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연재 : 카드로 보는 MLB Story ⑫] ‘롤리 핑거스’의 ‘헤어질 결심’
연재

김흥국, 박상민, 이용규, 찰리 채플린, 앨버트 아인슈타인.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네, 맞습니다. 바로 ‘콧수염’입니다.

그럼 이 중에서 가장 멋진 콧수염 사진을 골라볼까요?
아마 대부분 가운데 사진을 고르셨을 것 같은데요.

ⓒ 롤리 핑거스(MLB.com)
이 콧수염의 주인공은 바로 오클랜드 애슬레틱스(Oakland Athletics)와 밀워키 브루어스(Milwaukee Brewers) 두 팀에서 모두 영구결번으로 지정되고, 1992년 ‘명예의 전당(Hall of Fame)’에 헌액된 롤리 핑거스(Rollie Fingers)입니다.
핑거스의 커리어(Career)는 애슬레틱스에서 시작됐으며, 애슬레틱스를 3시즌(1972~1974년) 연속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이끈 인물입니다. 애슬레틱스가 가진 총 19번의 월드시리즈 경기 중 핑거스는 16경기에나 등판했고, 이 기간 팀이 거둔 12번의 월드시리즈 승리 중 절반인 6세이브를 그가 기록했습니다.
1974년엔 월드시리즈 MVP에도 선정됐습니다. 이후 브루어스에서 1981년 시즌 MVP와 사이영상을 동시에 수상했고, 구원투수로는 호이트 윌헬름(Hoyt Wilhelm)에 이어 2번째로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습니다.
선발투수 보직이 아님에도 거의 매년 100이닝 이상을 기본으로 던져줬고, 통산 944경기에 출전해 총 1701.1이닝을 소화했습니다. 구원투수라는 개념과 가치가 모호하던 시절, 훌륭한 구원투수 한 명이 팀의 우승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몸소 증명해낸 인물이기도 합니다. 은퇴 당시 세이브 통산 기록 1위였으며, 통산 성적도 114승 118패, 341세이브, 방어율 2.90이었습니다.
애슬레틱스의 팀 동료였던 레지 잭슨(Reggie Jackson)은 선수 시절 심한 인종차별을 많이 당했습니다. 원정경기를 가면 식당에서도, 호텔에서도 그를 받아주지 않는 곳이 많았습니다.

ⓒ 레지 잭슨(NBC Sports)
단지, 잭슨의 피부색이 검다는 이유 때문이었죠. 흑인이 살지 않던 아파트 단지에서 거주 거부를 당하기도 했고, 이사를 가지 않으면 집을 불태우겠다는 협박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때 손을 내밀어준 건 핑거스. 이 둘은 1965년부터 친구였고, 1975년까지 팀 동료로 뛰었습니다. 잭슨은 시즌 내내 핑거스나 조 루디(Joe Rudi) 부부의 집에 머무른 적도 있었습니다.
핑거스는 늘 겸손하면서 유쾌한 클럽하우스의 리더였습니다. 핑거스는 “우리는 푸에르토리코 출신이건, 멕시코 출신이건, 도미니카 출신이건, 베네수엘라 출신이건, 일본 출신이건 신경 쓰지 않습니다. 같은 유니폼을 입고 있으면 우리는 한 팀입니다. 팀 안에서 인종차별이란 없습니다. 문제는 팀 밖의 사람들이죠”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 블루 문 오덤(Baseball Hall of Fame)
이런 온순한 사자의 심기를 건드린 사건도 하나 있었는데요. 1974년 월드시리즈 개막 하루 전, LA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애슬레틱스의 투수 블루 문 오덤(Blue Moon Odom)이 클럽하우스 반대편에 있던 핑거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핑거스는 달려와 오덤을 향해 주먹을 날렸습니다. 오덤은 일어나 머리부터 핑거스의 가슴으로 돌진했고, 그 충격에 핑거스는 라커룸에 세게 부딪혔습니다. 핑거스는 옷걸이에 머리를 찧어 여섯 바늘을 꿰매야 했고, 오덤은 발목을 접질러 목발을 짚어야 하는 부상을 당했습니다. 참고로 당시 핑거스는 자신의 아내가 바람을 피워 결혼생활에 위기를 겪고 있었습니다.
핑거스가 정신을 차렸을 때 피가 목을 타고 흐르고 있었고, 머리에는 2~3cm 길이의 상처가 나 있었습니다. 핑거스는 그 순간을 회상하면서도 특유의 유머를 잊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덕분에 그날 훈련은 빠질 수 있어서 좋았어요”

