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스토리

위대한 유격수의 가장 완벽한 은퇴

bigtrain
2
  72
2026-02-24 04:30:55

1992년 메이저리그 드래프트의 1순위 후보 세 명은 서던캘리포니아대학 3루수 필 네빈, 노스캐롤라이나대학 에이스 폴 슈이, 미시건주 고교 유격수 데릭 지터였다. 1순위 휴스턴은 네빈을 지명했다.

 

당시만 해도 휴스턴이 네빈을 택한 건 당연하다는 반응이었다. 골든스파이크상 수상자인 네빈은 누가 보더라도 가장 안전한 선택이었다.

 

지터는 실패 위험성이 큰 고교 선수였으며, 너무 말랐던 데다, 유격수를 하기에 어깨가 약하다는 평가도 있었다(양키스 내에서도 지터를 반대하는 의견이 존재했다). 지터의 에이전트가 계약금 100만 달러를 주지 않으면 미시건대학에 진학할 거라고 엄포를 놓은 반면 구단 매각이 진행 중이었던 휴스턴은 돈을 많이 쓰기가 어려웠다.

 

1순위 휴스턴이 네빈, 2순위 클리블랜드가 슈이 뽑으면서, 지터를 노리고 있었던 6순위 양키스에게 희망이 생겼다. 이제 남은 팀은 세 팀. 3순위 몬트리올, 4순위 볼티모어, 5순위 신시내티까지 모두 대학 선수를 택하자, 양키스의 드래프트 룸에는 환호성이 터졌다.

 

"저 아이는 미시건(대학)이 아니라 쿠퍼스타운(명예의 전당)으로 직행할 것"이라며, 지터의 성공을 장담한 양키스 스카우트 딕 그로치는, "지터와 계약을 이끌어내지 못하면 스카우트를 은퇴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완강했던 지터의 아버지를 만나 "뉴욕은 당신의 아들을 진정한 스타로 만들 준비가 되어 있다"며 설득하고 또 설득했다. 지터가 받은 계약금은 1순위 네빈과 같은 70만 달러였다.

 

지터는 미시건에서 자랐지만 양키스 팬이었다. 뉴저지에 살고 있는 외할머니 덕분이었다. 지터는 방학이 되면 뉴욕을 방문했고, 미키 맨틀의 열성 팬인 할머니와 함께 양키스타디움 관중석에 앉아 양키스의 역사를 공부했다. 어린 지터의 꿈은 양키스 유격수였다.

 

1995년 지터는 메이저리그에서 손꼽히는 유망주가 됐다. 벅 쇼월터 감독은 스프링 트레이닝에서 지터를 본 후 장비 담당자를 불러 "미래 이 팀의 상징이 될 저 친구를 위해, 2번을 준비해 놓게"라고 했다. 유망주들은 대부분 높은 등번호를 달고 데뷔했다가, 자리를 잡은 후 낮은 번호로 바꾼다. 하지만 지터는 쇼월터 감독의 선견지명 덕분에 처음부터 2번을 달고 시작했다. 이로써 양키스는 2번 지터, 3번 루스, 4번 게릭, 5번 디마지오, 7번 맨틀이라는 황금 수열이 완성됐다(맨틀은 6번이 부담스럽다며 7번을 골랐다).

 

위대한 유격수의 가장 완벽한 은퇴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2014. 데뷔 20년차이자 40세 시즌을 맞이한 지터는 시즌 후 은퇴를 선언했다. 14번째로 참가한 올스타전에서는 2타수2안타를 기록하고 교체됐는데, 올스타전 역대 최고령 멀티히트였다. 지터는 통산 두 번째 올스타전 MVP가 되나 싶었지만, 떠오르는 신성 마이크 트라웃이 2루타와 3루타를 기록하고 MVP를 가져갔다.

 

925일 양키스타디움에서 열린 마지막 홈 경기는 역사상 최고의 은퇴 경기였다. 양키스가 5-2로 앞선 9회초. 마무리 데이빗 로버슨이 등장할 때만 해도, 지터는 마지막 홈 경기를 4타수1안타 3삼진으로 마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로버슨은 뭐에 홀리기라도 한 듯, 애덤 존스에게 투런, 스티브 피어스에게 솔로홈런을 맞고 5-5 동점을 허용했다. 지터는 한 타석을 더 나서게 됐다.

 

선두타자 피렐라가 안타를 치고 나가자, 지라디 감독은 가드너에게 희생번트를 지시했다. 12루에서 등장한 지터는, 영화와 같은 끝내기 안타를 날림으로써 가장 완벽한 피날레를 만들었다. 테드 윌리엄스는 마지막 홈 경기 마지막 타석에서 홈런을 때려냈지만, 승패와 무관한 홈런이었다.

 

끝내기를 맞은 투수 에반 믹은 "최선을 다한 승부였다. 하지만 양키스타디움의 분위기에 나조차도 지터가 안타를 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지터에게 마지막 안타를 허용한 투수로 기억되는 건 내게 큰 영광이며, 야구 역사의 한 페이지에 내 이름이 함께 적힌다는 사실이 기쁘다"고 했다.

 

그 경기는 지터가 유격수로서 2660번째 선발 출장을 한 경기였다. 2609경기인 오마 비스켈을 제치고 역대 최다 선발 출장 유격수가 된 지터는 "오늘이 유격수로서 마지막 날"이며 마지막 시리즈에는 유격수로 출전하지 않겠다고 했다.

 

양키스의 마지막 시리즈는 운명적이게도 펜웨이파크 원정이었다. 보스턴 구단은 20년 동안 자신들을 괴롭힌 지터의 마지막에 온 정성을 쏟았다. 보스턴이 지터를 위해 초대한 사람들에는 팀의 전설들인 칼 야스트렘스키, 짐 라이스, 프레드 린, 루이스 티안트, 리코 페트로첼리 등이 있었고, 보스턴 브루인스의 바비 오어,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의 트로이 브라운, 보스턴 셀틱스의 폴 피어스도 경기장을 찾아 지터의 마지막을 축하했다.

 

보스턴은 지터에게 2루 베이스 등 많은 선물을 안겼다. 그리고 지터의 재단(Turn 2 Foundation)22222달러22센트를 기부했다. 지터가 20년 동안 쓴 방망이는 루이빌 슬러거의 P72 모델이었다. 루이빌 슬러거는 해당 규격의 이름을 P72에서 DJ2로 바꾸었다.

 

지터는 최고의 인기 스타였지만, 순수 실력은 노마 가르시아파라와 알렉스 로드리게스보다 못하다는 평가였다. 하지만 가르시아파라는 유격수로 1000경기 출장에 그쳤고, 역대 최고의 유격수가 될 것으로 기대됐던 로드리게스는 22년을 뛰고 696개의 홈런을 날렸지만 대신 명예를 잃었다. 명예의 전당 투표에서 지터가 한 표가 모자라 만장일치를 달성하지 못한 반면(99.7%), 로드리게스는 10번 중 5번째로 진행된 투표에서 40.0%에 그쳐(헌액 기준 75.0%) 탈락이 예상되고 있다.

 

우리 시대 최고의 유격수는 가르시아파라도, 로드리게스도 아닌, 20년 동안 한 팀에서 유격수로 뛴 지터였다.

0
댓글
댓글 남기기
로그인 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