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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그윈이 마련한 두 개의 생일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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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8월5일. 

 

모두의 시선이 세인트루이스 부시스타디움에 쏠렸다.

2998안타의 토니 그윈과 499홈런의 마크 맥과이어가 같은 경기에 출전했기 때문이다. 

 

당시 3000안타 달성자는 역대 21명. 500홈런 달성자는 15명으로, 두 개의 위대한 기록이 같은 경기에서 나온다는 건 다시 만들어지기 어려운 기회였다. 

 

그윈은 전날 3안타 경기를 했고, 맥과이어는 18경기에서 14개를 몰아치고 있었기 때문에 동시 달성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도 높았다.

 

3회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맥과이어가 500호를 날린 것이었다. 맥과이어는 내친 김에 마지막 타석에서 501호를 때려고 경기를 끝냈다. 반면 그윈은 첫 네 타석에서 볼넷 하나에 그치다 마지막 타석에서 2999번째 안타를 치고 끝냈다. 이로써 동반 기록 달성은 무산됐다.

 

많은 사람들이 그윈의 3000안타가 이날 나오기를 기대했던 건 맥과이어와 동반 달성도 있지만, 세인트루이스의 야구 열기가 더 뜨겁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경기는 매진이었다. 하지만 그윈은 세인트루이스에서 기록을 달성하지 못하고 몬트리올로 떠났다. 

 

다음날 몬트리올 올림픽스타디움의 관중은 1만3000명으로, 세인트루이스의 4만5000명보다 현저히 적었다. 하지만 그윈은 지체하지 않고 첫 타석에서 3000번째 안타를 때려냈다. 그리고 경기가 끝날 때까지 세 개를 더 추가해 5타수4안타 경기를 했다.

 

비록 박수는 적었지만, 그윈에게는 더 의미있는 날이었다. 2000안타를 달성하고 정확히 6년째 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1993년 그윈은 8월4일에 7타수6안타를 기록해 안타수를 1999개로 늘린 다음 8월5일에 2000안타를 달성했다. 8월5일은 어머니의 61번째 생일이었다. 

 

그렇다면 6년 후인 1999년 8월5일은? 그렇다. 어머니의 67번째 생일이었다. 그윈은 어머니의 생일에 2000안타와 3000안타를 달성했던 것이다.

 

그윈의 아버지는 군인이었다. 아버지는 전역 후 캘리포니아 드림을 꿈꾸며 1958년 테네시에서 LA로 이주했고, 1960년에 그윈이 태어났다. 아버지는 엄격했지만, 그윈이 야구 선수가 되는 데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윈이 9살이었을 때, 가족은 아파트를 떠나 뒷마당이 딸린 집을 샀고, 그윈과 형제들은 뒷마당에서 공을 칠 수 있었다. 

1991년은 그윈에게 가장 슬픈 해였다.

그 해 왼 무릎을 심하게 다친 그윈은 그럼에도 시즌을 강행했고, 8월 말까지 타율 1위를 달렸다. 하지만 무릎 상태는 점점 나빠지고 있었다. 그윈은 이미 규정 타석을 채워 경기에 그만 나서더라도 타격왕을 차지할 수 있었다. 팀도 우승 경쟁에서 밀려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윈에게 시즌을 끝내자고 했다. 아버지도 그 중 한 명이었다.

 

그윈은 아버지에게 걱정 말라고 했고, 시즌을 중단하지 않았다. 하지만 상태는 점점 나빠졌고, 결국 3위로 시즌을 마쳤다. 그리고 한 달 후, 아버지가 심장 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큰 충격을 받은 그윈은 야구를 포기하고 싶었지만, 아버지가 생전에 했던 말을 떠올렸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10년을 더 뛴 그윈은, 2000안타와 3000안타를 달성할 수 있었고, 내셔널리그 최다인 8번의 타격왕을 차지했다. 2007년에는 칼 립켄 주니어와 함께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그윈은 그렉 매덕스를 상대한 통산 107타석과 페드로 마르티네스를 상대한 36타석에서 삼진을 한 번도 당하지 않았다. 통산 타율이 .338였는데, 사이영 경력을 가진 투수들을 상대로는 .339였다.

 

그윈은 샌디에이고를 포함한 메이저리그 팀들의 코치 제안을 거절하고, 모교인 샌디에이고주립대의 감독이 됐다. 많은 선수들이 그윈의 손을 거쳐갔다. 스티븐 스트라스버그도 그윈이 길러낸 선수였다. 

 

그러던 2014년,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그윈이 5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것이었다. 그윈은 대학 시절부터 씹는 담배를 즐겼는데, 씹는 담배의 과도한 사용은 그윈의 몸에 여러 문제를 일으켰다. 그윈이 세상을 떠난 후 메이저리그는 씹는 담배를 금지했고, 스트라스버그를 포함한 많은 선수들이 사용을 중단했다.

 

그윈이 아버지를 잃은 건 그가 31세인 해였다. 운명적이게도, 토니 그윈 주니어는 그가 31세였던 던 해에, 아버지 토니 그윈을 잃었다.

 

지금도 펫코파크에 우뚝 서있는 토니 그윈의 동상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새겨져 있다.

 

열심히 하면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If you work hard, good things will happen

이는 아버지 찰스가, 그윈에게 해준 말이었다. 

 

아버지의 말을 평생 가슴에 새긴 그윈은, 어머니의 생일에 2000안타와 3000안타를 달성했고, 아버지의 날에 심장 발작을 일으켰다. 그윈의 마지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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