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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연재] 민훈기의 필드노트 : 베이스 루스 홈런 갯수의 오류? EP.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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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그가 세상을 떠난 지 어언 77년이 지났습니다.
그가 마지막 홈런을 친 것은 90년 전입니다.
그때만 해도 영원히 깨지지 않을 것으로 여겨지던 그의 MLB 통산 홈런 기록은 후에 행크 애런에 의해 깨졌고, 다시 배리 본즈가 넘어섰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미국의 야구팬들, 그리고 전세계의 야구팬들은 ‘홈런왕’ 하면 베이브 루스를 떠올립니다.
시대가 너무 지나서 이젠 오타니 쇼헤이나 애런 저지 등 신세대 홈런왕들이 떠오르고 있지만, 올드팬들에게 ‘베이브 루스’라는 이름은 홈런과 함께 야구의 대명사였습니다.

루스는 통산 714홈런을 쳤는데 그 숫자는 많은 야구팬들이 잊지 않습니다.


그런데 애런이 755개의 홈런을 쳤고, 본즈가 762홈런을 친 것을 정확히 기억하는 팬들은 얼마나 될지 모르겠습니다. 숫자에 약한 저는 이 자료가 필요할 때면 늘 다시 찾아보곤 합니다. ^^

특히 루스는 전혀 다른 시대의 홈런왕이었습니다.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발군의 젊은 좌완 투수로 프로야구 선수 생활을 시작한 루스는 1920년 뉴욕 양키즈로 트레이드된 후 본격적으로 홈런포를 가동하며 야구 자체를 바꿔 놓았습니다.
야구팬들과 역사가들이 루스를 조건 없이 사상 최고의 홈런왕으로 꼽는 이유는, 그가 살았던, 뛰었던 시대가 요즘의 야구는 비교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단적인 예로 1920년 양키즈에서의 첫 시즌에 루스가 54개의 홈런을 쳤는데, 그 시즌 AL의 나머지 7팀 중에 루스보다 팀 홈런이 적었던 게 4팀이나 됩니다.
NL까지 따지면 총 16개팀 중에 무려 10팀이 루스보다 홈런이 적었을 정도였습니다. 
팀보다 많은 홈런을 치는 타자!! 
예를 들어 작년에 양키즈가 팀홈런 237개, 볼티모어가 235개로 1,2위였습니다.
루스가 당시 팀홈런 수위로도 6위였으니까 작년 팀홈런 6위 뉴욕 메츠의 207개 정도의 비율이라고 봐야 할까요?!
물론 억측의 비교지만 그 정도로 루스는 시대를 떠나 설명이 안 되는 홈런 타자였습니다.

 

홈런왕 루스의 출현으로 그전까지 작전야구, 짜내기 야구의 ‘스몰 볼(small ball)’ 시대에서 장타를 앞세운 공격 야구의 시대로 변신하기 시작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루스는 야구가 ‘전 미국인의 오락(National Pastime)’으로 자리 잡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팀보다 혼자서 더 많은 홈런을 치던 불세출의 거포 루스가 당시 규정 때문에 아주 많은 홈런을 잃어버린 사실을 알고 계신가요? 


저도 야구 문헌 등을 찾아보다가 이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야구의 규정이 계속 바뀌고 진화했다는 것은 테드 윌리엄스의 4할 시즌 컬럼에서도 언급했었는데, 1931년까지는 요즘 기준으로 보면 아주 희한하고 비상식적인 홈런 규정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타자가 친 타구가 외야 펜스를 넘어갈 때 페어야 하는 건 당연한데, 당시까지는 넘어가서도 관중석의 페어 지역에 공이 떨어져야 홈런으로 인정한다는 규정을 적용됐던 것입니다.

 


사진은 1917년 뉴욕 자이언츠의 홈그라운드였던 폴로그라운드 외야인데, 폴대 위로 흰 선이 쭉 설치된 것이 보입니다.
그러니까 담장을 넘어간 홈런 타구가 만약 휘어져 이 줄 바깥에 떨어지면 홈런으로 인정되지 않았던 겁니다. 심지어 외야 관중석 뒤쪽에 두 번째 홈런 폴대가 설치돼 있거나 망을 설치해서 홈런 여부를 판단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또, 베이브 루스처럼 어마어마한 장거리 홈런을 터뜨릴 경우 심지어 ‘마지막 보였을 때 페어(when-last-seen rule)’라는 참 원시적인 규정이 적용되기도 했을 정도였습니다. 즉 홈런 타구가 심판의 눈에 마지막에 보였을 때 페어야지 홈런이라는 것. 

