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 커크 깁슨 & 2020 무키 베츠
다저스는 1977년, 1978년 2년 연속으로 월드시리즈에서 양키스에게 패했다. 하지만 1981년에는 페르난도 발렌수엘라를 앞세워 양키스를 꺾고 우승했다.
다저스는 1983년과 1985년에도 서부지구 우승 팀이 됐다. 하지만 필리스와 카디널스에게 패해 월드시리즈 진출이 무산됐다. 1986년, 1987년 2년 연속으로 5할 승률도 하지 못하게 되자, 분위기를 바꿔줄 선수가 절실했다.
1984년 PS에서의 대활약으로 디트로이트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끈 커크 깁슨은 1985년 시즌이 끝나고 FA가 됐다. 하지만 형편 없는 계약으로 디트로이트에 남아야 했다. 당시 구단주들이 서로의 FA에게 제안을 하지 않기로 담합한 결과였다.
메이저리그는 조사에 착수했고 담합 사실을 1988년 1월에 밝혀냈다. 피해를 입은 7명의 선수에게는 시즌 후 FA 자격을 부여했다. 깁슨도 포함되어 있었다.
덕분에 1987년 중반에 깁슨을 트레이드로 데려오려고 했던 다저스는 시즌이 끝나고 깁슨과 FA 계약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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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시즌이 끝나고 다저스는 보스턴에서 무키 베츠를 데려왔다. 베츠는 2018년 아메리칸리그 MVP였고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끌었지만, 보스턴은 재계약에 실패한 그를 트레이드했다.
2020년은 다저스에게 중요한 시즌이었다. 다저스는 2017년과 2018년 월드시리즈에서 2년 연속 패한 데 이어, 2019년에는 디비전시리즈조차 통과하지 못했다. 최종 5차전의 승리를 앞두고 있었지만, 불펜으로 등판한 커쇼가 백투백 홈런을 맞아 동점을 허용했고, 조 켈리가 연장 이닝에서 하위 켄드릭에게 만루홈런을 맞았다.
2020년 다저스는 1980년 이후 40년 만에 개최하는 올스타전을 위해 1억 달러를 넘게 들여 구장을 단장했다. 2019년에 397만 명의 관중을 유치했기 때문에 창단 첫 400만 관중애 대한 기대도 컸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한 시즌 축소는 모든 것을 망쳤다.
3월 말에 열리기로 했던 시즌이 7월 말로 연기됐을 때, 다저스는 베츠에게 12년 3억6500만 달러의 종신 계약을 줬다. 무이자 지급 유예를 반영하면 계약의 가치가 3억600만 달러가 돼 무려 16%의 감소가 일어났지만, 베츠는 FA가 되는 걸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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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다저스의 별명은 스턴트 팀(The Stunt Men)이었다. 스타급 선수는 많지 않았지만 미키 해처, 릭 뎀시, 데이브 앤더슨 같은 후보급 선수들이 더 주목을 받으면서 주연을 대신해 위험한 장면을 소화하는 스턴트맨 같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었다. 이들은 유쾌하고 시끌벅적한 클럽하우스 분위기를 주도했다.
깁슨이 다저스에 왔을 때 베테랑 투수인 제시 오로스코는 깁슨의 모자 안쪽에 아이블랙을 잔뜩 묻혀 놓는 장난을 쳤다. 깁슨이 모자를 쓰자 아이블랙이 얼굴로 흘러내렸고, 선수들은 폭소를 터뜨렸다. 다저스 다운 신고식이었다.
하지만 깁스는 웃음기 하나 없는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이기러 온 것이지, 광대 짓을 하러 온 게 아니다. 한 번만 더 이딴 장난을 치면 가만있지 않겠다."
팀이 새로 영입한 최고 스타의 일갈에, 선수들은 많이 놀랐지만 깁슨이 한 말의 의미를 충분히 이해했다. 이후 다저스의 클럽하우스는 여전히 시끄러웠지만, 경기 중에는 한없이 진지했다. 깁슨이 만든 변화였다.
