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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완벽한 3루수', 마이크 슈미트 이야기

이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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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31 01:40:00
'완벽한 3루수', 마이크 슈미트 이야기

마이크 슈미트 / 출처 - MLB.com

 

마이크 슈미트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의 3루수 중 한 명이자,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프랜차이즈 스타입니다. 슈미트는 1972년부터 1989년까지 18시즌 동안 필라델피아에서만 뛰면서 통산 2404경기에서 1506득점 2234안타 548홈런 1595타점 174도루 타율 0.267 출루율 0.380 OPS 0.908 WAR 106.9승을 기록했고 올스타 12회, MVP 3회, 골드글러브 10회, 실버슬러거 6회, 홈런왕 8회, 타점왕 4회를 차지했습니다.

 

슈미트는 강력한 공격력과 탄탄한 수비력을 모두 갖춘 완벽한 3루수였습니다. 슈미트는 1974년부터 1987년까지 14시즌 동안 13번이나 30홈런 이상을 기록했는데, 이는 행크 애런(15번)과 배리 본즈(14번)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기록입니다. 또한, 8번의 홈런왕으로 내셔널리그(NL) 최다 기록을 보유 중이죠. 이러한 꾸준함 덕분에 슈미트는 통산 548홈런을 기록하며 MLB 역대 홈런 부문 16위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슈미트는 넓은 수비 범위, 뛰어난 반사신경, 강한 어깨, 그리고 과감성까지 갖춘 최고의 3루 수비수이기도 했는데요. 특히 기습 번트 타구에 달려들어 맨손으로 처리하는 '베어핸드 플레이'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나 다름 없었죠. 이를 바탕으로 슈미트는 NL 3루수 부문 골드글러브를 10번 수상했는데, 이는 '인간 진공 청소기' 브룩스 로빈슨(16회)에 이어 놀란 아레나도(10회)와 함께 3루수 역대 공동 2위 기록입니다.


오하이오의 야구 신동
'완벽한 3루수', 마이크 슈미트 이야기

오하이오 대학 시절 슈미트 / 출처 - MLB.com

 

슈미트의 본명은 마이클 잭 슈미트(Michael Jack Schmidt)로 미국 오하이오주 데이턴에서 조셉 슈미트와 로이스 필립스 부부의 이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슈미트의 부모님은 데이턴에서 필립스 수영 클럽(Philipps Aquatic Club)을 운영했는데, 이 클럽은 로이스의 증조부인 찰스 필립스가 1865년에 설립한 곳으로 오하이오주 전역의 여러 수영 클럽 중 가장 오랫동안 성공적으로 운영된 시설이기도 했습니다.

 

슈미트는 5살 무렵 뒷마당 나무에 오르다가 전선에 닿아 감전 사고를 당했는데요. 감전된 슈미트는 그 순간 정신을 잃고 나무 아래로 떨어졌지만, 다행히도 다리에 화상 자국만 남았을 뿐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운동 선수였던 슈미트는 학생 시절 미식축구, 농구, 야구에서 모두 두각을 드러냈습니다. 그러나 고교 때 두 번의 무릎 수술을 받으면서 미식축구와 농구는 그만 둘 수밖에 없었죠.

 

고교 졸업 후 오하이오 대학에 진학한 슈미트는 당대 최고의 대학야구 감독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밥 렌 감독의 지도를 받으면서 기량이 크게 향상됐는데요. 렌 감독의 권유로 슈미트는 양손 타격을 그만두고 오른손 타격에만 집중하기 시작했고, 하체 근력 강화에도 힘썼습니다. 그 결과 신입생 시절 타율 0.260 1홈런에 그쳤던 슈미트가 2-3학년 때는 타율 0.333 20홈런을 기록하며 2년 연속 올-아메리칸 팀에 선정됐죠.

 

슈미트의 활약은 필라델피아의 전설적인 스카우트 토니 루카델로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고교 시절부터 슈미트를 지켜봐왔던 루카델로는 1971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전체 30순위로 그를 지명했고, 슈미트는 1971년 6월 11일 필라델피아와 32,500달러에 계약을 맺습니다. 6일 후 슈미트는 펜실베니아주 레딩에서 열린 필라델피아와 산하 더블A팀 레딩 간의 시범 경기에서 프로 데뷔전을 치렀습니다.


