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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연재] 민훈기의 필드노트 : 40세 올스타전에 박찬호에 홈런 친 칼 립켄 주니어 E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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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칼 립켄 주니어를 처음 만난 것은 1999년 스프링 캠프때였습니다.
LA 다저스 캠프 취재를 위해 장기 출장 중이었는데, 다저스의 박찬호가 마이애미 주 포트로더데일에서 벌어진 오리올스와의 원정 시범 경기에 선발 출전해 취재를 갔었습니다.
  
그런데 경기 후 인터뷰와 기사 송고를 마치고 운동장을 나서는데 출입구 쪽에 여전히 사인을 받으려고 모여 있는 팬들이 꽤 있었습니다. 경기 마치고 1시간도 더 지났으니 선수들이 모두 가고도 남았을 시간인데 희한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팬들 가운데 서서 열심히 사인을 하던 선수가 바로 노장 칼 립켄 주니어였습니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선수들이 그저 형식적으로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기분 내키면 해주고 아니면 그냥 지나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나 칼 립켄 주니어는 자신의 사인을 원하는 팬들이 있으면 어떤 경우든 자리를 뜨지 않고 끝까지 팬들과 함께 했습니다.
 
한국에서 온 기자인데 사인하는 것을 사진 찍어도 되겠느냐고 했더니 환하게 웃으면서 포즈까지 취해주었다. 만약 MLB의 ‘취재 기자는 절대 사인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규정만 없었더라면 당장 사인을 받고 싶을 정도로 친근감을 느끼게 하던 그는 그야말로 팬들의 스타였습니다. 그때 찍은 사진을 찾을 수 없어 아쉽습니다.

 

1960년 미국 매릴랜드주에서 태어난 칼은 1978년 만 17세에 볼티모어 오리올스가 2라운드에 드래프트한 내야수로 1981년 만 스물에 빅리그에 데뷔했습니다. 그리고 1982년부터 오리올스의 주전 유격수로 자리를 잡습니다. 
당시로서는 칼은 파격의 유격수였습니다. 그때까지는 민첩하고 상대적으로 작은 체구의 빠른, 수비 좋은 유격수들이 대세였습니다.
그런데 칼은193cm에 90kg이 넘는 거구였습니다. 그래서 그런 거구의 유격수가 수비적으로 과연 통할지가 관심사가 되기도 했고, 회의론도 있었지만 칼은 새로운 유형의 거포형 유격수를 MLB에 정착시키는 선구자가 됐습니다.

 

그리고 1995년, MLB는 전 시즌의 파업으로 큰 타격을 입었고 팬들이 대거 이탈하는 위기에 빠졌습니다. 그런 와중에 야구팬들의 시선을 집중시킨 선수가 있었으니 바로 칼 립켄 주니어였습니다.
미국 야구의 불멸 기록 중에 하나로 꼽히던 것이 루 게릭의 2130경기 연속 출전 기록이었습니다.

©️명예의 전당 행사에 참석한 칼 립켄 주니어 팬들이 연속출전기록을 자랑스럽게 보여주는 모습 (출처: 본인 촬영)

그런데 1995년 시즌이 진행되면서 칼이 이 기록에 코앞으로 다가간 것입니다.


빅리그 2년차이던 1982년 5월30일부터 칼은 단 한 경기도 결장하지 않고 14년째 연속 경기 출전을 이어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해 9월6일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캠던 야즈에서 벌어진 경기에 출전하면서 립켄은 ‘2131 경기 연속 출전’으로 종전에 ‘아이언 맨’ 루 게릭이 가지고 있던 대기록을 넘어섰습니다. 
당시 캘리포니아 에인절스와의 경기가 공식전으로 인정되는 5회 초를 막 끝내자 5만 관중들은 일제히 일어나 영웅 칼 주니어에게 박수갈채를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그 경기는 ESPN을 통해 미국 전역은 물론 전 세계로 생중계됐으며 56년간 깨지지 않았던, 그리고 영원히 깨지지 않을 것이라고 여겨지던 게릭의 대기록이 깨어지는 순간 미국 야구계는 새로운 발전을 위한 힘찬 한 걸음을 내디뎠습니다. 팬들의 사랑과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새로운 영웅이 공식적으로 탄생했기 때문입니다.
그 경기의 시청률은 여전히 미국 스포츠 사상 최고 중의 하나로 남아있습니다.

