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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연재] 민훈기의 필드노트 : 꼴찌들의 최고 명승부 – 1991년 월드시리즈 EP.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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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1991년 10월 19일 새벽 미국 미네소타 주 미니아폴리스 공항을 나선 순간의 그 쌀쌀한 상쾌함이 아직도 피부에 와닿는 느낌을 줍니다. 어떤 기억은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때론 그 느낌과 감촉마저 사라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LA에서 밤 비행기를 타고 트윈시티에 도착한 시간은 대략 오전 5시경. 당시 스포츠조선 특파원으로 출장이 잦았는데, 미 서부에서 중동부로 출장을 갈 때는 저렴한 티켓을 구하려고 밤 비행기를 타는 경우가 잦았습니다. 미국에서는 ‘red-eye flight’ 즉 눈이 빨개지는 피곤한 밤새 비행을 의미하는 용어를 쓰기도 합니다.
 
LA와는 달리 날씨가 쌀쌀할 것임을 알고 가죽 잠바까지 입고 갔지만, 여전히 열기가 식지 않던 남부 캘리포니아의 10월과는 달리 그곳은 하얀 입김이 절로 뿜어 나오는 늦가을이었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월드시리즈 취재를 갔던 것이 바로 1991년이었고, 월드시리즈(WS) 사상 역대 최고 승부 중 하나로 꼽히는 미네소타 트윈스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대결을 취재하는 행운을 얻었습니다.

 

그 대단했던 월드시리즈 정리와 함께 두가지 에피소드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지금까지도 역사상 그렇게 팽팽한 WS는 없었다는 평을 듣습니다.
양 팀은 7차전까지 가는 치열한 대결을 펼쳤는데, 경기 내용도 계속 박빙의 승부가 이어지는 치열한 접전이었습니다. 7게임 중에 연장전이 3번, 4게임이 마지막 타자에서 승부가 갈렸으며,  5게임이 1점차로 승부가 났습니다.
사상 두 번째로 홈 팀이 모두 승리를 거두는 진기한 기록을 세우기도 한 1991년 WS는 꼴찌들의 반란이었다는 점에서도 사상 최초였습니다. 브레이브스와 트윈스는 바로 전 90시즌 각각 조 꼴찌로 추락했다가 1년 만에 WS에서 격돌하는 쾌거를 이룬 것입니다.

 

특히 마지막 7차전은 정말 압권이었습니다. 
트윈스는 그 해에 FA로 가세해 팀의 에이스 역할을 톡톡히 해준 우승청부사 베테랑 잭 모리스를 선발로 내세웠고, 애틀랜타는 24세의 신예 우완 강속구 투수 존 스몰츠로 맞불을 놨습니다. 
정규 시즌에 18승을 거둔 모리스는 브레이브스 타선을 계속 0점으로 봉쇄했고, 풀타임 3년차이던 스몰츠(정규 시즌 14승) 역시 이에 뒤질세라 트윈스 타자들을 꽁꽁 묶었습니다. 그러면서 0-0의 스코어는 9회까지 계속됐고, 스몰츠는 교체된 반면에 모리스는 10회까지 계속 던졌습니다. 
그리고 10회말 대타 진 라킨이 황금의 적시타로 댄 글래든을 불어들임으로서 사상 최고로 치열했던 대결은 트윈스의 1-0 승, 그리고 4승3패로 우승을 차지하며 막을 내렸습니다.

 

트윈스는 홈에서 벌어진 1,2차전을 승리하며 기선을 제압했으나, 브레이브스는 쉽게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벼랑에 몰린 3차전 12회의 연장전 끝에 브레이브스는 키 작은 2루수 마크 렘키의 투아웃 적시타로 데이빗 저스티스를 홈으로 불러들여 첫 승을 거뒀습니다. 
4차전에서도 브레이브스는 9회말 대타 제리 윌라드의 끝내기 희생플라이에 이어 5차전은 무려 14대5로 대승하며 분위기를 완전히 반전시켰습니다.

그러나 다시 메트로돔으로 장소가 바뀌자 이번에는 트윈스의 드라마가 시작됐습니다.
6차전 3-3이던 11회말 선두 타자로 나선 트윈스의 수퍼스타 커비 퍼켓은 브레이브스의 좌측 펜스를 넘어가는 끝내기 홈런을 터뜨렸고, 그렇게 7차전의 명승부 드라마가 펼쳐진 것입니다.
 
3경기에 선발 등판해 7차전 연장 완봉승을 비롯, 23이닝을 던지며 2승 ERA 1.17의 36세 잭 모리스는 MVP로 선정됐습니다.

그 명승부를 떠올리면 아직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호머 행키’라는 별명의 하얀 수건을 흔들며 메트로돔을 가득 메운 트윈스 관중들의 열광적인 응원입니다.
경기가 끝나면 인터뷰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 기사 송고를 합니다. 그런데 하이라이트를 보려고 EAPN를 틀고 기사를 쓰는데 이상하게 TV 소리가 웅웅거리고 잘 안 들리는 겁니다. 
처음엔 이유를 몰랐는데 알고보니 그건 바로 5만5000명이 넘는 트윈스 팬들의 열광적인 응원 덕분(?)이었습니다.
소리가 빠져나갈 데가 없는 메트로돔에서 관중들이 내는 응원 소리 측정 결과 제트여객기가 출발할 때 내는 소음 150데시벨보다 더욱 컸다고 합니다. 그러니 그런 소리를 3시간씩 계속 듣고 나면, 경기가 끝나고도 몇 시간이 지나도록 귀가 멍한 상태가 이어졌던 것입니다. 그 메트로돔은 이제 철거돼 사라졌습니다.

 

 

또 한 가지 에피소드는 애틀랜타에서 벌어진 3차전 기자실.
저는 혼자 취재를 갔지만, WS에는 지역 언론의 경우 취재단이 구성되고, 평소 야구 취재를 하지 않던 기자들도 차출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경기 초반 애틀랜타의 안타가 터져나오자 한구석에서 환호성이 들렸습니다. 아마 야구 기자의 취재 관행을 몰랐던 거지요. 야구 기자실은 약간 과장하면 도서관 같습니다. 일체의 응원이나 고성은 들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환호성이 터지자 잠시 후 홍보팀장이 장내 방송을 통해 ‘특정팀을 응원하는 사태가 또 나오면 퇴장 조치합니다.’라는 코멘트를 날렸습니다.
1994년 월드컵 축구도 현장에서 취재했는데, 당시 대한민국과 스페인전에서 앞뒷줄로 쭉 않았던 양국 기자단이 열띤 응원전을 펼치며 취재했던 것과는 너무도 달랐던 기자실 분위기였습니다.

 

1991년 시즌은 ‘꼴찌들의 반란’으로 대단원을 막을 내렸지만 정규 시즌에도 커다란 사건들이 많았습니다.
1편에 소개해드린 ‘대도’ 리키 핸더슨은 5월의 첫 날 939개째 도루를 기록하며 루 브럭이 가지고 있던 메이저리그 최고 기록을 넘어섰습니다. 그의 통산 1406도루는  불멸의 기록으로 여겨집니다. 
바로 그날 강속구 투수의 대명사 놀란 라이언은 토론토를 상대로 만 44세에 역시 깨지기 불가능해 보이는 통산 7번째 노히트 노런을 기록했고, 데니스 마르티네스는 7월28일 LA 다저스에 퍼펙트게임 승을 거두기도 햇습니다. 


그후 봉중근 선수를 만나러 애틀랜타 취재를 갔을 때, 그렉 매덕스가 저를 보더니 데니스 마르티네스와 꼭 닮았다고 한 건 아직도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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