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연재] 민훈기의 필드노트 : 낭만의 전설 투수 새첼 페이지(Satchel Paige) EP.04
연재
미국 야구를 즐기는 분이시라면 이 이름을 들어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새첼 페이지(Satchel Paige)’
그의 야구 인생은 전설적이기도 하지만, 때론 만화의 주인공 아닐까 싶을 정도로 터무니없이 흥미롭고, 또 때로는 그렇게 낭만적일 수가 없는, 정말 최고의 캐릭터였습니다. 제가 고 최동원 투수와 함께 아주 좋아하는 투수여서 제 유튜브 등에도 소개한 적이 있는 인물입니다.

너무도 많은 일화를 남긴 페이지라서 무슨 이야기를 먼저 소개해야 할지 고민일 정도인데 우선 그가 마지막으로 MLB 등판한 경기부터 보겠습니다.
1965년 9월 25일 캔자스시티와 보스턴전에 홈팀 투수로 나선 이가 페이지였습니다. 그런데 당시 페이지의 호적상 나이는 만 59세. 실제 나이는 환갑을 훨씬 넘겼을 것이라는 증언도 많았습니다.
192Cm의 장신에 늘 80Kg 정도를 유지해, 그 나이에도 여전히 호리호리한 체구였던 페이지는 3이닝 1피안타 1탈삼진 무실점의 완벽에 가까운 피칭을 했습니다.
리그 꼴찌의 약체였던 캔자스시티였지만 이날은 1만 명에 가까운 팬들이 운집해 페이지의 은퇴 경기를 보며 열광했습니다.
이날 유일하게 안타를 친 칼 야스트렘스키는 생애 동안 총 18번 올스타에 뽑힌 명예의 전당 멤버로 성장했지만, 그해는 프로 3년차의 아직 신예.
경기 후 그는 페이지와 뜨겁게 포옹하며 감격했다는데, ‘이분이 몇 살인지는 나는 모른다. 확실한 건 여전히 대단한 피칭을 한다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날 페이지는 최고 142km를 던졌다고 전해집니다.
페이지의 이날 등판은 당연히 MLB 최고령 등판 기록이었습니다. 앞으로도 깨질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겠죠.
그런데 12년 전인 1953년 세인트루이스 블루스에서 주로 구원투수로 57경기를 던진 것을 마지막으로 MLB에서 은퇴했던 페이지가 왜 다시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오른 것일까요?
이것 역시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당시 그는 캔자스시티 야구 해설가로 이름을 알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투수에 관한한 독설에 가까운 혹평을 숨기지 않기로 유명했답니다. 그런 일이 반복되자 화가 난 투수들이 ‘그렇게 대단하면 당신이 던져봐라!’라고 성토하자, 진짜 마운드에 올라 보란 듯이 3이닝 무실점 투구를 한 것입니다.
물론 장사 수완이 뛰어난 챨리 오핀리 구단주가 페이지와 1일 계약을 맺은 건 그의 MLB 데뷔전에 대한 기억이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1942년 페이지가 트라이아웃 끝에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 계약하고 데뷔전 마운드에 올랐을 때 무려 7만8000명의 구름 관중이 운집했습니다.
시즌을 3개월 남기고 4만 달러 계약을 한 날이 7월 7일이었는데, 그날이 페이지의 42번째 생일이었습니다.
역시 MLB 최고령 데뷔 기록입니다.
페이지가. MLB에서 뛴 기간은 딱 5년+1경기가 전부입니다.
선발 26경기 포함해 총 179경기에 등판해 28승 31패 33세이브에 평균자책점 3.29라는 평범한 성적의 투수가 무슨 전설의 투수인가 싶지만, 미국 야구계에서는 그는 전설로 회자됩니다.
그의 본명은 르로이 로버트 페이지(Leroy Robert Paige)입니다.
1906년 7월 7일 미국 동남부 앨라배마 주 모빌 시 인근의 깡촌에서 태어났는데, 10남매 중 하나였습니다. 페이지는 늘 “하도 식구가 많아서 이름도 다 못외웠고, 몇째인지도 잘 모른다.”라고 너스레를 떨곤 했습니다.
어려서 기차역에서 손님들 가방 시중을 들며 푼돈을 벌어 ‘책가방’이라는 뜻의 ‘새첼(Satchel)’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돌팔매질의 명수여서 옆 동네와 패싸움의 저격수였고, 말썽을 무던히도 피우다가 12살에 장난감을 훔쳤다가 소년원에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거기서 야구를 배웠는데 그때부터 이미 엄청난 투구 능력을 과시, 5년간 소년원 야구단 스타이던 페이지는 출소 후 곧바로 17세부터 세미프로 팀에서 뛰다가 19세에 니그로리그에 진출합니다.

