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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좌완, 비밀 요원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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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렌 스판(363)에 이은 좌완 역대 다승 2위(329). 랜디 존슨(4875)에 이은 좌완 역대 탈삼진 2위(4136). 존슨(97.3%)에 이은 좌완 명예의 전당 득표율 2위(95.6%).

 

 

 

역사적인 좌완, 스티브 칼튼을 상징하는 첫 번째는 슬라이더였다. 

 

칼튼은 1968년 시즌이 끝난 후 미일 올스타전에 참가했다. 그리고 일본 투수들이 던지는 빠른 슬라이더를 주의 깊게 관찰했다.

 

커터에 가까운 고속 슬라이더는 현재 메이저리그의 인기 구종 중 하나이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메이저리그 투수들은 각이 큰 슬라이더를 던졌다. 칼튼은 겨울 동안 단내 나는 훈련을 했고, 미국에선 낯선 그 공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커브가 결정구였던 칼튼에게서 두 번째 날개가 돋아난 순간이었다.

 

칼튼은 커브는 팔을 높여서, 슬라이더는 팔을 낮춰서 던졌다. 타자들이 대혼란에 빠진 이유는 패스트볼을 던질 때는 팔을 높여서도 던지고, 낮춰서도 던졌기 때문이었다. 야구 역사가 롭 네이어는 칼튼의 슬라이더를 랜디 존슨과 밥 깁슨에 앞선 역대 1위로 뽑았다. 

 

칼튼의 포수인 팀 매카버는 칼튼의 유일한 친구였다. 매카버는 자신이 죽으면 칼튼과 18.44미터 거리에 묻어 달라고 했다. 18.44미터는 투포수 간 거리다. 매카버는 칼튼의 명예의 전당 찬조 연설에서 칼튼에 대해 "역대 최고의 슬라이더를 던진 투수"라고 했다. 그러자 앞줄에 앉아 있던 밥 깁슨이 이렇게 말했다.

 

아무렴, 좌완 중에서 최고겠지. (깁슨은 우완이었다)

 

자존심이 강한 깁슨도 칼튼의 슬라이더 만큼은 인정했다.

 

칼튼을 상징하는 두 번째는 침묵이었다. 

 

칼튼은 야구에 집중하기 위해 인터뷰를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사이영상이 네 개(1972, 1977, 1980, 1982)인 칼튼은 1981년에는 '페르난도마니아'의 주인공인 페르난도 발렌수엘라(LA 다저스)에 밀려 사이영 2위를 했는데, 당시 한 기자는 영어에 서툰 발렌수엘라와 모든 인터뷰를 거절하는 칼튼을 두고 "내셔널리그에는 영어를 못하는 좌완 에이스가 두 명이나 있네."라고 했다.

 

칼튼은 왜 침묵했을까.

 

그는 명예의 전당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제가 말을 하지 않은 건 기자 여러분을 위해서였습니다. 여러분들은 인용할 문장이 없으면, 더 창의적인 문장을 쓸 수 있으니까요.

 

칼튼이 평생 동안 한 유일한 농담이었다.

 

칼튼은 세 개의 팀에서 얻은 세 개의 우승 반지를 가지고 있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소속으로 보스턴 레드삭스와 맞선 1967년 월드시리즈에서는 5차전에서 상대 에이스인 짐 론버그와 맞서 6이닝 1실점 무자책 패전을 안았다. 하지만 카디널스에는 최고의 가을 에이스 밥 깁슨이 있었다. 1차전에서 9이닝 1실점 완투승, 4차전에서 9이닝 무실점 완봉승, 7차전에서 9이닝 2실점 완투승을 따낸 깁슨은 시리즈 MVP가 됐다.

 

두 번째였던 1980년 월드시리즈에서 칼튼은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에이스였다. 1972년에 칼튼은 카디널스를 떠나 필리스로 이적했고, 꼴찌 팀인 필리스의 고독한 에이스가 됐다. 이후 필리스의 전력은 날로 강해져, 1980년 월드시리즈 진출에 성공했다. 칼튼은 2차전에서 8이닝을 3자책으로 버텨 승리투수가 됐고, 최종 6차전에서도 7이닝 1실점 승리를 따냈다. 1883년에 창단한 필리스가 98년 만에 우승을 차지한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필리스에서 전성기를 보낸 칼튼은 선수 생활 말년에 여러 팀을 전전했다. 4,000K를 달성한 팀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였고,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미네소타 트윈스에서도 뛰었다.

 

1987년 칼튼은 시즌 중반에 합류한 미네소타에서 9경기 1승5패 6.70에 그쳤다. 미네소타는 월드시리즈에 진출했지만, 칼튼은 포스트시즌 로스터에 들지 못해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미네소타는 홈에서 4승, 원정에서 3패를 하고 1961년 연고지 이전 후 첫 우승에 성공했다. 그리고 4년 후에도(1991) 똑같은 방식으로 우승했다. 

 

비록 우승에 기여하진 못했지만, 칼튼은 우승 반지를 받았고, 백악관에도 초대됐다. 칼튼은 선글라스를 낀 채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다른 선수들과 함께 기념 촬영을 했다. 

 

난감한 건 기자들이었다. 사진에 찍힌 인물 중 '선글라스를 낀 남자'의 정체를 도저히 알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고, 내내 웃기만 했다. 한 기자는 고민 끝에 선글라스 남에 대한 사진 설명을 이렇게 적었다. 

 

확인이 불가능한 비밀 요원(unidentified Secret Service agent).

 

시대를 대표하는 좌완이었던 칼튼은, 그렇게 잠시나마 정부 특수 요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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