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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 데버스와 '멀티 포지션', 그리고 폴 몰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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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531. 보스턴 소속이던 라파엘 데버스는 신시내티를 상대로 통산 200번째 2루타를 때렸습니다. 현지 언론은 이 2루타에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앞서 58, 이미 통산 150홈런을 기록했던 데버스는 이날 2루타로 741경기 만에 150홈런과 200개의 2루타를 완성한 선수가 됐습니다. 빅리그 역대 다섯 번째로 적은 경기 만에 거둔 기록이었습니다. 데버스보다 앞선 4명 중 3명이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기에 데버스에 주목하는 것도 이해할 만했습니다. (4명 중 유일하게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지 못한 선수는 아직 투표 자격을 갖추지 못한 알버트 푸홀스뿐입니다.)

 

데버스는 이듬해 77일 양키스타디움에서 게릿 콜을 상대로 적시타를 때렸습니다. 보스턴 구단 역사상 만 28세가 되기 전에 1천 안타를 기록한 역대 6번째 선수로 등록된 순간이었습니다. 이번에도 데버스보다 앞선 다섯 명 가운데 현역 선수인 보가츠를 제외한 짐 라이스, 칼 야스트렘스키 등은 모두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27세 이전에 200홈런을 기록한 역대 세 명의 3루수 중에도 데버스의 이름이 포함됐습니다. 온갖 조건을 이리저리 붙여가며 의미를 부여하는 미국식 기록 보도가 조금 작위적이기는 하지만, 데버스가 범상치 않다는 선수라는 점을 확인하기에는 충분했습니다.

 

 

보스턴 구단은 2023년 초, 데버스와 10년간 31350만 달러의 초대형 계약을 맺었습니다. 경기력만 따지면 과하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프랜차이즈 스타의 가치에 지불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측면도 있었습니다. 이미 무키 베츠를 LA 다저스로 보내는 과정에서 팬들의 반발을 겪은 터라, 보스턴 구단이 대형 계약을 통해 승리 의지를 보여줄 필요도 있었습니다. 각자 의견이 달라도 데버스가 보스턴 미래의 축이라는 점은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2023년 말, 브레슬로우 단장이 부임한 이후 기류가 바뀌었습니다. 2024 시즌을 지켜본 브레슬로우 단장은 2025 시즌을 앞두고 최상급 3루수로 꼽히는 알렉스 브레그먼을 전격 영입했습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브레그먼이 2루수나 유격수를 맡을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3루 수비력은 브레그먼이 월등하지만, 데버스의 팀 내 입지를 넘어설 수 없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바뀐 보스턴 구단 수뇌부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올해 스프링캠프를 앞두고 코라 감독은 브레그먼이 새로운 3루수, 데버스는 지명타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데버스는 곧바로 반발했습니다. 취재진 앞에서 통역을 대동한 채 3루 자리를 지키겠다고 선언해 구단과 공개적으로 대립각을 세웠습니다. 먹잇감을 놓칠 리 없는 보스턴 언론들이 맹수처럼 달려들었습니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데버스는 팀의 요구를 수용하는 게 프로 선수라며 한발 물러섰습니다. 상황이 정리되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주전 1루수 트리스턴 카사스가 부상으로 이탈하자, 보스턴 구단이 이번에는 데버스에게 1루수를 맡아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데버스는 또 공개적으로 불만을 드러냈고, 결국 샌프란시스코로 충격적인 트레이드가 이뤄졌습니다. 

 

 

트레이드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데버스는 샌프란시스코로 이적한 뒤에야 1루수를 맡기 시작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명예의 전당에 입성할 정도의 자질을 지녔다고 극찬받던 프랜차이즈 스타가 포지션 변경에 대한 갈등으로 원치 않는 결말을 맞았다는 것입니다. 본질적으로는 메이저리그 수준의 리그에서 선수의 포지션을 바꾸는 것이 컴퓨터 게임처럼 간단치 않다는 점도 새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르게 생각하면 포지션을 적극적으로 바꾸면서도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선수에게는 더 높은 평가를 내릴 수 있습니다. 최초로 휴스턴 모자를 쓰고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2루수 크레이그 비지오는 신인 드래프트에서 포수로 지명받았다는 점이 종종 언급됩니다. 비지오는 원래 대학에서 내야수로 먼저 활약했습니다. 그런데 팀 코칭스태프의 요청에 따라 포수를 맡았고 그대로 프로에 입문했습니다. 

