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rnandomania와 1981년 월드시리즈
연재
다저스는 양키스가 지긋지긋했다.
재키 로빈슨의 홈스틸로 대표되는 1955년 월드시리즈를 승리하긴 했지만(요기 베라는 눈을 감을 때까지 아웃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1941년부터 1956년까지 16년 간 7번 대결해 6번을 패했다. 1956년에는 돈 라슨에게 월드시리즈 최초의 퍼펙트게임(5차전)을 내주기도 했다.
다저스는 뉴욕을 떠나기로 했다.
1963년. LA로 연고지를 옮기고 6년 만에 오른 첫 월드시리즈에서 다저스가 상대해야 하는 팀은 또 양키스였다.
처음으로 모자에 B(브루클린)가 아니라 L과 A를 달고 만난 8번째 대결에서, 다저스는 네 경기를 모두 승리했다. 12번에 달하는 두 팀 간 월드시리즈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온 스윕이었다. 요기 베라가 샌디 코팩스에 대해 "25승을 어떻게 했는지, 아주 잘 알겠다. 그런데 5패는 대체 왜 한 거냐"는 유명한 말을 남긴 시리즈였다.
그 해 40경기에 나서 20번을 완투하고 11번을 완봉한 코팩스(311이닝 25승5패 1.88)는 1차전에서 9이닝 15K 2실점 승리, 4차전에서 9이닝 8K 1실점 승리를 따내, 양키스 타자들에게 좌절감을 안겼다.
그렇게 양키스 공포증을 털어내나 싶었던 다저스는, 1977년과 1978년 월드시리즈에서 양키스에게 또 패했다. 1977년은 최종 6차전에서 레지 잭슨에게 초구 홈런 세 개를 맞았고, 1978년은 6차전이 진행되는 동안 양키스의 9번 타자 버키 덴트에게 7타점을 헌납했다.
10번의 월드시리즈 맞대결 성적은 2승8패. 다저스는 양키스가 지긋지긋했다.
2년 연속 패배 후 3년이 지난 1981년. 11번째 대결이 빠르게 성사됐다. 하지만 이번에는 자신감이 충만했다. 멕시코 출신의 코팩스, 페르난도 발렌수엘라 때문이었다.

미국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멕시코 호세 로페스 포르티요 대통령의 국경 회담(1월20일)을 했던 그 해, 제리 로이스의 부상으로 급작스럽게 개막전 선발을 맡은 스무 살의 좌완은 첫 8경기에서 모두 9이닝을 던졌고(7완투), 8승 ERA 0.50(4자책)을 기록하는 충격적인 피칭으로 '페르난도마니아'를 만들어냈다.
발렌수엘라는 스크루볼이라는 파괴적인 무기를 가지고 있었고, 약관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타자를 능수능란하게 다뤘다. 어떤 해설가는 타자를 쥐락펴락하는 발렌수엘라의 모습을 보고 "실타래를 가지고 노는 고양이 같다"고 했다. 발렌수엘라는 최초로 사이영 상을 따낸 신인이 됐고, 방망이 실력까지 뛰어나 실버슬러거도 수상했다.
월드시리즈에 오른 다저스에게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발렌수엘라가 NLCS 5차전에 등판함으로써 월드시리즈 1,2차전 등판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양키스는 론 기드리와 토미 존을 앞세워 1,2차전을 모두 승리했다. 다저스는 1974년에 최초의 토미 존 수술을 받고 재기에 성공한 토미 존을 붙잡지 않았는데, 2년 전 양키스로 이적한 존에게 보기 좋게 당한 것이었다. 다저스가 기댈 수 있는 건 3차전에 나서는 발렌수엘라 뿐이었다.
대망의 3차전. 다저스는 1회말 론 세이가 선제 스리런을 때려냈다(3-0). 하지만 발렌수엘라는 컨디션이 좋지 않아 3회까지 넉 점을 허용하고, 역전을 허용했다(3-4). 다저스는 5회 2득점으로 재역전에 성공했지만(5-4), 한 점 차에서 더 달아나지 못했다.
8회초 발렌수엘라는 연속 안타를 맞고 무사 1,2루에 몰렸다. 하지만 라소다 감독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발렌수엘라는 위기를 병살타로 탈출했고, 경기를 끝까지 책임져 4실점 완투승을 따냈다.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는 147구 완투였다.
이 경기를 기점으로 다저스는 4연승을 내달렸다(2연패 후 4연승 우승). 양키스 조지 스타인브레너 구단주가 다저스 팬으로 보이는 사람들에게 엘리베이터에서 폭행을 당했다며 자작극으로 의심되는 퍼포먼스를 했지만, 시리즈의 분위기는 바뀌지 않았다. 3차전에서 9개의 안타와 7개의 볼넷을 내주면서도 기어코 완투승을 따낸, 발렌수엘라의 역투가 터닝 포인트였다.
발렌수엘라는 데뷔 첫 해에 신인상과 사이영상 그리고 월드시리즈 우승반지를 차지했다. 하지만 1988년 다시 월드시리즈에 올랐을 때는, 오렐 허샤이저가 다저스의 에이스였다. 발렌수엘라는 포스트시즌에 등판조차 하지 못했다.
발렌수엘라가 오래 가지 못한 건, 라소다 감독의 혹사가 큰 영향을 미쳤다. 발렌수엘라는 스무 살이었던 루키 시즌에 140구를 던지는 일이 빈번했다. 긴급 등판으로 시작한 첫 네 경기는 완투, 4일 휴식, 완투, 3일 휴식, 완투, 3일 휴식, 완투였다. 혹사는 그에게 위대한 루키 시즌을 선물했고, 에이스로서의 생명을 갉아먹었다.
은퇴 후 다저스의 스페인어 중계를 오랫동안 한 발렌수엘라는 2024년 10월22일, 6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1981년 월드시리즈 3차전 147구 완투승의 43주년을 이틀 앞두고서였다.
다저스 선수들은 발렌수엘라의 34번을 달고 월드시리즈를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상대는 양키스였다. 다저스와 양키스가 월드시리즈에서 만난 건, 1981년 이후 처음이었다.
다저스는 1차전에서 프레디 프리먼이 월드시리즈 최초의 끝내기 만루홈런을 날렸고, 우승을 발렌수엘라의 영전에 바쳤다.
43년 전에 발렌수엘라가 34번을 달고 양키스를 상대했다면, 이번엔 모두가 34번을 달고, 양키스를 꺾은 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