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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연재] 민훈기의 필드 노트 : 교타자 대명사 토니 그윈- “왜 나에 대해선 안 물어봐?” EP.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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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지난 2007년 7월말 미국 뉴욕주의 산골 마을 쿠퍼스타운에 있는 명예의 전당 행사 취재를 갔습니다.

그 해에 명예의 전당에 들어간 멤버는 당시 47세 동갑내기 토니 그윈과 칼 립켄 주니어였습니다.

©️2006년 명예의 전당 행사 취재 중인 민기자

 

통산 3,141개의 안타와 3할3푼8리의 타율 그리고 8번의 타격왕, 15번의 올스타에 선정된 토니 그윈은 ‘파워 야구 시대’에 ‘기교의 야구’로 최고의 명성을 떨쳤던 타자입니다.

1960년 5월 9일 LA에서 태어난 그는 한 시즌 홈런 17개가 개인 최고기록이고, 통산 135홈런을 쳤습니다. 전형적인 파워 포지션인 우익수치고는 파괴력이 떨어지는 선수였지만, 공을 정타로 맞추는 능력은 MLB 역대 최고 중 한 명으로 꼽힙니다.

20년간 선수 생활을 했는데 풀타임으로 뛴 시즌 중에 가장 낮은 타율이 3할9리였습니다.

빅리그 데뷔 2년만인 1984년 첫 NL 타격왕에 오른 이후 8번 수위 타자를 차지해 1800년대 말부터 활약했던 호너스 와그너와 NL 타이기록을 보유했습니다. (MLB 최고 기록은 1900년대 초 AL에서 뛴 타이 콥의 11번입니다.) 리그 최다 안타를 기록한 것도 7시즌이나 됩니다.

그윈의 통산 타율 3할3푼8리는 2차 대전 후에 선수 생활을 시작한 타자 중에 최고 타율입니다. 그리고 1920년대 라이브볼 시대 이후에 그윈보다 높은 타율은 기록한 타자는 테드 윌리엄스와 루 게릭, 빌 테리 등 세 명밖에 없었습니다.

 

그윈은 특히 삼진을 시키기 정말 어려운 타자였습니다.

통산 9288타수에서 그윈이 당한 삼진은 총 434개로 21타수에 힌번 정도 삼진을 당했습니다. 한 게임에 보통 4타석쯤이 돌아오니 5게임에 한 번 정도 삼진을 당했다는 뜻입니다.

그윈은 번트도 잘 대고 수비도 뛰어난 외야수였습니다. 어쩌면 그를 기억하는 팬들이 살이 꽤 찐 후반기의 모습을 기억할지도 모르지만, 그는 1991년까지 5번의 골드글러브를 수상한 외야수였습니다. MLB의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 프로농구 NBA의 샌디에이고 클리퍼스에 동시에 드래프트됐을 정도로 뛰어난 운동 능력의 소유자였습니다.

 

스포팅뉴스가 선정한 ‘MLB 통산 100대 선수’ 랭킹 51위에 오른 그윈은, ‘MLB 20세기 올스타팀’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은퇴 후 모교인 샌디에이고 주립대의 야구팀 총감독과 ESPN의 해설가로도 일했던그윈은 20년 동안 오로지 샌디에이고 파드레스 유니폼만 입고 뛰었습니다. FA로 엄청난 부를 챙길 수도 있었지만 그는 파드레스를 떠나지 않았고, 샌디에이고 신축 홈구장 펫코파크의 주소는 ‘19 토니 그윈 드라이브’로 명명됐습니다. 물론 그의 19번은 파드리스에서 영구결번됐습니다.

 

박찬호가 다저스에서 뛰던 시절 같은 조 라이벌인 파드레스와 상대할 기회가 많아 그윈과도 몇 번 인터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와의 첫 번째 인터뷰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토니 그윈에게 기자로서 한 수 배운 사건(?)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박찬호가 LA 다저스의 선발 투수로 각광을 받기 시작하던 때니까 1998년쯤으로 기억됩니다. 다저스가 파드레스와 원정 경기를 위해 당시 파드레스 홈구장인 잭머피스타디움을 찾았습니다.

©️테드 윌리엄스의 시구를 부축하는 토니 그윈

 

경기가 끝나고 호투한 박찬호에게 대해 물어보려고 홈팀 클럽하우스에서 토니 그윈을 찾았습니다. 간단히 인사를 하고 한국에서 온 특파원이라고 소개를 하고는 박찬호의 그날 피칭에 대해 이런저런 것들을 몇 가지 물었습니다.

계속 성실하게 대답을 하던 그윈이 갑자기 나를 쳐다보더니 “그런데 당신은 왜 찬호에 대해서만 묻고 내 경기에 대해서는 하나도 질문을 하지 않는 겁니까?”라고 정색을 하고 물었습니다.

그제야 ‘아차!’ 싶었습니다. 당시 나의 취재는 모든 것이 박찬호에게만 집중돼 있어서 다른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날 그윈과의 인터뷰 이후 누구와 인터뷰하든 상대방에 대한 배려를 먼저 하고 나면 훨씬 매끈하고 기분 좋은 인터뷰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통산 5안타 경기가 9번, 4안타 경기 45번을 기록한 그윈과 그의 팬들에게는 1994년 시즌이 잊지 못할 대단한 시즌이자 동시에 안타까운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첫 29경기를 치른 가운데 '미스터 파드레' 그윈의 타율은 4할1푼9리였습니다. 다음 두 경기에서 무안타로 4할대가 무너졌지만, 그 시즌에 그윈의 연속 무안타 경기는 최다 2경기였습니다.