ⓒ 1974년 월드시리즈 우승 직후 기뻐하는 롤리 핑거스(Marine Independent Journal)
오덤과 핑거스는 사나이답게 그 자리에서 악수하고 바로 화해했다고 합니다. 다른 팀원들은 이 싸움이 오히려 우승을 위한 자극제가 됐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실제로 애슬레틱스는 1974년 월드시리즈에서 LA 다저스를 시리즈 전적 4:1로 누르고 3연패를 달성했습니다.
롤리 핑거스는 1974년 월드 시리즈에서 구원투수로 3경기에 등판, 1승 2세이브 평균자책점 1.93을 기록하며 월드시리즈 MVP를 차지했습니다.
핑거스는 이 시리즈에서 구원투수로 3경기에 등판, 1승 2세이브 평균자책점 1.93을 기록하며 월드시리즈 MVP를 차지했습니다.
핑거스를 소개함에 있어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콧수염(handlebar mustache)’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핑거스가 처음부터 콧수염을 기른 건 아니었습니다. 1972년 스프링캠프 때의 일입니다. 그 당시 콧수염을 기르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는데, 어느 날 잭슨이 콧수염을 기르고 온 것입니다. 그 모습을 보고, 핑거스와 캣피시 헌터(Catfish Hunter), 다롤드 놀스(Darold Knowles). 밥 로커(Bob Locker)도 장난처럼 따라 기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 구단주가 선수들이 반항한다고 생각하고 강제로 면도를 지시할 거라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구단주인 찰리 핀리(Charlie Finley)는 시즌 개막일까지 최고의 콧수염을 유지하는 선수에게 보너스를 주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이른바 ‘콧수염 군단(The Mustache Gang)’이 탄생한 배경이 된 것입니다. 콘테스트의 우승은 역시 핑거스의 차지. 그런데 팬들이 그의 콧수염을 너무 좋아하게 됐고, 우연의 일치인지 그때부터 팀도 승승장구하게 됩니다. 애슬레틱스의 월드시리즈 3연패의 위대한 서막은 핑거스의 콧수염으로부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핑거스의 콧수염은 여러분이 이 글을 읽고 있는 지금 이 순간까지, 무려 53년째 유지되고 있습니다.

