니다. 가까스로 탈출한 그는 마침내 중요한 경기에 출전해 팀을 승리로 이끌고, 연인과 다시 재회하며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됩니다.

 

타이 콥. 그의 인생도 영화처럼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인생 마지막 페이지에 알 스텀프라는 불청객이 끼어들며 그의 이야기는 새드엔딩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만약 타이 콥이 뮤지컬 영웅을 봤다면 어땠을까요? 아직 녹슬지 않은 실력으로 뮤지컬 가사를 개사해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피고, 타이러스 레이먼드 콥(Tyrus Raymond Cobb). 당신은 ‘알 스텀프’라는 한 정의로운 언론인의 폭로로 인하여 살인, 폭행, 상해, 협박, 인종차별, 무단침입, 기물손괴, 약물 남용 등 공소장에 전부 열거하기 힘들 정도의 많은 혐의가 드러나 본 법정 앞에 섰습니다. 마지막 변론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우선, 선수 시절 저의 지나친 승부욕으로 인해 그라운드 위에서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던 나의 동료들과 1912년 5월 15일 저와 충돌한 관중 클로드 루커(Claude Lueker) 씨에게 다시 한번 사과하고 싶소.

 

하지만 나머지 혐의는 모두 금시초문. 어느 것 하나도 인정할 수 없소. 그리고 위치가 바뀐 것 같소. 지금 이 자리엔 내가 아닌 ‘알 스텀프’가 앉아 있어야 마땅하오.

 

지금부터 ‘알 스텀프’가 피고인석에 앉아야만 하는 이유를 밝히고 싶소.

 

그 이유는 바로,

 


타이 콥의 자서전을 허위로 집필한 죄
가짜 기사를 잡지사에 팔아넘긴 죄
날조와 과장으로 가득 찬 책들을 추가로 출간시킨 죄
언론과의 허위 인터뷰로 한 사람의 인격을 살해한 죄

 

(누가 죄인인가? 누가 죄인인가?)

 

타이 콥의 유품과 기념품을 훔쳐간 죄
가짜 일기장과 서명을 위조해 수집시장을 어지럽힌 죄
집필을 핑계로 친분을 과시하고 허위 정보를 확산시킨 죄
사회공헌 업적을 불태우고 반(反)사회적 인물로 묘사한 죄

 

(누가 죄인인가? 누가 죄인인가?)

 

타이 콥의 자기 표현권을 빼앗아 괴물로 둔갑시킨 죄
허위 사실들을 무차별 유포하며 대중을 선동한 죄
사자(死者)의 저작권을 동의 없이 강제로 장악·유린한 죄
살인자의 누명을 씌우고 한 남자의 인생을 파괴한 죄

 

(누가 죄인인가? 누가 죄인인가?)
(누가 죄인인가? 누가 죄인인가?)

 

타이 콥의 진짜 모습을 폭로한다며 뻔뻔스러운 거짓말로 유족들에게 씻을 수 없는 고통을 남긴 죄
타이 콥을 폭력배에 흑인 혐오자라고 속이고 야구팬들의 진짜 영웅을 빼앗아간 죄

날카로운 펜 끝으로 한 사람의 명예와 미국 사회 전체를 살해한 천인공노의 죄 때문이다

 

(누가 죄인인가? 누가 죄인인가?)
(누가 죄인인가? 누가 죄인인가?)

(누가 죄인인가? 누가 죄인인가?)
(누가 죄인인가? 누가 죄인인가?)

 

 

모두들 똑똑히 보시오!
한 남자의 인격을 살해하고, 미국 사회 전체를 혼란에 빠뜨린 ‘알 스텀프’는 참 언론인.
야구장이라는 전쟁터에서 군인처럼 싸워온 나는 피고인석에.

전 세계 언론은 왜 이리 엉망이란 말입니까!

 

그라운드 위의 폭군이자 승부사.

이 말은 늘 야구에 진심이었다는 증거이자 훈장과도 같은 의미이니 나 기꺼이 받아들이나

여기 계신 모든 분들, 알 스텀프의 거짓과 야욕에 속지 마시고
그 자의 위선과 나의 진실을 세계에 알려주시오!

 
 
 
다시 쓰는 ‘타이 콥’의 인생 마지막 페이지

혹시, 이 글의 첫 문장을 기억하시나요? 전 세계 어디서나 같은 숫자가 적힌 달력을 넘기지만, 그 달력 위에 기록되는 이야기는 모두 다르다는 내용이었습니다. 

 

 

ⓒ 1980-83 PACIFIC LEGENDS #31 TY COBB

 

 

마찬가지로 우리는 ‘타이 콥’이라는 이름 위에 각자 다른 이야기와 이미지를 덧입히며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이미지는 대부분 부정적인 것들이었습니다. 인종차별주의자, 관중 폭행범, 살인자, 미치광이, 비열한 사기꾼 등등

 

하지만 이제 ‘타이 콥’이라는 인물만큼은 우리 모두 같은 이미지로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바로 ‘영웅’입니다.

 

 

■ 영웅(英雄)
· 사회의 이상적 가치를 실현하거나 그 가치를 대표할 만한 사람.
· 지혜와 용기가 뛰어나 대중을 이끌고 세상을 경륜(經綸)할 만한 인물.
· 어떤 분야에서 보통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이루어 대중으로부터 열광적으로 사랑받는 사람.

  

 

 

 

 

 

 ⓒ 2003 FLAIR GREATS BALLPARK HEROES #4 TY COBB BALLPARK HEROES

 

 

 

안중근 의사가 테러리스트가 아니듯 타이 콥도 미치광이가 아닙니다.

타이 콥. 이젠 그의 이름 앞에 감히 ‘영웅’이라는 단어를 붙여도 되지 않을까요?

 

  

타이 콥의 인생 마지막 페이지. 

그의 인생을 다시 해피엔딩으로 만들어줄 수 있는 작가는 ‘알 스텀프’가 아닌 바로 ‘당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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