 

그 경기에는 당시 대통령이던 빌 클린턴과 알 고어 부통령도 직접 나와 참관했습니다. 그리고 야구장 우측 담장 바깥에 있는 B&O 건물 벽에 걸린 대형 현수막에 ‘2131’ 이라는 커다란 숫자가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오리올스 동료들은 물론 관중들과 에인절스 선수들, 그리고 심판들까지 모두 함께 시작한 기립박수는 사상 유례가 없는 무려 22분간 끊이지 않고 계속됐습니다.
저는 현장 취재를 가지는 않았고, TV로 그 경기를 지켜봤는데 그 순간의 소름 돋는 기억은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박수갈채와 환호성이 계속되는 동안 칼 주니어는 운동장을 쭉 돌면서 악수를 나누고 하이파이브를 하면서 팬들의 성원에 답례했습니다. 물론 그러기까지는 동료들이 억지로 립켄을 덕아웃에서 밀어내야 했지만 말입니다. ‘겸손한 슈퍼스타 칼 립켄 주니어’가 팬들과 직접 악수를 나누고 하이파이브를 하는 모습은 그 후로도 두고두고 방송을 탔습니다. 

 

후에 그는 당시 순간을 회상하며 “그 일은 순간적으로 자연스럽게 일어났습니다. 나는 경기가 중단된다는 것에 대해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투수들에게는 힘든 일이었지요, 마치 비가 쏟아져 경기가 중간되는 것이나 같은 어려움을 투수들은 겪어야 했습니다. 나는 속으로 ‘어서 경기를 속개하자. 경기가 끝난 후 축하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라고 말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바비 보니아와 라파엘 팔메이로는 나를 덕아웃에서 밀어내면서 ‘만약 운동장을 돌면서 팬들과 함께 축하하지 않으면 우린 경기를 재개하지 않을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그것이 너무 어색하고 멍청한 짓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일단 운동장을 돌기 시작하자 5만 명의 팬들이 하나가 돼 축하를 하는 정말 감격의 순간이 됐습니다. 아는 사람들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고. 그 모든 팬들은 나와 함께 오랜 동안 그 운동장을 지켰던 분들이었습니다. 정말 인간으로서 겪을 수 있는 최고의 영광스러운 경험이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칼 주니어는 6회말에 홈런을 터뜨리며 팬들을 또 한 번 열광시켰습니다.

 

그의 연속게임출전 행진은 그 후에도 3년 가까이 계속됐습니다. 
그러나 1998년 9월20일 뉴욕 양키스와의 시즌 마지막 홈경기를 앞두고 칼 주니어는 자신의 기록을 중단해야 할 때가 됐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라인업에서 빠지면서 그의 연속경기출전 기록은 ‘2632’에서 멈췄습니다.

 

칼 주니어는 후에 스스로 대기록을 중단한 것에 대해 ‘오프 시즌에 혹시 나의 기록 때문에 재계약 등이 영향을 받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고 밝혔습니다. 
일반적인 생각으로는 좋은 조건의 재계약을 위해서도 기록을 이어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여겼을 텐데 칼은 확실히 달랐습니다. 공정하고 정당한 평가를 받겠다는 의지였던 것입니다.

 

립켄은 그러나 다음 시즌 부상에도 불구하고 개인 역대 최고인 3할4푼의 타율에 한 경기 6타수 6안타(존 스몰츠를 상대로 홈런 두개 포함)를 기록하는 등 만으로 39세의 나이에도 놀라운 활약을 펼쳤습니다.
그리고 2001년 시즌을 끝으로 은퇴했고, 2007년 압도적인 지지율로 명예의 전당에 들어갔습니다.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는 그들의 영웅 칼 주니어를 보기 위해 7월말 뉴욕 주 산골 마을 쿠퍼스타운에 역대 최다인 7만 관중이 운집한 장면은 감격적이었습니다.
후에 칼은 미국 국무부로부터 ‘스포츠 대사’에 임명되기도 했습니다. 미국을 대표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스포츠 외교를 펼치는 친선 대사가 됐는데, 보수는 없었습니다.

 

칼 주니어는 스포츠 역사상 가장 깨지기 힘든 기록으로 여겨지는 2632게임 연속 출장 기록은 물론이고 19차례의 올스타, 2차례의 MVP, 432홈런에 1695타점을 기록했으며, 수비에서도 유격수의 개념을 파워 포지션으로 바꿔놓은 개척자였습니다.
함께 명예의 전당에 들어간 토니 그윈과 마찬가지로 칼 립켄 주니어도 팬들에 대한 의무와 약속이 있었기에 21년간 볼티모어 한 팀에서만 뛰었고, 16년 넘게 한 경기도 결장하지 않는 대기록을 세웠습니다.

