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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연재] 민훈기의 필드노트 : 콥보다 인기 좋던 라즈와의 코미디 타격왕 레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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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MLB를 즐겨 보시는 팬들이라면 타이 콥이라는 타자에 대해 들어보신 적이 분명히 있을겁니다.
이랜드 뮤지엄의 스토리에도 콥에 대한 좋은 글들이 있습니다.
야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타자를 꼽을 때 절대 빠지지 않은 이름이 타이 콥입니다. 24년 선수 생애 동안에 루키 시즌만 빼고 23년 연속 3할대를 쳤던 타자, 그리고 무엇보다 MLB 역사상 가장 빼어난 통산 타율 3할6푼6리를 기록했던 타자가 콥입니다.
4000개가 넘는 안타를 치면서 897도루를 기록하는 등 엄청난 기록을 이뤘던 타자였습니다. 은퇴 당시 12번의 타격왕을 비롯해 콥의 MLB 최고 기록만 90개였을 정도.

 

1936년 명예의 전당이 처음 생기며 기자단 투표로 5명의 선수가 최초의 명전 클럽 멤버가 됐을 때 당연히 콥도 뽑혔습니다. 베이브 루스, 호너스 와그너, 크리스티 매튜슨, 월터 존슨 등 신화적인 인물들이 선정됐는데, 그중에 최고 득표는 바로 콥이었습니다.

그런데 동시대에, 아니 정확히는 콥보다 9년 먼저 데뷔했던 나폴레온 라즈와(혹은 라조이 Napoleon Lajoie)라는 발군의 타자가 있었습니다. 

저도 예전에 MLB 역사를 취재하면서 처음 듣게 된 생소했던 이름인데, 1874년생으로 우투우타 2루수였습니다. 성이 특이한 것은 프랑스계 이민자의 자손이었기 때문입니다.
185cm-85kg의 단단한 체구였던 라즈와는 1896년 필라델피아 필리스에서 데뷔한 후 필라델피아 어슬레틱스(에이스)와 클리블랜드 냅스를 거쳐 야구 생애 막판 다시 에이스로 복귀해 1916년 시즌을 마치고 은퇴했습니다.

 

21년간 통산 타율이 3할3푼8리였고 타격왕을 5번 했으며, MLB 사상 두 번째로 3000안타를 돌파했습니다. (첫 번째는 약간의 논란에도 캡 앤슨으로 인정)
특히 1901년 에이스에서 기록한 4할2푼6리는 지금도 AL 한시즌 역대 최고 타율로 남아있습니다. (4할을 3번 친 타이 콥의 한시즌 최고 타율은 .419)
그런데 라즈와가 가장 빼어난 활약을 펼치고, 또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것은 1902년부터 뛴 클리블랜드 시절이었습니다.

 

클리블랜드 이적부터가 요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해프닝 때문이긴 했습니다.

1901년 라즈와가 NL의 필라델피아 필리스를 떠나 크로스타운의 AL의 필라델피아 에이스로 이적해 맹활약을 펼치자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필리스는 선수를 강탈해갔다고 에이스를 고발한 것입니다. 그리고 재판까지 간 끝에 라즈와는 필라델피아가 속한 펜실베니아 주에서는 뛸 수 없다는 법원 판결이 났습니다.
그 시즌 에이스에서 딱 한 경기 후에 소송에 휘말린 라즈와는 결국 꾸준히 구애를 보내던 클리블랜드로 이적합니다.
시즌 중에 이적해 82경기를 뛴 것이 전부였지만 3할7푼9리의 맹타를 휘두르며 WAR 5.1을 기록하는 엄청난 활약과 함께 대번 클리블랜드의 최고 인기 선수로 자리잡았습니다.
클리블랜드에서 그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팀 이름을 나폴레온으로 바꿨을 정도입니다. 그의 애침이 '냅(Nap)'이었는데, 당시 야구계에서는 이 팀을 모두 '클리블랜드 냅스'라고 불렀을 정도였습니다.
은퇴 후 클리블랜드 감독도 지냈던 냅은 1937년에 명예의 전당 클럽에 가입했습니다.

 

그런데 1910년 미국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유명하고 논란 많았던, 희한한 타격왕 레이스가 벌어졌습니다. 
바로 당대 최고의 타자인 타이 콥과 나폴레온 라즈와가 시즌 마지막 날까지 치열한 대결을 펼쳤습니다. 그런데 이 대결이 더욱 화제를 몰고 왔던 것은 챨머스 자동차회사에서 타격왕에게 당시로선 파격적인 자동차 한 대를 상품으로 내놓으면서 당혹스런 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이 회사에서 타격왕 상품으로 내놓은 Chalmers Model 30 Touring Car 는 가격이 당시 약 1500달러였습니다. 일반 승용차가 800달러선이었으니 거의 두배였고, 요즘 가치로는 5만 달러, 약 7000만원 정도 된다고 합니다. 

 

라즈와에 근소차로 앞서가던 콥은 타율을 지키기 위해 마지막 날 경기에 출전하지 않았습니다. 
라즈와의 클리블랜드는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와 더블헤더를 남기고 있었는데, 라즈와가 8타수 8안타를 기록해야만 역전이 가능했기 때문에 콥의 타격왕이 굳어진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런데 라즈와가 더블헤더에서 8타수 8안타를 기록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세인트루이스에는 라즈와의 친구들이 많았고, 3루수가 일부러 깊숙한 수비를 펼치는 바람에 무려 6개(혹은 7개)의 번트 안타를 기록했습니다.

이런 비신사적인 행위에 분노한 AL 회장 밴 존슨이 콥을 타격왕이라고 발표하면서 사태는 더욱 시끄러워졌습니다. 결국 챨머스사가 콥와 라즈와에게 각각 자동차 한대씩을 주면서 사태가 수그러들었습니다.
그러나 AL 사무국은 내사에 들어갔고, 브라운스 감독과 코치가 경기 조작 시도로 해고됐습니다.
결국 그해의 타격왕은 .384의 냅으로 발표됐다가 계속 논란이 이어지며 현재는 콥의 .385를 인정한다는 주장이 힘을 받습니다. 매체에 따라 1910시즌 AL 타격왕이 달랐을 정도였는데, 마침내 MLB는 그해 타격왕은 타이 콥으로 공식 인정했습니다.

 

냅이 대중적이고 동료들, 팬들에게도 큰 사랑을 받았던 반면 콥은 독선적이고 거친 야구를 하는 차별적인 인물이어서 이런 사태가 발생했다는 말도 돌았지만, 사실과는 거리가 있는 소문이었습니다.
초창기에는 이렇게 타격왕 만들어주기나 승부조작, 도박 개입 등 이런저런 해프닝과 불미스러운 일들이 MLB에도 꽤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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