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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연재] 민훈기의 필드 노트 : 이치로의 첫 시즌 일본 기자의 황당 질문 EP.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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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스즈키 이치로는 일본이 배출한 타격의 달인임은 야구팬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겠지요.

 

지난 2000년 가을 이치로는 당시의 포스팅 시스템으로 MLB 시장에 나왔습니다. 
시애틀 마리너스가 1312만5000달러를 써넣어 최고 베팅을 했고, 이치로와 협상 끝에 3년간 1400만 달러 계약을 맺었습니다.
일본 타자에 대한 검증이 안돼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상당히 파격적인 제안이었다는 평가도 있었고, 일부에서는 오버페이 얘기도 나왔습니다. 시애틀의 모회사가 일본회사 닌텐도여서 가능했다는 말도 나왔습니다. 
당시 MLB의 최저연봉이 20만 달러였는데, 빅리그에서 한 타석도 선 적이 없는 이치로의 첫해 연봉이 566만6667 달러였으니 그런 얘기가 나올만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치로는 빅리그 시작부터 정말 대단한 타격 능력, 콘택트 능력, 주력, 수비력, 그리고 송구 능력을 발휘하며 미국의 팬들을 매료시키고 일본의 팬들을 열광시켰습니다.
만 27세에 MLB에 데뷔한 이치로는 미국시간 2001년 4월2일 홈에서 오클랜드를 상대로 2안타를 치며 데뷔했습니다. 오클랜드와 3연전에서 4안타를 치며 눈길을 끈 이치로는 시즌 4차전인 텍사스 원정에서는 4안타를 몰아치며 타격감각을 유감없이 과시했습니다.

결국 첫 시즌 이치로는 3할5푼으로 타격왕, 242안타로 최다안타를 기록했고, 올스타에도 선정됐을 뿐 아니라, 골드글러브와 실버슬러거도 휩쓸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신인왕과 MVP를 동시에 차지하며 그야말로 돌풍의 주인공이 됐습니다.
그전까지 MLB의 긴 역사상 데뷔한 시즌에 신인왕과 MVP를 동시에 수상한 건 딱 한 번, 1975년 보스턴 레드삭스의 외야수 프레드 린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스즈키 이치로가 사상 두 번째로 이 대단한 업적을 이룬 것이었습니다.

 

이치로에 대한 일화는 너무 많지요.
우리에겐 WBC 대회 등에서 일본 대표로 뛰면서 밉상으로 찍히기도 했지만, 국적을 떠나 정말 대단한 야구선수이자 최정상급의 타자인 것은 분명합니다.
데뷔 후 10년 연속 올스타에 선정됐을 정도로 MLB 팬들에게도 인정받았던 이치로는, 인정받을만한 기록을 쌓았습니다.
2004시즌에는 161경기에서 262안타를 치며 1920년부터 깨지지 않던 조지 시슬러의 257안타를 넘어서는 신기록을 썼습니다.
MLB 한시즌 최다안타 순위를 보면 1920년 조지 시슬러가 2위, 1922년 로저 혼스비의 250안타가 3위, 1911년 타이 콥의 248안타가 4위, 그리고 1948년 스탠 뮤지얼의 246안타가 5위입니다.

 

1920~30년대에는 타고투저의 시절이었기 때문에 한시즌 240안타가 아주 드문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1980년대 후부터는 서서히 안타 치기가 힘들어졌고, 2000년대로 넘어서면서 한 시즌 200안타 돌파도 힘들어졌습니다.
2001년 이치로가 242안타를 쳤을 때 NL의 최다안타는 샌프란시스코 리치 아우릴리아의 206안타였고, 2004년 이치로가 262안타를 쳤을 때는 NL 플로리다 후안 피에르의 221개가 최다였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200안타 타자가 나오지 않는 시즌도 종종 있습니다.
2021년이나 2022년에도 200안타 타자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치로는 7번이나 최다 안타왕에 올랐고, 물론 7번 모두 200안타를 넘겼습니다. 실은 이치로는 MLB 리그 데뷔 후 10년간 연속으로 200안타를 돌파했습니다.

이치로는 시애틀에서 11시즌을 뛰고 38세이던 2012시즌 중간에 뉴욕 양키즈로 트레이드됐습니다. 양키즈에서 타격이 다시 살아나기도 한 이치로는 2년을 더 양키즈에서 뛴 후에 마이애미에서 2년을 뛰고는 2018년 만 44세에 친정팀 시애틀로 돌아가 2019년에 은퇴했습니다.

