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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니(Penny)’ 혹은 ‘앤퍼니 하더웨이’에 대하여

카드 읽어주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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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24 03:28:55
‘페니(Penny)’ 혹은 ‘앤퍼니 하더웨이’에 대하여

 

‘페니(Penny)’ 혹은 ‘앤퍼니 하더웨이’에 대하여
‘코트 위 페니’ ‘주머니 속 페니’의 다른 듯 같은 운명

 

 

 

 

 

‘페니(Penny)’ 혹은 ‘앤퍼니 하더웨이’에 대하여

ⓒ United States Mint

 

 

‘페니(Penny)’라고 불리는 미국의 1센트(Cent) 동전 앞면에 새겨진 인물은 미국의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이다. 1909년 링컨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처음으로 인물 초상이 들어간 1센트 주화가 발행된 것이다.

 

하지만 뒷면의 디자인에 관심을 갖는 이들은 많지 않다. 1909~1958년 발행된 1센트 뒷면에는 근면·번영·풍요를 상징하는 밀 이삭이 양옆에 새겨져 있고, 1959~2008년 발행된 1센트 뒷면에는 워싱턴 D.C. 링컨 기념관이 그려져 있다. 이 동전의 중앙을 자세히 보면 가운데에 링컨 동상까지 자리 잡고 있다.

 

 

 

 

‘페니(Penny)’ 혹은 ‘앤퍼니 하더웨이’에 대하여

ⓒ United States Mint

 

2009년에는 링컨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 동전의 뒷면을 4가지 버전으로 디자인했다.

  • 출생과 유년기(Birth and Early Childhood in Kentucky, 1809~1816)
  • 청년기(Formative Years in Indiana, 1816~1830)
  • 성장과 정치활동(Professional Life in Illinois, 1830~1861)
  • 대통령 시절(Presidency in Washington, D.C., 1861~1865)

 

2010년부터는 미국 건국의 또 다른 상징인 ‘연방방패(Union Shield)’로 대체했는데, 방패에는 초기 연방국 가입한 주를 상징하는 13개의 줄무늬가 있다. ‘다수가 모인 하나’라는 뜻의 라틴어 ‘E PLURIBUS UNUM’ 글귀도 적혀 있다.


지금부터 써 내려갈 내용은 작은 동전의 앞면과 뒷면, 그리고 옆면에 관한 이야기다.

 

 

 

 

 

 

 

Lucky Penny


미국에는 페니를 주우면 행운이 온다는 속설이 있는데, 1993년 NBA 코트 위에도 행운의 페니 하나가 떨어졌다.

 

 

 

 

‘페니(Penny)’ 혹은 ‘앤퍼니 하더웨이’에 대하여

ⓒ 카드 읽어주는 남자

 

동전을 주운 팀은 1989년 창단한 신생팀 올랜도 매직(Orlando Magic).

동전의 앞면에 새겨진 얼굴은 앤퍼니 하더웨이(Anfernee Hardaway).
그리고 사람들은 그를 페니(Penny)라 불렀다.

 

 

 

 

‘페니(Penny)’ 혹은 ‘앤퍼니 하더웨이’에 대하여

ⓒ Getty Images

 

‘페니’는 어린 시절부터 그의 할머니인 루이즈 하더웨이(Louise Hardaway)의 손에서 자랐다. 할머니가 어린 손자를 부르던 애칭이 별명으로 굳어진 건데, ‘Penny’에는 작고 소중하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어 아이·손자의 애칭 또는 반려동물의 이름으로 자주 쓰인다.