생각보다 쉽지 않았던 프로 적응
'완벽한 3루수', 마이크 슈미트 이야기

마이크 슈미트의 루키 카드 / 출처 - MLB.com

 

슈미트는 프로 데뷔전에서 필라델피아의 유격수로 선발 출전해 레딩을 상대로 결승 홈런을 터뜨렸고, 그러자 필라델피아는 그를 처음부터 더블A 팀인 레딩에 배정했습니다. 하지만 프로 적응은 생각 만큼 쉽지 않았습니다. 슈미트는 1971년 레딩 소속으로 71경기에서 타율 0.211 8홈런 31타점 OPS 0.652에 그쳤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라델피아는 1972년 산하 트리플A 구단인 유진 에메랄즈로 승격시켰습니다.

 

1972년은 슈미트에게 도약의 시즌이었는데요. 에메랄즈의 감독 앤디 세미닉은 슈미트의 수비 부담을 덜어주고 타격에 집중할 수 있도록 그의 포지션을 2루수로 옮겼고, 이에 힘입어 슈미트는 131경기에서 타율 0.291 26홈런 91타점 OPS 0.960을 기록했습니다. 그러자 일찌감치 순위 경쟁에서 탈락한 필라델피아는 슈미트를 메이저리그에 콜업했고, 그렇게 슈미트는 9월 12일 뉴욕 메츠전에서 빅리그에 데뷔합니다.

 

슈미트는 메이저리그 데뷔 첫 해 13경기에서 타율 0.206 1홈런 3타점 OPS 0.619으로 고전을 면치 못했습니다. 하지만 9월 16일 25이닝 연속 무실점 행진 중이었던 몬트리올 엑스포스의 투수 발러 무어를 상대로 첫 홈런을 터뜨리는 등 인상적인 장면을 남기기도 했죠. 그러자 1972시즌 종료 후 감독에서 단장으로 복귀한 폴 오웬스는 기존의 3루수 돈 머니를 밀워키로 트레이드하며 슈미트의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슈미트는 1973년 타율 0.196 18홈런 52타점 OPS 0.697에 그쳤는데요. 어깨 탈구로 첫 10경기를 결장하는 등 출발부터 순조롭지 못했고, 마이너리그에서 1년 반밖에 뛰지 못했기 때문에 경험이 부족한 것도 문제였죠. 여기에 신임 감독 대니 오자크의 잦은 타격 조언은 슈미트의 이미 무너진 자신감에 악영향을 끼쳤고, 슈미트의 풀타임 첫 해는 26타수 연속 무안타라는 최악의 부진으로 끝났습니다.

 

전성기의 시작
'완벽한 3루수', 마이크 슈미트 이야기

마이크 슈미트 / 출처 - MLB.com

 

그러나 슈미트는 1973시즌 종료 후 푸에르토리코 윈터리그의 카구아스 크리올로스에서 바비 와인 코치의 지도를 받으면서 선수 생활의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와인은 슈미트에게 너무 세게 스윙하지 말고 타고난 힘을 활용하라고 조언했는데, 이러한 조언과 격려는 슈미트가 자신감을 되찾는 데 도움이 됐는데요. 편안하게 스윙하더라도 공을 멀리 보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슈미트는 윈터리그에서 큰 성공을 거둡니다.

 

윈터리그 성공에 힘입어 스프링 캠프에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참가한 슈미트는 1974시즌 타율 0.282 36홈런 116타점 23도루 OPS 0.941으로 첫 올스타 선정과 함께 NL 홈런왕을 차지하는 엄청난 활약을 펼칩니다. 이해 슈미트는 어시스트 404개를 기록했는데, 이는 현재까지도 NL 3루수 최다 어시스트 기록으로 남아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슈미트는 WAR(승리기여도) 9.7승으로 MLB 전체 1위를 차지했습니다.

 

슈미트는 1975년 타율 0.249 38홈런 95타점 29도루 OPS 0.890을, 1976년 타율 0.262 38홈런 107타점 14도루 OPS 0.900을 기록하며 3년 연속 홈런왕에 올랐습니다. 특히 1976년에는 4월 17일 시카고 컵스전에서 메이저리그 역대 10번째 한 경기 홈런 4방을 터뜨리고, 첫 번째 골드글러브를 수상하는 등 최고의 활약을 펼치면서 '만년 꼴찌팀' 필라델피아를 26년 만에 포스트시즌 진출로 이끌었습니다.

