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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로를 전설로 이끈 한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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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해마다 411일이면 시애틀 매리너스를 다루는 SNS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게시물이 있습니다. 이치로가 이른바 레이저빔송구를 선보인 바로 그날이라며 기념하는 내용입니다. 올해도 마찬가지여서 레이저빔송구 24주년을 추억하는 게시물이 팬 계정과 구단 공식 SNS는 물론, 현지 언론 매체에도 등장했습니다. 이치로의 화려했던 선수 시절을 돌아보는 콘텐츠는 수없이 많지만, ‘레이저빔송구만큼 주기적으로 회자되는 장면은 드뭅니다.

 

메이저리그 최초의 일본인 타자, 이치로. 현대 야구의 상징적인 인물인 만큼 그의 위대함을 설명하는 수식어도 무궁무진합니다. 신인왕과 MVP를 동시에 수상한 역대 두 명 가운데 한 명. 10년 연속 200안타를 돌파한 유일한 선수. 단일 시즌 최다 262안타 기록 보유자. 마음만 먹으면 수십 개도 모자랍니다.

 

 

 

그러나 어떤 수치와 기록으로도 이치로의 독보적인 존재감을 시원하게 풀어내기는 어렵습니다. 만약 이치로를 숫자만으로 평가했다면 명예의 전당 입성 투표에서 99.7%의 득표를 얻는 선수가 되지는 못했을 겁니다. 지금의 레전드로 완성되기까지 이치로에게는 성적 이상의 특별함이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그 특별함의 원천은 데뷔 첫해 오클랜드 원정경기에서 선보인 바로 그 레이저빔송구라고 확신합니다. 이치로의 다른 어떤 순간도 특별함이라는 측면에서 이 장면을 넘어서기는 어렵습니다. ‘The Throw’로 불리는 그 송구는 여전히 많은 이들의 머릿속에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2001411, 오클랜드 콜리세움 구장.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왼손 투수 마크 멀더가 선발 등판하면서 시애틀 매리너스의 루 피넬라 감독은 이치로를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했습니다. 경기는 7회까지 00. 8회초 오클랜드 투수가 짐 머시어로 바뀌면서 이치로는 찰스 깁슨의 대타로 출전했습니다. 기다렸다는 듯 밀어친 안타로 출루한 이치로는 다음 타자 맥클레모어의 안타 때 3루를 밟은 뒤, 카메론의 땅볼 때 경기의 첫 득점을 기록했습니다. 이후 시애틀이 2점을 더 뽑아 점수는 30.

 

 

이어진 8회말 수비에서 이치로는 우익수 자리에 들어섰습니다.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역시 선두 타자 테렌스 롱이 안타로 출루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선명한 슬로비디오처럼 생생합니다. 시애틀 매리너스의 선발 투수 애런 실리가 바깥쪽 직구를 던졌고, 라몬 에르난데스가 결대로 밀어쳐 안타를 때렸습니다. 타구가 1-2루 사이를 뚫고 우익수 쪽으로 흐르자, 1루 주자 테렌스 롱은 고민없이 2루를 돌아 3루 방향으로 돌진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건 이치로의 계획 안에 있었습니다. 땅볼 안타를 매끈하게 글러브로 걷어 올린 이치로는 지체없이 3루를 향해 공을 뿌렸습니다. 공을 던진 오른팔이 함께 딸려가지 않을까 싶을 만큼 전력을 다했습니다. 3루수 데이빗 벨은 베이스 앞에서 테렌스 롱이 돌진해 오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 사이 이치로의 손을 떠난 공은 벼락같이 데이빗 벨의 글러브 안을 파고들었고, 곧바로 테렌스 롱의 발은 약속된 것처럼 글러브에 닿아 절묘하게 태그 아웃됐습니다. 역사적인 장면은 그렇게 완성됐습니다. 이치로의 야구 인생에서 가장 빛난 하루가 벤치 대기에서부터 시작됐다는 것도 오묘합니다.

 

 

 

시애틀 전담 해설가 릭 리즈가 이 장면을 보고 즉흥적으로 붙인 레이저빔이라는 표현은 해당 플레이를 부르는 고유명사가 됐습니다. 송구의 강도와 정확도를 생각해볼 때 더 적절한 표현이 있을까 싶습니다. 경기 후 루 피넬라 감독도 그 레이저빔은 빨래를 널어도 될 만큼 반듯했다고 보탰습니다. 명장면의 조연으로 남은 3루수 데이빗 벨은 시애틀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그토록 강한 송구가 힘을 잃지 않고 직선을 유지한 채 날아오는 것은 처음 봤다면서 자신은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었다고 돌아봤습니다. 나름 한 어깨하는 것으로 소문난 제이 뷰너는 쌀쌀한 4월 오클랜드 저녁 날씨에, 그것도 7회까지 벤치에 앉아 있던 선수가 보여준 플레이라고는 믿기 힘들다는 현실적인 말도 했습니다.