 

 

 

 

‘페니(Penny)’ 혹은 ‘앤퍼니 하더웨이’에 대하여

ⓒ Getty Images

 

1993년 6월 30일은 NBA 드래프트가 예정된 날이었다. 하지만 드래프트 이틀 전까지 올랜도는 어떤 선수를 지명할지 고민을 거듭하고 있었다. 그때 올랜도의 단장 존 가브리엘(John Gabriel)이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당신들이 날 뽑을 생각이 없다는 거 알아요. 
하지만 저를 뽑아야 합니다. 제가 당신들의 선수입니다.”
“I know you’re not planning on taking me, but you should. I’m your gu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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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etty Images

 

페니의 전화였다. 당연히 ‘검증된 카드’인 크리스 웨버(Chris Webber)를 뽑는 게 맞았지만, 구단은 페니의 당돌함에 끌려 다음날 바로 워크아웃을 허락했다. 드래프트는 화요일이었는데, 올랜도 구단과 페니는 하루 전인 월요일 일종의 쇼케이스와도 같은 픽업 게임을 진행한 것이다. 페니는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자신이 샤킬 오닐(Shaquille O’Neal)의 단짝임을 확신시켰다.

 

오닐의 루키 시즌(1992-93)에 팀은 41승 41패를 기록했다. 오닐에 대한 검증은 마쳤고, 올랜도는 오닐의 조력자가 필요했다.

 

 

 

 

‘페니(Penny)’ 혹은 ‘앤퍼니 하더웨이’에 대하여

ⓒ Getty Images


사실 오닐과 페니는 아마추어 시절 서로 알던 사이였다. 오닐이 대학교 1학년, 페니가 고등학교 12학년이었을 때, 올림픽 페스티벌(Olympic Festival)이라는 대회에서 호흡을 맞춘 적이 있었다. 참고로 나이는 페니가 오닐보다 1살 더 많다.

 

오닐 역시 웨버가 훌륭한 선수인 건 알지만, 올랜도에는 페니가 더 적합한 선택지라고 구단을 설득했다. 오닐은 페니와 한 팀에서 뛰면 ‘제2의 매직 존슨과 카림 압둘자바’가 될 것으로 자신했다. 구단도 페니의 플레이를 보고 ‘오닐’이 ‘배트맨’이라면 ‘페니’는 ‘로빈’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페니(Penny)’ 혹은 ‘앤퍼니 하더웨이’에 대하여

ⓒ Getty Images

 

올랜도는 1992년 1순위로 오닐을 지명한 데 이어 1993년에도 신인 드래프트 지명 순위 추첨(Draft Lottery)에서 전체 1순위를 획득한 상태였다. 올랜도는 곧바로 페니를 선택할 수도 있었지만, 당시 3순위였던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가 올랜도 구단에 구미가 당기는 제안을 했다.

 

 

 

 

‘페니(Penny)’ 혹은 ‘앤퍼니 하더웨이’에 대하여

ⓒ Getty Images

 

올랜도가 1순위로 크리스 웨버(Chris Webber)를 지명해주면, 골든스테이트가 3순위로 페니를 지명한 후 여기에 미래의 드래프트 지명권 3장까지 추가로 얹어주는 트레이드를 제안한 것이다. 골든스테이트 입장에서는 웨버가 필요했고, 올랜도 역시 원하던 선수(페니)를 얻으면서 미래를 위한 자산까지 챙길 수 있으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페니(Penny)’ 혹은 ‘앤퍼니 하더웨이’에 대하여

ⓒ Getty Images

 

다만 2순위인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가 변수였는데, 다행히 필라델피아는 숀 브래들리(Shawn Bradley)를 지명했다. 이 트레이드는 올랜도가 웨버를 지명하고, 필라델피아가 2순위에서 페니를 지나치는 선택까지 모두 맞아떨어져야만 성사되는 구조였다.

 

 

 

 

‘페니(Penny)’ 혹은 ‘앤퍼니 하더웨이’에 대하여ⓒ Getty Images
 

약속대로(?) 올랜도가 웨버를 지명하자 팬들은 열광했다. 하지만 30분 후 트레이드가 발표되자 그 열광은 분노로 바뀌었다. 당시 페니는 무명에 가까웠고, 웨버는 검증된 예비 스타였기 때문이다. 팬들 입장에서는 최소 100불짜리 지폐를 1센트짜리 동전과 바꾸는 올랜도 구단이 미련해 보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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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etty Images

 

하지만 구단의 선택이 옳았다. 페니는 루키 시즌(1993-94)에 팀을 첫 50승 고지에 올려놨고, 플레이오프에 진출시켰으며, 이듬해에는 첫 NBA 파이널 무대까지 데려갔다.

