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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강렬했던 1회 WBC 대한민국 드림팀 현장 취재기

minki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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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28 07:52:24

 

2006년 초 전 세계 야구계는 술렁이는 기대감으로 흥분됐습니다.

WBC -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이라는, 흡사 축구 월드컵과 유사한 대회가 미국 주도로 처음 개최를 앞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직 축구 월드컵이나 올림픽 같은 세계적인 관심을 끌지는 못했지만, 야구인들에게는 엄청난 이벤트의 시작이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현재 WBSC(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에 가입된 나라는, 계속 약간씩 변화가 있기는 하지만, 야구가 약 150개국, 소프트볼 130개국 등 합치면 총 190개국 정도가 됩니다.

 

특히 종전의 다른 야구 대회와는 달리 미국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대거 출전한다는 면에서 큰 관심을 끌 만했습니다.
그해 MLB의 국가별 선수를 보면 미국이 612명으로 당연히 압도적으로 많았고, 도미니카공화국이 108명, 베네수엘라 51명, 푸에르토리코 37명, 멕시코 20명, 캐나다 15명 등이었습니다. 
동양권에서는 일본이 13명, 대한민국이 5명, 대만이 2명으로 대한민국은 쿠바(8명), 파나마(6명)보다 적었습니다.

강렬했던 1회 WBC 대한민국 드림팀 현장 취재기
©️ 2006년 MLB 각 국가별 선수 인원
 

그렇기에 대한민국은 박찬호, 김병현, 서재응, 김선우, 최희섭 등이 MLB에서 활약했지만, 아직 야구 변방 정도로 여겨졌고, 대회 성적에 대한 기대치도 그다지 높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WBC 1회 대회부터 대한민국 야구는 전 세계 야구계에 강한 인상을 심어주며 야구 강국으로 발돋움하기 시작합니다.
특히 미국과 정상을 다투던 일본을 두 번 연속으로 꺾고, 미국도 2라운드에서 잡는 등 극적인 경기들이 많았습니다.

 

6연승 끝에 1패 하며 3위에 올랐던 당시 7경기를 차례로 소개합니다.

강렬했던 1회 WBC 대한민국 드림팀 현장 취재기
©️WBC 취재증
 
1차전 vs. 대만 (06-03-03 도쿄돔)

드림팀은 A조에 속해 도쿄돔에서 예선을 시작했는데 첫 상대는 대만.
당시까지 대만은 쉽게 볼 수는 없지만 그래도 한국보다는 한 수 아래의 팀으로 여겨졌습니다.
반드시 잡아야 할 이 경기에서 마운드는 서재응을 시작으로 김병현, 구대성 그리고 마무리 박찬호까지 해외파들의 역투 속에 대만 타선을 0점으로 묶었습니다.

타선은 홍성흔과 이종범이 각각 적시타를 때리며 계속된 기회 무산을 딛고 소중한 첫 승리를 거뒀습니다.
그런데 김동주가 1루에서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을 하다가 어깨 파열의 부상으로 큰 악재도 있었습니다. 

 

2차전 vs. 중국 (06-03-04 도쿄돔)

대진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1차전 대만을 잡은 후 최약체인 중국을 2차전에 만나 10-1로 완승했습니다. 
이승엽인 홈런 2개 포함 4타수 4안타 5타점으로 날았고, 드림팀은 10득점 중에 희생플라이로 3점을 올리는 등 공격라인은 효율적이었습니다. 이병규 이종범도 2안타씩.
마운드는 손민한, 박명환, 정재훈, 정대현, 오승환 등 국내파들이 나서 정재훈이 1점 홈런 하나를 맞았지만 1실점으로 중국 타선을 막았습니다.

 

3차전 vs. 일본 (06-03-05 도쿄돔)

김선우가 선발로 나선 이 경기는 두 팀 모두 2라운드 진출을 확정한 가운데 자존심 대결. 드림팀은 '30년 발언'의 이치로 때문에 더욱 승부욕을 보였지만 초반 0-2로 끌려갔습니다.
3회초 만루 찬스에서 이승엽이 와타나베에게 타이밍을 뺐기며 범타로 물러난 첫 기회를 놓쳤습니다. 그러나 곧바로 3회말 2사 만루의 위기에서 우익수 이진영이 니시오카의 싹쓸이성 강한 타구를 몸을 날리며 잡아내는 극적인 수비로 분위기 반전에 성공했습니다. '국민 우익수' 탄생의 순간.