©️명예의 전당 인터뷰를 하는 칼 립켄 주니어 (출처: 본인 촬영)

현장 취재했던 명예의 전당 행사에서 들려준 그의 연설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그윈에 이어 나온 칼은 조금 더 감성적이었고, 미래에 대해서 주안점을 두는 스피치를 했습니다. 아무래도 4500Km가 떨어진 샌디에이고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가까운 볼티모어(550km)이기에 립켄 팬들이 훨씬 많았고, 칼이 소개되자 ‘Thank you Cal!!’을 연호하는 팬들의 함성이 행사장을 뒤덮었습니다.

 

칼은 자신이 야구를 지도하던 한 10살짜리 소년이 ‘아저씨도 야구 선수였어요?‘라며 전혀 자기를 알아보지 못했던 일화로 연설을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2632 경기 연속 출장의 대기록도 결국은 매일 매일 일터에서, 혹은 가정에서 최선을 다해 일하는 일반 사람들의 성실함과 노력에 비해 크게 나을 것이 없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꺼낸 일화였습니다.
전 동료인 에디 머레이와 브레디 앤더슨, 그리고 자신의 코치이자 감독이자 그리고 아버지였던 칼 립켄 시니어에게 감사의 뜻을 전한 칼은, 벌써 몇 년 전에 배트와 글러브를 내려놓았는데도 이날 행사에 함께 해준 수만 명의 팬들에게 깊은 감사의 뜻을 전했습니다.

 

가족들을 이야기 하면서 약간 울먹거린 칼은 갑자기 옷 안에서 장미꽃을 꺼내더니 멀리 객석의 아들 브라이언에게 “내가 이 꽃을 공간 이동시킬 테니 네가 엄마에게 좀 전해줘.”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아들은 자신의 옷 속에서 똑같은 꽃을 꺼내 엄마 켈리에게 전달하는 깜짝 이벤트로 팬들의 박수를 받기도 했습니다. 이 대목은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칼의 다음 말도 프로 선수들이 꼭 들었으면 하는 명언이었습니다. 


“원하든 원치 않든 빅리거 선수가 되면 롤 모델(role model)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어린이나 청소년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느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느냐가 가장 중요합니다.”라며 프로 선수의 역할을 강조했습니다. 
젊은 시절 판정에 불복해 1회에 퇴장을 당한 적이 있는데, 자신을 보려고 왔던 꼬마 팬이 계속 울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에 크게 깨달았다는 칼은 “늘 한결같은 모습으로 열심히 해서 세상을 더욱 좋은 곳으로 만드는 것이 우리 선수들이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해 다시 박수갈채를 받았습니다.

 

칼은 자신의 아버지 말씀대로 야구와 인생은 너무도 똑같다면서 ‘팀워크, 리더십, 성실함, 믿음’이 야구와 인생을 똑같이 보다 나은 길로 이끄는 길이 될 것이라며 ‘오늘을 계기로 앞으로 더욱 좋은 세상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칼 립켄 주니어에 대한 강렬한 마지막 기억도 있습니다.


2001년 7월 10일, 시애틀 세이프코 필드에서 열린 메이저리그 올스타전 취재를 간 건 한국 선수 최초로 박찬호가 올스타에 뽑혔기 때문입니다.
내셔널리그 올스타팀의 선발은 좌완 랜디 존슨이었고, 3회말 박찬호가 두 번째 투수로 마운드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첫 상대가 바로 칼 립켄 주니어였습니다. 은퇴를 앞둔 칼에게는 마지막 올스타전이었고, 당시는 포지션을 옮겨 3루수로 뽑혔는데 유격수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경기 시작과 함께 유격수를 맡으라며 강추해 떠밀려 유격수를 맡기도 했습니다.

 

박찬호는 초구 정중앙에 약간 높은 패스트볼을 던졌고, 힘차게 휘두를 칼의 방망이 제대로 걸린 공은 좌측 펜스를 넘어갔습니다. 4만7364명의 팬들은 열광의 도가니였습니다.
그런데 이어서 이반 로드리게스와 이치로를 연속 2루 땅볼, 그리고 알렉스 로드리게스를 삼진으로 잡으며 이닝을 수월하게 마치자 ‘박찬호의 착한 패스트볼’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전설의 은퇴를 맞은 박찬호는 정면 승부를 선택했고 칼이 그걸 받아쳐 홈런을 만들었기에 홈런 맞고 칭송을 받았을 정도.
당시 경기 마치고 함께 식사를 하며 의도적으로 정면 승부를 했는지 묻자 박찬호는 빙그레 웃기만 했습니다.
 
0-0에서 나온 칼의 홈런은 결승타가 됐고, 자신의 올스타전 2번째 홈런이었으며 결국 AL이 4-1로 승리하며 MVP가 됐습니다. 박찬호가 패전 투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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