 

 

 

 

 

 

 

동전의 앞면

 

 

 

 

‘페니(Penny)’ 혹은 ‘앤퍼니 하더웨이’에 대하여

ⓒ Getty Images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페니는 1센트짜리 동전도, 100불짜리 지폐도 아니었다. 리그의 성공까지 쥐락펴락할 수 있는 100만 불짜리 흥행 보증수표였다.

 

 

 

 

‘페니(Penny)’ 혹은 ‘앤퍼니 하더웨이’에 대하여

ⓒ Getty Images

 

페니는 대학 시절 등번호 25번을 달았는데, 이미 올랜도에는 닉 앤더슨(Nick Anderson)이 25번을 쓰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의 별명인 ‘페니(1센트)’에 맞춰 ‘1번’을 선택했다.

 

페니의 서사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 NBA

 

페니는 포인트 가드였지만 201cm에 달하는 큰 키를 활용해 수비 시에는 슈팅 가드 포지션으로 전환해 상대 에이스를 무력화시켰다. 공격에서는 다시 포인트 가드로 돌아와 작은 수비수들을 포스트업으로 공략했다. 페니는 단순히 공을 배급하는 역할에 그치지 않았다. 스스로 득점을 만들어낼 줄 아는 포인트 가드였다.

 

상태 팀은 공수 양면에서 그를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야말로 속수무책. 특히 마음만 먹으면 득점할 수 있으면서도 동료들을 배려하는 이타적인 플레이를 선보였다. 사람들은 그런 페니를 ‘스피드’가 가미된 ‘매직 존슨 2.0’ 버전이라고 불렀다.

 

 

 

 

‘페니(Penny)’ 혹은 ‘앤퍼니 하더웨이’에 대하여

ⓒ Getty Images

 

페니의 스타성은 리그 전체로 퍼져나갔다. 마이클 조던(Michael Jordan)의 뒤를 이을 차세대 인물이라는 평가가 이어졌다. 국내에도 1990년대 페니의 플레이를 보고 NBA에 입문한 팬들이 많았다.

 

페니는 올랜도에서 보낸 6시즌 동안 경기당 평균 19.0득점, 6.3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올랜도 유니폼을 입고 4차례 NBA 올스타, 2차례 All-NBA 퍼스트 팀에 선정되었다.

 

 

 

 

‘페니(Penny)’ 혹은 ‘앤퍼니 하더웨이’에 대하여

ⓒ Getty Images

 

1996년에는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페니의 시그니처 농구화는 현역 시절 조던의 농구화보다 더 많이 팔리기도 했다.

 

 

 

 

‘페니(Penny)’ 혹은 ‘앤퍼니 하더웨이’에 대하여

ⓒ Getty Images

 

페니의 전성기를 직접 목격한 이들은 하나같이 이런 증언들을 쏟아낸다.

 

 

 

 

“페니 하더웨이는 이 게임에서 가장 완성도 높은 선수 중 하나였다.”
“Penny Hardaway is one of the most complete players in the game.”

- 마이클 조던(Michael Jordan)



“페니를 보면 젊은 시절의 내가 떠오른다.”
“Penny reminds me of myself.”

- 매직 존슨(Magic Johnson)

 



“페니는 우리가 특별해질 수 있었던 이유였다.”
“Penny was the reason we were special.”

- 샤킬 오닐(Shaquille O’Neal)

 



“건강했을 때의 페니는 막을 수 없는 선수였다.”
“Penny was unguardable when he was healthy.”

- 스카티 피펜(Scottie Pippen)

 



“페니는 내가 상대했던 선수들 중에서도 가장 까다로운 상대였다.”
“Penny was one of the toughest covers I ever had.”

