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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연재 : 카드로 보는 MLB Story ⑩] ‘MLB 로고 속 주인공’은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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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56년간 풀리지 않던 수수께끼 ‘MLB 로고 속 주인공’은 누구일까?
‘하먼 킬러브루’착각 혹은 오해에 대하여

 

 

 

 

 

 

 

 56년간 롱런한 MLB 로고, 반나절 만에 완성되다
 

1869년 출범한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는 1969년 리그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1968년 어느 마케팅 회사에 새로운 로고 디자인 제작을 의뢰합니다.

 

당시 의뢰를 받은 마케팅 회사(샌드그렌 & 머사, Sandgren & Murtha)는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일러스트레이터였던 ‘제리 디올(Jerry Dior, 1932~2015)’에게 그 임무를 맡깁니다.

 

 

 

ⓒ 제리 디올(Pinterest, LeeAmber)

 

 

주로 켈로그(Kellog’s), 나비스코(Nabisco), 제약회사 제품 등의 포장 디자인을 담당했던 디올은 자신도 야구팬이긴 했지만, 1년짜리 행사에 사용될 디자인이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고 합니다.

 

ⓒ ​1968년 MLB 로고 디자인 초안 색상

 

 

메이저리그 관련 잡지를 훑어보던 디올은 단숨에 시안을 완성했고, 최종 결정도 파랑·초록 배경에서 파랑·빨강 배경으로 변경하는 수준에서 빠르게 마무리됐습니다. 2025년 현재까지도 사용되고 있는 이 로고가 당시 반나절 만에 완성된 것입니다. 로고 디자인이 끊임없이, 그리고 빠르게 변화하는 브랜드 시장에서 56년이라는 시간은 매우 긴 수명입니다.

 

 

 

 

로고 속 주인공은 미네소타의 하먼 킬러브루?

 

그렇다면, 이 로고 속 야구 선수는 좌타자일까요? 우타자일까요? 이 로고는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좌타자로 혹은 우타자로도 보입니다. 일종의 착시현상인데, 디올은 사람들이 특정 선수, 타자의 좌·우 방향, 인종 등을 식별할 수 없도록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디자인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 1974 TOPPS #400 HARMON KILLEBREW(카드 읽어주는 남자)

 

 

일각에서는 로고 캐릭터의 실루엣이 1954년부터 1975년까지 활약했던 ‘하먼 킬러브루(Harmon Killebrew)’를 닮았다며, 킬러브루를 모델로 한 것 아니냐는 추측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킬러브루가 세상을 떠나던 2011년 이 논쟁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습니다.

 

AP 통신을 포함한 여러 소식통들은 “킬러브루가 MLB 로고 속 주인공”​이라고 일제히 단정지어 보도하기 시작했고, “생전 킬러브루 자신도 그렇게 믿어왔다”고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디올은 MLB 로고가 특정 선수를 기반으로 한 것이 아니라고 단호하게 밝혔고, 잡지 속 다양한 이미지들을 바탕으로 스케치한 결과물이라고 강조했습니다.

ⓒ 1963 Minnesota Twins Baseball Yearbook

 

 

 

1963년 발행된 미네소타 트윈스 연감(Yearbook) 표지 속 캐릭터는 킬러브루인데, 실제로 이 이미지를 뒤집어 보면 MLB 로고 속 캐릭터와 유사한 점이 많습니다. 

ⓒ 1960~70년대 MLB 타자들의 타격 자세 모음(카드 읽어주는 남자)

 

 

그러나 토니 곤잘레스(Tony Gonzalez), 자니 벤치(Johnny Bench), 딕 앨런(Dick Allen), 레지 스미스(Reggie Smith), 행크 애런(Hank Aaron), 릭 먼데이(Rick Monday), 올랜도 세페다(Orlando Cepeda), 레지 잭슨(Reggie Jackson) 등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선수들의 타격 자세 이미지를 대입해보면 그 주장은 설득력을 잃게 됩니다.