깁슨은 말로만 끝내지 않았다. 1988년 내셔널리그 MVP가 됐고, 리그챔피언십시리즈에서 양 다리를 다쳐 제대로 설 수도 없는 상황에서, 월드시리즈 1차전 9회말에 대타로 등장해 역사적인 역전 끝내기 투런을 터뜨렸다. 희생양은 당대 최고의 마무리인 데니스 에커슬리였다.

베츠는 2020년 2월 첫 훈련이 끝난 후 갑자기 선수들 앞에 나서 연설을 했다. 베츠는 "우리는 매일 훈련을 마치고 <승리를 위해 오늘은 무엇을 했나>를 스스로에게 되물어야 한다. 재능만 믿고 1루까지 설렁설렁 뛰는 모습은 그만보고 싶다"며 자칫 위험할 수도 있는 발언을 했다.
다저스에는 당대 최고의 투수인 클레이튼 커쇼와 팀의 리더인 저스틴 터너가 있었기 때문에 제 아무리 MVP 출신 슈퍼스타라 해도, 첫 미팅에서 이런 말을 한다는 건 많이 위험할 수 있었다.
2005년 알렉스 로드리게스는 양키스에 합류한 후 텍사스에 있을 때처럼 행동했다가 양키스 선수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그런 역할을 하고 있는 선수가 이미 있었기 때문이었다(데릭 지터).
지난해 역사적인 계약을 맺고 메츠에 입단한 후안 소토는 진지한 팀 분위기를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프란시스코 린도어가 만든 분위기가 자신의 생각과 정반대였기 때문이었다.
베츠의 말이 끝났을 때 원래대로라면 2005년 양키스 같은 반응이 나와야 했다. 하지만 커쇼와 터너가 먼저 "맞다. 무키가 한 말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말이었다"며 베츠를 지지하고 나섰다. 푸이그가 떠나긴 했지만 여전히 부산했던 다저스의 분위기가 잡히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베츠는 말로만 끝내지 않았다. 다저스는 NLCS에서 1승3패 후 3연승으로 애틀랜타를 꺾었다. 시리즈 MVP는 카일 시거였지만, 베츠는 5차전-6차전-7차전에서 세 경기 연속으로 분위기를 바꾸는 미친 수비를 했다.
월드시리즈 MVP도 시거였다. 하지만 베츠는 1-1로 맞선 6차전에서 미친 질주로 역전 득점을 만들었다. 맥스 먼시의 땅볼을 잡은 최지만이 홈으로 빠르게 공을 뿌렸지만, 몸을 날린 베츠가 먼저 들어왔다. 베츠는 8회말 3-1로 달아나는 솔로홈런을 날려 다저스의 우승을 완성했다.
베츠가 입단한 2020년 이후 다저스는 세 번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2024년과 2025년 우승은 오타니와 야마모토의 역할이 컸지만, 베츠가 입단한 후 분위기가 달라진 것, 베츠가 입단한 후 우승이 시작된 건 우연의 일치가 아니었다.
그 사이 베츠는 우익수에서 유격수로 변신했다. 6개의 골드글러브를 따낸 우익수가 31세 시즌에 유격수가 된 충격적인 일이 일어났다.
2020년 7월22일. 베츠는 시즌 개막을 하루 앞두고 12년 계약에 합의했다. 왜 FA가 되기를 포기하고 다저스와 종신 계약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한참이 지난 후 이렇게 말했다.
"내가 2월에 그런 말을 했을 때, 선수들이 보여준 태도와 그들이 보여준 우승에 대한 강한 열망을 보면서 이 팀은 내가 은퇴할 곳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12년 계약의 6년차에 접어드는 올 시즌에 앞서, 베츠는 두 가지 향후 목표를 밝혔다.
12년 계약을 마치고 은퇴하는 것.
은퇴할 때까지 다저스의 유격수로 남는 것.
베츠는 다저스가 얻은 보물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