- 게리 페이튼(Gary Payton)

 



“페니는 매치업 자체가 악몽 같은 선수였다.”
“Penny was a matchup nightmare.”

- 레지 밀러(Reggie Miller)

 



“NBA에 입성했을 때 나는 페니의 경기를 정말 많이 연구했다.”
“I studied Penny’s game a lot when I came into the league.”

- 코비 브라이언트(Kobe Bryant)

 



“페니는 상대 입장에서 큰 골칫거리였다. 신체 조건, 기술, 시야 모든 걸 갖춘 선수였다.”
“Penny was a problem. Size, skill, vision — everything.”

- 그랜트 힐(Grant Hill)

 

 

 

 

페니는 동전의 앞면에 등장하는 역사 속 위대한 인물처럼 빠르게 팬들의 뇌리에 각인되었다. 누가 뭐래도 당시 리그의 중심은 페니였다.

 

1993년 조던이 은퇴하면서(1994-95시즌 중반 복귀하긴 했지만) 많은 팀들이 호시탐탐 빈 왕좌를 노렸다. 오닐과 페니를 보유한 올랜도 역시 리그를 위협하는 존재로 거듭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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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etty Images

 

하지만 올랜도가 우승 후보가 되기 위해서는 마지막 퍼즐 하나가 필요했다. 그 퍼즐의 주인공은 호레이스 그랜트(Horace Grant)였다. 그랜트는 이미 시카고 불스에서 세 번의 우승을 경험한 검증된 파워포워드였다.

 

시카고는 그랜트가 당연히 재계약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랜트는 계약이 늦어지는 과정에 불만을 품었다.

 

결국 그랜트는 1994년 7월, 5년 1,700만 달러에 올랜도로 이적했다.

 

 

 

 

“나는 양심에 거리낌 없이 떠났다.”
“I left on a clear conscience.”

- 호레이스 그랜트(Horace Grant)

 

 

 


올랜도는 1994–95시즌을 57승 25패, 동부 콘퍼런스 1위로 마쳤다.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올랜도는 보스턴 셀틱스, 시카고 불스, 인디애나 페이서스를 차례로 물리치고 휴스턴 로키츠와 파이널 무대에서 격돌했다.

 

 

 

 

‘페니(Penny)’ 혹은 ‘앤퍼니 하더웨이’에 대하여

ⓒ Getty Images

 

특히 시카고와의 동부 콘퍼런스 준결승 경기가 백미였다. 조던이 복귀한 후 치러지는 플레이오프 경기였던 데다 팀을 옮긴 그랜트가 친정 팀을 상대로 어떤 플레이를 펼치느냐도 초미의 관심사였다. 시리즈는 4:2로 올랜도가 가져갔고, 수많은 이야깃거리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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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etty Images

 

조던은 복귀 후 등번호를 ‘45번’으로 바꿨는데, 결정적인 순간에 앤더슨이 조던의 공을 가로챘고, 그랜트가 속공 레이업으로 마무리했다. 1차전을 내줘 자존심이 상한 조던은 다음 경기에서 다시 예전의 등번호인 ‘23번’으로 바꿔입었다.

 

“내가 누구인지 제대로 보여주겠다”는 무언의 메시지였다. 훗날 페니는 속으로 “망했다… GOAT를 화나게 하면 안 되는데…”라는 생각을 했다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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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etty Images

 

하지만 당시 시카고의 분위기는 어수선했다. 시카고는 홈 경기장을 ‘시카고 스타디움(Chicago Stadium)’에서 ‘유나이티드 센터(United Center)’로 바꾼 첫 시즌이었고, 제아무리 조던이라도 야구를 하다 복귀해 몸 상태도 100%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1995년’을 ‘조던이 코트로 복귀한 해’로만 기억한다. 하지만 1995년은 ‘페니의 올랜도’가 ‘조던의 시카고’를 플레이오프에서 꺾은 해로 기억되어야 한다. 그 이후 조던의 시카고를 플레이오프 무대에서 꺾은 팀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동전의 뒷면
 
 
 
 
‘페니(Penny)’ 혹은 ‘앤퍼니 하더웨이’에 대하여

ⓒ Getty Images

 

시카고를 꺾은 올랜도는 NBA 파이널에서 휴스턴과 만났다. 특히 1차전은 올랜도가 시리즈 전체의 흐름을 놓쳐버린 두고두고 아쉬운 경기로 남게 됐다.

