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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고독한 로맨티스트 조 디마지오와 56경기 연속 안타

minkiza
  93
2026-04-10 00:27:07
1941년 7월 17일, 뉴욕 양키즈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현 가디언스)와의 경기에는 전 미국의 시선이 집중됐습니다.

당시 'The Yankee Clipper(양키즈의 쾌속정?)'라는 애칭으로 사랑받던 조 디마지오가 출전하는 경기는 미국인들을 열광시켰습니다.
무려 56경기 연속 안타 행진에 야구의 나라 미국이 들끓었습니다.

고독한 로맨티스트 조 디마지오와 56경기 연속 안타

그런데 바로 그날 경기에서 인디언스 3루수 켄 켈트너에 의해, 56경기만으로도 여전히 불멸의 기록으로 여겨지는 연속 경기 안타 행진이 중단됩니다.
1회초 디마지오는 좌측 선상을 타고 흐르는 강한 땅볼 타구를 날렸으나, 3루수 켈트너가 백핸드로 잡아 역동적인 동작으로 1루에 송구해 아웃시켰습니다.
그리고 7회초 다시 한번 디마지오가 3루 쪽으로 총알 같은 타구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켈트너가 이번에도 깊숙한 위치에서 타구를 낚아채 1루로 정확히 송구하며 디마지오의 안타를 지웠습니다.
디마지오는 8회 마지막 타석에서 투수 땅볼로 물러나며 결국 0안타(1볼넷)로 경기를 마쳤습니다.
그렇게 야구 사상 가장 위대한 기록 중의 하나가 두 번에 걸친 켄트너의 인생 수비와 함께 중단됐습니다. 켈트너는 당대 최고의 3루 수비로 올스타에 8번이나 뽑힌, 요즘 말로는 '수비요정'이었습니다.

 

여담이지만 당시 식품회사 하인즈에서 자사의 상징인 '57'이라는 숫자에 맞춰 디마지오가 57경기 연속 안타를 달성하면 1만 달러를 주기로 공언했습니다.
그런데 켈트너의 연속 호수비로 한 경기를 앞두고 그 상금은 주인을 찾지 못했는데, 요즘 가치로는 22~23만 달러 정도로 우리 돈으로는 3억3000만 원에 가까운 거액의 상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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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역사적인 기록의 주인공의 본명은 조셉 폴 디마지오(Joseph Paul DiMaggio)입니다.

아, 그런데 진짜 그의 본명은 지우세피 파올로 디마지오 주니어였습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그는 이탈리아의 시칠리섬의 작은 어촌 출신 이민자 부부 주세페와 로살리아 사이에서 태어난 9남매 중 8번째였고, 모두 그를 조(Joe)라고 불렀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대대로 어부였으며, 미국으로 이민온 뒤에도 샌프란시스코에서 어업에 종사했습니다.
1914년 11월25일 캘리포니아 주 마르티네스에서 태어난 디마지오는 1살 때 샌프란시스코로 가족이 이주, 그곳에서 자랐습니다. 아버지는 아들 5명도 모두 어부로 키우려고 했지만 어린 조는 비린내를 끔찍이 싫어했고 늘 야구나 농구 등 운동에 빠져 지냈습니다.

 

조는 역시 야구 선수인 형 빈스 디마지오가 강력히 추천해, 요즘으로 치면 AAA급인 샌프란시스코 실스에 입단합니다.
그리고 조 디마지오는 1933년 5월28일부터 7월25일까지 61게임 연속 안타를 때리면서 MLB 팀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세미프로에서 뛸 때부터 그는 연속 안타 제조기였습니다.

 

1934년 무릎 인대가 파열되는 큰 부상을 당하면서 야구를 포기할 뻔했지만, 다른 MLB 팀들이 외면하는 가운데도 양키즈는 디마지오에게 테스트 기회를 주었습니다. 샌프란시스코 팀은 테스트에 통과한 디마지오를 1935년 시즌이 끝난 뒤 2만5000달러에 양키스에 넘기기로 했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마지막 시즌에 디마지오는 3할9푼8리에 34홈런 154타점을 기록했습니다.