 

5회초 이병규의 희생플라이로 1-2로 추격한 가운데 봉중근과 배영수가 이어 던지며 실점을 막았습니다. 7회말 배영수가 선두 이치로의 엉덩이를 맞추자 곧바로 구대성 투입해 불을 껐습니다.
그리고 8회초 이종범이 안타를 치고 나가자 앞서 두 번의 타점 기회를 놓쳤던 이승엽이 이시이에게 라인드라이브 우월 역점 홈런을 쳐내 기어이 3-2로 승부를 뒤집었습니다. '약속의 8회'가 신화가 되는 정점이었습니다.

 

9회말 투아웃 박찬호가 이치로를 범타로 잡아내며 경기를 마무리 지었습니다. 일본 야구의 심장부 도쿄돔이 충격의 침묵에 빠진 순간이었습니다.

 

4차전 vs. 멕시코 (06-3-13 미국 애너하임 에인절스구장)

예선을 1위로 통과해 미국 LA 인근 애너하임으로 자리를 옮겨 만난 첫 상대는 다크호스로 꼽히던 멕시코. 이때부터는 저도 현장에서 취재했습니다.
무려 4만2,979명의 유료 관중이 몰렸고, 응원 열기는 앞서 열린 미국-일본전의 10배는 되는 거 같았습니다. 교민들이 집결하며 실제로 미-일전보다 1만명 이상의 관중이 입장했습니다.

 

꽤나 쌀쌀했던 기억이 생생한 그 날 경기는 선발 서재응이 롯데에서 뛴 커림 가르시아를 삼진으로 잡고 삼자범퇴로 시작됐고, 1회말 분위기가 확 갈렸습니다.
1번 이병규 10구 끝에 아웃됐지만 2번 이종범은 9구 끝에 좌전 안타. 그리고 3번 이승엽도 풀카운트의 접전 끝에 밀려 들어온 로드리고 로페스의 체인지업을 잡아당겨 우측 담장을 넘겨버렸습니다. 3경기 연속 홈런.
로페스는 1회에만 38구를 던졌고, 우리 타선은 이날 46개의 파울볼을 쳤습니다. 당시 MLB 2시즌 동안 29승을 거뒀던 로페스는 경기 후 '날씨가 쌀쌀해 약간 힘들었지만, 실투성 체인지업을 타자가 제대로 받아쳤다.'라고 했습니다.

 

마운드는 서재응이 5.1이닝 무실점에 이어 구대성, 정대현, 봉중근, 그리고 박찬호까지 위기를 넘기며 5피안타 9탈삼진 1실점으로 극적인 승리를 뒷받침했습니다. 양팀 합쳐 10안타에 14탈삼진 그리고 볼넷은 단 1개였던 대단한 투수전이었습니다. 기자실에 앉아 연신 손의 땀을 닦았습니다.

 

드림팀은 4차전까지 팀 ERA 1.00에 철벽 수비로 무실책을 이어갔습니다.

강렬했던 1회 WBC 대한민국 드림팀 현장 취재기
©️ 애너하임 멕시코전 앞두고 워밍업 하는 드림팀
 
5차전 vs. 미국 (06-03-14 미국 애너하임 에인절스구장)

김인식 감독의 용병술과 선동열 투수코치의 투수진 운영, 그리고 이승엽의 놀라운 홈런 행진과 대타 최희섭의 결정타까지.
모두가 패배를 예상한 최강 미국전에서 이승엽은 1회말 선발 돈트렐 윌리스의 속구를 때려 우측 담장을 넘겨버렸습니다. 기자실 장내 아나운서는 곧바로 'LEE 4경기 연속 홈런에 5개째 홈런으로 WBC 1위'라는 코멘트를 했습니다.

 

4회말 2사 후 김민재가 2루타를 치고 나가자 미국 마르티네스 감독은 이승엽을 걸렀습니다. 그러자 김인식 감독은 우타 김태균 대신 우완 휠러 상대로 대타 최희섭을 냈습니다. 강력한 한방의 대타 요원을 경기 중반도 전에 투입한 건데, 최희섭은 휠러의 3구째를 힘으로 잡아당겨 우익수 버논 웰스를 지나 우측 담장을 넘기는 결정적인 3점 홈런을 터뜨렸습니다. 맞는 순간은 그저 뜬공으로 잡히나 했는데 역시 빅초이의 파워는 대단했습니다.

 

마운드는 손민한이 1회초 만루 위기에서 베리텍을 삼진을 잡은 후 김병현, 구대성, 그리고 전병두, 정대현, 오승환 등 당시 젊은 투수들이 뒤를 받치며 7-3 승리를 지켰습니다. 미국 핵심 타자 치퍼 존스는 이날 4타석 모두 다른 유형의 우리 투수들을 상대해야 했고, 마르티네스 감독은 그런 부분들이 타자들을 힘들게 했고, 박진만-김민재 키스톤 콤비의 철벽 수비도 대단했다고 경기 후 말했습니다.