 

 

 

 

‘페니(Penny)’ 혹은 ‘앤퍼니 하더웨이’에 대하여

ⓒ Getty Images

 

경기 종료 직전까지 올랜도가 110:107로 3점을 앞서 있었고, 앤더슨이 두 번 연속 파울을 당해 계속 자유투를 던지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앤더슨이 4개의 자유투를 모두 놓쳤고, 휴스턴의 케니 스미스(Kenny Smith)가 극적인 동점 3점 슛을 성공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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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etty Images

 

두 팀은 연장전에 돌입했다. 결국 118:118 동점 상황에서 0.3초를 남기고 하킴 올라주원(Hakeem Olajuwon)이 클라이드 드렉슬러(Clyde Drexler)의 빗나간 슛을 툭 쳐서 득점에 성공했다. 118:120 휴스턴의 승리였다.

 

 

 

 

‘페니(Penny)’ 혹은 ‘앤퍼니 하더웨이’에 대하여

ⓒ Getty Images

 

정규시즌 두 번의 맞대결에서는 올랜도가 휴스턴에 완승(117:94, 100:96)을 거두었다. 그래서인지 파이널 무대에서는 다소 느슨해진 게 사실이었다. 오닐과 데니스 스콧(Dennis Scott)은 이미 우승이라도 한 듯 파티를 다녔다고 한다.

 

 

 

 

‘페니(Penny)’ 혹은 ‘앤퍼니 하더웨이’에 대하여

ⓒ Getty Images

 

반면 올라주원은 빠르고, 똑똑했고, 경험이 많았다. 올라주원이 완성형이라면, 오닐은 진행형이었다. 기세에 눌린 올랜도는 그렇게 힘 한 번 못 써보고 0:4 스윕 패를 당했다.

 

 

 

 

‘페니(Penny)’ 혹은 ‘앤퍼니 하더웨이’에 대하여

ⓒ Getty Images

 

한편 페니는 제 몫을 다했다. 홀로 4경기 평균 25.5득점, 8.0어시스트, 4.8리바운드를 기록하며 팀의 공격을 이끌었다.

 

 

 

 

‘페니(Penny)’ 혹은 ‘앤퍼니 하더웨이’에 대하여

ⓒ Getty Images

 

NBA 파이널에서 쓴맛을 봤음에도 불구하고 다음 시즌 올랜도는 우승에 대한 확신을 내비쳤다. 1995-96시즌을 지난 시즌보다 3승이 더 많은 60승 22패로 마쳤다. 하지만 시카고는 ‘언터처블(Untouchable)’로 변모했다. 정규시즌 72승 10패라는 역사적인 기록을 세운 것이다.

 

그리고 다시 재현된 플레이오프. 올랜도는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와 애틀랜타 호크스를 차례로 꺾었지만, 동부 콘퍼런스 파이널에서 시카고를 만나 0:4로 스윕 패를 당하고 말았다. 시카고의 통쾌한 복수극이었다.

 

 

 

 

‘페니(Penny)’ 혹은 ‘앤퍼니 하더웨이’에 대하여

ⓒ NBA

 

한편 1996년 여름 올랜도는 중대한 결정을 앞두고 있었다. 오닐과의 재계약 문제였다.

 

하지만 올랜도는 계산기를 두드렸다. 신생팀 프랜차이즈에 대한 존중을 보이지 않았고, 7년 5,400만 달러라는 헐값 계약서를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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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etty Images

 

참고로 오닐은 자유투 성공률이 매우 낮았는데, 올랜도 구단은 시종일관 오닐의 이러한 약점을 부각시키며 협상을 진행했다. 그깟 자유투가 대수인가? 오닐은 이미 득점왕과 올스타, All-NBA 팀 선정, MVP 후보, 구단 역사상 첫 파이널 진출까지 이끈 선수였다.

