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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연재 : 카드로 보는 MLB Story ⑧] ‘마이클 조던’의 ‘가지 않은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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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당신이 미처 몰랐던 ‘마이클 조던’의 야구 이야기

주황색 농구공 안에 품어온 하얀색 야구공’의 꿈

 

 

 

 

미국에서 피할 수 없는 3가지는 세금(Taxes), 죽음(Death), 그리고 마이클 조던(Michael Jordan)이다. 마이클 조던은 단순한 스포츠 선수가 아닌, 하나의 문화이자 미국의 상징이었다.”

 

1998마이클 조던의 두 번째 은퇴 발표 당시 미국 언론의 보도 내용이었습니다.

 

 

 

 

 

 

 

 

 

ⓒ ESPN

총 3(1993·1998·2003)의 은퇴 선언과 2(1995·2001)의 복귀. 변덕스러운 은퇴와 복귀 결정은 팬들에게 많은 혼란을 주었음에도 농구 황제마이클 조던 재키 로빈슨(2)무하마드 알리(3)’를 제치고 역대 흑인 스포츠 선수 중 전 종목을 통틀어 가장 위대한 선수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당시 경제 전문지인 포춘지()NBA 중계료, 광고 수익, 브랜드 매출 상승 및 굿즈(goods) 판매 창출 효과, 영화·게임산업에 대한 기여 등을 종합했을 때, 마이클 조던이 미치는 경제적 효과가 무려 10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기도 했습니다.

 

 

 

 

 

 

 

 

조던이 정든 코트를 떠난 이유

 

농구 팬들에게 1993106은 결코 잊을 수 없는 날입니다. 최전성기를 보내던 마이클 조던이 돌연 은퇴를 선언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그의 나이는 30세에 불과했습니다.

 

 

 

ⓒ 1995 Upper Deck : Michael Jordan #23(카드 읽어주는 남자)

 

 

마이클 조던은 19841026일 데뷔전을 치른 이후 1992-93시즌이 종료될 때까지 NBA 3년 연속 우승 및 파이널 MVP 3(1990-91시즌, 1991-92시즌, 1992-93시즌), ▲정규리그 MVP 3, All-NBA 퍼스트 팀 7, All-NBA 세컨드 팀 1, All-Defensive 퍼스트 팀 6, ▲득점왕 7, ▲스틸왕 3, ▲올해의 수비수, ▲올스타전 9회 출전, ▲올스타 MVP 1, ▲슬램덩크 대회 우승 2, AP 올해의 운동선수 선정 3회 등 전부 열거할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커리어를 쌓았습니다.

 

 

그런 그가 돌연 은퇴를 선언하자 미국이, 아니 세상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하지만 그 이면을 살펴보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 파손된 채 발견된 제임스 조던의 차량(WRAL NEWS)

 

 

1993723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하는데, 바로 그의 아버지 제임스 조던(James R. Jordan Sr.)이 고속도로에서 2명의 10대 무장 강도에게 피살된 것입니다. 제임스 조던마이클 조던의 아버지이자 친한 친구이면서 정신적 지주이기도 했습니다.

 

 

 

 

 

ⓒ 1994 Upper Deck Jordan Rare Air : Michael Jordan #51(카드 읽어주는 남자)

 

 

당시 NBA에서 이룰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이뤘던 마이클 조던은 동기부여 상실로 매너리즘에 빠져 있었는데,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까지 겹치자 은퇴를 결심하게 됩니다.

 

 

 

 

 

 

 

 

ⓒ 1994 Upper Deck Jordan Rare Air : Michael Jordan #36(카드 읽어주는 남자)

 

 

전 아주 긍정적인 사람입니다. 제 아버지의 죽음에서 그나마 긍정적인 건 제 마지막 농구 경기를 보시고 돌아가셨다는 사실입니다. 제겐 의미가 남다릅니다. 은퇴의 뜻은 앞으로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뜻이죠. 그러니 다시 돌아와서 농구할 마음이 생기면 그렇게 할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훗날 복귀하는 게 새로운 도전이 될지도 모르고요. 그 가능성을 닫진 않을게요.”