ⓒ 찰리 핀리 구단주와 1973년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선수단(MATT VEASEY)
구단주 핀리는 다음 해인 1973년 ‘아버지의 날(6월 17일)*’을 아예 ‘콧수염의 날’로 만들었습니다.
* 매년 6월 셋째 주 일요일 : 파더스데이(Father’s Day), 마더스데이는 매년 5월 둘째 주 일요일
6월 17일까지 콧수염을 기른 선수들에게 300달러의 보너스를 제공한다고 발표한 것입니다. 콧수염을 다듬는 데 쓰는 왁스 구매 비용 100달러도 추가 지급. 로스터에 있던 25명은 모두 콧수염을 기르고 보너스를 챙겼습니다.
콧수염을 기른 관중을 무료로 입장시키는 마케팅을 펼침은 물론, 선수들도 콧수염을 기른 채 그라운드를 누볐습니다. 심지어 당시 딕 윌리엄스(Dick Williams) 감독도 콧수염을 길렀습니다. 덕분에 이날 모인 2만 6,210명의 관중 중 약 7,000명이 무료로 경기를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클리브랜드 인디언스(Cleveland Indians)를 상대로 한 경기에서도 9:0 대승을 거뒀습니다.
핀리 구단주가 만든 마케팅인 ‘(일회성) 콧수염의 날’이 아닌 ‘(실제) 콧수염의 날’도 존재합니다. 일본의 한 면도기 회사가 콧수염을 기르는 사람들을 위해 제정한 것입니다. 날짜는 8월 8일. 한자 여덟 팔(八)이 콧수염의 모양과 비슷하다는 이유에서 8월 8일로 정한 것입니다.
콧수염과 관련한 캠페인도 있습니다. ‘모벰버(Movember)’는 ‘콧수염(Mustache)’과 ‘11월(November)’의 합성어로, 11월 한 달간 수염이나 얼굴의 털을 기르며 남성 질환과 남성 건강에 대한 주변의 관심을 높이자는 취지의 캠페인입니다. 11월의 첫날, 깨끗하게 면도한 후 나머지 29일간 다시 수염을 기르는 방식입니다. 2003년 호주 멜버른에서 시작된 남성 운동으로,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져 유럽, 북남미, 아시아 등 전 세계로 확대됐습니다.
때론 야구카드 한 장이 역사의 산증인이 되어주기도 합니다. 핑거스의 경우 연도별로 발매된 카드들을 살펴보면, 핑거스가 언제부터 콧수염을 길렀는지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증거자료가 될 것입니다.
핑거스의 첫 야구카드는 1969년에 발매됐고, 그의 콧수염이 야구카드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73년이었습니다. 실제로는 1972년부터 콧수염을 기르기 시작했지만, 야구카드의 발매 시기가 대부분 스프링캠프 전후이기 때문에 1972년에 발매된 야구카드에는 콧수염이 없는 그 전년도 핑거스의 사진이 삽입된 것입니다.
야구카드는 보관 상태에 많은 영향을 받지만, 그 가치의 척도는 사실 희소성에 기반합니다. 애초에 적게 발매됐거나, 아니면 특별한 이유로 현재 남아 있는 카드가 많지 않거나. 호너스 와그너(Honus Wagner)와 미키 맨틀(Mickey Mantle)의 초창기 야구카드의 가치가 높은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와그너는 담배회사(American Tobacco Company)의 T206 세트(낱개 담배와 팩으로 발매된 담배 & 카드 세트)에 포함됐지만, 본인의 얼굴이 담배 홍보에 사용되는 걸 원치 않아 회수를 요구한 걸로 알려졌습니다. 그로 인해 시중에 유통된 카드(1909~1911년)의 수가 매우 적어졌고, 자연스레 그 가치가 높아진 것입니다.
반면 맨틀의 카드는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가치가 상승한 케이스입니다. 야구카드 회사인 Topps는 1952년부터 본격적인 야구카드 시리즈를 출시했는데, 1~3차로 나누어 출시했습니다. 맨틀(#311)의 경우 3차 시리즈에 포함됐는데, 당시 소비자들은 여름이 지나면 야구에 대한 관심이 크게 줄었습니다. 맨틀의 카드는 가을 무렵에야 배포됐고, 소매상들도 시즌 막바지에 출시된 카드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몇 년이 지나도록 재고로 쌓여 있던 카드 박스들은 폐기 대상이 됐고, Topps社는 재고로 취급받던 이들 카드 박스를 통째로 바지선에 실어 브루클린의 뉴욕항 근처 바다에 버리고 맙니다. 함께 버려진 카드 중엔 유명 선수들의 초창기 카드들도 다수 포함돼 있었다고 합니다.
참고로 이 맨틀의 최고 등급 카드는 2022년 우리 돈 약 170억원에 낙찰되기도 했습니다.
야구카드 시장에서 핑거스의 인기는 실력에 비해 다소 낮은 편에 속합니다. 다만 그의 콧수염이 생략된, 민낯의 얼굴이 들어간 초창기 카드들은 여전히 수요가 있습니다. 바로 상대적인 희소성 때문입니다. 호너스 와그너 혹은 미키 맨틀만큼은 아니지만요.
![]() |
![]() |
![]() |
![]() |
![]() |
|
1969 Topps#597 |
1970 Topps #502 |
1971 Topps #384 |
1972 Topps #241 |
1973 Topps #84 |
위에서 언급한 대로 1969년부터 1972년까지 발매된 핑거스 카드의 이미지에는 콧수염이 없습니다. 그의 루키 카드(Rookie Card, 데뷔 시절 발매된 첫 번째 카드)는 1969년 발매됐는데, 3명의 선수가 동시에 수록된 디자인입니다. 카드에 함께 등장하는 바비 플로이드(Bobby Floyd), 래리 버차트(Larry Burchart)는 핑거스에 비해 상대적으로 선수로서 빛을 보진 못했지만, 핑거스의 인기 덕에 자주 거론되곤 합니다.
1970년에 발매된 카드에서는 핑거스가 처음으로 단독 등장합니다.
아울러 1971년 발매된 카드는 검은색 테두리에 팀명을 맨 위에 배치하고, 선수 이름에 소문자 폰트를 사용한 것이 특징인데, 독특한 디자인으로 많은 인기를 누렸습니다. 지금까지도 ‘1971년 레트로(Retro) 스타일’ 콘셉트로 리메이크한 카드가 발매되고 있습니다.
참고로 1972년 발매된 (콧수염이 없는 이미지가 삽입된) 그의 마지막 카드의 상단에는 팀명인 애슬레틱스의 약자(A’s)가 들어가 있는데, 이는 구단주 핀리가 팀 명칭이 너무 길다며 줄여 부르기 시작한 것에서 유래했습니다.