 

 

 비지오는 1991년 포수로 올스타까지 선정될 만큼 나름대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런데 1992년 포수 마스크를 벗고 2루수로 전격 전업합니다. 비지오의 포수 수비 부담을 줄이는 동시에 타격 능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휴스턴 구단의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비지오는 이때를 돌아보며 갑자기 2루수를 맡는 일은 배트를 쥐어주고 랜디 존슨에게 안타를 치라고 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허슬 플레이로 소문난 적극성에, 구단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성향이 결합하면서 비지오는 역대급 2루수로 발돋움했습니다. 비지오는 이후 2003년 제프 켄트가 영입됐을 때는 외야수를 맡기도 했습니다. (아들 캐번 비지오는 아버지만큼 명성을 얻지는 못했지만 다양한 포지션 소화 능력으로 평가받습니다.)

 

명예의 전당 멤버 가운데 이 분야에서 빼놓을 수 없는 선수는 폴 몰리터입니다. 국내 야구팬 상당수가 박찬호의 미국 진출 이후 메이저리그를 접한 터라 몰리터의 경력 후반기에만 주목해 지명타자라는 인식을 갖곤 합니다. 실제 몰리터를 설명하는 수식어 가운데 포지션 자체가 타자라는 말이 있을 만큼 타격의 달인으로 각인되어 있습니다. 동시에 몰리터는 여러 수비 포지션을 꽤 훌륭하게 소화한 선수이고, 그로 인해 생긴 일화도 있습니다.

 

 

몰리터는 1978년 데뷔 초 대스타 로빈 욘트가 개인적인 문제로 돌연 결장하자 싱글A에서 갑자기 승격돼 유격수를 맡았습니다. 욘트가 돌아오자 이번에는 2루수로 이동했습니다. 두 포지션 모두 준수하게 소화했습니다. 빅리그에서 만개하기 시작한 1982년부터는 한동안 3루수로 활약했습니다. 다만 불운하게 부상이 잦았습니다. 데뷔 초부터 온갖 부상을 겪은 몰리터는 1980년부터 90년까지 무려 10번이나 부상자 명단에 올랐고, 이 기간에 결장한 경기가 500경기에 달했습니다. 1987년에 39경기 연속 안타를 기록하자, 한 매체가 연속 안타보다 39경기 연속 출전한 것이 더 놀랍다고 했을 정도였습니다. 1984년에 투수가 아닌 선수로는 최초로 토미 존 수술을 받은 인물 역시 몰리터였습니다.

 

90년대에 들어서면서 몰리터는 지명 타자로 굳어졌습니다. 몰리터는 부상만 없으면 큰 기복없이 최상급 타격 능력을 선보였습니다. 자연스럽게 소속팀 감독들은 몰리터의 부상을 차단하기 위해 지명 타자 제도를 활용했습니다. 간혹 글러브를 끼더라도 1루수로 제한되곤 했습니다. 그러나 수비력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근거가 될 만한 사례도 있습니다. 1993년 월드시리즈 당시 토론토는 홈경기로 열린 1, 2차전에서 지명타자 몰리터, 1루수 올러루드를 내세웠습니다. 그해 정규리그에서 몰리터는 최다 안타를 기록했고, 올러루드는 타격 1위를 차지했습니다. 젊은 올러루드는 수비력도 출중했습니다.

 

그런데 토론토는 필라델피아 원정 경기로 치러진 3차전부터 내셔널리그 규정에 따라 지명타자를 가동하지 못했습니다. 고심 끝에 개스턴 감독은 1루수 자리에 몰리터를 기용했습니다. 올러루드는 아예 출전하지 못했습니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타격왕이 월드시리즈에서 선발 출전하지 못한 것은 역대 두 번째 사례였습니다.

 

 

개스턴 감독 입장에서 매우 다행스럽게도 토론토는 3차전을 승리했습니다. 이후 4차전에서는 올러루드를 다시 1루수로 출전시키고, 대신 몰리터에게 3루를 맡겼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도 승리했습니다. 몰리터는 36살의 나이에 1, 3루를 오가며 훌륭한 수비력을 보여줬고, 타석에서도 24타수 12안타의 맹타를 휘둘러 월드시리즈 MVP에 올랐습니다.

 

몰리터는 1998년에 통산 3,319안타를 쌓은 뒤 은퇴했습니다. 3천 안타를 돌파하면서 통산 3할 타율을 유지하고, 여기에 500도루까지 기록한 선수는 타이 콥과 호너스 와그너, 에디 콜린스와 이치로 포함 역대 5명 뿐입니다.  자신의 3천 번째 안타를 3루타로 기록한 최초의 선수이기도 합니다. 

 

밀워키와 토론토, 미네소타 등 상대적으로 주목도가 낮은 팀에서 뛰었지만 몰리터는 엄청난 타격 능력으로 빅리그 역사에 큰 자취를 남겼습니다. 몰리터의 타격을 활용하기 위해 감독들이 지명 타자 제도를 활용하기도, 타격왕 1루수를 벤치에 두기도 했다는 것이 곱씹을수록 흥미롭습니다. 몰리터가 그만큼 대단한 타격을 지녔고, 또 다양한 멀티 포지션 소화 능력이 뒷받침됐으니 가능했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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