 

 

 

1993106, 마이클 조던은 그렇게 은퇴 기자회견장을 빠져나갔습니다.

 

 

 

 

 

 

 

‘마이클 조던’의 ‘가지 않은 길’

 

마이클 조던은 기자회견장에서 복귀 여지를 남기는 멘트를 하긴 했지만, 다시 돌아올 생각이 없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사실 은퇴1년 전부터 그의 화두였습니다. 마이클 조던의 주변 사람들은 그가 종종 은퇴 이야기를 꺼냈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특히 세상을 놀라게 할 것이라며, 다 그만두고 야구로 전향할 것이라는 말을 자주했다고 합니다.

 

 

 

 

ⓒ MLB.com

 

 

그리고 그 다짐은 199427 현실이 되었습니다. 시카고 화이트 삭스(Chicago White Sox)AA 리그 2군 팀인 버밍햄 배런스(Birmingham Barons)와 계약한 것입니다. 실제로 마이클 조던은 어린 시절 야구와 농구를 병행했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처음 시킨 운동도 야구였습니다. 마이클 조던이 야구 선수가 되는 게 아버지의 꿈이기도 했습니다.

 

 

 

 

 

 

 

 ⓒ 마이클(子) 조던과 제임스(父) 조던(The New York Times)

 

 

마이클 조던은 아버지와의 생전 마지막 대화를 회상했습니다. 조던아버지, 저 야구하고 싶어요. 야구하고 싶어서 농구는 그만할까 해요라고 말하자, 아버지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하거.”

 

 

“Do it.”

 

 

 

 

 

 

 

 

 ⓒ 마이클 조던의 어렸을 적 야구하는 모습(Sports Illustrated)

 

 

마이클 조던의 형인 래리 조던(Larry Jordan)은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항상 야구를 좋아했어요. 저도 마이클도 크면 메이저리그에 갈 줄 알았죠.”

 

마이클 조던에게 야구는 자신의 첫 번째 꿈이자 첫사랑 같은 것이었습니다.

 

조던은 여태 주황색 농구공 안에 빨간색 실밥으로 바느질된 작고 하얀 야구공을 숨겨왔던 것일까요?

아니면, 단순히 못 가본 길에 대한 미련이었을까요

 

결국 조던은 어릴 적 꾸었던 꿈을 좇기로 선택합니다.

 

 

 

 

 

 

ⓒ MLB.com

 

그렇게 조던은 농구공이 아닌 야구 배트를 쥐고, 농구 골대가 아닌 1루 베이스를 향해 달리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쉽지 않은 도전이었습니다. 농구와 야구는 사용하는 근육이 서로 달랐고, 훈련 방식도 같지 않았습니다.

 

야구를 하게 되면, 농구 실력에 심각한 피해를 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시 예전 기량을 되찾기 힘들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마이클 조던의 의지는 확고했습니다. 저는 야구에 올인했어요.”

 

 

 

 

 

 

 

ⓒ 1995 Upper Deck Minor League Top Prospect : Michael Jordan #45(카드 읽어주는 남자)

 

 

사람들은 마이클 조던이 야구를 흥미로만 여긴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가벼운 접근이 야구에 인생을 건 유망주 한 명의 소중한 기회를 빼앗을 수 있다고 질타하기도 했습니다. 비난의 수위는 점차 거세졌고, 야구 선수들을 모욕하는 경솔한 판단이라는 비판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마이클 조던은 진지했습니다. 농구 황제라는 타이틀을 내려놓고 다른 유망주들과 똑같은 대우를 받으며 뛰었습니다. 다시금 루키(Rookie)’가 된 것입니다.

