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 위대한 두 글자 (마리아노 리베라 이야기)
연재
영화 <다크나이트>에서 배트맨에게 붙잡힌 조커는 공중에 매달린 채 이렇게 말한다.
배트맨과 조커처럼, 마리아노 리베라와 보스턴 레드삭스는, 둘 중 하나는 쓰러져야 하는 운명으로 20년을 지냈다(누가 배트맨이고 누가 조커인지는 굳이 고르지 말자).
리베라는 레드삭스가 늘 양키스에게 밀리는 가장 결정적인 이유였다. 리베라가 양키스의 뒷문을 든든하게 지키는 동안, 레드삭스는 마무리가 불안했던 적이 많았다. 숙적이었던 만큼, 리베라를 가장 힘들게 한 팀도 레드삭스였다.
2005년 양키스타디움에서 열린 개막 시리즈. 양키스는 1차전 대승에 이어 2차전도 데릭 지터의 9회말 끝내기 홈런으로 승리했다. 하지만 지터의 홈런 전에 리베라가 제이슨 배리텍에게 홈런을 맞아 동점을 허용한 일이 있었다. 다음날에도 리베라는 한 점 차에서 올라왔다. 하지만 수비 실책이 겹치며 5점을 실점했고, 패전투수가 됐다. 리베라가 같은 시리즈에서 두 경기 연속으로 세이브에 실패한 건 좀처럼 없는 일이었다.
실은 이랬다. 리베라의 주무기인 커터는 좌타자의 손목을 파고 드는 공이다. 한 해 44개의 방망이를 못 쓰게 만든 적도 있었고, 한 타자가 한 타석에서 세 개를 부러뜨린 적도 있었다. 리베라의 커터에는 ‘톱날칼(buzzsaw)’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좌타자가 커터를 치기 너무 어렵다 보니, 스위치히터인 칼 에버릿은 우완인 리베라를 상대로 우타석에 들어서기도 했다.
이 시리즈에서 레드삭스의 좌타자들은 슬며시 홈 플레이트에서 떨어져 섰다. 그러자 리베라의 몸쪽 커터를 칠 수 있었다. 하지만 비밀은 오래 가지 않는 법. 이를 눈치챈 리베라는 다음 경기부터 커터를 좌타자의 바깥으로 던졌다. 이후 시즌이 끝날 때까지, 리베라는 보스턴을 상대로 9경기에서 한 점도 내주지 않았다.
가을의 사나이였던 리베라에게 가장 큰 실패를 안겨준 팀도 레드삭스였다. 포스트시즌에서 철벽이었던 리베라가 실패한 대표적인 경기는 2001년 월드시리즈 7차전이지만, 필자에게는 루이스 곤살레스에게 빗맞은 끝내기 안타를 내준 그 경기보다, 2004년 ALCS 4차전의 블론이 더 충격이었다.
레드삭스는 도루를 안 내주기로 유명한 리베라를 상대로, 대주자 데이브 로버츠가 더 스틸(The Steal)에 성공했고, 빌 밀러가 적시타를 날려 로버츠를 불러들였다. 레드삭스는 12회 연장전을 승리했고, 다음날에는 14회 연장전을 승리했다. 그렇게 리버스 스윕(3연패 후 4연승)이 만들어졌고, 86년을 이어진 밤비노의 저주(Curse of Bambino)가 해제됐다. 리베라를 무너뜨렸다는 자신감은 포스트시즌 7연승으로 이어졌다(월드시리즈 4연승 우승).
2012년에 심각한 무릎 부상을 당하고 5월이 시작되기도 전에 시즌을 마감한 리베라는 이듬해 돌아오면서 그 해가 마지막 시즌임을 선언했다. 만 43세를 넘긴 리베라는 여전히 경쟁력 있는 마무리였지만, 그의 결정을 누구도 되돌릴 수 없었다.
2013년 8월19일, 리베라는 포스트시즌을 포함하면 60번째로 펜웨이파크 마운드에 올랐다. 그리고 포스트시즌을 포함하면 통산 686번째 세이브이자 레드삭스를 상대로 한 64번째 세이브를 따냈다. 리베라의 마지막 펜웨이파크 등판으로, 1996년 7월17일 첫 등판 이후 6243일이 지나고였다.
그로부터 한 달 여가 지난 9월16일은 양키스가 펜웨이파크에서 시즌 마지막 경기를 하는 날이었다. 레드삭스는 ‘영원한 적’과 작별하기 위해 마지막 방문을 한 리베라에게 모든 정성을 쏟았다.
보스턴 첼로 콰르텟이 리베라의 등장곡인 ‘Enter Sandman’(원곡 메탈리카)을 현악기로 연주했고, 2004년 ALCS 4차전에서 블론 세이브를 하는 모습을 익스럽게 보여줬다. 그리고 리베라의 초상화, 펜웨이파크 수동 스코어보드의 42 숫자판, 1912년에 개장한 펜웨이파크의 오리지널 좌석, 리베라가 수없이 많이 밟은 펜웨이파크 불펜의 투수판을 선물했다.
양키스가 9회초 마지막 공격을 하는 동안, 리베라는 펜웨이파크의 불펜 벽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마지막으로 42번을 입은 자(Last to wear # 42)
모든 것에 감사합니다(Thank you for everything)
![]()
©️펜웨이파크 불펜 벽 (출처 : 버스터 올니(Buster Olney) 기자의 2013년 트위터)
리베라가 은퇴한 그 해, 레드삭스는 통산 8번째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리베라를 상대해야 하는 고통에서 마침내 벗어났다.
위대한 모(MarianO)와 레드삭스는, 배트맨과 조커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였고, 서로를 완성시켜주는 관계였다(누가 배트맨이고 누가 조커인지는 굳이 고르지 말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