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연재 : 카드로 보는 MLB Story ⑯] ‘타이 콥’의 손편지와 초록색 만년필 [Ty Cobb 특집 ①]
연재
‘타이 콥’의 손편지와 초록색 만년필
이틀 전, 7월 17일은 대한민국 헌법이 공포(1948년)된 것을 기념하는 ‘제헌절(制憲節)’이었습니다. 5대 국경일의 하나로, 조선왕조 건국일이 7월 17일이어서 이날에 맞추어 공포한 것입니다. 1950년부터 쭉 공휴일로 지정돼오다 2008년부터는 공휴일에서 제외됐는데요. 빠르면 내년부터 다시 공휴일로 지정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야구사(史)적인 관점에서도 7월 17일엔 특별한 일이 많았습니다. 1941년 7월 17일은 뉴욕 양키스(New York Yankees) ‘조 디마지오(Joe DiMaggio)’의 전설적인 ‘56경기 연속 안타 기록’이 중단된 날이었습니다.
1974년 7월 17일엔 1930년대의 전설적인 투수 ‘디지 딘(Dizzy Dean)’이 향년 64세로 사망했습니다. 그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St. Louis Cardinals)의 에이스로, MLB 마지막 30승 투수(1934년)로 잘 알려졌으며, 그해 내셔널리그 MVP를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아울러 1961년 7월 17일엔 통산 타율 .366에 빛나는 MLB 역사상 최고의 타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타이 콥(Ty Cobb)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타이 콥은 최초의 3,000안타 달성자로, 24년간 선수 생활을 해오면서 첫해를 제외하고 23년간 3할 타율을 기록했습니다. 심지어 1911·1912·1922년엔 4할 타율을 기록했습니다. 1936년 명예의 전당(Hall of Fame) 초대 헌액자이기도 한 타이 콥은 ▲호너스 와그너(95.1%), ▲베이브 루스(95.1%), ▲크리스티 매튜슨(90.7%), ▲월터 존슨(83.6%)보다 높은 98.2%의 득표율로 ‘최초의 5인(따지고 보면 최초의 1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타이 콥은 은퇴 후 코카콜라 주식을 대량 매입해 큰 수익을 올렸으며, GM(제너럴 모터스) 주식 투자, 부동산 및 은행 투자에도 성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습니다. 사망 당시 재산 규모는 약 1,100만 달러로 추정되는데, 이를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한화 기준) 약 1,600억원에 달합니다.
이런 타이 콥에 대해 이야기할 때, 누군가는 영웅으로, 또 다른 누군가는 악당으로 묘사합니다. ▲수비수를 다치게 하려고 스파이크를 갈았다, ▲흑인을 증오했다, ▲사람을 죽였다, ▲그의 장례식에 온 사람이 아무도 없을 정도로 인간관계가 형편 없었다 등등 수많은 검증되지 않은 말들이 수식어처럼 그를 따라다닙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타이 콥에 대한 거친 이미지는 상당 부분 조작 혹은 왜곡된 것입니다. 이번 주와 다음 주, 두 차례에 걸쳐 타이 콥에 대한 숨겨진 이야기들을 꺼내 보려 합니다.
편지, 소극적인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행동
타이 콥은 화려한 선수 시절 업적에도 불구하고, 은퇴 후, 심지어 지금까지도 대중으로부터 많은 오해를 받고 있는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지나친 승부욕으로 인해 여전히 거친 이미지가 많이 남아 있지만, 경기장 밖에서는 오히려 조심스럽고 내성적인 인물에 가까웠습니다.
타이 콥은 자신에게 시간을 들여 편지를 써준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든 답장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끼면서도 편지하는 것을 큰 영광으로 여겼습니다. 특히 팬들을 위해서라면 5장이 넘는 손편지를 써주기도 했고, 사인 요청을 받을 때면 항상 “영광입니다”라고 말하는 신사였습니다.
ⓒ Fine Art Storehouse
편지는 소극적인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행동이기 때문일까요? 시대적 배경상 편지가 중요한 소통의 매개체 역할을 해온 이유도 있겠지만, 타이 콥은 유독 누군가에게 편지하는 행위 자체를 즐겼던 것 같습니다. 명예의 전당, 박물관, 경매시장 등 타이 콥의 유품을 찾아볼 수 있는 곳에서 가장 많이 발견되는 것도 바로 편지입니다.
