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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216승 투수 커트 실링은 두 얼굴의 사나이?

minkiza
  433
2026-02-23 05:11:51
강속구 투수이면서 기교파 못지않는 정교함까지 지녔던 우완 커트 실링(60·Curt Schilling)은 MLB에서 20년을 뛰며 216승(146패)을 거뒀던 대단한 투수였습니다.

또한 실링의 커리어를 접한 분들이라면 그가 얼마나 엄청난 '포스트시즌 투수'였는지 아실 겁니다.

 

2001년 애리조나 유니폼을 입고 (마무리 김병현이 크게 흔들렸던) 뉴욕 양키즈와의 월드시리즈에서 좌완 랜디 존슨과 둘이 우승을 합작했던 순간들은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둘이 공동 MVP가 됐었습니다.

 

그러나 실링의 가장 극적인 순간은 2004년 10월 19일 보스턴의 선발로 나선 뉴욕 양키즈와의 AL 챔피언십입니다.
3연패를 당하며 탈락이 거의 확정적이던 레드삭스는 2연승으로 반격했고, 6차전 선발로 나선 실링이 오른 발목에 피가 흥건한 채 7이닝 역투로 승부를 원점으로 돌린 바로 그 경기입니다.
실링은 투구수 딱 100개로 7이닝을 던지면서 3피안타, 4탈삼진, 4볼넷으로 단 1점을 내줬습니다. 야수 실책으로 인한 비자책점.
4-2로 승리한 레드삭스는 기세를 몰아 사상 최초의 '리버스 스윕(reverse sweep)'을 이뤘습니다.

 
 
 216승 투수 커트 실링은 두 얼굴의 사나이?
©️2004년 ALCS 6차전 피로 물든 실링의 오른쪽 양말
 
 

현재 다저스 감독인 데이브 로버츠의 4차전 9회말 극적인 도루로 시작해 실링의 6차전 '핏빛 양말' 투혼으로 동률을 만들더니, 그 기세로 7차전을 10-3으로 완승했습니다. 
MLB 포스트시즌 역사상 최초로 3연패 후 4연승이라는 기적의 시리즈를 연출한 것입니다. (리버스 스윕 확률은 4% 정도라고 합니다.)
레드삭스는 그 기세로 월드시리즈에서 세인트루이스를 완파하고 86년간 이어지던 '밤비노의 저주'마저 깨고 1918년 이후 첫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216승 투수 커트 실링은 두 얼굴의 사나이?
©️ 2004년 레드삭스가 밤비노의 저주를 깨는데 큰 공을 세웠던 실링
 

당시 실링의 피에 젖은 양말은 그야말로 최고의 화제이자, 스토리 텔링의 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분위기가 살짝 이상하기도 했습니다.
'영웅 만들기'라면 세계 최강인 미국 언론의 태도도 엇갈리는 느낌이었고, 급기야 '핏빛 양말은 실링의 조작'이라는 말까지 돌았습니다.
그 증거로 이 양말은 경기 후 곧바로 세탁기로 들어가 실링의 피가 젖은 것인지도 알 수 없게 됐다는 소문도 파다했습니다.
카메라가 정확한 타이밍에 양말을 클로즈업한 것이나, 붉은빛이 너무 진했다, 그 정도면 걷지도 못했을 텐데 100구 피칭은 말도 안된다 등등의 소문이 흉흉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주치의 빌 모건에 따르면 우측 발목 힘줄 고정 봉합 + 특수 테이핑 시술을 했었고, 던질 때마다 봉합 부위에서 출혈이 발생해 양말이 피로 물든 것이었다고 증언했습니다.
통증을 참고 피칭을 한 건 분명했고, 만약 봉합 테이프가 끊어졌더라면 그의 시즌은 끝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양말은 경기 후 팀에서 보관하다가 현재는 명예의 전당에 전시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그런 허위의 소문들이 돌았던 것일까요?

커트 실링을 처음 대면한 것은 박찬호 선수가 코리언 빅리거 최초로 올스타에 선정된 2001년 시애틀에서 열린 올스타전 때였습니다.
박찬호 선수와 숙소인 호텔 로비로 걸어가는데 코너를 돌아가던 한 사람이 박찬호를 보고는 일부러 돌아오는 것이었습니다. 팬인가 했는데 다가오는 걸 보니 바로 커트 실링이었습니다. 
196cm-100kg의 거구에, 그해 22승을 거두고 월드시리즈 우승 주역이 될 스타가 일부러 가던 길을 돌아와 박찬호의 첫 올스타 출전을 축하한다며 악수를 건네는 모습은 참 좋아 보였습니다.

