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덕스 왈 '민기자, 데니스 마르티네스를 꼭 닮았어!'
minkiza
400
2026-02-08 05:24:29
그렉 매덕스(Greg Maddux 60)와 처음 이야기를 나눈 건 2002년이었습니다.
당시 봉중근 투수가 애틀랜타에서 MLB에 데뷔하면서 홈구장 터너필드 취재를 수차례 갔었는데 그중의 하루였습니다.
그런데 정말 예상 못한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클럽하우스에서 봉중근 선수와 이야기를 나누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다가오더니 '헤이, 난 데니스 마르티네스인줄 알았잖아, 너무 닮았어!'라고 말을 건네 돌아보니 바로 매덕스였습니다.
아무리 닮은 걸 찾아보려 해도 도저히 이해가 안됐지만 ^^ 그러면서 루키 봉중근 선수의 피칭과 매덕스의 피칭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됐습니다.
참고로 니카라과 출신의 데니스 마르티네스는 통산 245승에 퍼펙트게임도 기록했던 대단한 투수였는데 185cm의 키에 날렵한 몸매의 우완 투수였습니다. '대통령(El Presidente)'이라는 애칭으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매덕스가 민기자와 꼭 닮았다던 데니스 마르티네스 투수
당시 애틀랜타에는 매덕스와 톰 글래빈, 존 스몰츠라는 막강한 3명의 선발들이 위용을 뽐냈는데, 글래빈과 스몰츠는 과묵하고 조용한 성격이었던 반면 매덕스는 유쾌하고 외향적이었습니다. 물론, 마운드에 오르면 엄청난 투사였지만 말입니다.
매덕스라는 엄청난 투수에 대해서는 너무도 잘 알려져 있기에 길게 소개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우선 간략히 그의 통산 성적과 수상 기록 등은 소개하겠습니다.
1986년부터 2008년까지 MLB에서 23시즌을 뛴 매덕스는 통산 355승 227패를 기록했습니다. 총 744경기에 출전했는데, 740경기에 선발로 나섰습니다.
5,008⅓이닝을 던졌고 109번의 완투와 35번의 완봉승을 거뒀습니다.
통산 삼진은 3,371개였고, 볼넷은 999개로 볼삼비는 3.37이었고, ERA 3.16, WHIP 1.143 그리고 WAR 104.8을 기록했습니다
매덕스는 통산 300승 및 3,000탈삼진을 동시에 달성한 역대 10명의 투수 중 하나입니다.
올스타에 8번 뽑혔고, 사이영상을 4차례 받았는데 4년 연속 수상은 좌완 파워피처인 랜디 존슨과 함께 공동 1위 기록입니다. 전혀 다른 유형의 두 투수가 이런 기록을 이뤄냈다는 것도 야구의 묘미입니다.
골드글러브는 MLB 역대 최다인 18번을 받았을 정도로 수비도 달인이었고, NL 한시즌 최다승 3회, MLB ERA 타이틀 4회, 월드 시리즈 우승은 1회 (Atlanta Braves 1995)를 기록했습니다.
17시즌 연속 15승 이상의 엄청난 MLB 최고 기록도 보유했으며, 등번호 31은 시카고 컵스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두 구단에서 영구 결번이 됐습니다
그리고 2014년 첫 번째 기회에서 투표율 97.2%로 명예의 전당 멤버가 됐습니다.
매덕스는 정교한 제구력과 함께 지능적인 피칭으로 타자들을 농락하는 유형이었습니다.
1986년 컵스에서 데뷔할 때만해도 155km 넘게 던지는 강속구에 제구도 거친 파워 피처 유형에 가까웠지만, 꿈틀대는 투심을 중심으로 정교한 제구와 타자들의 심리를 파고드는 피칭을 하는 마스터로 변신했습니다.
특히 투심은 평균 구속이 145km 정도였는데, 뒤늦게 떨어지는 싱킹 무브먼트에 우타자 바깥쪽 낮은 코스에 끝까지 살아 움직임이 일품이었습니다. 그는 스트라이크 같은 볼을 정말 잘 던졌습니다. 체인지업도 뛰어났고, 커터, 슬라이더, 포심 패스트볼도 구사했습니다.
그리고 돌이켜보면 매덕스는 타자 분석의 달이었습니다.