 

비록 필라델피아는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에서 신시내티 레즈에 3연패를 당하며 탈락했지만 슈미트는 3경기에서 타율 0.308으로 선전했고, 이를 바탕으로 시즌 종료 후 필라델피아와 연봉 56만 달러 계약을 체결하면서 MLB 역사상 연봉 50만 달러를 돌파한 최초의 선수가 됐습니다. 하지만 1977, 1978년에도 지구 우승을 차지했으나 2년 연속 LA 다저스를 상대로 NLCS에서 패배하자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포스트시즌 잔혹사
'완벽한 3루수', 마이크 슈미트 이야기

피트 로즈와 마이크 슈미트 / 출처 - MLB.com

 

승리에 굶주린 필라델피아 팬들은 정규시즌에서는 뛰어난 성적을 거두지만, 포스트시즌에서는 승리하지 못하는 구단에 분노했고, 팀의 중심인 슈미트를 그 원인 중 하나로 여겼습니다. 이는 필라델피아 선수단에겐 엄청난 압박감으로 느껴졌는데요. 실제로 당시 필라델피아의 유격수 래리 보와가 "홈 경기에선 선수들이 팬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마음에 긴장을 풀지 못하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을 정도였죠.

 

이러한 상황에서 필라델피아 수뇌부는 1978시즌을 마친 후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은 '빅 레드 머신(Big Red Machine)의 심장' 피트 로즈를 당시로선 파격적인 금액인 4년 320만 달러에 영입하는 승부수를 던집니다. 필라델피아는1979시즌 84승 78패로 NL 동부지구 4위에 그치며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는데요. 그러나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 로즈의 영입은 필라델피아에게도, 슈미트에게도 '신의 한 수'가 됐습니다.

 

필라델피아로 이적한 첫 해인 1979시즌 로즈는 타율 0.331 4홈런 90득점 20도루 OPS 0.848을 기록했습니다. 출루율 0.418은 리그 1위였고, 20도루는 개인 최다였죠. 리드오프인 로즈의 활약은 필라델피아의 타선에서 외롭게 싸워왔던 슈미트에게 큰 도움이 됐습니다. 또한, 로즈는 슈미트에게 집중됐던 언론의 관심을 분산시키며 부담을 덜어줬고, 선배로서 슈미트가 긴장을 풀고 야구를 즐길 수 있도록 격려해줬습니다.

 

훗날 슈미트는 "로즈가 필라델피아에 합류했다는게 믿기지 않았습니다. 어렸을 적 제가 닮고 싶었던 선수가 이제 동료이자 친구, 그리고 멘토가 됐으니까요"라고 회고했습니다. 실제로 슈미트는 1979시즌 타율 0.243 45홈런 114타점 OPS 0.950으로 구단 한 시즌 홈런 신기록을 세웠고, 1980시즌에는 타율 0.286 48홈런 121타점 OPS 1.004으로 홈런·타점 부문 리그 1위를 차지하며 만장일치로 NL MVP에 선정됐습니다.

 

마침내 월드시리즈를 제패하다
'완벽한 3루수', 마이크 슈미트 이야기

1980년 월드시리즈 우승 당시 마이크 슈미트 / 출처 - MLB.com

 

필라델피아는 1980시즌 91승 71패(0.562)로 지구 1위를 차지했고, NLCS에서 휴스턴을 3승 2패로 꺾고 30년 만에 월드시리즈 무대를 밟았습니다. 그리고 캔자스시티를 4승 2패로 꺾으며 구단 역사상 첫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죠. 그 중심에는 슈미트가 있었습니다. 이전까지 포스트시즌 통산 타율 0.191 0홈런 5타점에 그쳤던 슈미트는 월드시리즈에서 타율 0.381 2홈런 7타점 OPS 1.176를 기록하며 MVP에 선정됐습니다.

 

슈미트는 훗날 인터뷰를 통해 "당시 우리는 마치 메이저 대회 우승을 못하는 골프 선수 같았습니다. 모두가 우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생각했죠. 하지만 1980년은 압박감 속에서 경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 자체를 완전히 지웠습니다. 마치 목에 걸린 큰 짐을 벗어던진 것 같았어요. 우리는 절대 포기하지 않는 팀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 해가 제 선수 생활을 마무리 짓는 계기가 되었습니다"라고 회고했습니다.

 

어쩌면 슈미트의 커리어 하이 시즌은 파업으로 단축된 1981시즌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는 102경기에서 타율 0.316 31홈런 91타점 OPS 1.080으로 커리어 첫 3할 타율과 함께 홈런(31)·타점(91)·득점(78)·볼넷(73)·총루타(228)·출루율(.435)·장타율(.644)·WAR(7.7승) 부문 1위에 오르면서 2년 연속 NL MVP에 선정됐는데요. 하지만 필라델피아는 역사상 처음 열린 NLDS에서 몬트리올에 2승 3패로 패하며 시즌을 마감했습니다.