 

 

 

 

 

 

 

조던의 학창 시절 진짜 첫사랑

 

올해 2월 한 경매 사이트에 마이클 조던이 고등학교 시절 쓴 2페이지 분량의 자필 연애편지가 경매 물품으로 올라왔습니다. 1980년대 초반 노스캐롤라이나主 월밍턴(Wilmington)레이니 고등학교(Laney High School)에 다니던 시절에 쓴 편지였습니다.

 

 

 

 

날짜는 1981520, 일반 편지지가 아닌 줄이 그어진 노트에 쓴 영락없는 풋풋한 소년의 편지였습니다. 편지의 수신인은 라퀘타 로빈슨(Laquetta Robinson)으로, 과거 그들의 졸업 사진 역시 비싼 가격에 팔리기도 했습니다.

 

 

 

 

 

ⓒ 라퀘타 로빈슨과 마이클 조던의 고등학교 시절 모습(hola.com)

 

 

 

어린 조던은 사랑에 빠졌지만, 마음만큼은 농구에 더 기울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라퀘타, 당신은 농구를 제외하고 제 인생의 전부에요. 이 말에 화내지 마세요. 당신은 제 인생의 전부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내게서 농구를 가져갈 수 없어요당신을 향한 내 사랑이 얼마나 큰지 결코 보여줄 수는 없지만, 매일 보여드리려고 노력합니다

 

 

이 편지에는 그녀의 아름다움을 칭찬하는 말로 가득했고, “With my Best Love(나의 모든 사랑을 담아)”로 마무리됩니다.

 

이 외에도 조던언젠가는 농구로 생계를 유지하고 싶습니다. 내년에는 당신이 믿을 수 없는 일을 보여주겠습니다라는 자신감 넘치는 다짐의 내용을 편지에 담기도 했습니다.

 

 

 

 

 

 

 

 

조금은 잘 지내지 못하는 것이 추억에 대한 예의

 

마이클 조던은 농구코트가 아닌 야구장에서도 가장 먼저 훈련장에 나와 가장 늦게 훈련장을 떠나는 선수였습니다.

 

 

 

ⓒ MLB.com

 

 

하지만 너무 늦은 시작 때문이었을까. 야구 선수마이클 조던199448신시내티 레즈(Cincinnati Reds) 산하 채터누가 룩아웃츠(Chattanooga Lookouts)와의 데뷔전에서 우익수로 출전해 삼진 2개와 파울플라이 1개만을 기록하며, 팀의 3:10 패배를 지켜봐야 했습니다.

 

다음 경기에서도 안타를 기록하지 못했고, 수비 에러까지 범하자 언론은 또다시 마이클 조던을 집중 공격했습니다.

 

 

 

 

 

ⓒ Sports Illustrated

 

 

조던, 당장 짐 싸!”
 “야구의 수치 조던
 에어 조던이 아닌 에러 조던이다.”
리그를 잘못 찾은 조던

 

 

 

마이클 조던은 훗날 언론은 나의 열정을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다만 나는 저들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야구를 선택한 게 아니라 아버지가 옳은 결정이라고 하셔서 그런 선택을 한 것이라 개의치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마이클 조던은 이 유니폼을 입고 127경기에 출전, 타율 0.202, 436타수 88안타를 기록했습니다.

 

 

어찌 보면, 그를 향한 언론과 팬들의 비난은 다시 농구코트로 돌아와 달라는 처절한 절규의 메시지였을 지도 모릅니다. 농구의 신()이 있어야 할 곳은 초록색 잔디밭이 아니라고. 다시 돌아와 달라고, 기다리고 있겠다고.

 

 

 

 

 

 

 

ⓒ The New York Times

 

 

그럴수록 조던은 이를 더 악물었습니다. 매일 500회가 넘는 스윙 연습을 했습니다. 세 번째 경기에서 드디어 첫 안타를 때려냈고, 76오클랜드 애슬레틱스(Oakland Athletics) 산하 헌츠빌 스타스(Huntsville Stars)와의 경기에서는 354타석 만에 프로 커리어 첫 홈런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조금은 잘 지내지 못하는 것이 추억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을까요? 최종 성적은 127경기 출전, 타율 0.202, 436타수 88안타.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한, 조던답지 못한 성적표였습니다.