 

 

 

 

‘페니(Penny)’ 혹은 ‘앤퍼니 하더웨이’에 대하여

ⓒ Orlando Sentinel

 

자존심이 상한 오닐은 자신의 가치를 확인받고 싶었다. 이때 LA 레이커스가 치고 들어왔다. 제시액은 7년 1억 2,100만 달러. 결국 오닐은 1996년 7월 자신의 가치를 알아봐 준 LA 레이커스로 팀을 옮겼다.

 

구단의 어리석은 결정은 올랜도가 왕조가 될 기회와 페니의 커리어까지 망쳐놓았다.

 

 

 

 

‘페니(Penny)’ 혹은 ‘앤퍼니 하더웨이’에 대하여


ⓒ United States Mint

 

혼자 남겨진 페니. 오닐이 떠나자 페니의 어깨는 더욱 무거워졌다. 당시 페니는 1센트 동전 뒷면의 링컨 동상처럼 홀로 외로워 보였다. 오닐과 함께할 때도 조연은 아니었지만, 페니는 늘 동료를 살리고 경기를 조율하는 역할을 해왔다.

 

 

 

 

‘페니(Penny)’ 혹은 ‘앤퍼니 하더웨이’에 대하여

ⓒ Getty Images

 

페니는 포인트 가드로서 포지션상 압도적인 신체적 이점을 가졌지만, 큰 키에는 그만큼의 부담과 대가도 따르는 법이다. 그때부터였다. 페니의 몸이 그를 배신하기 시작한 것이다.

 

 

 

 

‘페니(Penny)’ 혹은 ‘앤퍼니 하더웨이’에 대하여

ⓒ Getty Images

 

1997-98시즌 초반 페니는 반월상연골 파열이라는 큰 부상을 당했고 시즌 아웃됐다. 이 부상은 사실상 페니 커리어의 마침표였다.

 

 

 

 

 

 

 

 

 

 

‘페니(Penny)’ 혹은 ‘앤퍼니 하더웨이’에 대하여

ⓒ Getty Images

 

동시에 올랜도 왕조 구축에 대한 희망도 와르르 무너졌다. 페니는 같은 시기 브라이언 힐(Brian Hill) 감독과도 갈등을 빚었고, 49경기 만에 감독이 해임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명백한 내부 분열이었다.

 

올랜도는 1998년 8월 팀 리빌딩을 이유로 페니를 트레이드하기로 했다. 페니 역시 새로운 출발을 원한다며 팀에 결별을 통보했다. 피닉스 선즈에 있던 제이슨 키드(Jason Kidd)가 페니를 적극적으로 설득한 덕에 그는 피닉스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페니(Penny)’ 혹은 ‘앤퍼니 하더웨이’에 대하여

ⓒ Basketball Network

 

팬들은 키드·페니 듀오의 활약을 기대했지만, 페니는 2000-01시즌 다시 왼쪽 무릎 연골 수술을 받았다. 페니는 피닉스에서 4시즌 반을 보낸 뒤 2003-04시즌 스테판 마버리(Stephon Marbury)와 함께 뉴욕 닉스로 트레이드되었다. 뉴욕이 피닉스에게 원한 건 마버리였고, 피닉스는 샐러리 절감을 위해 페니를 함께 보낸 것이다. 사실상 ‘끼워팔기’였다.

 

 

 

 

‘페니(Penny)’ 혹은 ‘앤퍼니 하더웨이’에 대하여

ⓒ Getty Images

 

페니는 계속 푸대접을 받았다. 2005-06시즌 뉴욕은 스티브 프란시스(Steve Francis)를 영입하기 위해 유망주였던 트레버 아리자(Trevor Ariza)와 함께 페니를 다시 올랜도로 보냈다.