ⓒ 1973 Topps #84 Rollie Fingers(카드 읽어주는 남자)
핑거스의 첫 콧수염 카드는 1973년에서야 발매됐는데요. “그의 진짜 야구는 콧수염을 기른 후 시작됐다”며, “1973년도에 발매된 이 카드가 진짜 루키 카드다”라고 우기는 ‘괴짜’ 팬들도 존재합니다.
ⓒ 야마모토 요시노부의 루키 카드를 뽑은 롤리 핑거스(Topps Instagram)
한편 핑거스는 야구카드를 수집하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자신이 단골로 다니는 동네 카드 숍을 방문해 몇 박스씩 야구카드를 구입한다고 하는데요. 2024년엔 LA 다저스(LA Dodgers)의 일본인 투수 야마모토 요시노부(Yamamoto Yoshinobu)의 사인이 들어간 1/1(One of One, Superfractor)* 한정 루키 카드를 직접 뽑아 큰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가게 주인은 많은 야구카드 박스 중 맨 위에 있는 것을 추천했다고 하는데, 굳이 두 번째 박스를 집어 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안엔 야마모토의 역대급 카드가 들어 있었습니다. 이젠 나이가 들어 그의 콧수염도, 그의 머리칼도 백발이 되었지만, 그의 손끝은 여전히 행운을 불러오는 것 같습니다.
* ‘1/1(One of One)’이란 세상에 딱 1장만 존재한다는 의미이며, ‘Superfractor’는 금색 소용돌이 배경이 특징인 Topps社의 카드로 각 시리즈(선수별)마다 1장씩만 발매됨. 게다가 ‘야마모토’라는 스타급 선수의 루키 시즌에 발매된 사인 카드라 그 가치는 훨씬 더 높음(PSA 10 등급을 받을 경우 추정 가치 : 한화 5,000만원 이상).
“신시내티 레즈가 그렇게 만만합니까?”
- 영화 <헤어질 결심> 해준(박해일)의 대사 “내가 그렇게 만만합니까?” 패러디
핑거스는 브루어스에서도 사이영상과 MVP를 동시에 석권하는 등 좋은 모습을 보였는데요. 그러나 1985년 1승 6패 17세이브, 방어율 5.04를 기록한 핑거스는 5년간 몸담았던 브루어스(1981~1985)에서 끝내 방출되고 맙니다.
하지만 핑거스는 더 던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1986년 2월 21일. 핑거스는 인생의 기로에 서게 됐습니다. 마침 신시내티 레즈(Cincinnati Reds)가 핑거스 영입에 관심을 보인 것입니다.

