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래빈, 내셔널리그 MVP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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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3승과 154세이브, 9062개의 탈삼진을 합작하고 7개의 사이영상을 따낸 '사이영 트리오'는 한 명 만이 월드시리즈 MVP에 올랐다.
포스트시즌 15승이 앤디 페티트(19승)와 저스틴 벌랜더(17승)에 이어 역대 3위인 스몰츠는 소문난 가을의 사나이였다. 포스트시즌 통산 2.67(ERA)은 3.81인 페티트와 3.58인 벌랜더를 크게 앞선다. 잭 모리스와 함께 만든 1991년 월드시리즈 7차전의 투수전은 역대 최고의 명승부로 남아 있다. 하지만 스몰츠는 정답이 아니다.
1990년대 최고의 우완인 매덕스는 가을에 약하다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약하지 않았다(PS 통산 ERA 3.27). 매덕스가 그런 이미지가 된 건 1996년 월드시리즈 탓이었다. 매덕스는 2차전에서 8이닝 무실점 승리를 따냈지만, 6차전에서 7.2이닝 3실점 패전을 안았고, 월드시리즈는 종료됐다.
FA 자격을 얻고 시카고 컵스를 나온 매덕스에게 가장 좋은 조건을 제시한 팀은 뉴욕 양키스였다. 매덕스는 양키스를 거절하고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 입단했는데, 하필이면 양키스를 월드시리즈에서 만나 패하면서 놀림의 대상이 됐다. 매덕스가 양키스를 거절한 이유는, 애틀랜타의 전력이 더 좋다는 것과 양키스의 골프 금지령 때문이었다. 매덕스도 우리의 정답이 아니다.
매덕스가 양키스에게 패하기 1년 전에도, 애틀랜타는 월드시리즈에 진출했다. 상대는 클리블랜드 인디언스(현 가디언스)였다.
클리블랜드는 1954년 이후 41년 만의 진출이었다. 애틀랜타는 3년 만의 진출이었지만, 1991년과 1992년에 연속 준우승을 했기 때문에 절박함이 클리블랜드 못지 않았다. 마지막 우승은 클리블랜드가 1948년, 애틀랜타가 1957년이었다. 마지막 우승(1957) 당시 브레이브스는 밀워키에 있었고, 마지막 우승(1948) 당시 클리블랜드가 꺾은 팀은 보스턴 브레이브스였다. 그렇다. 브레이브스는 1876년 보스턴에서 창단해, 1953년 밀워키로 옮겼다가, 1966년 애틀랜타에 자리를 잡았다.
클리블랜드는 1978년부터 1989년까지 12년 동안 한 해도 빠짐없이 아메리칸리그 동부 7팀 중 7위 또는 6위를 했다. 1989년에는 오합지졸이나 다름없는 만년 꼴찌 팀이 기적 같은 우승을 한다는 내용의 영화 <메이저리그>가 개봉했다. 그런데 영화의 주인공인 클리블랜드가 41년 만에 진출한 가을 야구에서 월드시리즈까지 올랐으니, 영화와 똑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었다.
매덕스의 9이닝 무자책(2실점) 완투에 힘입어 1차전을 승리한 애틀랜타는 글래빈이 2차전에 나섰다. 당시 글래빈은 메이저리그 팬들이 가장 미워하는 선수였다. 글래빈은 애틀랜타를 제외한 어느 곳을 가더라도 야유를 받았다.
1994년 메이저리그 선수노조는 시즌 도중 파업에 돌입했다. 구단주들도 직장 폐쇄로 맞섰고 남은 시즌이 취소됐다. 두 번의 세계 대전과 9.11 때도 월드시리즈가 취소된 적이 없었던 메이저리그는, 이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월드시리즈를 열지 못했다. 글래빈이 모든 원정 구장에서 야유를 받게 된 건, 파업을 주도한 선수노조의 선수 대표가 글래빈이었기 때문이다.
