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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번 이치로, 브롱스에 등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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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 정규시즌 652세이브, 포스트시즌 42세이브로, 통산 694세이브를 올린 마리아노 리베라는 끝내기 홈런을 몇 개나 맞았을까?

 

정답. 정규시즌 5개

 

리베라는 2009년 9월18일, 시애틀 매리너스의 세이프코필드에서 마지막 끝내기 홈런을 맞았다. 끝내기 홈런을 친 선수는 놀랍게도, 홈런 타자가 아닌 스즈키 이치로였다. 더 놀라운 장면은 경기를 마친 후 아이스크림을 즐기며 웃는 얼굴로 경기장을 떠난 리베라였다. 리베라는 ‘망각’이 마무리의 첫째 덕목이라고 했다.

 

그로부터 3년 후인 2012년 7월23일, 더 놀라운 일이 세이프코필드에서 일어났다. 이치로가 핀스트라이프를 입는 것으로, 리베라의 동료가 된 것이다(리베라는 부상으로 시즌을 마감한 상태였고, 이듬해 돌아와 이치로와 1년을 함께 뛴 후 은퇴했다).

이치로에게 2012년은 2007년에 맺은 5년 9,000만 달러 계약의 마지막 해였다. 데뷔 시즌부터 이어온 ‘10년 연속 3할, 200안타, 골드글러브, 올스타’가 2011년에 중단된 이치로는 안타 머신이 더 이상 아니었다.

 

이치로는 트레이드 거부권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팀이 리빌딩을 시작하기 위해 자신을 정리하고 싶어 한다는 걸 알고, 먼저 트레이드를 요청했다. 이치로는 가고 싶은 팀 명단을 제출했고, 이치로에게 고마웠던 시애틀은 우승 가능성이 있는 팀을 찾아주려 노력했다. 그리고 양키스가 나타났다.

 

브렛 가드너가 팔꿈치 수술을 받아 일찌감치 시즌을 마감한 양키스는 라울 이바네스와 앤드루 존스에게 좌익수를 맡겼지만 영 신통치 않았다. 반면 이치로는 통산 타율이 0.350일 정도로 양키스타디움만 오면 펄펄 날았다.

 

양키스는 트레이드를 완료하기 전, 이치로에게 다음과 같은 조건을 받아들일 수 있냐고 물었다. 첫째, 주로 좌익수로 출장한다(이치로는 우익수 자리에서 골드글러브 10개를 따낸 우익수의 상징과 같은 선수였다). 둘째, 상위 타선이 아닌 하위 타선으로 나선다(이치로는 시애틀의 붙박이 1번 타자이자 리드오프의 상징이었다). 셋째, 좌완 선발 경기는 벤치를 지킬 수 있다(이치로는 좌완을 상대로 타율이 더 높았지만, 양키스는 존스에게도 기회를 줘야 했다). 이치로는 모든 조건에 동의했고, 트레이드는 성사됐다.

 

마침 양키스는 시애틀 원정을 치르고 있었다. 7월22일에 51번을 달고 양키스를 상대했던 이치로는, 다음날 31번을 달고 시애틀을 상대하기 위해 출전했다. 이치로가 양키스 유니폼을 입고 등장하자, 감사의 박수가 쏟아졌다. 이치로는 시리즈가 끝나고 집으로 가는 대신, 양키스의 비행기를 타고 시애틀을 떠났다.

 

등번호 51번은 일본(오릭스 블루웨이브)부터 달아온 이치로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양키스에서는 51번을 달 수 없었다. 버니 윌리엄스가 2006년에 은퇴한 이후 아무에게도 주지 않고 있던 ‘예비 영구결번’이었기 때문이다. 이치로는 51번과 가까운 31번을 택했다.

 

윌리엄스 때문에 양키스에서 51번을 달지 못한 ‘시애틀 레전드’는 한 명 더 있었다. 랜디 존슨은 2005년 양키스에 입단했지만, 당시는 윌리엄스가 은퇴하기 전이었다. 존슨이 고른 번호는 51번과 가까운 41번이었다. 양키스의 31번 선수(이치로)와 41번 선수(존슨)는 모두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시애틀의 51번은 곧 두 선수의 공동 영구결번이 될 예정이다).

 

이치로와 존슨은 등번호와 관련돼 또 다른 인연을 가지고 있다.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간판 스타가 된 코빈 캐롤은 대만 출신 어머니와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2000년에 태어났다. 시애틀에서 자란 그는 걷기 시작했을 때부터 세이프코필드를 방문했고, 같은 아시아계로서 이치로를 동경했다. 

 

캐롤이 고등학교를 마치고 드래프트에 나왔을 때, 캐롤을 뽑고 싶었던 시애틀은 캐롤과 이치로의 만남을 주선했다. 자신이 처음 가졌던 51번 유니폼을 들고 이치로를 만난 캐롤은 이치로의 사인을 받았고, 자기 관리에 대한 조언을 들었다. 캐롤은 이때 찍은 사진을 아직도 휴대폰 안에 가지고 있다.

 

시애틀의 지명권은 20순위였다. 하지만 16순위인 애리조나가 먼저 캐롤을 뽑았다. 캐롤은 51번을 달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애리조나의 51번은 랜디 존슨의 영구결번이었다. 이치로의 두 번째 번호인 31번도, 베테랑인 이안 케네디가 달고 있었다. 캐롤은 7번을 택했다.

 

다시 2012년으로 돌아가, 이치로는 31번을 달고 통산 두 번째이자 마지막 가을 나들이를 했다. 2001년 첫 포스트시즌에서 이치로는 10경기에서 타율 0.421, OPS 0.962로 대활약을 했다. 하지만 그 해 거둔 116승이 메이저리그 역대 타이 기록이었던 이치로는, 시애틀이 ALCS에서 만난 양키스에게 패해 월드시리즈에 가지 못했다. 1998년부터 2001년까지의 양키스는, 가을에 더 무서워지는 팀이었다.

 

이번에는 양키스의 유니폼을 입고 우승에 도전한 이치로는 ALCS 1차전에서 포스트시즌 첫 홈런 포함 6타수 4안타의 맹타를 휘둘렀다. 8회까지 0-4로 끌려갔던 양키스는 9회말 이치로의 투런에 이어 이바네스의 투런이 터지며 극적인 동점(4-4)을 만들었다. 하지만 양키스는 12회 연장 끝에 1차전을 패했고, 양키스는 4연패로 물러났다. 이치로는 양키스에서 두 시즌을 더 뛰었지만, 가을 야구는 더 이상 하지 못했다. 

 

이치로는 2013년 6월25일, 통산 두 번째 끝내기 홈런을 날려, 이번에는 리베라에게 패전이 아닌 승리를 안겼다. 8월21일에 너클볼투수 R A 디키를 상대로 때려낸 안타는 미일 통산 4,000번째 안타였다. 프로 통산 4,000안타는 역대 7번째였지만, 한미일 통산 4,000안타는 이치로가 처음이었다(훌리오 프랑코는 멕시코리그 기록까지 들어가야 가능하다).

 

이치로가 기록한 4367안타에는 오릭스, 시애틀, 마이애미에서 51번을 달고 기록한 4,506안타와 외우기 쉽게도, 양키스에서 31번을 달고 기록한 311안타가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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