ⓒ 롤리 핑거스의 레즈 이적을 예상하는 1986년 2월 6일자 신문(cincinnati.com)
문제는 레즈 구단에는 얼굴의 모든 수염을 금지하는 오래된 규율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내부 규율은 1969년 레즈의 총괄 관리자 밥 하우샘(Bob Howsam)이 만든 것이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수염, 구레나룻, 긴 머리가 금지되고 있었습니다.
1986년 레즈 단장이었던 빌 버게쉬(Bill Bergesch)는 핑거스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핑거스가 먼저 물었습니다. “레즈에 입단하려면 제 콧수염을 반드시 면도해야 한다는 게 사실인가요?”
버게쉬 단장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구단 규율이 그렇습니다.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적용되어야 합니다”
이에 핑거스는 “이 콧수염은 15년간 나의 트레이드마크였습니다. 아무리 야구를 위해서라고 해도 면도할 생각은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 영화 <헤어질 결심> 서래(탕웨이)의 대사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 패러디
사실 가장 큰 걸림돌은 내부 규율보다 레즈의 여성 구단주였던 ‘마지 쇼트(Marge Schott)’였습니다. 쇼트는 자신의 애완견인 ‘숏지(Schottzie, 세인트 버나드 종)’를 분신처럼 데리고 다니는 걸로 유명했습니다. ‘숏지’라는 이름은 자신의 성 ‘쇼트(Schott)’에서 따온 것입니다.

ⓒ 마지 쇼트와 그의 애완견 숏지(Cincinnati Enquirer)
쇼트는 홈경기가 열릴 때마다 숏지가 그라운드를 누비게 했고, 또 ‘경기의 승리를 위해서’라는 이유로 선수들이 숏지 앞에서 승리를 다짐하는 퍼포먼스를 하게 했습니다.
특히 재정난을 이유로 칼같이 경기장 조명과 사무실 전등을 꺼대기 바빴고, “팀 스카우트들이 하는 일은 그저 경기를 관전하는 것뿐”이라며, 팀의 모든 스카우트들을 해고하고 싶어 했습니다. 이 외에도 “부상자 명단에 오른 선수들에게 왜 연봉을 지급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는 말로 선수와 팬들에게 많은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사실 내부 규율이야 손보면 되는 문제였지만, 쇼트는 이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선수들과 더불어 직원들에게까지 이 규율을 적용했고, 심지어 선수들의 귀걸이 착용까지 불허했습니다.

ⓒ 핑거스가 레즈와의 계약을 거절한 내용을 담은 기사(cincinnati.com)
황당하다 못해 불쾌감을 느낀 핑거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쇼트 부인이 자기 개(숏지)를 면도시키면 나도 내 콧수염을 밀겠소”
레즈 구단, 아니 쇼트가 이를 허락할 리 없었겠죠. 물론 애초에 핑거스의 조건도 냉소 섞인 농담이었겠지만.
레즈의 제안에 대한 핑거스의 거절은 곧 그의 은퇴 선언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결국 핑거스는 레즈와, 아니, 야구와 ‘헤어질 결심’을 합니다.
그렇게 핑거스는 은퇴했지만, 자신의 콧수염만은 지켜낼 수 있었습니다. 참고로 레즈 선수들에 대한 수염 금지 정책은 1999년에서야 해제되었습니다.
ⓒ 롤리 핑거스(Bleacher Report)
어떤 이들은 자신의 커리어를 연장할 수 있던 기회를 스스로 차버린 핑거스가 어리석다고 말합니다. 어찌 됐든 콧수염만 밀면 새로운 팀에서 더 많은 돈을 만질 수 있었을 테니까요. 핑거스가 진심으로 야구를 사랑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미 훌륭한 커리어를 쌓았기 때문에 간절함이 없었다는 주장이지요.
하지만 그 거절은 핑거스가 팬들과 야구를 배려하는 또 다른 방식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결정 덕분에 우리는 여전히 그를 ‘세상에서 가장 멋진 콧수염을 가진 마무리 투수’로 기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의 콧수염은 아직도 유지되고 있다고 하니 이 얼마나 다행한 일입니까.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낸 한 야구인의 품격 있는 용기에 뒤늦은 박수를 보내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