 

베이브 루스의 최장거리 홈런 기록은 공식적으로 1921년 7월 18일,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의 경기에서 기록한 575피트(약 175미터)입니다. 이 홈런은 메이저리그 공식 경기에서 기록된 가장 긴 홈런으로 기네스북에서 인정받고 있으며, 당시 디트로이트의 내빈 필드(Navin Field, 후에 타이거 스타디움)에서 중앙 외야를 넘어 경기장 밖으로 날아갔다고 전해집니다 .​

 

1919년 4월 4일 플로리다 탬파의 플랜트 필드(Plant Field)에서 열린 스프링 트레이닝 경기에서는 루스가 587피트(약 179미터)의 홈런을 기록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만 비공식 경기여서 공인 기록은 아닙니다.

 

이런 식으로 어마어마한 비거리의 홈런이 폴대 위를 넘어간 경우 눈-판정으로 페어로 인정 못 받거나, 좌타자가 잡아당겨 페어 지역 외야 폴대를 지나 휘어나간 홈런성 타구가 꽤 됐을 거라는 건 합리적 의심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걸 연구한 사람들도 있슴니다.
루스의 홈런들을 모두 분석한 책 ‘베이브 루스가 104홈런을 친 해(The Year Babe Ruth Hit 104 Home Runs)’의 저자인 빌 젠킨슨(Bill Jenkinson)씨는 이 규정 때문에 루스가 적어도 50개에서 많게는 78개의 홈런을 잃어버렸다고 주장합니다.
만약 실제로 50~78개를 잃어버렸다면 루스는 최다 792홈런으로 야구 역사에서 여전히 최다 홈런의 자리에 남아있어야 합니다.
젠킨스씨는 루스가 180미터가 넘는 엄청난 대형 홈런도 몇 차례 쳤을 뿐 아니라 실제로는 1000개 이상의 홈런을 쳤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이 규정 외에도 또 다른 홈런 규정으로 루스가 확실히 적어도 한 개의 홈런을 뺐긴 경우가 있습니다.
1920년대 전까지는 끝내기 홈런을 쳐도 앞선 주자가 역전 득점에 성공하면 홈런으로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즉, 1점차로 뒤진 9회말 주자 2명을 두고 홈런을 쳤다고 하면 앞선 두 주자가 모두 득점을 하는 순간 역전이 이루어지므로 경기는 종료되고, 타자에게는 홈런이 아니라 3루타가 주어졌다고 하네요.
이 규정으로 루스는 확실히 한 개 이상의 홈런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홈런 규정은 언제 생겼을까요?
공격 야구의 꽃으로 불리는 홈런은 한순간에 경기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짜릿한 역할을 하는, 야구에서 가장 극적인 규정입니다.
그런데 초창기 야구에서는 사실 홈런이라는 것이 요즘의 ‘인사이드 더 팍 홈런(inside-the-park Home Run)’ 같은 경우 정도였습니다. 
장비는 열악하고 공은 멀리 나가지 않았고, 외야는 뻥 뚫린 경우가 많아 요즘처럼 담장을 넘어가는 짜릿한 순간을 맛보는 일은 없었습니다.

홈런의 유래도 설이 많은데 1862년에 윌리엄 카메이어(William Cammeyer)라는 분이 뉴욕의 브룩클린에 ‘유니온 그라운드(Union Grounds)’라는 전용 야구장을 처음 지으면서 홈런의 역사가 바뀌기 시작했다는 설이 유력합니다.
비즈니스맨이자 야구팀 구단주이기도 했던 카메이어는 자신의 팀인 뉴욕 뮤추얼스를 위해 운동장 전체에 벽을 쌓은 야구 전용구장을 건설하고 유료 관중을 받은 비즈니스맨이었습니다.
특히 과거의 경기장에는 팬들이 담장이 없는 외야를 통해 운동장으로 공짜로 들어오는 일이 빈번해 유니온 그라운드에는 처음 외야까지 담장을 둘렀다고 합니다.
유니온 그라운드가 완성되면서, 물론 여전히 아주 드물었지만, 외야 펜스를 넘기는 짜릿한 홈런이 나오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제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루스의 홈런 신화는 여전히 살아 숨쉽니다.
그리고 야구 역사와 함께 영원히 남을 이름인 조지 허만 ‘베이브’ 루스는 ‘불명의 홈런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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