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연재] 민훈기의 필드 노트 : 테드 윌리엄스 EP.02
연재
마지막 4할 타자 테드 윌리엄스의 시즌 마지막 경기
1941년 당시 보스턴 레드삭스의 간판타자이자 ‘타격 기계’ 혹은 ‘타격의 교과서’라고 불렸던 테드 윌리엄스(Theodore Samuel Williams)는 143경기에 나서 456타수 185안타를 치며 4할6리로 타격왕에 올랐습니다.
야구 생애 동안 6번의 타격왕에 올랐고, 19년 통산 타율 3할4푼4리를 기록했던 위대한, 타격의 모든 것을 지닌 왼손타자였지만, 한 시즌 4할 타율을 기록한 것은 1941년이 유일했습니다.
그리고 이 위대한 타자가 4할대 타율을 기록한지 80년도 더 지났고, 타계하신지도 2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MLB에서는 테드 윌리엄스 이후 아직까지 4할 타자는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4할 타자는 아마도 MLB에서 앞으로도 나오지 않을 불멸의 기록이라는 평가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의 마지막 4할 타율 뒤에는 두 가지 알려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마지막 날 경기 출전을 두고 갈등한 고뇌의 이야기와 그리고 당시 규정 때문에 깎여버린 그의 타율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시즌 마지막 날을 남기고 윌리엄스의 타율은 3할9푼9리5모5사- .39955
반올림하면 당연히 4할이었습니다. 윌리엄스는 시즌 막판에 약간의 슬럼프를 보였고, 감독을 비롯해 주위에서는 마지막 날 필라델피아와의 원정 더블헤더에 결장을 권유했습니다.
벤치에 앉아만 있어도 ‘꿈의 타율’인 4할을 기록할 수 있었으니까요.
당시 상황에 대해 윌리엄스 자신이 직접 회고한 이야기를 옮겨 봅니다.
우리는 필라델피아와의 더블헤더를 남기고 있었다.
날이 선선해질수록 나는 슬럼프에 빠졌다. 6월에는 4할3푼6리를 쳤는데 8월말에는 4할2리로 떨어졌다. 9월에 4할1푼3리로 조금 올랐지만 마지막 열흘간 내 타율은 매일 거의 1리씩 떨어졌다. 내 타율은 이제 겨우 4할에 턱걸이하고 있었다. 크로닌 감독을 비롯해 주위에서는 마지막 날 경기에 나가지 말 것을 권했다. 당시는 그런 일이 빈번했다.”
그의 증언은 계속됩니다.
주변의 만류도 있었고, 떨어진 타격감에 대한 부담, 그리고 무엇보다 4할 타율에 대한 욕망이 당연히 있었겠지요.
그리고 야구에서 기록을 위한 시즌 막판 경기 출전 포기는 최근까지도 왕왕 발생하던 일이었으니까요.
그러나 자존심 강하기로도 역대 최강급인 윌리엄스는 설령 4할을 못치더라도 마지막까지 정정당당한 승부를 선택했습니다.
드디어 1941년 시즌의 마지막 날인 9월 28일, 전날 토요일에 비가 와 일요일 더블헤더가 잡혔는데 정말 춥고 끔찍한 날씨였다고 합니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1만 명의 관중이 쉬비파크에 모였습니다. ‘The Kid’라는 애칭으로 불리던 테드 윌리엄스가 과연 4할 타자가 될 것인지에 모든 팬들과 야구계의 시선이 쏠렸습니다.
결론으로 바로 가면 그날 ‘The Kid’는 8타수 6안타를 치며 4할6리의 타율로 시즌을 마쳤습니다. 1차전에서 5타수 4안타를 몰아쳤고, 2차전에서도 3타수 2안타를 쳤습니다.
1930년 빌 테리 이후 11년 만의 4할 타자였고, 그리고 84년 동안 더 이상 MLB에서 4할 타자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당당하고 멋지게 4할 타자에 등극한 윌리엄스였지만, 만약 야구 규정이 요즘과 같았더라면 윌리엄스는 마지막 날 성적을 걱정할 필요도 없었을 것입니다.
바로 ‘희생플라이(sacrifice fly)’라는 규정의 변화 때문입니다.
타석에 나선 타자가 뜬공을 보내 아웃돼도 3루상의 주자를 불러들인다면 타점 획득과 함께 그 타석은 타수에서 빠진다는 것이 희생플라이 규정이죠.
그런데 이 규정은 야구 역사에서 몇 차례가 포함됐다 빠졌다를 반복했습니다.
처음 희생플라이 규정이 도입된 것은 1893년이었습니다.
투수판부터 홈플레이드까지의 거리가 60피트6인치, 18.44미터로 정해져서 야구의 원년이라고 불리는 바로 그 해에 희생플라이 규정도 함께 도입이 됐었습니다.
그런데 1931년에 이 규정은 제외됐다가 1939년에 다시 도입되는 등 몇 차례 들락날락을 반복합니다.
그리고 윌리엄스가 마지막 4할 타자가 됐던 1941년에는 희생플라이가 적용되지 않았던 시즌이었습니다.
야구역사가들은 그 시즌에 윌리엄스가 14개의 희생플라이를 친 것으로 밝혀냈습니다. 만약 오늘날처럼 규정이 적용됐더라면 테드 윌리엄스의 타율은 4할6리가 아니라 4할1푼9리였습니다.
이 규정이 적용돼 그의 타율이 넉넉히 4할을 넘었더라도 물론 윌리엄스는 마지막 더블헤더에 출전했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는 불멸의 타격 능력만큼이나 정정당당한 자존심으로 뭉친 타자였기 때문입니다. 대단한 고집쟁이이기도 했고요!
*테드 윌리엄스에 대한 일화들을 나누자면 아마 원고지 수백장이 필요할 겁니다. ^^
그런데 이랜드뮤지움 스토리에 ‘카드읽어주는남자’ 님께서 ‘테드 윌리엄스에게 보내는 짧은 편지’라는 아주 감성적이면서 많은 내용과 스토리를 담은 멋진 이야기를 쓰신 걸 봤습니다. 테드 윌리엄스에게 관심이 가시는 분들께는 일독을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유튜브 민훈기의 인생야구에 KBO리그 25시즌 각팀 리뷰를 하고 있습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방문해주세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