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위대한 51번 (존슨과 이치로 이야기)
USC에 입학해 투타겸업을 했던 마크 맥과이어는 이듬해부터 투수를 포기했다. 1년 후배로 들어온 투수가 랜디 존슨이었기 때문이다. 맥과이어는 1984년 1라운드에서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의 지명을 받았고, 존슨은 1985년 2라운드에서 몬트리올 엑스포스가 데려갔다.
맥과이어는 1987년 신인왕과 홈런왕에 오르며 승승장구했지만, 존슨은 그렇지 못했다. 무시무시한 공을 던졌지만 제구 문제가 심각했다. 존슨은 시애틀로 트레이드됐고, 시애틀 최초의 노히트노런도 달성하지만(1990), 언제나 제구 불안에 시달렸다. 1991년 존슨은 228개의 삼진을 잡아냈다. 하지만 볼넷도 152개를 내줬다.
1992년 존슨은 8연패에 빠져 있었다. 구단의 인내심도 바닥이 나고 있었다. 존슨은 결심했다. 다가가기 어려운 사람에게 다가가 도움을 요청하기로. 놀란 라이언이었다.
시애틀과 텍사스의 경기가 열린 어느 날, 존슨은 텍사스 덕아웃을 찾아가 라이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라이언은 개인 코치인 톰 하우스와 함께 디딤발(오른발)의 발꿈치가 3루 쪽으로 미세하게 틀어지는 문제점을 찾아냈고 해결해줬다. 탈삼진 역대 1위 투수(라이언 5,714개)가 2위 투수(존슨 4,875개)에게 도움을 준 것이다.
이듬해 만 46세인 라이언이 은퇴 경기를 치르자, 존슨은 라이언에게 감사하는 의미로 라이언의 등번호인 34번을 달고 경기에 나섰다. 1992년 시즌을 시작하면서 원래 51번이었던 등번호를 15번으로 바꿨던 존슨은 라이언을 위해 34번을 단 후 15번이 아닌 51번으로 돌아왔다. 51번의 전설은 그렇게 시작됐다.
1995년 존슨은 사이영 상을 따냈고, 시애틀의 창단 첫 포스트시즌 진출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97년의 활약도 대단했다(사이영 2위).
존슨은 시애틀의 에이스로 남고 싶었다. 하지만 시애틀의 생각은 달랐다. FA를 앞둔 1998년, 구단은 좋은 제안을 하지 않았고, 실망한 존슨은 경기에서도 부진했다.
그 해 6월, 존슨을 달라고 한 팀이 있었다. LA 다저스였다. 노모 히데오를 방출할 계획이었던 다저스는 그 자리를 메워줄 투수가 필요했다. 존슨과 시애틀의 갈등을 눈치 챈 다저스는 멕시코 투수 이스마일 발데스와 블라디미르 게레로의 형인 윌튼 게레로를 주겠다고 했다. 시애틀은 시즌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 다저스의 제안을 거절했다. 하지만 얼마 후 시즌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됐고, 존슨을 휴스턴으로 보냈다.
그 해 시즌을 휴스턴에서 마친 존슨은 이듬해 다저스 대신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에 입단했다(1999). 다저스는 창단 2년차 팀인 애리조나에게 존슨을 빼앗긴 것에 큰 충격을 받았고, 케빈 브라운을 영입했다. 디백스에서도 51번을 단 존슨은 사이영 상을 4년 연속으로 따냈고, 2001년 월드시리즈의 MVP가 됐다.
애리조나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기 1년 전, 존슨은 한 통의 편지를 받게 된다. 시애틀 매리너스에 입단하기로 한 스즈키 이치로였다. 일본에서 달았던 51번을 시애틀에서도 달고 싶었던 이치로가 존슨의 허락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편지를 보낸 것이었다. 존슨은 2000년 미일 올스타전에 참가했다가 이치로를 만난 적이 있었다. 존슨은 이치로가 자신의 허락을 구한 것에 고마워했고, 흔쾌히 허락했다. 51번의 또 다른 전설은 그렇게 시작했다.
2009년 6월5일 랜디 존슨은 역대 24번째 300승 투수가 됐다(현재로서는 존슨이 마지막 300승 투수가 될 가능성이 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2015년에는 압도적인 득표율(97.3%)로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애리조나는 존슨의 51번을 바로 영구 결번으로 지정했다.
존슨은 명예의 전당에 들어갈 때 애리조나의 모자를 골랐다. 사이영 상 5개 중 네 개를 애리조나에서 따내고, 월드시리즈 트로피도 애리조나에서 들어 올렸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존슨은 시애틀에서 올린 130승이 애리조나에서의 118승보다 많았다. 존슨이 명예의 전당에 올랐을 때 시애틀도 존슨의 51번을 영구 결번으로 발표해야 했다. 하지만 시애틀은 10년이 지난 2025년 6월3일에서야 존슨의 51번을 영구결번으로 발표했다. 시애틀은 왜 10년을 기다린 것일까.
존슨의 영구결번이 미뤄진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존슨의 요청 때문이었다. 존슨은 자신의 51번이 먼저 영구결번이 되면 2025년에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는 이치로에게는 맥 빠지는 일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이에 이치로가 더 큰 주목을 받을 수 있도록, 이치로의 명예의 전당이 발표된 후 영구결번 행사를 열어달라고 했다.
결국 존슨의 뜻에 따라, 이치로는 존슨보다 먼저 올해 8월10일에 먼저 영구결번식을 가지고, 존슨의 영구결번식은 내년(2026)에 열리게 됐다. 존슨은 자기에게 편지를 보냈던 이치로의 행동을 고맙게 생각했고, 그에 대한 보답을 했던 것이다.
랜디 존슨이 시애틀에서 달기 전까지, 메이저리그에서 51번은 인기 번호가 아니었다. 하지만 존슨은 시애틀에서 10년 간 51번을 달았고, 이후 이치로가 19년을 더 달았다. 그리고 앞으로는 누구도 시애틀에서 51번을 달 수 없다.
명예의 전당에 오른 선수 중 51번이 영구결번인 선수는 세 명. 트레버 호프먼, 그리고 랜디 존슨과 스즈키 이치로다. 그렇게 시애틀의 51번은 두 위대한 선수의 상징이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