고독한 로맨티스트 조 디마지오와 56경기 연속 안타

1936년 양키스 줄무늬 유니폼을 빅리그에 데뷔한 그는 곧바로 전설이 됐습니다. 
3번의 리그 MVP에 13년 MLB 생활 동안 13번 모두 올스타에 선정됐습니다. 현역 내내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올스타전에 출전한 선수는 디마지오가 유일무이합니다. 
그리고 영원히 깨지지 않을 것으로 여겨지는 56게임 연속 안타 기록을 세웠습니다. 1941년 5월15일부터 7월16일까지 디마지오는 단 한 경기도 빼놓지 않고 안타를 쳤습니다. 
그런데 디마지오는 연속 안타가 중단된 바로 다음 날부터 다시 16경기 연속 안타를 쳤습니다. 만약 켈트너의 수비가 아니었다면 연속 안타 기록이 73경기까지 이어질 수도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결과적으로는 73게임 동안 72게임에서 안타를 기록한 것입니다.

 

1932년 이래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하지 못했던 양키스는 디마지오의 가세와 함께 곧바로 1936년에 챔피언에 복귀했으며, 그가 팀을 이끈 13년 동안에 무려 9번의 WS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커리어 중간에 2차대전 참전으로 전성기였을 20대 후반 3년을 군에서 보내지 않았더라면 그의 신화는 더욱 위대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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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빈스와 동생 돔까지 3형제가 MLB에서 뛰었고, 모두 올스타에 뽑힐 정도로 대단한 실력자들이기도 했습니다.
동생 돔 디마지오의 이야기도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조 디마지오의 동생 젠틀맨 도미니크 이야기 - 이랜드 뮤지엄 스토리 게시판

고독한 로맨티스트 조 디마지오와 56경기 연속 안타

그런데 조 디마지오의 또 다른 신화는 마릴린 먼로와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여배우 도로시 아놀드와의 결혼에 실패했던 디마지오는 은퇴 2년 후인 1953년 떠오르는 은막의 스타 먼로와 만나 곧바로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먼로의 배우 생활에 불만이 컸던 디마지오는 충돌이 잦았습니다. 급기야 '7년만의 외출(The Seven Year Itch)'이라는 영화에사 먼로의 치마가 지하철 바람에 불려 올라가는 장면을 찍는 촬영장에서 사람들이 모두 보는 가운데 고성이 오가는 다툼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결국 이 사건 3주 후 결혼 274일 만에 먼로는 이혼 서류를 접수했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의 내면을 충분히 알지 못했고 이해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한번은 먼로가 한국을 방문해 미군 위문 공연을 하고 와서는 디마지오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당신은 그런 기분을 절대 이해 못할거야. 수 만명의 군인들이 나를 보며 환호성을 질러댔다니까'라며 흥분했습니다. 디마지오는 십수년을 수만 관중의 열광적인 응원 속에 야구를 했었는데 말이죠.

 

그 후 두 사람은 각각의 길을 갔지만 디마지오는 먼로를 잊지 못했습니다. 

먼로와 아서 밀러의 결혼이 파경으로 끝난 1961년 초 디마지오는 먼로가 심리요양원에서 나올 때 동반해 다시 눈길을 끌었습니다. 1962년 8월초 디마지오는 먼로에게 재결합을 요청하려고 준비도 했었는데, 안타깝게도 그의 마음을 전할 새도 없이 8월 5일 먼로는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되고 말았습니다. 
충격과 비탄에 빠진 디마지오는 먼로의 시신을 인수해 직접 장례를 치렀으며, 그 후 20년간 매주 월, 수, 금 세 번씩 장미꽃 6송이씩을 먼로의 무덤에 보낸 일화는 유명합니다.(너무 화제가 되고 사람들이 계속 장미꽃 놓인 무덤을 찾자 먼로의 평안을 위해 중단했다고 합니다.)
 
디마지오는 먼로의 사망 후 독신으로 지냈으며 1999년 3월8일 폐암 후유증으로 사망했습니다.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이 "이제 드디어 마릴린을 다시 볼 수 있겠군." (I'll finally get to see Marilyn again.)이라고 해서 또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리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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