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연재] YSAL MLB 데이터 리포트 4 : 같은 시대 다른 여정, 행크 애런과 윌리 메이스의 커리어 이야기
연재
윌리 메이스(Willie Mays)와 행크 애런(Hank Aaron)은 20세기 중반 메이저리그를 대표했던 두 명의 슈퍼스타로, 서로 다른 스타일로 야구팬들을 사로잡았습니다. 두 선수 모두 역사상 7명의 선수만이 달성한 '500홈런-3,000안타'를 기록한 위대한 선수입니다.
메이스는 ‘5툴 플레이어’의 전형으로 불리며 타격, 수비, 주루, 송구, 파워 다섯 가지 모든 부문에서 최상급의 능력을 갖춘 선수였습니다. 뉴욕 자이언츠 소속으로 1951년 데뷔한 그는 통산 타율 .302, 660홈런, 338도루를 기록하며 전천후 야구인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특히 중견수로서의 수비력은 독보적이었으며, 12회 골든글러브 수상과 함께 "The Catch"로 대표되는 명장면들을 통해 팬들의 뇌리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다만 은퇴 전까지 외야수 출장을 소화하여 수비로 인한 체력 부담이 생겼고 말년에 시즌 중 많은 경기과 타석을 소화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반면 애런은 굉장히 많은 타격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타자입니다. 1954년 밀워키 브레이브스에서 데뷔한 그는 화려하기보다는 조용하지만 꾸준히 자신의 실력을 입증하며 커리어를 쌓아갔습니다. 통산 755홈런, 3,771안타, 2,297타점은 모두 당시 기준으로 전무후무한 수치였으며, 특히 매 시즌 평균 30홈런 이상을 기록할 만큼 놀라운 일관성을 자랑했습니다. 전형적인 거포 타자가 아니라 '183cm-83kg'정도의 타 홈런왕에 비해선 작은 체구를 가졌지만 손목 힘에서 나오는 빠른 스윙으로 장타를 생산했습니다. 애런은 폭발적인 한 시즌보다 매년 묵묵히 제 역할을 해내는 선수였고, 이는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야구 팬들에게 ‘가장 믿을 수 있는 타자’로 각인되게 했습니다. 메이스가 야구의 역동성과 예술성을 상징했다면, 애런은 침착함과 성실함으로 쌓아 올린 대기록의 결정체라 할 수 있습니다.

- 출처 : STATHEAD Baseball
통산 성적은 선수의 커리어 전체를 하나의 값으로 요약을 해주지만 그 숫자가 커리어를 완벽히 묘사하지는 못합니다. 위대한 업적을 이루기까지의 선수의 서사를 파악해보는 것은 그 선수의 가치를 진정으로 이해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따라서 MLB 데뷔부터 은퇴까지 연도별 성적을 이용하여 행크 애런과 윌리 메이스의 나이에 따른 성적 추이를 비교 분석해보고자 합니다.
OPS는 출루율에 장타율을 더한 것으로 타자의 생산성을 가장 간단하면서도 잘 나타낼 수 있는 지표입니다. 다음은 두 선수의 나이에 따른 OPS를 산점도로 시각화 해본 것입니다.

행크 애런은 커리어 내내 대부분 0.9 이상의 OPS를 기록하며 꾸준한 성적을 유지하였습니다. 0.9라는 OPS 수치는 현대에도 리그 정상급 타자로 인식되지만, 1950~1970년대는 리그 OPS 수치가 현재보다 낮았기 때문에 리그 최상위 타자의 지위를 꾸준히 지켜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황혼기라고 할 수 있는 30대 중반의 나이에 커리어하이를 기록하면서 꾸준함의 대명사로 불립니다.

윌리 메이스는 20대 중반부터 30대 중반까지 1.0에 달하는 OPS를 기록하며 최고의 전성기를 보냈습니다. 1.1에 육박하는 OPS를 달성한 시즌이 있을 정도로 그의 전성기의 임팩트는 매우 강렬했습니다. 윌리 메이스는 군복무로 인한 공백으로 커리어 초반을 날렸습니다. OPS의 추이를 볼 때 전성기에 막 들어서는 시점이었던 만큼, 만약 공백기가 없었다면 더욱 대단한 통산 누적 스탯을 기록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선수의 커리어는 통상적으로 데뷔 후 연차가 쌓여감에 따라 더 좋은 성적을 내며 전성기를 맞이하고, 전성기 이후에는 나이에 따라 운동 능력이 감소하여 점차 퍼포먼스가 줄어드는 경향을 보입니다. 또한 야구 선수의 대부분은 30세 부근에서 전성기를 맞이합니다. 따라서 선수 커리어 궤적에 이를 반영하고자, 다음과 같은 이차식 형태의 모델링을 진행하였습니다.
에서 가장 큰 OPS의 값을 가진다. 이는 선수가 자신의 커리어 동안 최고의 타격 성과를 낸 것으로 추정된 나이다.
3. 곡선의 가장 높은 지점의 값은

이다. 이는 선수의 커리어 동안 예상되는 가장 높은 OPS 수치다.
4. C는 이차식의 곡률을 나타낸다. C가 큰 (음의) 값을 가질수록 빠르게 전성기에 도달했다가 은퇴까지 급격히 실력이 감소했음을 나타낸다. 반대로 작은 (음의) 값을 가진다면 성적의 상승과 하락이 뚜렷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다음은 앞에서 설명한 함수식을 두 선수에게 적용시킨 결과입니다.
- 행크 애런 :