 

이미 일본에서 9시즌 동안 1,278개의 안타를 쌓았고 수비에서도 자신만의 스타일을 확고하게 정립한 선수지만, 이때만 해도 메이저리그에서 진지하게 이치로를 기대하는 시선은 많지 않았습니다. 같은 팀 동료조차 그의 능력에 대해 의구심을 가졌던 시절이었습니다. 아직 머니볼열풍이 확산하기 전이었습니다. 통계와 분석 도구가 정교하지 않던 터라 이치로의 일본 시절 기록을 보정해 예측하기는커녕, 메이저리그에서 산출된 기록조차 전통적인 방식으로 바라보던 시기였습니다. 게다가 이치로는 데뷔한 지 불과 8경기밖에 되지 않은 신인이었습니다. 테렌스 롱이 이치로의 어깨를 의식하지 않은 것도 이해할 만했습니다. 그러다 을 당한 것이었습니다.

 

 

레이저빔하나로 모든 게 달라졌습니다. 180cm의 키와 71kg의 몸무게. 메이저리그 선수라기에는 외형적인 위압감이 없는 선수였지만, 강력한 송구 하나가 경이로움을 자아냈습니다. 작은 체구에 미지의 능력을 지닌 마법사 같은 분위기가 풍기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이치로가 내야 안타를 치거나 기술적인 번트 안타를 만들어도 얄팍하다는 인상이 들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이 신비함의 연장선으로 여겨졌고, 심장 속에 품고 있는 강력함을 감추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레이저빔 사건이후 재미있는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이치로가 공을 잡고 던지려는 시늉만 해도 상대 팀 주자들이 허둥대곤 했습니다. 당황해서 넘어지는 선수마저 있었습니다. 강력한 송구를 홈에 뿌려 3루 주자의 움직임을 원천 봉쇄한 모습에 피넬라 감독이 더그아웃에서 어처구니없다는 듯 너털웃음을 터뜨리는 모습도 화제가 됐습니다.

 

때마침 시애틀이 2001년 올스타전 개최지로 정해져 있었고, 이치로는 올스타 투표에서 337만 표를 얻어 전체 최다 득표자가 됐습니다. 시애틀 팬들의 몰표를 감안해도 압도적인 득표였습니다. 당시 이치로는 단순한 야구 선수가 아닌, 하나의 사회 현상으로 여겨졌습니다. 그 열풍에서 레이저빔이 차지하는 비중을 과소평가하는 이는 없을 것입니다. 이치로는 19년의 메이저리그 선수 생활 동안 갖자기 형태의 안타와 때론 괴력이 느껴지는 홈런도 쳤지만, 그 어떤 것도 레이저빔 송구 같은 충격을 주지는 못했습니다.

 

 

메이저리그에서 통산 500홈런과 3천 안타는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기 위한 일반적인 기준처럼 여겨집니다. 어떤 시각으로 봐도 대기록임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500홈런과 3천 안타의 주인공을 줄줄이 기억해내기는 어렵습니다. 암기의 영역입니다. 반면 역대 가장 완벽한 외야수 송구 중 하나를 떠올리는 것은 꾸밈없는 감정의 영역에 가깝습니다. 가공하거나 의도해서 연출하기 어려운 장면이라는 점에서 더 그렇습니다.

 

이치로를 말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를 논할 때 안타를 빼놓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레이저빔송구가 있었기에 전설이 완성될 수 있었다고 감히 생각해봅니다. 세이버메트릭스가 고도로 발달한 지금도 수비는 수치화하기 어려운 영역입니다. 여전히 평판과 고정관념이 지배하는 분야가 바로 수비입니다. 고정관념을 깨고 두루 평판을 쌓아야 차지할 수 있기에, 편견에 도전한 아시아 최초의 야수에게 골드글러브는 어떤 타이틀보다 큰 의미로 다가옵니다. 결국 신인왕, MVP, 그리고 명예의 전당까지 이어지는 이치로의 행보는 레이저빔송구 없이 풀어낼 수 없습니다. 미국 야구 학회(SABR)에서 정리한 이치로의 일대기를 보면 이러한 평가가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올해 4월 기준으로 메이저리그 유튜브 공식 계정에 업로드된 해당 수비 영상은 조회 수 9백만 회를 넘어섰습니다. 다시 봐도 시대를 초월한 전율이 느껴집니다. ‘레이저빔명칭의 저작권자, 릭 리즈는 최근 공개된 인터뷰에서 이치로라면 지금 나와도 똑같이 안타를 치고 수비를 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이치로니까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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