 

MLB 사무국은 특정 포지션이나 선수가 아닌 가장 보편적인 야구 선수 이미지를 원했고, 야구가 모두의 스포츠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이에 디올은 하얀색 실루엣을 활용함으로써 특정 선수, 타자의 좌·우 방향, 인종 등을 식별할 수 없게 했습니다. 단순히 특정 선수의 타격 자세 이미지가 로고 속 이미지와 유사하다고 해서 그 로고의 주인공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물론 시각적 참고자료로 쓸만한 잡지 이미지를 탐색하던 과정에서 실제 킬러브루의 이미지가 잔상에 남아 일종의 영감으로 작용했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결코 의도적으로 킬러브루를 모티브로 해서 디자인한 것은 아닐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사무국의 미온적 대처, 로열티 지급에 겁먹어서?

 

오늘날 많은 디자이너가 그렇듯 디올도 로고 디자인에 대한 금전적 이득이나 그에 따른 명성을 얻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자신이 직접 디자인한 것이라는 사실을 증명해줄 기록이나 서류도 없었고, MLB 관계자들도 디올과 MLB 로고의 연관성을 확인해 주길 거부했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그 당시 회사 동료들이 발 벗고 나서 “디올이 직접 디자인한 게 맞다”는 내용의 지지 서한을 보내줄 정도였습니다.

 

 

 

ⓒ 당시 프로젝트 매니저가 보내온 (디올이 원작자가 맞다는) 지지 서한(ESPN)

 

MLB처럼 역사와 기록에 집착하는 조직이 또 있을까요? 그런 조직이 이렇게 미온적으로 대처했다는 건 솔직히 실망스러운 부분입니다. 1968년이 고대사도 아닌데, MLB를 대표하는 로고의 역사, 그 뿌리를 찾으려는 노력에 관심이 없었다는 게 의아할 정도입니다. 디올은 생전에 로고 제작에 대한 로열티나 그 어떤 금액적인 보상을 바라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단지, 인정받고 싶었을 뿐입니다.

 

킬러브루가 MLB 로고의 영감이었다는 주장도 킬러브루 본인에게서 나온 것으로 보입니다. 킬러브루의 생전 인터뷰에 따르면, 1960년대 후반 어느 날 커미셔너 사무실에 갔는데, 한 남자가 테이블에서 자신의 (타격 자세를 취하고 있는) 사진에 스케치하듯 연필로 무언가를 표시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뭘 하고 있는 거냐는 질문에, 그 남자는 MLB 로고를 새로 만들 거라고 답했고, 그 이후 별 신경을 쓰지 않다가 로고가 공개되자 자신의 모습과 많이 비슷하다고 생각해 자신이 그 모델이라고 말하고 다녔다는 것입니다.

 

ⓒ 제리 디올(The New York Times)

 

 

 

하지만 디올은 자신의 마케팅회사에서 로고 디자인 작업을 했다고 밝혔고, 킬러브루​가 커미셔너 사무실에서 본 그 남자가 디올이었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킬러브루 사진에 연필로 무언가를 표시하던 사람은 최종 선택을 받지 못한(?) 또 다른 로고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중이었을 수도 있고, 그 로고 속 실루엣 역시 킬러브루 외에 다른 선수들의 이미지를 대입해도 매우 유사하기에 디올의 주장에 좀 더 무게가 실립니다. 

 

물론 MLB 사무국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디올을 공식적인 로고 디자이너로 인정하거나 만약 로고 속 모델이 실존 인물임이 밝혀진다면, 당사자에게 천문학적인 로열티를 지급해야 하는 의무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익명’의 디자이너들, 그들의 노고에 박수를

 

디올은 2015년 8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디올이 디자인한 MLB 로고는 NBA, NFL을 비롯해 다양한 스포츠 리그의 로고 디자인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특히 MLB, NBA, NFL 로고는 미국 성조기 색깔과 동일한 빨간색, 파란색, 흰색을 사용해 애국심을 드러내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 디올은 생전 인터뷰에서 “다른 리그에서 MLB 로고를 모방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그건 단지 아이디어를 이어가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 NBA와 NFL에 영감을 준 MLB 로고