 

 

 

 

‘페니(Penny)’ 혹은 ‘앤퍼니 하더웨이’에 대하여

ⓒ The Sporting News

 

페니는 친정팀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에 내심 기뻤지만, 올랜도 구단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그의 상징과도 같던 등번호 1번을 아리자에게 내주더니 이내 페니를 방출하고 말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올랜도는 1997-98시즌 해임된 힐 감독을 재고용한 상태였고, 이번엔 반대로 페니가 짐을 싸게 된 것이다.

 

 

 

 

‘페니(Penny)’ 혹은 ‘앤퍼니 하더웨이’에 대하여

ⓒ Getty Images

 

그렇게 코트를 떠난 것으로 보였던 페니가 2007-08시즌 돌아왔다. 그것도 마이애미 히트 유니폼을 입고. 재미있는 건 당시 마이애미엔 오닐이 뛰고 있었다. 10년여 만에 둘이 다른 팀에서 재회한 것이다. 하지만 그의 무릎은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었다.

 

 

 

 

‘페니(Penny)’ 혹은 ‘앤퍼니 하더웨이’에 대하여

ⓒ Getty Images

 

2007년 12월 3일은 페니의 커리어 마지막 경기였다. 선발로 출전해 13분을 뛰었지만 무득점에 그쳤다.

 

 

 

 

“나는 우승 타이틀이 아니라면, 어떤 타이틀에도 관심이 없었다.”
“I didn’t care about titles unless they were championship titles.”

- 앤퍼니 하더웨이(Anfernee Hardaway)

 

 

 

 

페니는 1994-95시즌 우승의 문턱에서 좌절한 이후 한 번도 파이널 무대에 초대받지 못했다.

 

페니는 무릎 수술만 여섯 번을 받았다. 만약 각각 22세와 23세의 나이에 NBA 파이널 무대에 올랐던 오닐과 페니가 전성기를 함께 보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페니는 여섯 번의 무릎 수술이 아닌 여섯 번의 우승을 경험했을지도 모른다.

 

 

 

 

‘페니(Penny)’ 혹은 ‘앤퍼니 하더웨이’에 대하여

ⓒ Getty Images

 

올랜도가 오닐에게 제대로 된 대우를 해줬다면 페니는 원래 자신의 역할로 돌아갔을 것이고, 그럼 부상을 당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결국 올랜도 구단을 탓할 수밖에 없다.

 

올랜도가 너무 일찍 포기했다. 오닐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고, 페니도 너무 쉽게 내보냈다. 부상 자체는 선수 탓이겠지만, 그 부상으로 이어진 환경을 만든 것은 구단이다.

 

행운의 페니를 줍고도 그 가치를 알아보지 못한 채 복을 걷어 차버린 올랜도 구단이 원망스러울 뿐이다.

 

 

 

 

 

 

 

동전의 옆면

 

페니의 농구 인생은 작은 동전처럼 화려한 앞면과 볼품없는 뒷면으로만 나뉘는 걸까?

 

 

 

 

 

‘페니(Penny)’ 혹은 ‘앤퍼니 하더웨이’에 대하여

ⓒ Shutterstock

 

다행히 동전에는 옆면도 있다. 코트를 떠난 그 작은 동전은 구르고 또 굴러서 어느 작은 중학교 농구부 앞에 도착했다.

 

 

 

 

‘페니(Penny)’ 혹은 ‘앤퍼니 하더웨이’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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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니는 대장암으로 투병 중이던 친구 데스먼드 메리웨더(Desmond Merriweathe)의 부탁으로 2011년부터 레스터 중학교(Lester Middle School) 감독직을 맡게 됐다. 2015년 메리웨더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페니는 팀을 떠나지 않았고, 지도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이후 중학교에서 지도하던 선수들이 고등학교에 진학하자, 이들을 계속 지도하기 위해 멤피스 이스트 고등학교(Memphis East High School) 감독을 맡기도 했다.