계속해서 3할8~9푼대 타율을 기록하던 그윈은 전반기를 3할8푼3리로 마쳤습니다.

 

그리고 피츠버그의 쓰리리버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올스타전에 출전합니다.

그런데 한,두타석 뛰곤 교체되는 다른 선수들과는 달리 연장전까지 뛰더니, 10회말에도 안타를 치고 나갔습니다. 이어 모세스 알루의 2루타 때 전력 질주로 포수 이반 로드리게스의 태그를 살짝 피하며 결승 득점을 올립니다. 그리고 껑충껑충 뛰며 좋아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야구를 맘껏 즐기는 리틀리그 소년 같았습니다. 그윈은 통산 15번의 올스타전에서 3할8푼3리를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후반기 그윈의 방망이는 더욱 뜨거워졌습니다.

7월 22일 필라델피아 원정 더블헤더에서 6안타를 몰아치며 타율은 3할9푼3리, 본격적인 4할 도전의 느낌이 오기 시작합니다.

올스타전 이후 그윈의 후반기 타율은 4할2푼3리였습니다. 특히 체력이 떨어지고 고질적인 무릎 부상 후유증이 우려되던 무더운 8월에 그윈은 무려 4할7푼5리를 쳤습니다. 더구나 8월의 시작은 원정 10연전이었는데 마지막 원정지인 휴스턴과 3연전에서 6안타를 친 그윈의 타율은 3할9푼4리까지 올랐습니다.

45경기를 남긴 가운데 과연 토니 그윈이 테드 윌리엄스 이후 첫 4할 타자가 될 수 있을지가 MLB 초미의 관심사였습니다.

©️직접 촬영한 2007년 명예의 전당 행사에 참가한 샌디에이고의 그윈 팬들

그런데.......

그윈의 안타 행진은 더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선수노조와 MLB 구단주와의 마찰은 극에 달했고, 결국 선수 파업으로 이어졌습니다. 한 달의 진통 끝에 9월 14일 남은 시즌은 결국 취소되고 말았습니다. 토니 그윈의 4할 도전도 그렇게 허망하게 종지부를 찍고 말았습니다.

 

그윈은 휴스턴 3연전에서 13타석에 나서 6안타를 쳤습니다. 만약 3안타를 더 쳤다면 4할이 될 수 있었지만.... 그의 최종 시즌 타율 3할9푼4리는 1941년 테드 윌리엄스 4할6리 이후 최고 타율이었습니다.

 

​그윈은 1995년에 3할6푼8리, 1996년에 3할5푼3리, 1997년에는 3할7푼2리를 기록했지만 4할에 근접하지는 못했습니다. 물론 4년 연속 타격왕이었지만 말입니다.

 

토니 그윈이 활약하던 시절 애틀랜타에는 당대는 물론 야구사 통틀어서도 유명한 3총사 투수가 있었습니다.

그렉 매덕스-톰 글래빈-존 스몰츠

매덕스가 355승, 글래빈은 305승, 스몰츠는 213승-154세이브를 기록한 위대한 명예의 전당 투수들입니다.

그런데 그윈은 매덕스를 무려 103번이나 만났는데 4할2푼9리를 쳤습니다. 좌완 글래빈과는 99타석에서 3할1푼2리를 쳤고, 스몰츠와는 68타석에서 무려 4할6푼2리를 쳤습니다.

 

세 투수가 합쳐서 통산 9062개의 탈삼진을 뺐었는데, 그윈은 매덕스에게 0개, 스몰츠에게 1개, 글래빈에게 2개 등 총 270타석에서 딱 3번 삼진을 당했습니다.

 

가장 정교하고, 가장 영리한 피칭을 해서 타자들의 멘탈을 붕괴시키곤 했던 매덕스는 투구 철학에 확고한 의견을 종종 밝히곤 했습니다.

모든 구종을 똑같은 동작으로 던질 수 있다면, 그 투수의 공을 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 그의 확신이었습니다.

그는 “만약 똑같은 동작으로 구속의 변화를 줄 수 있다면, 인간 시력의 한계가 있기에 타자는 꼼짝하지 못한다."라며 "단, 토니 그윈이라는 XX만 빼고 말이다.”라며 크게 웃었습니다.

당대 최고의 투수들에게도 토니 그윈은 괴물 같은 장벽이었습니다.

 

아, 통산 박찬호와 그윈은 26번 대결했습니다.

24타수 6안타로 타율은 2할5푼, 삼진 1개를 기록했습니다.

 

그윈을 마지막 만난 것은 2007년 가을 포스트 시즌 때였습니다.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취재를 마치고 나오다가 해설을 하고 나오던 그를 만나 안부를 건넸습니다. 그런데 살이 많이 찌고, 늦은 밤인데도 땀을 많이 흘리는 모습이어서 좀 놀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후 그의 암 투병 소식이 들렸습니다.

씹는 담배를 선수 생활 내내 애용했던 그윈은 침샘암이라는 희귀병에 걸렸고, 5년간 투병 끝에 2014년 6월 16일 54세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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