타이 콥은 인종차별주의자, 관중 폭행범 같은 수많은 편견과 오해의 수식어와 싸워야 했습니다. 신문사와 인터뷰를 하면, 그의 입장과 상반되는 기사들만 실렸습니다. 언론은 그의 편이 아니었습니다. 기자들은 특히 그의 성격, 인종관, 폭력성 등을 지나칠 정도로 많이 언급했습니다. 그의 해명은 모두 묻히고, 자극적인 묘사만 확대 재생산됐습니다.
그래서인지, 왜곡된 언론보도에 대한 반박 편지도 자주 썼는데, 자신의 진심을 제대로 전할 수 있는 매체는 아마 편지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에게 편지란, 긴 호흡으로 차근차근 자신의 이야기를 끝까지 전할 수 있는 느리지만 힘이 센 도구이자 유일한 친구와도 같았습니다.
연애편지? 야구편지! … 편지 주고받는 남자들
타이 콥은 친분이 없는 상대라도, 야구에 진심이라고 느껴지는 선수를 발견하면 자발적으로 편지를 써 타격에 관한 조언과 격려를 하는 개방적이고 헌신적인 멘토였습니다.
1952년 브루클린 다저스(Brooklyn Dodgers)의 1루수 길 하지스(Gil Hodges)는 정규시즌 32홈런, 102타점이라는 훌륭한 성적을 남겼음에도 월드시리즈에서 26타석 무안타를 기록하는 충격적인 부진을 겪었습니다. 결국 뉴욕 양키스와의 7차전까지 간 혈투 끝에 브루클린 다저스가 패하자 언론은 그 책임을 고스란히 길 하지스에게 떠넘겼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타이 콥은 길 하지스에게 진심 어린 위로와 격려의 편지를 보냅니다.
언론이 당신의 부진을 언급한다고 해서 너무 신경 쓰지 말게. 그들은 그저 할당된 지면을 채워야 하고, 마땅한 소재가 없으면 계속해서 똑같은 이야기, 즉 당신의 무안타에 대해 반복해서 쓸 뿐인 거야. 자네는 이번 시즌 그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줄 수 있을 거야. 이건 그냥 하는 말이 아니네. 당신은 충분한 파워를 갖췄고, 시력에도 문제가 없지. 그렇다면 아마도 기본기에 문제가 있는 걸 거야. 타격 자세, 몸의 균형과 위치, 타석 내 위치, 배트 그립 같은 거 말이야. 내가 보기엔 당신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간단한 팁 3~4가지쯤은 알려줄 수 있을 것 같아. 나의 이런 제안에 대해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게나.
- 진심을 담아, 타이 콥
타이 콥의 편지는 단순한 위로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해결방안까지 제시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도움을 다른 사람에게 언급하지 말 것을 당부하기까지 합니다. 타이 콥은 그저 박스 스코어를 통해 자신이 도움을 준 선수의 성적이 나아지는 걸 확인함으로써 많은 보상을 받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편지는 다정한 어조로 쓰여 있으며, 대중에게 알려진 타이 콥의 거친 평판과는 극명한 대비를 이룹니다.
그리고, 이 편지를 받은 길 하지스는 타이 콥에게 이렇게 답장했습니다.

ⓒ Extraordinary Gil Hodges Handwritten Letter to Ty Cobb Asking for Batting Help(lelands.com)
당신의 훌륭한 편지를 받고 매우 기뻤습니다. 타격에 대한 조언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야구에서 많은 업적을 이루신 만큼, 분명 타격에 관한 많은 비밀을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혹시라도 제게 도움이 될 만한 몇 가지 팁을 알려주신다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당겨치는 스타일(Pull Hitter)이고, 지난 시즌까지 우익수 방향으로는 거의 타구를 보내지 못했습니다. 일부러 우측 타구를 늘리려고 시도하면서 장타력을 잃은 것 같습니다. 스윙을 줄이고, 공을 우측으로 밀어치기 위해선 많은 노력이 필요했고 어려움도 컸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조언해주신다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콥 선생님. 저는 제 타격을 향상시킬 수 있는 그 어떤 방법이라도 시도할 각오가 돼 있습니다.