 

그런데 후에 들려오는 실링에 대한 이야기는 사뭇 달랐습니다.
특히 야구계 내부적으로는 '겉 다르고 속 다른' 실링의 이야기가 무수히 돌았습니다,
2006년에는 유명 잡지 중 하나인 GQ가 '동료들이 가장 싫어하는 운동선수 톱10'을 선정한 적이 있습니다.
독자 투표 결과 불명예 1위에는 악명 높던 풋볼 선수 터렐 오웬스가 뽑혔습니다.
그리고 야구 선수로는 2위에 배리 본즈, 4위에 커트 실링이 이름을 올렸습니다.
잡지에는 '실제의 실링과 이미지의 실링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란 평이 실렸습니다.

216승 투수 커트 실링은 두 얼굴의 사나이?
©️ 2007년 포스트 시즌 경기 후 기자회견장에서 찍은 실링 인터뷰
 

당시 ESPN의 페드로 고메스 기자는 "커트 실링은 최고의 이미지로 비춰지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마다하지 않을 사람"이라며 지나치게 매스컴을 의식하는 실링을 비난했습니다.
고메스는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를 오래 취재하던 친구로 김병현 취재 때 자주 만나 이야기를 나눴는데, 온순하게 생긴 외모와 달리 독설도 대단한 기자였습니다.
실링은 특히 자기 PR을 위해서는 마이크나 카메라 앞에서 태도가 돌변하는 선수라는 것은 업계에서 공공연한 비밀이었습니다. 언론과의 불협화음도 꽤 있었습니다.

 

그런 연유로 2004년 포스트시즌의 '핓빛 투혼'이야말로 실링의 '카메라 집착증'이 극대화 된 일이라는 헛소문이 파다하게 퍼진 것이었습니다. 
실링의 전 소속팀 애리조나 구단 한 관계자는 "실링은 피로 물든 양말이 TV 카메라에 잘 보이도록 체크했을 것"이라고까지 언급했으니까요.

 

216승 투수 커트 실링은 두 얼굴의 사나이?

©️2001년 애리조나 월드시리즈 우승의 주역이던 실링

 

실링은 은퇴 후 보수 성향 정치 발언을 적극적으로 했고, SNS 활동이 잦았습니다. 성향이야 다를 수 있고 개인의 권리지만 문제는 발언 수위였습니다.
2015년에는 무슬림 관련 SNS 게시물이 논란이 돼 해설하던 ESPN에서 정직 조치를 받았고, 2016년에는 트랜스젠더 관련 게시물로 결국 ESPN에서 해고됐습니다.
2021년에는 미 의회 난입 사건 옹호 발언으로 다시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습니다.

 

사업적으로도 38스튜디오스 라는 대형 게임 회사를 설립해 로드아일랜즈 주정부에서 7500만 달러, 약 1000억원이 넘는 대출을 받았는데 파산을 하면서 수백명 직원이 실직하고 정부 재정에 피해를 주기도 했습니다.
사업적 실패야 있을 수 있지만 실링이었기에 더 구설수가 심했습니다.

 

결국 논란은 명예의 전당 투표로까지 이어졌습니다.
2013년 38.8%의 득표로 시작한 실링은 꾸준히 득표율이 올라가 2021년 71.1%로 통과 기준인 75%에 바짝 다가섰습니다.
2022년이 10년 후보 자격 마지막 해여서 드디어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리라는 예상도 나왔습니다.

 

그런데 2021년 탈락 후 실링은 기자단 투표에서 자신을 빼 달라고 공식 요청했습니다. "나를 평가할 사람들은 기자가 아니라 동료 선수와 야구인이다."라면서요.
결국 실링은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스타들은 반드시 인간성도 좋아야 한다는 법은 없지요.
물론 스타로 발돋음하면서 인간성까지 좋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고, 그런 선수들도 아주 많습니다.
그렇지만 선수는 야구장에서 능력으로 평가되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요.

 

선수들을 취재하고 방송을 하면서 인간성도 좋은 선수들을 만나면 참 좋습니다. 취재나 방송도 매끈하지만, 인간적으로 끈끈해져서 응원도 더욱 하게 되고요.
그렇지만 어린 나이에 돈과 명예를 한 손에 쥐면서 자만하거나 교만해지는 것을 떨치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합니다.
그렇지만 결국은 팬들의 사랑과 또 팬들이 내는 돈으로 봉급을 받는 선수들은 그에 대한 의무감과 책임감도 절대 잊어서는 안됩니다.

 

미국 명예의 전당 항목에도 기록과 선수의 능력, 스포츠맨십 외에 성격, 팀에 대한 공헌 그리고 진전성이 명시돼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정규 시즌 216승은 물론이고, 포스트 시즌 통산 19경기에서 4번의 완투와 2번의 완봉승 포함 11승 2패에 ERA 2.23의 눈부신 기록을 남긴 실링은 정말 대단한 투수였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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