 

 

디올은 우리 사회에서 디자이너들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점이 아쉽다고 말했습니다. 기사에는 기자 이름이, 사진에는 사진작가의 이름이, 그림에는 화가의 서명이 들어가는데, 디자이너의 경우 자신의 작품에 대한 공적을 거의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아직도 그저 일정 보수를 받고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하청업체 정도로만 여겨지는 현실을 꼬집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디올은 MLB 로고를 디자인한 것을 자신의 커리어에 있어서 가장 잘한 일로 꼽았습니다. 그 결과물이 가장 유명해졌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오랫동안 사용됐기 때문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그리고 MLB 로고는 ‘야구의 일부’가 됐다고 생각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자신이 야구에 작은 변화를 더했고, 그 점이 매우 자랑스럽다는 것이었습니다. 디올은 야구를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었음이 분명합니다.

 

디올은 자신의 삶을 자랑스러워할 자격이 있습니다. 2025년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할 일은, 디올처럼 익명으로 작업하고 있는 크리에이터들의 이름을 굳이 물어봐 주고 또 기억해주는 것이 아닐까요?

 

 

 

 

 

소중한 건 ‘잔디’가 아니라 ‘아이들’중요한 건 ‘로고속 주인공’이 아니라 ‘야구의 주인, 팬들’

 

디올과 MLB 사무국의 이야기처럼 MLB 로고 속 실루엣은 특정 인물이 아닙니다. 누구나 그 실루엣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야구는 모두의 스포츠이기 때문입니다. 이 로고 앞에서는 국적도, 나이도, 성별도, 피부색도, 좌타자인지 우타자인지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여전히 로고 속 주인공이 킬러브루라고 단언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 그 로고 속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킬러브루일 것입니다. 누가 됐든 상상하는 사람의 자유니까요.

 

 

 

 

 

 

한편 킬러브루는 1984년 8월 11일 열린 ‘명예의 전당 헌액식’ 연설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I grew up in this small town in Idaho, and my father used to like to go to the movies, and I’ll never forget that a lot of times on warm summer evenings like this my father would take my brother, Bob, and I to the movies. And then after the movie was over, he would race us home. He’d always win. He was a man that took a great deal of pride in his children. I’ll never forget, we used to play a lot of ball out in the front yard, and my mother would say, “You’re tearing up the grass and digging holes in the front yard?” And my father would say, “We’re not raising grass here, we’re raising boys.”

 

저는 아이다호의 작은 마을에서 자랐는데, 아버지는 영화 보러 가는 걸 좋아하셨어요. 이렇게 따뜻한 여름 저녁이면 아버지는 저와 동생 밥을 데리고 영화관에 자주 가셨어요. 그리고 영화가 끝나면 아버지는 저희와 집까지 달리기 시합을 했는데, 아버지가 항상 이겼었죠. 아버지는 저희를 무척 자랑스러워하는 분이셨어요. 아버지와 저희 형제는 앞마당에서 자주 공놀이를 하곤 했는데, 그럴 때면 어머니가 이렇게 말씀하셨죠. “잔디를 다 뭉개고 있잖아!” 그럼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잔디를 키우는 게 아니라 얘들을 키우는 거야.”

 

 

킬러브루의 유년 시절 이야기가 주는 교훈처럼 중요한 건 MLB 로고 속 주인공이 누구인지가 아니라 언제나 야구라는 스포츠를 사랑해주는 팬들이 있다는 사실 아닐까요? 국적·인종·나이·성별을 불문하고, 그동안 이 로고가 일종의 매개체가 되어 우리 모두를 하나로 묶어주고 있던 것입니다.

 

소중한 건 ‘잔디’가 아니라 ‘아이들’

중요한 건 ‘로고 속 주인공’이 아니라 ‘야구의 주인, 팬들’일 것입니다. 

 

디올이 MLB 로고를 디자인하며 바란 것도 바로 이런 모습 아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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