 

이치로는 15경기만 뛴 2017시즌 12번째 경기인 텍사스 원정에서 2안타를 쳤습니다. 그날 두 번째  안타로 빅리그 통산 3089안타를 쳤습니다.
특히 이치로는 빠른 발과 왼손 타자라는 자신의 강점을 이용한 영리한 야구로 많은 안타를 추가했습니다. 통산 그가 기록한 내야 안타가 708개로, 총 안타의 23%나 됩니다.
그리고 올해 명예의 전당 투표에서 딱 한 표를 받지 못해 만장일치가 아닌 99.7%의 투표율로 후보 자격 첫 해에 명전 멤버가 됐습니다. 역대 3번째로 높은 투표율입니다.

 

일부 이치로 팬들 사이에서는 NPB 오릭스에서 기록한 1,278안타와 MLB에서 기록한 3,089안타를 합치면 총 4,367안타로, MLB 최다 기록인 피트 로즈의 4,256안타보다도 많은 최다안타 타자라는 주장을 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MLB 신인왕을 받은 이치로의 일본리그 951경기의 안타를 더한다면, 피트 로즈는 마이너에서 기록한 354경기 427안타를 더하면 4683개로 많이 앞섭니다.


이치로 돌풍이 일면서 2001시즌에 시애틀 취재도 몇 번 갔는데, 가장 흥미롭던 것은 일본 취재진의 취재 열기와 참 달랐던 취재 풍토(?)였습니다.

일단 당시 박찬호를 전담 취재하던 한국 취재단은 스포츠 전문지의 특파원 4명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일본은 스포츠 전문지는 물론이고 일간지와 주간지, 월간지 등 엄청난 수의 취재 기자들이 뜨거운 취재 열기를 보였습니다.
100명도 넘는 일본 언론의 취재 요청에 홍보팀이 쩔쩔 매고, 결국 기존 기자실로는 턱없이 자리가 부족해 일본 기자실을 따로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1995년에 다저스에 불었던 노모 히데오 취재 열풍을 봤기 때문에 덜 놀라기는 했지만, 이치로에 대한 취재 열기는 노모 때보다도 더욱 뜨거워서 일본 야구에서 그의 위상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해프닝은 정말 잊을 수 없습니다.

경기 전 한 일본 기자가 시애틀 감독에게 던진 질문 때문이었습니다.
그 기자는 감독에게 ‘어제는 타격 훈련 때 총 203번의 스윙을 했는데, 오늘은 189번을 했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라고 물었습니다.
당시 시애틀 감독은 다혈질의 루 피넬라였는데 처음엔 통역의 질문을 이해를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다시 설명을 듣고는 둘러선 일본 기자들을 쳐다보고는 빵! 터졌습니다. 평생 그런 질문은 듣도 보도 못한 것이었을 테니까요. 저도 그 이야기를 듣고 정말 기발(?)하다는 생각과 함께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국 기자들도 꼼꼼히 취재를 열심히 하지만 사실 그 질문을 듣기 전까지는 상상해본 적이 없는 발상이었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나 저 숫자가 약간의 오차가 있을 수는 있지만, 일본 기자들의 취재 방식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습니다. 다음에 노모 히데오와의 해프닝도 소개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통산 우리 빅리그 투수들과 이치로의 대결을 살펴볼까요?
코리안 빅리거 투수들이 대부분 NL에서 뛰어서 AL에서 주로 뛴 이치로와 많은 대결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박찬호와 이치로는 모두 18번이나 만났는데 16타수 4안타, 2할5푼에 삼진 1개, 볼넷 2개로 박찬호가 우위를 보였습니다.
김병현은 6타수 2안타로 3할3푼3리, 서재응은 8타수 3안타로 3할7푼5리, 그리고 김선우는 2타수 1안타를 기록했습니다.

 

이치로는 취재를 하며 몇 차례 대면했지만 늘 통역이 있었고, 깊은 이야기를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일본 기자들에게는 까칠하면서도 한국 기자들에겐 아마도 생소해서였겠지만 예의를 갖추고 성실하게 답을 하곤 했습니다. 그를 볼 때마다 야구라는 도를 닦는 친구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야구에 대한 열정과 존중이 대단한 선수라는 것도 피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올여름 미국 뉴욕주 쿠퍼스타운에서 명예의 전당 행사가 열리는데 이치로가 어떤 스피치를 준비할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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