 

 

 

 

 

 

 

 해에게서 소년에게

 

조던은 데뷔 첫 시즌을 풀로 소화하면서 팀 내 3위에 해당하는 51개의 타점과 30개의 도루 성공, 13경기 연속 안타 등 유의미한 기록도 세웠습니다. 그리고 조던은 시즌 종료 후 참가한 가을리그(Fall League)에서 또 한 번의 가능성을 보여줬습니다.

 

 

ⓒ 1995 Upper Deck Minor League Top Prospect : Derek Jeter #1(카드 읽어주는 남자)

 

가을리그에는 훗날 메이저리그를 주름잡는 슈퍼스타 데릭 지터(Derek Jeter), 노마 가르시아파라(Nomar Garciaparra) 등 당시 트리플 A 초특급 유망주들도 참가했습니다. 그 무대에서 마이클 조던은 시즌 성적을 훌쩍 뛰어넘는 0.251의 타율을 기록했습니다.

 

일취월장한 그의 실력에 조던을 헐뜯던 언론은 잠시 잠잠해졌고, 마이클 조던이라는 이름의 흥행력까지 더해져 구단 내부에서는 조던을 다음 시즌 트리플 A에서 시작하게 한다는 방침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 Los Angeles Times

 

 

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1994년 메이저리그 선수노조의 파업 사태가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기하급수적으로 치솟는 선수들의 몸값에 부담을 느낀 메이저리그 구단들이 연봉 총액 상한제를 도입하려 하자 이에 반발한 선수노조가 1994812일 무기한 파업을 선언한 것입니다. 당시 사건은 그해 포스트시즌과 월드시리즈까지 무산시킬 정도로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1995 시즌 역시 선수노조가 참가를 거부하자 각 구단은 마이너리그 및 타()리그 선수들을 동원해 시즌을 치르려고 했습니다. 이에 시카고 화이트 삭스 구단흥행 화제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마이클 조던 카드를 만지작 거렸습니다.

 

 

 

 

 

Daily Memphian

 

 

구단은 그렇게 조던을 메이저리그로 승격시키기로 했지만, 정작 그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무엇보다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본인의 실력으로 떳떳하게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마이너리그 선수들의 열악한 환경을 몸소 체험한 조던은 결국 선수노조의 편에 서기로 결정했습니다. 32, 조던은 그렇게 홀연히 화이트 삭스 스프링캠프장을 떠났습니다.

 

 

 

 

 

 

ⓒ The Providence Journal

 

 

당시 팀의 감독이었던 테리 프랑코(Terry Francona)조던은 계속 성장 중이었다, “1,500타수까지만 갔어도 어떻게든 메이저리그에 입성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 The Tennessean

 

 

조던1년이라는 시간을 허비한 것일까요? 절대 아닐 것입니다조던은 야구를 하면서 자신의 아버지에게 일어난 일로부터 자유로워졌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야구라는 스포츠 특성상 원정경기를 다니면 팀원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는데, 팀원들은 그의 이름값에 주눅 들거나 그를 어렵게 대하지 않았습니다. 팀원들에게 마이클 조던은 한 명의 좋은 동료일 뿐이었습니다.

 

덕분에 조던은 다시 소년의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조던1998년 자신의 자서전을 통해 야구 선수로 뛰었던 1994년의 모든 순간은 따뜻했다고 회고했습니다. 야구가 조던을 살린 것입니다.

 

그 당시 조던과 만날 수 있다면 그에게 이어폰 한쪽을 건넨 뒤 이 노래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마음이 이끄는 곳
높은 곳으로 날아가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마
앞만 보며 날아가야 해


너의 꿈을 비웃는 자는
애써 상대하지마

 

변명하려 입을 열지마
그저 웃어 버리는 거야


아직 시간이 남아 있어
너의 날개는 펴질 거야

 

더 높이 더 멀리
너의 별을 찾아 날아라


소년아 저 모든 별들은
너보다 먼저 떠난 사람들이 흘린 눈물이란다


세상을 알게 된 두려움에 흘린 저 눈물이
이 다음에 올 사람들을 인도하고 있는 것이지

 

      신해철 - 해에게서 소년에게 中

 

 

 

 

 

 

 

“I’m back.”