요즘 야구에서는 필수가 된 통계와 분석의 피칭을 그는 이미 20여년 전에 홀로 이뤄냈습니다. 타자의 약점과 강점을 완전히 파악하고, 타자의 머릿속을 읽는 심리전의 달인인데다, 제구도 1cm를 넣고 빼는 능력자였으니 파워의 시대를 기교로 압도한 발군의 이단아 투수였던 겁니다.
덕분에 '매덕스 투구했다('He threw a Maddux.')'라는 용어도 탄생했습니다.
투구수 100개 미만으로 완봉승을 거두는 경기를 '매덕스 했다'라는 표현을 쓰는데 매덕스가 매덕스한 것은 1990년 4월 29일 다저스전 96구 완봉승을 비롯해 총 13번이나 있었습니다.(지난 시즌 MLB에서는 디트로이트의 태릭 스쿠벌이 5/25 클리블랜드전에서 94구 5-0 완봉승으로 유일하게 매덕스했습니다.)
그러면서 매덕스는 효율적인 피칭의 대명사가 됐습니다.
1998년 6월 27일 토론토 블루제이스전 2-0 완봉승을 거뒀는데, 투구수가 102개로 '매덕스 경기'는 아니었지만 단 1시간 46분만에 경기를 마무리했습니다.
그런가하면 1997년 7월 22일 시카고 컵스전에서는 단 78구만 던지며 4-1 완투승을 거두기도 했습니다.
'매덕스의 경기는 투구 경제학의 완성이다.'라는 말을 들었던 이유입니다.
기자들이나 방송팀이 매덕스의 선발 경기를 선호했던 건 물론입니다.
그런데 매덕스가 얼마나 심리전의 달인이었는지 보여주는 아주 재밌는 사례가 있습니다.
천하의 매덕스도 약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주자를 묶는 데는 영 재주가 없었다는 점입니다. 주자는 별로 신경쓰지 않는 스타일이기도 했지만 통산 허용한 도루가 490개나 됐습니다. 154번을 잡아내 허용률은 76%가 넘었습니다.
그런데 커리어 막판인 2007년 샌디에이고에서 뛰던 당시에도 매덕스는 생애 최다인 37도루를 허용하고 있었습니다.
매덕스뿐만 아니라 당시 파드리스 선발진 대부분이 도루 때문에 골치를 썩이고 있었고, 특히 2미터5의 거구인 크리스 영의 경우 44번의 도루 시도를 100% 허용하며 좌절했습니다.
그러자 하루는 매덕스가 영에게 다가가서 이야기했답니다.
"도루는 전혀 신경쓸 것이 없어. 사람들이 생각하는 만큼 중요하지 않아. 실제로 2루 도루에 성공하는 주자 중에 득점하는 확률은 17%에 불과해."
그러면서 매덕스는 특히 피안타율이 낮은 영 같은 투수는 주자는 아예 무시하고 타자에 집중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후 파드리스 투수들에게는 17%가 무슨 새로운 명약처럼 여겨졌습니다.
투수들은 인터뷰를 할 때도 17%를 인용했습니다, '매덕스가 그러는데 말이야!' 라면서 말입니다.

©️커리어 막판 샌디에이고에서 뛸 때는 후배 투수들에게 심리전으로 안정을 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샌디에이고에 거주하는 한 야구 매니아가 매덕스의 말이 맞는지를 실제로 점검해봤습니다.
2007년 파드레스의 박스 스코어를 모두 점검한 결과 파드레스를 상대로 2루 도루를 한 주자가 득점한 확률을 계산해 봤더니 40%가 조금 넘더랍니다.
그래서 도루가 아니었더라도 득점에 성공했을 주자들을 제외하는 등 조금 더 정밀하게 계산했더니 40% 보다는 확률이 많이 떨어졌지만 17%보다는 훨씬 높았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가 밝혀지자 매덕스를 잘 아는 사람들은 '역시 매덕스답다!'며 웃음을 터뜨렸다지요.
후배 투수들이 주자에 너무 신경쓰지 않게 하려고 자기 팀 투수진 전체에 심리전을 펼친 겁니다.
그리고 투수들은 매덕스가 한 말이기 때문에 무조건 믿었던 거지요. ^^
매덕스를 몇 차례 만나 이야기를 해봤지만 딱 말투부터 학자풍을 느끼게 합니다. 평소에는 안경을 써서 더욱 그랬습니다.
제구력과 상대 분석 그리고 심리전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런 유형의 투수가 파워 일변도의 요즘 야구에 다시 탄생할 수 있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