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연재] 민훈기의 필드노트 : 노모 히데오의 추억 EP.10
연재
박찬호 선수가 LA 다저스에서 활약하던 시절 라커룸 바로 옆자리에는 노모 히데오 선수가 있었습니다.
1995년 당시 만 26세이던 노모는 일본 프로야구 78승 관록을 보유하고 MLB에 데뷔했습니다. 그리고 특유의 몸을 트는 투구 동작과 사라지는 마구 같은 포크볼을 앞세워 돌풍을 일으켰습니다. ‘토네이도’라는 애칭도 얻었습니다.
데뷔 첫 시즌에 13승 6패 ERA 2.54에 236K를 잡으며 삼진왕과 함께 NL 신인왕을 차지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해인 1996년에는 박찬호가 풀타임으로 다저스에 가세하며 두 동양인 투수는 팀메이트이자 선의의 라이벌로 활약을 이어갔습니다.
두 선수는 노모가 1998년 전격 뉴욕 메츠로 트레이드될 때까지 아주 친하게 지내면서도 또 한국와 일본을 대표하는 투수로 은근히 라이벌 의식도 치열했습니다.

박찬호가 1994년 처음 다저스에 갔을 때 원하던 번호는 16번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저스 좌완 투수 출신이자 코치이던 론 페라노스키가 선수 시절부터 그 번호를 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박찬호는 번호의 앞뒤를 바꿔 61번을 달았습니다.
그리고 1년 후에 노모가 다저스와 계약하며 또 16번을 원했습니다. 그런데 94년을 끝으로 페라노스키 코치가 다저스를 떠나면서 노모는 16번을 달 수 있었습니다.
당시까지 좀처럼 야구 선수들이 달지 않던 61번은 그 후 MLB에서도 그리고 한국에서도 상당히 인기 좋은 유명한 등번호가 됐습니다.
1997시즌 14승을 거두며 풀타임 선발로 자리를 굳혔지만 박찬호의 야구에 대한 욕심은 대단했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노모에게 포크볼 그립을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노무가 “찬호, 내가 너의 패스트볼을 던질 수 있었으면 포크볼은 던지지도 않았을거야!”라고 말해 함께 웃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아직은 네게 포크볼이 전혀 필요 없으니 나중에 필요할 때가 오면 알려주겠다고 헸던 것 같습니다. 당시에 160Km 육박하는 박찬호의 포심 패스트볼은 노모 뿐 아니라 모든 투수들의 로망이었던 시절이었습니다.
노모는 꼭 통역을 통하기는 했지만 평소 이야기를 나누거나 인터뷰를 할 때 한국 기자들에게 늘 친절했습니다.
평소 말이 별로 없고 과묵한 편이었지만, 인터뷰 요청을 피하거나 그런 기억은 없습니다.
그런데 유독 일본 기자들에게는 꽤나 거리를 두고, 불친절까지는 아니었지만 전혀 살갑지는 않았습니다.
하루는 베로비치의 스프링 캠프 출장 중에 클럽하우스에 들어가려는데 평소 안면이 있던 일본 기자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왜 안 들어가고 밖에 있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노모도 만날 것이냐고 한 기자가 물었습니다.
그렇다고 하고 별다른 생각 없이 클럽하우스로 들어가 박찬호 선수와 노모 선수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렇게 좀 시간이 흐른 후에 밖으로 나오니 여전히 일본 기자들이 쭉 모여있었습니다.
당시 한국 특파원은 3-4명 정도였는데 일본 기자들은 20~30명은 됐습니다.
그중에 친했던 기자가 제게 다가오더니 물었습니다, 노모를 만났느냐고.
그렇다고 했더니 그들이 저를 쭉 둘러싸더니 ‘무슨 질문을 했냐? 대답은 무었이었냐?’ 라며 졸지에 기자회견을 하는 셈이 됐습니다.
순간 당황하면서 지금 노모 안에 있으니까 들어가서 만나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노모가 다저스 홍보실에 일본 기자들 출입을 금지해 달라고 요청을 했다는 겁니다.
지난번 이치로 이야기 때도 취재 관행의 차이를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지만, 각국의 야구 취재 관행도 분명히 차이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우리도, 일본도, 미국도 많이 달라졌지만, 당시 노모나 이치로를 향한 취재 열기는 그 정도로 뜨거웠습니다.
당시 숙소인 다운타운에서 몬트리올 올림픽스타디움까지는 지하철을 타고 이동했습니다. 길이 많이 막혀 다저스 선수들도 대부분 그랬는데, 경기를 마치고 인터뷰 등을 마치고 전철을 타고 이동하는데 노모가 클럽하우스 직원들과 함께 탔습니다.
그런데 영어를 상당히 능숙하게 하면서 웃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었습니다.
평소 기자들을 만날 때면 반드시 통역을 동행하고 영어는 한마디도 쓰지 않던 노모였는데, 실은 영어를 꽤 능숙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앗, 속았다’ 뭐 그런 느낌은 전혀 아니었고, ‘저것도 프로다움의 한 면인가.’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에 반해 박찬호 선수는 영어 공부도 열심히 하고 정말 노력을 많이 해서, 얼마 지나지 않아 인터뷰 등도 스스로 영어로 할 정도가 됐습니다. 두 선수는 그렇게 달랐습니다.
노모는 메츠로 트레이드된 후 밀워키, 디트로이트, 보스턴을 거쳐 2002년 다저스로 돌아가 3년을 뛰었고, 다시 탬파베이와 캔자스시티를 마지막으로 2008년 만 39세에 은퇴했습니다.
MLB 통산 123승을 거뒀습니다.
박찬호는 다저스에 이어 텍사스와 샌디에이고, 그리고 메츠와 다시 다저스, 필라델피아, 양키즈를 거쳐 2010년 피츠버그를 마지막으로 만 37세에 은퇴했습니다.
피츠버그에서 거둔 마지막 승리가 124번째로 노모보다 1승 많은, 아시아 출신 투수로는 MLB 최다승을 기록했습니다.
샌디에이고의 다르빗슈 유가 110승으로 3위인데, 38세인 다르빗슈는 올시즌은 부상으로 아직 마운드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노모는 은퇴 후 마이너리그 팀을 인수하기도 했고, 박찬호와 함께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야구운영고문을 맡기도 했지만 평소 성격대로 조용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