- 진심을 담아, 길 하지스
흥미롭게도 타이 콥의 조언은 실제로 효과가 있었습니다. 길 하지스는 1953 시즌 타율을 .302까지 끌어올렸고, 31홈런 122타점이라는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뤘습니다. 그 다음 시즌인 1954년에는 한 층 더 발전해 타율 .304, 42홈런, 130타점을 기록했습니다.
‘타이 콥’의 초록색 만년필
타이 콥은 초록색 만년필을 즐겨 사용했습니다. 실제로 1910년대부터 초부터 그가 남긴 편지와 서명의 대부분이 초록색 만년필로 쓰여졌습니다. 그리고 편지 말미에는 항상 “Ty”라는 서명을 덧붙이곤 했습니다. 타이 콥은 초록색이 돈을 불러온다고 믿었는데, 실제 그가 남긴 재산을 보면 허무맹랑한 미신은 아닌 것 같습니다.
ⓒ About History
실제로 미국 달러(지폐)의 색상이 초록색이기 때문에 ‘Green = Money’라는 인식이 굳어져 있습니다. ‘greenback’이라는 단어도 달러(지폐)를 일컫는 관용어로 쓰입니다. “He’s got a lot of green.”이라는 문장 또한 “그는 돈이 많다.”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그래서인지 서구권에서는 초록색 펜, 초록색 지갑, 초록색 옷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고, 초록색을 돈을 부르는 행운의 색으로 보는 사람이 많습니다.
동양권(풍수지리)에서도 초록색은 생명령, 성장, 번영, 확장을 상징합니다. 특히 목(木)의 기운과 연결되며, ‘재물이 자라나는 색’으로 인식되곤 합니다. 초록색 식물, 관엽식물, 초록색 소품 등이 집안의 금전운을 좋게 한다고 믿는 경우도 많습니다.
반면 이러한 단순한 미신보다는 타이 콥의 철학이 담겨 있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타이 콥은 자신의 사인이 위조되는 것을 매우 싫어했는데, 일부러 눈에 띄는 초록색 잉크로 서명함으로써 흑백 복사나 일반적인 사인과 구별되도록 했다는 분석입니다. 남들과의 차별화 수단, 즉 자기표현의 일환이라는 것이지요. 미신 혹은 철학. 둘 다 설득력이 있는 주장입니다.
편지로 카드를 만든 사람들
![]()
‘Sportscards.com’이라는 한 트레이딩 카드 업체는 2019년 흥미로운 카드 박스를 출시했습니다. ‘타이 콥의 한마디(A Word From Ty Cobb)’라는 이름의 카드 박스였는데, 공식 인증을 받은 타이 콥의 자필 편지에 쓰인 단어를 하나하나 오려 카드에 삽입해 출시한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한정 형태(기본/100/30/25/15/10/1장 등)의 카드가 박스당 1장씩 무작위로 섞여 있는 형태였습니다.
ⓒ 카드 제작에 사용된 타이 콥의 자필 편지들
ⓒ 2019 Sportscardcom A Word from Ty Cobb #TY-AWF Auto /10(카드 읽어주는 남자)
특히 타이 콥이 편지 말미에 쓰던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Ty”라는 서명이 삽입된 카드(10장 한정)가 많은 인기를 누렸습니다. 단어 하나하나에 각자의 다양한 의미를 부여하거나 앞뒤 문장을 상상해볼 수 있어 컬렉터들에게 신선한 재미를 선사했습니다.
이랜드 뮤지엄에서 소장 중인 타이 콥의 손편지도 초록색 펜으로 작성됐습니다. 이 편지는 1957년 10월 27일 아머 앤더슨(Armour Anderson)이라는 사람(신원 미상)에게 보낸 것으로 추정되며, 타이 콥이 그의 개인 편지지에 작성한 것입니다. 편지에는 그의 가족, 그리고 코카콜라 병입 공장(Coca-Cola bottling plant)* 관련 내용이 담겨 있으며, 그의 아들과의 관계에 대한 내용도 포함돼 있습니다. 타이 콥은 이 편지에서 사업적인 어려움과 가족 내 갈등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 원료 음료(코카콜라 원액)를 병이나 캔 등에 주입하고 밀봉·포장하는 생산공장
‘타이 콥’과 ‘코카콜라’의 운명적 만남
타이 콥과 코카콜라는 공교롭게도 나이가 같습니다. 어쩌면 예견된 운명이었습니다. 코카콜라는 1886년 5월 8일, 타이 콥은 1886년 12월 18일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미국 조지아州가 고향이라는 점도 같습니다.