 

이후에도 슈미트는 꾸준한 활약을 펼쳤습니다. 슈미트는 1982년 타율 0.280 35홈런 87타점 OPS 0.949으로 볼넷·출루율·장타율 부문 리그 1위에 올랐고, 1983년 타율 0.255 40홈런 109타점 OPS 0.923으로 홈런·볼넷·출루율 부문 리그 1위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1984년 타율 0.277 36홈런 106타점 OPS 0.919으로 홈런·타점 부문 리그 1위에 오르며 6년 연속 올스타, 9년 연속 골드글러브, 5년 연속 실버슬러거에 선정됐습니다.

 

커리어 말년
'완벽한 3루수', 마이크 슈미트 이야기

마이크 슈미트 / 출처 - MLB.com

 

1985년 35세의 슈미트는 타율 0.277 33홈런 93타점 OPS 0.907으로 여전히 준수한 활약을 펼쳤지만, 올스타·골드글러브·실버슬러거에 모두 선정되지 못하며 연속 수상 기록이 중단됐습니다. 하지만 절치부심한 슈미트는 1986년 타율 0.290 37홈런 119타점 OPS 0.937으로 홈런·타점·장타율 부문 1위를 석권하며 올스타·골드글러브·실버슬러거 선정과 함께 통산 3번째이자, 마지막 내셔널리그(NL) MVP를 차지했습니다.

 

놀라운 점은 30대 중반에 2할 후반대 타율과 30홈런 100타점 이상을 유지하면서도 단축 시즌을 제외하면 11년 연속 100개가 넘었던 삼진 수가 84개로 급감했다는 건데요. 슈미트는 이러한 성적 향상의 비결을 '공격적인 어프로치'에서 찾았습니다. 이에 대해 슈미트는 "15시즌 만에 드디어 까다로운 타자가 된 기분이다. 위험한 타자가 아니라, 좋은 타자가 된 것이다. 그 둘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슈미트는 1987시즌에도 타율 0.293 35홈런 113타점 OPS 0.936으로 예년과 비슷한 생산성을 유지했는데요. 특히 4월 18일 피츠버그전에서 5-6으로 뒤지고 있던 9회초 역전 결승 스리런을 터뜨리며 통산 500홈런 클럽에 가입했습니다. 하지만 이듬해인 1988년에는 시즌 내내 잔부상에 시달리다 결국 8월 12일 회전근개 부상으로 시즌 아웃되면서 108경기 타율 0.249 12홈런 62타점 OPS 0.742을 기록하는 데 그쳤습니다.

 

건강을 회복한 슈미트는 1989시즌 복귀했지만, 부진을 겪던 중 5월 29일 샌디에이고전에서 갑작스럽게 은퇴를 발표했습니다. 경기장에서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아서 '캡틴 쿨(Captain Cool)'이란 별명이 붙었던 슈미트는 눈물을 흘리며 "18년 전, 무릎이 매우 안 좋았던 저는 메이저리그 선수가 되고 싶다는 꿈을 안고 고향을 떠났습니다. 그 꿈을 이루어지게 해주신 신께 감사드립니다"라는 감동적인 연설을 남겼습니다.

 

은퇴 이후의 삶
'완벽한 3루수', 마이크 슈미트 이야기

마이크 슈미트 / 출처 - MLB.com

 

슈미트는 1990년 1월, <스포팅 뉴스> '1980년대 최고의 선수'로 선정됐습니다. 그리고 1990년 5월, 필라델피아는 슈미트의 등번호 20번을 영구 결번으로 지정했습니다. 슈미트는 필라델피아의 감독 또는 단장 자리에 관심이 있었지만, 필라델피아 구단은 그가 어떤 직책에도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했습니다. 따라서 야구계에 계속 몸담기 위해 그는 1990년 필라델피아 지역 케이블 방송국인 PRISM에서 해설위원으로 일했습니다.

 

슈미트는 솔직하고 직설적인 해설로 유명했지만, 스스로 방송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해 한 시즌 만에 해설위원을 그만뒀습니다. 이후 슈미트는 1995년 첫 번째 투표에서 96.5%의 득표율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는데요. 이는 당시 기준으로 톰 시버(98.8%), 타이 콥(98.2%), 행크 애런(97.8%)에 이어 역대 4번째로 높은 득표율이었죠. 한편, 1997년 미국야구기자협회 선정 메이저리그 역대 최고의 3루수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슈미트는 커리어 초반 뛰어난 기량과는 별개로 포스트시즌에서의 부진과 언론에 의해 과장된 몇몇 부적절한 발언 때문에 팬들로부터 저평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현역 시절 내내 성실한 자세를 견지했고, 1980년 창단 첫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끌면서 필라델피아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슈미트가 메이저리그 역대 최고의 3루수이자 필라델피아 역사상 최고의 선수라는 주장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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