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 그리피 주니어, 아버지의 이름으로
연재
“마치 야구계에 있는 모두가 나를 향해 고함치는 것 같았어요.”(It seemed like everyone was yelling at me in baseball)
켄 그리피 주니어가 이 말을 하기 반 년 전인 1987년 6월, 시애틀 매리너스는 그를 드래프트 1순위로 지명했다. 시애틀은 팀 매각이 진행 중이었고 쓸 수 있는 돈도 넉넉하지 않았지만, 그리피만큼은 놓칠 수 없었다.
최고의 고교 선수인 그리피는 올스타 외야수인 켄 그리피의 아들이어서 더 유명했다. 메이저리그에서 19년을 활약한 아버지는 신시내티 ‘빅 레드 머신’의 일원으로, 월드시리즈 우승을 두 번 차지했고, 1980년 올스타전에서는 MVP에 오르기도 했다. 그리피가 ‘주니어’ 또는 ‘키드’로 불리게 된 건 아버지 때문이었다.
시애틀은 17살인 그리피를 싱글A 팀이 있는 벨링햄(워싱턴주)으로 보냈다. 그리고 그리피의 고통이 시작됐다.
어느날 그리피는 팀 동료로부터 ‘검둥이’라는 욕을 들었다. 수퍼스타의 아들로 대접 받아온 그였기에 충격은 더 컸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아버지였다. 시즌을 마치고 돌아온 그리피는 더 방황하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새벽 1시를 통금 시간으로 정했지만, 그리피는 3시나 4시에 들어오는 일이 잦았다. 아버지는 그리피에게 따로 나가서 살고, 집세도 직접 내라고 소리쳤다.
훗날 그리피는 “아버지와 나는 사사건건 충돌했어요. 다른 집들도 그렇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나와 아버지는 도저히 섞일 수 없는 사이인 것 같았어요”라고 회상했다. 아버지는 고집이 세기로 유명했는데, 아들도 매한가지였다.

©️사진 출처 - National Baseball Hall of Fame and Museum
야구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리피가 10년 연속 골드글러브를 따내는 최고의 중견수가 될 수 있었던 건 아버지의 혹독한 훈련 덕분이었지만, 재밌는 타격 훈련 대신 힘든 수비 훈련을 왜 그렇게 많이 해야 하는지를 어린 그리피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이듬해 1월, 그리피는 아스피린이 들어 있는 통을 가지고 와 하나 하나 세었다. 277알이었다. 그리고 입안에 한 번에 털어 넣었다. 옆에 있던 여자 친구가 말리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리피는 병원에 실려 갔고, 파란색 구토를 했다. 병원으로 달려온 아버지는 화를 내는 대신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그리피에게 고통을 준 건 아버지 그리고 야구였다. 그리피를 구해 준 것도 아버지 그리고 야구였다. 자살 소동 후 압박감을 털어낸 그리피는 야구에 몰입했고, 최고의 유망주가 됐다. 그리피는 자살 소동이 있은 지 1년 2개월 만에, 만 19세133일의 나이로 데뷔했다. 리그에서 가장 어린 나이로 신인왕 3위에 올랐다.
이듬해인 1990년, 40세 시즌을 보내고 있던 아버지는 시즌 중 두 번이나 방출됐다. 그를 데려간 세 번째 팀은 아들이 있는 시애틀이었다. 시애틀은 마흔 살 그리피에게 2번 타자 겸 좌익수를 맡겼다. 3번 타자 중견수는 스무 살 그리피였다.
아들은 메이저리그에 데뷔하고 나서 아버지가 자기에게 왜 그렇게 혹독했는지를 깨달았다. 최고의 선수들이 모여 매일 경쟁을 해야 하는 메이저리그는, 고통을 감내하지 못하면 살아 남을 수 없는 곳이었다. 아버지와 함께 뛰면서, 야구는 고통에서 즐거움으로 바뀌었다. 그리피는 아버지가 잡으려고 했던 공을 가로챈 후 아버지를 놀리면서 들어오기도 했다.
1990년 9월14일은 야구 역사상 특별한 날이 됐다. 경기를 시작하자마자 2번 타자 아버지와 3번 타자 아들이 1회 백투백 홈런을 날린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이 연속 타자 홈런을 때려낸 건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리피가 아버지와 함께 뛴 건 그 해 15경기뿐이었지만, 15경기를 뛰고 나서는 혼자서도 해나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즌이 끝나고 시애틀은 아버지를 방출했다.
그로부터 14년이 지난 2004년 6월20일, 그리피는 통산 500번째 홈런을 날렸다. 아버지가 기록한 홈런보다 350개 가까이 많은 숫자였다. 그리피가 날린 500호가 더 특별했던 건, 그날은 아버지의 날이었고, 관중석에는 아버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피는 홈런을 치고 들어와 아버지를 꼭 끌어안았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경기가 끝나고 기자들은 그리피 대신 아버지에게 몰려 갔다.
그리피는 마이클 조던에 대응하는 1900년대 최고의 야구 스타였다. 하지만 아버지의 팀인 신시내티로 옮기고 나서 하향세가 시작됐다. 만 30세는 기량 저하가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었지만, 동시대 적지 않은 30대 선수들이 나이를 무색하게 만드는 활약을 하면서, 그리피는 비난의 대상이 됐다.
시간이 더 흐르고 나서 밝혀진 건, 배리 본즈를 포함한 많은 선수들이 약물의 힘으로 화려한 30대를 보낸 반면, 그리피는 그런 유혹들을 이겨냈고, 정정당당한 추락을 인내했다는 것이다.
자살을 시도한지 28년이 지났고, 아버지에게 500호를 선물한지 12년이 지난 2016년 7월29일, 그리피는 명예의 전당 입회식을 가졌다. 드래프트에서 1순위 지명을 받은 선수가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건 최초였다.
그리피는 맨 앞 줄에 앉아 있는 아버지와 눈을 맞춘 후 입회 기념 연설을 시작했다.
“아버지 고맙습니다.”
야구를 선물한 아버지는 그에게 축복이었다.
P.S. 그리피가 500홈런을 친 날, 6이닝 무실점 승리를 따낸 신시내티의 투수는 봉중근이었다. 봉중근이 메이저리그에서 거둔 마지막 승리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