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시애틀로 완전해진 랜디 존슨
연재
현지 시간으로 지난 6월 10일, 애리조나와 시애틀의 경기가 열린 체이스필드에 특별한 손님이 등장했습니다. 두 팀의 팬들이 모두 반길 만한 레전드, 랜디 존슨이었습니다.
존슨의 등장이 유독 특별했던 이유가 있습니다. 존슨은 22년의 선수 생활 동안 6개 팀의 유니폼을 입었지만, 시애틀과 애리조나 시절이 존슨을 대표한다고 말해도 무방합니다. 다만, 2015년 명예의 전당 입성 때는 애리조나 모자를 선택했습니다. 월드시리즈 우승을 경험한 애리조나에 의미를 부여한 동시에 시애틀과는 심리적으로 거리를 둔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었습니다.
실제로 은퇴 후 존슨은 애리조나 구단 행사에 종종 참석했지만, 시애틀 관련 행사에는 상대적으로 소극적이었습니다. 그런 존슨이 시애틀의 애리조나 원정 경기에, 그것도 시애틀 중계 부스에 등장한 것이니 시선을 끌기에는 충분했습니다.
존슨이 시애틀 생중계에 참여한 명분은 있었습니다. 지난 6월 2일, 시애틀 구단이 랜디 존슨의 등번호 51번을 영구 결번으로 지정한다고 공식 발표했기 때문입니다. 존슨이 자신의 첫 노히터 경기이자 시애틀 구단의 첫 노히터 경기를 완성한 지 꼭 35년 되는 날에 맞춰 발표된 소식이었습니다.
이미 애리조나 구단은 존슨이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던 2015년에 그의 등번호 51번을 영구 결번으로 지정한 바 있습니다. 반면 시애틀에서는 10년이 흐른 뒤에야 존슨의 51번을 영구 결번으로 지정했습니다. 그러면서 굳이 존슨의 노히터 경기 일자에 맞춰 애써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시애틀 구단의 역사가 상대적으로 짧고 레전드급 선수가 많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존슨의 위상을 고려할 때 영구 결번 지정은 다소 늦은 감이 있습니다. 존슨이 시애틀을 떠난 1998년 이후 구단과 관계가 원만하지 않았던 것이 이유일 수 있습니다. 추측만은 아니었습니다. 존슨은 생중계 도중 시애틀 구단과 자신을 둘러싼 상황에 대해 작심한 듯 입을 열었습니다.
존슨은 “제 영구 결번 지정에 대해 애매한 부분이 있었다고 생각한다”면서 “제가 시애틀 소속으로 명예의 전당에 가길 기대했다면, 은퇴 당시 왜 하워드 링컨 같은 예전 시애틀 운영진들이 제가 시애틀에서 10년 동안 활약한 부분을 상기시키지 않았는지 모르겠다”고 저격하듯 아쉬움을 드러냈습니다.
존슨은 자신이 은퇴하던 시점에 시애틀 구단으로부터 별도의 접촉이 있을 것으로 내심 기대했지만 특별한 움직임이 없었다는 점을 굳이 짚은 겁니다. 특히 존슨은 18승 2패에 평균자책점 2.48을 기록하며 첫 사이영상을 수상한 1995년이 야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즌이라고 여기는데, 당시 구단주의 미온적인 태도로 인해 시애틀에서 이뤘던 모든 게 날아간 듯한 상실감을 느낀다고까지 말했습니다. 오랜 시간 묵혀뒀던 감정을 노골적으로 표출한 존슨의 발언에 시애틀 팬들은 크게 공감하며 환호를 보냈습니다.
1988년 몬트리올에서 데뷔한 존슨은 이듬해인 1989년에 시애틀로 트레이드될 때만 해도 키가 크고 공이 빠를 뿐, 한 경기를 책임지기 어려운 투수로 평가받았습니다. 선발 등판을 앞두고 1시간씩 드럼을 때려 부술 것처럼 친 뒤 마운드에 오르는 독특한 모습으로 주목받기도 했고, 그것으로도 성에 차지 않은 듯 정제되지 않은 투구를 남발했습니다.
하지만 시애틀에서 꾸준한 기회를 얻으며 서서히 경기력이 향상되기 시작했습니다. 결정적으로 92년 시즌이 끝난 뒤 자신을 눈여겨본 놀란 라이언과 톰 하우스 코치가 투구 자세를 수정해 주면서 비약적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구체적으로는 오른발을 내딛는 위치에 변화를 준 것이 극적으로 안정감을 높인 것이었습니다.
이 시기에 중대한 개인사도 있었습니다. 존슨은 1992년 크리스마스에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그 충격으로 야구를 그만두려 했지만, 어머니의 설득으로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아픔을 이겨내면서 내면을 단련시킨 것이 심리적으로 성숙해지는 계기가 됐습니다. 존슨은 아버지를 떠나보낸 이후 글러브에 ‘DAD’라는 단어를 새겨 넣고 야구에 더욱 몰입하면서 어떤 걸림돌도 헤쳐 나갈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됐다고 했습니다. 머릿속에서 “해낼 수 없는 일”이라는 개념도 사라졌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시애틀 시절 초창기부터 존슨의 구위는 이미 유명했습니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당시 신문 기사도 있습니다. 90년대 스포츠 스타들이 총기 사고에 종종 휘말린 점을 언급한 보도에서, 존슨은 집에 총기를 구비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알렸습니다. 그러면서 “총 대신 야구공 한 묶음을 항상 침대 곁에 두고 있다”고 했습니다. 누군가 침입하면 머리를 향해 공을 날려줄 것이라는 설명도 덧붙였습니다.