강렬했던 1회 WBC 대한민국 드림팀 현장 취재기
©️ 우승후보 미국을 꺾고 기쁨 만끽
6차전 vs. 일본 (06-03-15 미국 애너하임 에인절스구장)

열흘 만에 다시 만난 일본은 잔뜩 설욕을 노렸습니다.
이미 도쿄에서 그들을 꺾은 우리 선수들도 당연히 연승을 다짐했습니다.

 

1996년부터 MLB 풀타임 취재를 하면서 한 시즌 거의 200경기씩을 현장 취재했고, 박찬호의 첫 승, 김병현의 첫 세이브를 비롯해 서재응, 김선우, 조진호, 이상훈 등 무수한 경기를 MLB 기자실에서 취재했습니다.
그러나 1회 WBC처럼, 그리고 특히 그날 일본과의 2차전처럼 손에 땀을 쥐며 본 경기는 처음이었던 거 같습니다. 손바닥 땀을 닦으려고 준비해 놓은 냅킨이 이내 동이 났을 정도였으니까요.

박찬호와 와타나베의 선발 맞대결로 경기는 시작됐습니다.
그리고 그 경기의 터닝포인트는 도쿄 첫 대결처럼 수비에서, 그것도 이진영이 만들었습니다.
2회말 선두 이와무라의 빗맞은 타구가 내야 안타로 연결됐고, 투아웃 주자 2루에서 사토자키의 우전 안타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우익수 이진영이 원바운드로 정확히 포수 조인성에서 연결했고, 몸을 날리는 태그로 홈인 직전에 아웃.

 

이후 팀타율 .337로 대회 최강이던 일본 타선을 박찬호가 잘 틀어막았지만, 한국 타선도 다시 만난 와타나베에게 역시 고전했습니다.
그리고 8회초 1사 후 2명의 우리 주자가 진루하자 오 사다하루 감독은 3번째 투수 후지카와를 올렸습니다. 그리고 이종범의 2타점 3루타가 터지며 0의 균형이 깨졌습니다.
9회에 일본이 1점을 추격했지만, 오승환이 대타 이라이와 타무라를 연속 헛스윙 삼진으로 잡으며 전력 면에서 꽤나 앞서 보이던 일본을 연파했습니다. 두 경기 연속 1점차 승리의 그야말로 긴장감 터질 듯한 승부였습니다.

강렬했던 1회 WBC 대한민국 드림팀 현장 취재기
©️ 1회 WBC 미국 야구장을 가득 메웠던 태극기와 교민, 유학생들
 

이날도 애너하임 구장에는 3만9,679명의 관중이 운집했고, 적어도 3만명 이상은 한국 교민과 유학생 등으로 보였습니다.
태극기 물결과 이어지는 '대~한민국' 환호성 그리고 경기전 울려 퍼진 관중석의 애국가 합창은 이미 가슴이 터질 듯했습니다.
 
6연승으로 조 1위 확정에 준결승리그 1승 2패가 된 일본은 탈락이 유력해 보였습니다.

강렬했던 1회 WBC 대한민국 드림팀 현장 취재기
©️ 애너하임 일본전 승리 후 기뻐하는 드림팀
 
7차전 vs. 일본 (06-03-19 샌디에이고 펫코파크)

 

한 대회에서 같은 팀을 3번이나 만난다는 건 좀처럼 드문 일입니다.
게다가 대진 꼼수를 부리던 주최국 미국이 멕시코에 잡히면서 탈락 위기에서 득실차로 일본은 기사회생. 
그런데 반대편 조도 아닌 같은 조 1위였던 무패의 우리 드림팀을 또 만나는, 당시 큰 논란이던 대진 속에 대한민국과 일본 야구팀은 1회 WBC에서 3번째 맞대결을 펼쳤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드림팀은 0-6으로 이 대회 첫 패했고, 그와 함께 결승행이 좌절됐습니다.
이미 대회 3패를 했던 일본은 그 승리로 결승전에 진출했습니다.

 

이 경기에서 선발 서재응은 호투했고, 일본 선발 우에하라 역시 실점을 하지 않았습니다.
일본이 6회 1점을 냈지만 1점차 승부가 이어졌는데, 8회에 일본이 대거 5득점하며 승부의 추가 기울었습니다. 후쿠도메의 대타 홈런이 컸고, 구대성이 담 증세로 출전하지 못한 아쉬움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드림팀은 7경기 무실책의 철벽 수비와 대회 최고승률팀이라는 기세와 함께 전 세계에 'KOREA BASEBALL'을 다시 보게 만드는 강인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이어진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전승 금메달과 WBC 2회 대회의 준우승 선전 등으로 한국 야구는 전성기로 가는 발판을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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