- 월리 메이스 :
행크 애런과 윌리 메이스의 OPS 커리어 궤적을 비교해보면 각자의 위대함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드러납니다. 두 선수 모두 20대 후반에 커리어의 정점을 찍었는데, 애런은 29.8세에 OPS 0.987로 최고점을 기록했고, 메이스는 29.2세에 정확히 OPS 1.000에 도달했습니다. 이처럼 전성기 도달 시점은 거의 같지만, 곡선의 형태나 이후의 변화에서는 차이를 보입니다.
윌리 메이스는 전성기 OPS가 1.000에 달할 정도로 더 높은 정점을 찍었고, 해당 구간의 궤적이 가파르게 상승해 뾰족한 모양을 이룹니다. 이는 메이스가 폭발적인 타격 능력을 지닌 선수였음을 보여줍니다. 반면, 행크 애런은 최고 OPS가 약간 낮은 0.987이지만, 그에 도달하기까지의 상승 곡선이 완만하고 이후의 하락 또한 서서히 진행되어 전체적으로 안정적인 포물선 형태를 갖습니다. 이는 애런이 전성기 기간 동안 꾸준하고 고르게 우수한 성적을 유지한 장수형 선수였음을 시사합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두 선수의 후반기 커리어에서 나타나는 차이입니다. 윌리 메이스는 30대 중반 이후 빠르게 성적이 하락하면서 노쇠기에 급격한 퍼포먼스 저하를 보였고, OPS는 말년에 .700 미만으로 떨어집니다. 반면 행크 애런은 30대 후반에도 OPS .900에 가까운 수준을 유지하며 꾸준함을 보여주었고, 서서히 하강하는 경로를 따라 은퇴까지 이어집니다. 이는 애런이 메이스보다 더 긴 시간 동안 리그 상위권 타자의 성적을 유지했음을 의미합니다.
결론적으로 두 선수 모두 위대한 커리어를 가졌지만, 윌리 메이스는 짧고 강렬한 폭발력을, 행크 애런은 길고 안정된 지속력을 바탕으로 위대함을 증명했습니다. 이러한 커리어 궤적 분석은 단순한 누적 통계만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선수의 성장 양상과 경기력 유지 능력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데 효과적이며, 두 전설적인 타자를 이해하는 보다 정밀하고 입체적인 관점을 제공합니다.

- 출처 : NBC Sports
윌리 메이스와 행크 아론은 1950–60년대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두 흑인 스타 외야수라는 라이벌 관계지만, 사실 홈런·타격·MVP 경쟁을 통해 서로를 자극하며 야구사를 풍성하게 만든 ‘경쟁자’에 더 가깝기도 했습니다.
1940년대 후반, 메이저리그 입단 전 둘은 알라바마 고등학교 미식축구 경기에서 처음 마주쳤습니다. 그 이후로 둘은 각자 자이언츠와 브레이브즈 유니폼을 입게되면서 같은 팀으로 뛰지는 못했으나 1955~1973년 무려 23회 연속으로 올스타 팀 동료로 뛰면서 각자 메이저리그에 역대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흑인 선수"가 아닌 "메이저리그 선수"로 기억되었습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둘이 동료가 될 수도 있던 사이였다는 것입니다. 1952년 18살의 아론은 니그로 아메리칸 리그의 인디아나폴리스 크라운에서 .367의 평균과 5 홈런으로 괄목할만한 성적을 거두고 있었습니다. 이런 아론을 데려가기 위해 자이언츠와 브레이브즈가 계약서를 준비했는데, 단지 브레이브즈가 월 $50을 더 줘서 야구 팬들이 꿈꾸던 메이스&아론&어빈의 사상 최강의 외야진은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이후 아론은 24시즌 연속 24홈런 이상(1955~1978) 등을 기록하며 All-Arounder 플레이어로 불리우고 메이스는 타격&수비&주루&파워&스피드를 모두 갖춘 Mr.consistency로 활약하며 각자의 스타일에서 정점을 찍었지만, 1962년 메이스의 자이언츠와 아론의 브레이브즈가 내셔널리그 우승 경쟁을 펼치는 기간동안 메이스는 48홈런, 141득점 아론도 45홈런 128타점으로 둘의 경쟁은 야구 팬들의 가슴을 뜨겁게 해주었습니다.
하지만 대외적으로 비춰졌던 라이벌 의식보다도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것은 흑인 야구선수로서의 동료 의식이었습니다. 1974년, 아론이 베이브 루스를 넘는 통산 715번째 홈런을 칠 당시, 메이스는 “그가 해냈다는 걸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사람들은 그가 조용한 선수라고 무시했지만, 그는 진정한 챔피언이었다.”라고 이야기하기도 하였습니다. 메이저리그에 통합되기전 흑인들의 리그의 이름(니그로 아메리칸 리그)만 보아도 알 수 있다시피 당시 미국에서 흑인들의 인권은 바닥이었습니다. 아론은 500홈런과 3000 안타를 동시 달성하고, 8시즌 40홈런 이상을 치면서 백인들의 우상 루스의 통산 홈런 기록에 근접했고, 결국 1974년 루스의 기록에 1개 모자란 채로 정규시즌을 시작하려던 그는 은퇴를 요구하는 협박 편지 등 다양한 인종차별에 시달려야만 했습니다. 라이벌이었던 아론과 메이스는 라이벌이기 이전에 흑인 스포츠 스타로서 위상과 영향력으로 인종차별의 벽을 허물기 위해 노력하였고, 비시즌에는 함께 바른스톰(여름 순회 경기)를 통해 흑인 사회의 경제적 자립과 커뮤니티 결속을 다지는데에 기여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