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듀오
에드 배로(Ed Barrow) 단장과 함께 1920년대 양키스 제국을 건설한 폴 크리첼(Paul Krichell)은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의 스카우트로 꼽힌다.
양키스는 크리첼(스카우팅 디렉터)이 원석을 찾아내면 배로(단장)가 매입을 진행하고, 조지 와이스(팜 디렉터)가 세공하는 방식으로 최고의 선수를 쓸어 모았다. 제이콥 루퍼트 구단주의 전폭적인 지원도 결정적이었다.
크리첼의 첫 번째 작품은 루 게릭이었다.
1923년 크리첼은 컬럼비아 대학에 괴물 투수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경기장을 찾았다. 루 게릭이라는 이름의 좌완은 타석에서도 두 개의 홈런을 때려냈다.
보고를 받은 배로는 크리첼에게 한 번 더 보고 오라고 했다. 양키스타디움 개장일인 1923년 4월18일. 크리첼은 양키스타디움 대신 컬럼비아 대학의 사우스필드로 향했고, 게릭이 17개의 삼진을 잡아내며 홈런까지 날리는 모습을 지켜봤다. 같은 시간 사우스필드에서 3마일이 떨어진 양키스타디움에서는 루스가 보스턴을 상대로 개장 1호 홈런을 날렸다.
크리첼이 게릭의 재능에 확신을 가진 결정적인 순간은 일주일 후 뉴저지 원정 경기에서 돌아오는 기차 안이었다. 그 경기에서 게릭은 말도 안 되는 홈런 두 방을 날렸고, 그 중 하나는 야구장의 밖에 있는 건물의 지붕 위로 날아갔다. 훗날 크리첼은 내 평생 그렇게 멀리 날아간 홈런은 루스 말고는 처음이었다고 했다.
크리첼은 기차 안에서 컬럼비아 대학의 감독인 앤디 코클리의 옆에 앉아 게릭에 대해 꼬치꼬치 캐물었다. 코클리는 "저 친구는 투수로도 훌륭하지만, 타격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수준"이라고 극찬했다. 크리첼은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보스턴 원정 중인 배로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또 다른 베이브 루스를 찾아냈다(I've found another Babe Ruth)"고 했다.
게릭은 강속구를 던지는 좌완이었고, 피칭에 대한 애착이 컸다. 하지만 크리첼은 "투수는 4일마다 한 번씩 경기에 나가지만, 타자는 매일 나갈 수 있다"며 타자 전향을 권유했다. 게릭은 타자가 된 후에도 마운드에 오르고 싶어 했는데, 밀러 허긴스 감독이 부상을 우려해 완강히 반대했다. 만약 양키스가 게릭에게 기회를 줬다면, 제2의 루스는 오타니가 아니라 게릭이었을지도 모른다.
루스와 게릭은 공포의 듀오였지만, 관계는 썩 좋지 않았다. 루스가 게릭을 무시한 탓이었다.
3번 타자인 루스는 4번 타자인 게릭에 대해 자신이 투수들을 다 박살내면 게릭은 남은 찌꺼기를 먹는 것일 뿐이며, 타순이 바뀌어 자신이 4번 타자였다면 매년 100개의 홈런도 칠 수 있을 것이라며 호언장담했다. 게릭이 컨디션이 안 좋은 날 부진한 모습을 보이면 팀에 피해를 끼친다며 비난했고, "저 멍청한 녀석이 자기 기록 세우겠다고 팀 타율 다 깎아먹고 있네"라고 한 적도 있었다.
반면 게릭은 "루스 뒤에서 타석에 서면, 내가 물구나무를 서서 방망이를 휘둘러도 아무도 모를 테니 훨씬 편하다"라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루스를 칭찬했다. 게릭은 안하무인인 루스와 한 번도 충돌하지 않았다.
루스는 게릭보다 위대했지만, 양키스 선수들이 존경하는 쪽은 게릭이었다. 게릭은 늘 루스를 존중했고, 루스의 비아냥에는 인대심으로 대처했다. 양키스가 루스를 감당할 수 있었던 건 게릭 덕분이었다.
하지만 둘의 사이를 갈라서게 만든 결정적인 사건이 1934년에 일어났다. 둘은 일본 원정에 함께 참가했는데, 게릭의 어머니, 루스의 아내와 딸도 동행했다. 일본 여행을 즐기던 중 게릭의 어머니는 루스의 딸이 입은 옷차림을 지적했는데, 이를 들은 루스가 게릭에게 따져 들었고, 게릭의 어머니에 대해 험한 말을 했다.
게릭은 효성이 지극하기로 유명했다. 자신을 무시할 때마다 한 번도 반응하지 않았던 게릭은 어머니에 대한 모욕만큼은 참지 않았다. 그 사건 이후 둘은 1939년 4월30일까지 사적으로 한 마디도 섞지 않았다.
5년 넘게 남처럼 지내던 두 사람이 다시 화해한 것은 게릭의 은퇴식 날이었다. 루게릭병으로 수척해진 게릭이 감동적인 고별사를 끝내자, 이미 은퇴한 상태였던 루스가 게릭에게 다가와 귓속말을 하고 꼭 껴안았다. 루스가 한 말은 다음과 같았다.
"루, 너무 걱정하지 마. 다 괜찮아질 거야."
게릭은 2년 후인 1941년 3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루스도 희귀암에 걸려 1948년 5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둘은 역사상 가장 무서운 듀오였고, 양키스를 위대한 팀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엔 화해의 악수를 했다.