ⓒ 1907년 타이 콥이 등장한 코카콜라 신문 광고
타이 콥의 첫 상업 광고는 1907년 9월, 그가 생애 첫 타격왕을 앞둔 시점이었습니다. 이 신문 광고에는 베넷 파크(Bennett Park)에서 타석에 선 타이 콥의 모습이 담겨 있고, 다음과 같은 문구가 포함돼 있었습니다.
I drink Coca-Cola regularly throughout all seasons of the year. On days when we are playing a double-header I always find that a drink of Coca-Cola between the games, refreshes me to such an extent that I can start the second game, feeling as if I had not been exercising at all, in spite of my exertions in the first.
타이 콥은 코카콜라를 그저 음료로만 여기지 않고, 바로 투자자로 나섰습니다. 당시 코카콜라는 병입 권리를 지역 단위로 판매했으며, 병입 공장은 일종의 지역 프랜차이즈 형태로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1920년대, 코카콜라가 미국 남부를 넘어 전국으로 유통망을 확대하고, 해외 시장까지 진출하면서 주가는 급등했습니다. 1940년, 타이 콥은 아이다호(Idaho) 트윈폴스(Twin Falls)에 있는 병입 공장을 매입하고, 자신의 아들 허셜(Herschel Cobb)을 운영자로 세웠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또 다른 아들 지미(Jimmy Cobb)도 이 공장에 합류했습니다. 이후 허셜 부부는 오리건과 캘리포니아 지역의 병입 공장까지 인수하며 사업을 크게 확장했습니다.
위에서 잠시 언급했듯 타이 콥의 사망 당시(1961년) 재산은 약 1,100만 달러에 달했는데, 이 중 상당 부분이 코카콜라 주식과 병입 사업에서 나온 수익이었습니다. 타이 콥은 선수 시절처럼 자신의 승부욕과 집념을 사업과 투자에도 적용해서인지 엄청난 부를 축적할 수 있었습니다.
기록 부자 vs. 기억 부자
하지만 타이 콥의 가정생활은 그리 순탄치 못했습니다. 무뚝뚝한 성격 때문에 1947년 그의 아내 베벌리 콥(Beverly Cobb)과 이혼을 했고, 그의 자녀들 역시 타이 콥을 감정 표현에 서툰 아버지로만 기억합니다. 그들에게 타이 콥은 야구장 밖에서도 승부의 세계에 갇혀 있는 가여운 중년 남자에 불과했습니다.
타이 콥. 그가 초록색 만년필로 꾹꾹 눌러쓴 편지를 후배들에게 전달했듯이 그의 아내, 그의 자녀들에게도 똑같이 진심을 담은 편지 한 통을 건넸다면 어땠을까요?
이 글을 읽고 있는 우리가 그렇듯 그 역시 완벽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손가락질받을 만한 악인(惡人)은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그는 단지, 서툰 어른이었을 뿐입니다.

ⓒ 1969 Ajman Stamps - TY COBB 5DH Champions of Sport PSA 10
원래 우표를 붙이지 않은 편지가 더 빨리 도착하는 법입니다. 그렇게 쓴 편지들을 우체통이 아닌 아들의 책상 위에, 아내의 화장대 위에 몰래 올려두고 나왔다면… 그럼 우표값도 아끼고, 그라운드 위에서 세운 수많은 MLB 기록들, 그가 남긴 재산 1,100만 달러보다 더 큰 무언가를 얻을 수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타이 콥은 MLB 기록과 개인 재산 등 숫자와 관련된 많은 것을 이룬 ‘기록 부자’입니다. 하지만 그의 아내와 자식들이 바란 타이 콥은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이 많은 따뜻한 ‘기억 부자’의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To be continu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