 

 

 

 

‘페니(Penny)’ 혹은 ‘앤퍼니 하더웨이’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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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니는 어느 인터뷰에서 1993년 드래프트 당시 올랜도 구단이 자신을 믿어줬던 것처럼 훗날 누군가가 자신을 지도자로서 믿어주길 바란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농구가 제 미래를 열어줬듯 저도 제 손을 통해 다른 아이들이 꿈꿀 수 있게 돕고 싶습니다.
지금은 코칭을 하고 있고, 그게 정말 좋아요. 이 길이 NBA 감독으로까지 이어질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이 역할이 아주 편안합니다.”

 

 

 

 

‘페니(Penny)’ 혹은 ‘앤퍼니 하더웨이’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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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에는 모교인 멤피스 타이거스(Memphis Tigers)의 지휘봉을 잡았다. 7시즌 동안 162승 68패를 기록했고, 2025년에는 AAC(American Athletic Conference) 우승, 그리고 대학 농구 최대 이벤트인 마치 매드니스(March Madness)의 3년 연속 진출을 이끌며 멤피스를 다시 미국 대학 농구의 정상 반열에 올려 놓았다.


페니는 선수 시절 감정적인 성향으로 종종 감독들과 문제를 일으켰지만, 지금은 존경받는 농구 지도자의 삶을 살고 있다.

 

 

“그땐 감정이 앞선 어린아이였고, 너무 버릇없이 제 기준과 다른 선택을 했죠.
원래 저는 힘든 상황도 버텨내는 편인데, 그때는 그러지 못했어요. 지금도 그걸 후회합니다.”

 

 

 

 

‘페니(Penny)’ 혹은 ‘앤퍼니 하더웨이’에 대하여

ⓒ NBA

 

한편 올랜도 구단은 2017년 페니를 ‘올랜도 매직 명예의 전당(Orlando Magic Hall of Fame)’에 공식 헌액했다. 헌액식에서 페니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저는 올랜도에 정말 감사하고 있습니다.
저는 올랜도 그 자체입니다. 올랜도가 저를 만들었어요.
사람들이 제 이름을 말할 때, 그 이름은 언제나 올랜도와 함께 연결되어 있습니다.
저는 그 점에 대해 큰 빚을 지고 있고, 동시에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페니(Penny)’ 혹은 ‘앤퍼니 하더웨이’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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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센트짜리 동전 하나를 만들려면 3센트 이상의 주조 비용이 든다고 한다. 동전을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이 실제 동전의 가치보다 더 큰 아이러니한 상황. 애물단지 취급을 받아온 페니의 자화상이다.

 

 

 

 

‘페니(Penny)’ 혹은 ‘앤퍼니 하더웨이’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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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美 트럼프 대통령은 페니 주조 중단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페니가 처음 발행된 지 232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이다. 미국 내 유통용 1센트 동전 생산은 공식 종료됐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기존 발행된 1센트 동전의 법정 화폐 지위는 유지되고, 수집용 동전도 제한적으로 발행될 예정이라고 한다.

 

1793년 처음 발행된 이후 232년간 사용되며 미국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주화로 자리 잡았던 페니. 페니는 단순 화폐 기능을 넘어 다양한 영화·문화·속담 등에 등장해 미국 대중문화의 상징적인 기능을 해왔다.

 

 

 

 

‘페니(Penny)’ 혹은 ‘앤퍼니 하더웨이’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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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트 위 페니 역시 단순한 농구 스타가 아니었다. 그는 선수와 팬, 농구와 대중문화를 잇는 매개체였으며, 한 세대가 농구라는 스포츠를 사랑하게 하고, 1990년대 추억의 앨범 속 한 페이지를 채워준 오랜 친구 같은 역할을 해주었다.

 

 

 

 

‘페니(Penny)’ 혹은 ‘앤퍼니 하더웨이’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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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트 위 페니와 주머니 속 페니. 그런 면에서 둘은 같은 운명을 타고났다는 생각도 든다.

 

이젠 정말 두 페니와 작별 인사를 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Goodbye, Penny.
Thank you, Pen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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