1920년대 당시 흑인은 MLB에서 뛸 수 없었고, 페이지는 대번 니그로리그의 최고 스타가 됐습니다. 그런데 그는 팀을 계속 떠도는 저니맨이었습니다.
공식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 니그로리그는 수많은 팀과 리그가 짧은 시즌을 치르는 방식이었는데, 모든 팬들이 그의 피칭을 보고 싶어 했고, 모든 팀에서 그를 영입하고 싶어했습니다.
워낙 사람들과 어울리길 즐기고, 또 자신의 피칭을 보고 사람들이 즐기는 걸 좋아하던 페이지는 몸값을 쳐주는 팀이면 어디든 마다않고 계속 마운드에 올랐습니다.
그는 관중 수입의 일부를 인센티브로 받은 최초이자 마지막 선수였는데요, 한 시즌에는 무려 11개 니그로리그 팀에서 던지면서 미국 전역의 흑인 팬들을 만났다고 합니다. 1년 내내 공을 던졌던 것으로 알려집니다.
페이지가 남긴 일화 두 어가지만 소개하겠습니다.
프로야구 경기인테 너무 과장된 거 아니냐 말도 있지만, 실제로 외야수 3명을 모두 앉으라고 하고 삼진으로 이닝을 마무리한 적이 상당히 많았다고 합니다.
가끔 그는 일부러 연속 볼넷으로 베이스를 꽉 채운 뒤 세 타자 연속 삼진으로 이닝을 마무리한 적도 있습니다. 단지 팬들에게 짜릿한 순간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중에 압권인 고의 볼넷이 있습니다.
1942년 니그로리그 월드시리즈 경기에서 갑자기 페이지가 포수 벅 오닐을 마운드로 불렀습니다. 페이지의 말을 들은 포수는 화들짝 놀라 프랭크 덩컨 감독을 불러서는 ‘이 멍청이가 두 명을 거르고 만루에서 조시 깁슨을 상대하겠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깁슨은 페이지의 명성에 버금하는 니그로리그 최고 홈런 타자로 통상 800개 넘는 홈런을 쳤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앞서 언급했지만 슬프게도 니그로리그는 공식기록이 없습니다....
20년 가까이 페이지를 알던 덩컨 감독은 그 말을 듣고는 고개만 끄덕이고 더그아웃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결과는 만루에서 깁슨은 삼구삼진.
그는 종종 경기 첫 6타자 혹은 9타자, 때로는 12타자를 모두 연속 삼진으로 잡겠다고 호언장담하곤 했습니다.
1930년대 버밍엄 배런스와 경기가 처음이었다고 하는데, 첫 6타자를 삼진으로 잡겠다고 공언을 했습니다. 당연히 상대 벤치에서는 온갖 야유와 조롱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런데 5명 연속 삼진을 잡고나자 버밍엄 선수들이 모두 일어나 흰 수건을 흔들었습니다. 그러자 6번째 타자는 내야 뜬공으로 처리.
MLB 최다승 투수는 사이 영으로 통산 511승입니다.
그런데 페이지와 동시대를 살았던 많은 이들이 그가 1000승도 넘게 거뒀다고 주장하고 또 굳게 믿었습니다.
니그로리그는 체계적인 기록이 전혀 남아있지 않기에 새첼 페이지는 더욱 전설 속의 투수가 되기도 했지만. 그 자신의 기억에 따르면 니그로리그 동안 대략 2600경기에 등판했고, 300번 정도의 완봉승과 55번쯤 노히터를 했다고 합니다.
니그로리그 선수로는 최초로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그의 동판에는 ‘수백 승을 거뒀다’라고만 돼 있습니다.

페이지는 1926년 만 스물이 되기 전에 차타누가의 니그로리그 팀에서 시작해 총 24년을 니그로리그에서 뛰었습니다.
계속 팀을 옮겨가며 공을 던졌고, 연투는 문제도 아니었답니다. 겨울에는 윈터리그, 남미리그에서도 뛰었으니 1년 내내 던졌다고 보면 됩니다.
독립리그에서 한 해 104승1패를 했다는 증언도 있었습니다.
엄청난 연투 능력과 함께 당시 MLB 보다 떨어지던 니그로리그 수준을 감안하면 한 시즌 100승이 불가능만도 아니었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실제로 1956년부터 3년간 니그로리그보다 수준이 높다는 트리플A에서 11승, 10승, 10승을 거뒀는데, 당시 그는 만으로 49, 50, 51세였습니다.
20-30대 페이지는 니그로리그의 완전히 가지고 놀았을 것으로 짐작되며, 심지어 2000승을 했다는 주장마저 있습니다.
엄청난 강속구 투수였음은 분명하지만 전성기 페이지가 시속 105마일, 169km를 던졌다는 주장은 근거를 찾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제구력에 관해서는 포수 미트에 앉은 파리를 맞출 정도였다는 증언이 이어집니다.
빅리그에서 은퇴하고 4년 후인 1957년 51세의 페이지는 트리플A 마이애미에서 뛰었습니다.
당시 동료이던 화이티 허조그(후에 명예의 전당 감독)가 외야 담장에 야구공이 겨우 통과할 정도의 작은 구멍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장난삼아 공 박스를 옆에 놓고 구멍으로 공을 던져 넣어보려 했지만 턱도 없었다네요. 그러다가 페이지를 떠올리곤 그 구멍에 공을 통과시킬 수 있는지 위스키 한 병 내기를 하자고 자극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정교한 제구력을 지녔느냐는 질문에 늘 심드렁하게 툭 던지던 그의 대답이 있었습니다.
“뭐, 홈플레이트는 절대 움직이지 않으니까! 그냥 공들고 올라가서 원하는 곳에 던지면 돼. 스트라이크를 던지라고.”
이런 말도 했습니다. “나는 불법 투구를 한 적은 전혀 없었지. 근데 문제는 가끔 우리 시대에 듣도 보도 못한 공을 던졌다는 거지.”
MLB 마지막 4할 타자 테드 윌리엄스는 1966년 자신의 명예의 전당 입당 연설 중 아무도 예상 못했던, 흑인 선수 페이지의 명전 입당을 주장했습니다. 1971년 페이지는 최초의 니그로리그 출신 명전 멤버가 됐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