농담으로 들리지 않을 만큼 존슨의 구위는 무시무시했습니다. 여기에 앞서 언급한 투구 자세 변화와 심리적 성숙함까지 갖추면서 존슨은 역대급 투수로 발돋움하게 됩니다. 1995년 팀의 첫 포스트시즌 진출을 이끌면서 부정할 수 없는 팀의 핵심 선수로 존재감을 높였습니다. 그러나 FA 자격 획득을 앞둔 1998년, 존슨의 기대와 달리 시애틀 구단은 제대로 된 연장 계약을 제시하지 않았고 이 때문에 갈등이 촉발됩니다. 이미 6월에 선두와 16경기 차로 벌어질 만큼 팀이 부진하던 상황. 고심하던 시애틀 구단은 결단을 내립니다. 존슨을 트레이드하기로 한 겁니다.
트레이드 마감 시한을 앞두고 존슨은 휴스턴으로 이적했습니다. (이때 시애틀로 건너온 선수가 훗날 펠릭스 에르난데스의 시애틀행을 이끈 프레디 가르시아였습니다.) 휴스턴으로 이적한 존슨은 압도적이었습니다. 11경기에서 10승 1패에 평균자책점 1.28. 시애틀 구단에 간접적으로 한풀이를 하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이후 신생팀 애리조나와 FA 계약을 맺고 4년 연속 사이영상 수상은 물론 퍼펙트 게임 달성에 월드시리즈 우승까지 일궈냅니다. 결과만 보면 존슨은 시애틀을 떠나면서 역사에 남을 대투수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존슨의 위엄을 설명하는 일화는 많습니다. ESPN의 메이저리그 전문가 에두아르도 페레스는 현역 시절 존슨의 투구 습관을 읽고 모든 투구를 예상했다고 했습니다. 존슨은 사실상 직구와 슬라이더 위주의 투구로 일관했는데, 페레스는 자신 이외에도 존슨의 공을 예측하는 선수가 꽤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대다수 타자들은 2미터 8센티미터의 압도적인 신장에서 날아오는 공을 제대로 공략하지 못했습니다. 알고도 못 쳤다는 표현이 과장이 아니었습니다. (페레스는 통산 존슨 상대로 33타수 8안타에 홈런 4개를 남겼습니다. 이 정도면 훌륭합니다.)
시애틀에 51번을 달고 뛴 또 한 명의 레전드가 이치로입니다. 이치로가 시애틀과 계약 후 51번을 달기 위해, 이전까지 시애틀 소속으로 51번을 사용했던 존슨에게 양해를 구한 사연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51번의 두 선수는 2001년 올스타전에서 아메리칸리그 1번 타자와 내셔널리그 선발 투수로 맞대결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이치로는 이후 명실상부한 시애틀의 레전드로 남았습니다. 그리고 이치로가 올해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자 시애틀 구단은 존슨에 앞서 지난 1월 이치로의 등번호 51번을 영구 결번으로 먼저 지정한바 있습니다. 해당 기념식은 오는 8월 9일에 열립니다.
시애틀 구단과의 묘한 관계 탓에 존슨은 한발 늦게 같은 번호를 영구 결번으로 지정받았습니다. 당초 같은 번호가 결번되는 것인 만큼 이치로와 존슨의 기념식을 함께 치르는 방법도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존슨은 올해 기념식이 이치로에게 온전히 집중되어야 한다며, 자신의 영구 결번 기념식을 내년으로 1년 미뤘습니다. 시애틀 팬들은 의미 있는 이벤트가 올해와 내년에 두 차례 열리게 돼 나쁠 게 없다는 반응입니다.
존슨은 22년간 303승을 거두고 사이영상은 다섯 차례 수상했습니다. 네 번이나 평균자책점 1위에 올랐고 올스타에도 10번 선정됐습니다. 여러 팀에서 자신의 야구 인생을 다양한 방식으로 펼쳤고, 현역 은퇴 후에는 전문 사진작가로 깜짝 변신해 아프리카의 야생 풍경을 담아낸 사진집도 출간했습니다. 존슨은 사진과 투구 모두 상대를 관찰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고 했습니다.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더라도 랜디 존슨이 지금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에 시애틀을 빼놓고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기록으로는 애리조나 시절을 우위에 놓을 수 있지만, 존슨의 야구 인생을 풀어놓을 때는 시애틀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시애틀 구단과의 아쉬움을 털어내고 영구 결번 선수로 돌아온 존슨의 모습이 더 완전해진 것으로 보입니다.
애리조나 시절만 해도 굳이 시애틀 시절을 언급하려 하지 않던 존슨은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이후부터 마음을 조금씩 열었습니다. 에드가 마르티네스의 명예의 전당 투표 독려 활동이 대표적입니다. 그리고 시애틀에서 마침내 영구결번이 지정되면서 속마음을 후련하게 털어놓고 그간의 앙금을 정리했습니다. “명예의 전당 기념 명판을 쪼갤 수 있다면 시애틀과 애리조나를 반반씩 섞고 싶다”고 할 정도로 여유까지 생겼습니다. 이제야 랜디 존슨이 온전한 레전드로 완성된 듯한 느낌마저 듭니다. 현역 시절에 보기 어려웠던 사람 좋은 미소로 시애틀 티모바일 파크에 서는 장면이 벌써 기대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