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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마, 철인으로 환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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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여러분은 지난 2주 동안 저의 불운에 대해 들었을 겁니다. 하지만 오늘 이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사람은, 저라고 생각합니다.(Yet today I consider myself the luckiest man on the face of the earth)

 

6만2,000명이 스탠드를 가득 메운 1939년 7월 4일. 미국의 독립기념일이었던 그 날, 루 게릭은 은퇴 연설에서 자신이 왜 운 좋은 사람인지를 조목조목 설명했다.

 

딸과 싸울 때 제 편을 들어주는 장모님이 있다는 건 특별한 일입니다. 제가 교육을 받고 몸을 단련할 수 있도록 평생을 일하신 아버지와 어머니가 계신다는 건 축복입니다. 제가 상상할 수 있는 것 이상의 용기를 보여주며 우뚝 서 있는 아내가 있다는 건 정말 훌륭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말씀드리며 마치겠습니다. 비록 저에게 불운이 찾아왔지만, 저는 살아갈 이유가 아주 많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러나 희귀병인 근위축성측상경화증(ALS) 판정을 받은 게릭은 그로부터 2년이 지나기 전에 만 3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게릭은 1925년 6월 1일에 대타로 출전했고, 다음날인 6월 2일에 두통을 호소한 윌리 핍 대신 선발 1루수로 나섰다. 그리고 1939년 4월 30일까지 14년 동안 2,130경기 연속 출장을 이어갔다.

 

그가 세상을 떠난 건 첫 선발 출장을 한 날로부터 정확히 16년이 지난 1941년 6월 2일이었다다. 2021년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게릭이 선발 출장을 시작한 날이자 세상과 작별한 날인 6월 2일을 '루 게릭 데이'로 정하고 그 날만큼은 모두가 게릭의 등번호였던 4번을 가슴에 달기 시작했다.

 

 

게릭은 철마(The Iron Horse)로 불렸지만 고통을 감내했을 뿐 금강불괴는 아니었다. 은퇴하기 직전 엑스레이로 찍은 게릭의 손에서는 열 손가락 모두를 포함해, 금이 갔다 저절로 아문 자국이 열일곱 군데나 발견되기도 했다.

 

게릭이 세상을 떠나고 41년이 지난 후, 새로운 대기록이 출발을 알렸다. 21살의 나이로 시작해 38살의 나이로 2,632경기 연속 출장을 끝낸 칼 립켄 주니어였다.

 

립켄은 연속 출장 동안 이닝의 99.2%를 소화했다. 7이닝 스트레치를 하기 전 경기에서 빠진 건 네 번뿐으로, 두 번은 심판과 언쟁을 벌이다 퇴장 당한 것이었다.

 

립켄은 첫 5년 간 904경기에서 단 1이닝도 교체되지 않고 8,243이닝 연속 출전이라는 또 하나의 대기록을 세웠다. 점수 차가 크게 벌어진 경기에서 감독이었던 아버지가 기록을 끝내는 것이 어떻겠냐고 했고, 립켄은 8회에 교체됐다. 전체 경기의 84%를 유격수로 뛰었고, 나머지를 3루수로 뛴 립켄은 16년 동안 29명의 2루수와 호흡을 맞췄고, 522명의 상대 팀 유격수를 만났다. 그 사이 메이저리그에서는 3,695명이 부상자명단에 올랐다. 립켄은 철인(The Iron Man)으로 불렸다.

 

립켄은 기록에 도전하면서 만났던 가장 큰 적은 나태함과 식상함이라고 했다. 더 나은 대우를 받고 새로운 팀으로 옮기고 싶은 욕망도 있었고, 컨디션이 좋지 않은 데도 코칭스태프의 배려로 출전할 때는, 자신에게 부끄러웠고 동료들에게 미안했다고 했다. 슬럼프가 왔을 때 기다릴 시간이 없었던 립켄은 슬럼프에서 최대한 빨리 탈출하기 위해 타격 폼을 수시로 수정했다.

 

1998년 9월 19일, 경기를 준비하고 있던 볼티모어 레이 밀러 감독의 방문을 립켄이 두드렸다.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오늘이 그날입니다(Today's the day)"였다.

 

시즌 종료가 일주일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부상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굳이 중단할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자신의 기록이 더 이상 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립켄은 59년 전 게릭이 그랬던 것처럼, 기록 중단을 스스로 결정했다.

 

립켄은 "루 게릭의 기록은 단순히 숫자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헌신, 인내, 그리고 팀을 위한 희생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는 단순한 야구 선수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우리 모두에게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준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연설은 단순한 은퇴 선언이 아니라, 용기와 감사함에 대한 교훈이었습니다"라고 했다. 그리고 본인도 똑같이, 많은 선수들에게 영감이 됐다.

 

2007년 립켄은 98.5%의 득표율을 얻어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이후 켄 그리피 주니어(2016), 마리아노 리베라(2019), 데릭 지터(2020), 스즈키 이치로(2025)가 립켄의 득표율을 넘었다. 리베라는 최초의 만장일치였다. 하지만 필자는 첫 100%의 영광은 게릭의 정신을 이은 립켄이 가져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립켄은 100보다 더 위대한 '2632'라는 숫자를 남겼다. 1925년 6월 1일에 시작해 립켄이 위대한 도전을 할 수 있도록 해 준 '2130'이라는 숫자 또한 100년이 지나도록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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