2차전에서 글래빈은 6이닝 2실점 승리를 따냈고, 애틀랜타는 2연승을 이어갔다.
그 해 최고 승률(100승44패)을 올린 클리블랜드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3차전에서 클리블랜드는 11회말 끝내기 안타로 승리했다. 1승3패로 탈락 위기에 몰린 5차전에서는 무패 행진을 이어가던 매덕스에게 패전을 안겼다. 승리를 따낸 선수는 1988년 다저스의 월드시리즈 MVP였지만, 이제는 한 물 갔다는 평가를 받은 오렐 허샤이저였다. 허샤이저는 8이닝 1자책 승리를 따냈고, 매덕스는 정규시즌부터 이어진 10연승이 중단됐다.
2승3패를 만든 클리블랜드는 6차전을 승리하고 최종전으로 가면, 3차전에서 무너뜨린 스몰츠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그러려면 글래빈부터 넘어야 했다.
6차전에서 글래빈은 최고의 피칭을 했다. 지금도 역대 최고의 타선 중 하나로 꼽히는 클리블랜드를 8이닝 1피안타 무실점으로 묶은 것이다. 6회 첫 타자에게 맞은 안타가 아니었다면, 글래빈은 9회에도 나왔을 것이고, 1955년 5차전에서 퍼펙트게임을 한 돈 라슨에 이어, 역대 두 번째 월드시리즈 노히터가 나왔을지도 모른다.
애틀랜타는 글래빈의 역투와 6회에 나온 솔로홈런에 힘입어 1-0으로 승리했고, 38년 만의 우승을 달성했다.
애틀랜타의 지역 신문들은 6차전을 시작하기에 앞서, 팀의 간판 타자이지만 2년 동안 포스트시즌 18경기에서 홈런을 하나도 치지 못한 데이빗 저스티스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저스티스는 신문이 나온 지 반나절 만에 시리즈 결승 홈런의 주인공이 됐다.
애틀랜타는 1991년부터 2005년까지, 미국 프로 스포츠 최고 기록에 해당되는 14년 연속 디비전 우승을 차지했다(1994년은 2위였던 상황에서 앞서 언급한 파업으로 시즌이 취소됐다). 하지만 월드시리즈 우승에 성공한 건 1995년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14번을 나가 한 번밖에 성공하지 것. 그리고 단 한 번의 우승을 이끈 월드시리즈 MVP는 매덕스도, 스몰츠도 아닌, 글래빈이었다.

랜디 존슨은 2010년 1월에 은퇴를 선언했다. 한 달 뒤에는 글래빈도 은퇴를 선언했다. 둘은 1990년대를 양분한 좌완이었다. 위협적인 공으로 타자를 윽박지르는 존슨과 정교한 제구로 타자를 유혹하는 글래빈은 완전히 다른 유형이었고, 그래서 더 재밌는 관계였다.
어쩌면 글래빈은 월드시리즈 트로피 대신 스탠리 컵을 들어 올렸을 수도 있다. 고등학교 때 글래빈은 야구보다 아이스하키를 더 잘했고, 하키 선수가 되려고 했다.
글래빈은 야구 팀인 애틀랜타와 하키 팀인 LA 킹스로부터 드래프트 지명을 받았다. 하지만 두 팀의 태도는 달랐다. 애틀랜타가 글래빈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모든 노력을 한 반면, 킹스는 싫으면 가라는 식이었다. 자존심이 강했던 래빈은 하키 스틱을 내려놓고 글러브와 야구공을 들었다.
물론 글래빈은 존슨만큼 화려하진 못했다. 대부분의 팬들은 시원시원하게 공을 던지는 존슨을 더 좋아했다. 하지만 타자와의 수싸움, 심판과의 밀당 등 피칭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쪽은 글래빈이었다. 2001년에 따낸 존슨보다, 먼저 월드시리즈 MVP를 차지한 것도 글래빈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