 

그로부터 며칠 후 마이클 조던시카고 불스(Chicago Bulls) 훈련장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는 소식이 연이어 보도됐습니다.

 

마침내 1995318, ‘황제의 귀환을 알리는 팩스 한 장이 각 언론사에 도착합니다. 팩스에는 도도한문장 한 줄이 적혀 있었습니다.

 

 

“I’m back.”

 

 

ⓒ 1995년 당시 마이클 조던의 복귀를 알리는 FAX 전문

 

 

 

 

 

 

 

ⓒ 1995 Collector's Choice : Grant Hill #173(카드 읽어주는 남자)

 

 

그렇게 등번호 45을 달고 NBA로 돌아온 조던은 또다시 화려한 부활에 성공합니다. 당시 포스트 조던(Post Jordan)으로 불리던 디트로이트 피스톤스(Detroit Pistons)의 신예 그랜트 힐(Grant Hill)조던에 대해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웹스터 사전에 등록될 운동선수가 있다면 마이클 조던뿐이다.”   - 그랜트 힐

 

 

 

 

조던의 등번호에 대한 재미있는 일화도 있는데, 어렸을 적 마이클 조던1:1 농구 시합에서 형인 래리 조던을 이겨본 적이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래리 조던의 학창 시절 등번호가 45이었는데, 형의 반만이라도 농구를 잘했으면 좋겠다는 의미로 그동안 45번의 절반인 23번을 달고 뛴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아버지가 생전 마지막으로 본 자신의 등번호가 23이어서, 다시는 23을 달지 않겠다고 다짐했었습니다.

 

 

 

 

ⓒ CNN

 

 

하지만 조던은 단 22경기 만에 다시 23을 사용했습니다. 플레이오프에서 만난 상대 팀 올랜도 매직(Orlando Magic)닉 앤더슨(Nick Anderson)예전의 조던이 아니다. 23번일 때와 지금의 기량은 너무 다르다조던을 도발했기 때문입니다.

 

조던은 다음 경기에서 바로 23으로 배번을 바꿨고, 38득점, 7리바운드, 4스틸, 4블록슛을 기록하며 닉 앤더슨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줬습니다.

 

 

 

 

 

 

 

 

 ⓒ 1996 Skybox Premium Autographics : Steve Kerr(카드 읽어주는 남자)

 

 

한편 조던은 복귀 후 또다시 3년 연속 우승(1996-97시즌, 1997-98시즌, 1998-99시즌)을 경험하는데, 그의 시카고 불스(Chicago Bulls) 동료이자 現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Golden State Warriors) 감독인 스티브 커(Steve Kerr)는 이런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Babe Ruth should be called the ‘Michael Jordan of baseball’ from now on.”

(베이브 루스는 앞으로 야구계의 마이클 조던이라고 불러야 한다.)

 

 

 

 

 

 

 

 

 

 

  

조던1년간의 낯선 항해 끝에 깨달았습니다. 어쩌면 처음부터 알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 제임스(父) 조던과 마이클(子) 조던(WRAL NEWS)

 

 

 

 

자신의 아버지가 야구 선수가 아닌 농구 선수마이클 조던도 자랑스러워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어떤 수식어보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아들마이클 조던 자체를 사랑했다는 것을.

 

 

 

 

 

 

 

 

 

 

 

 

 

 ⓒ 카드 읽어주는 남자

 

  • 마이클 조던 레전드 25(손대범, 2025, 브레인스토어)』, 『마이클 조던 : 더 라스트 댄스(2020, 넷플릭스)』, 『Collector’s SPORTSLOOK(1995년 5월호)』, 『BECKETT(1994년 4월호)』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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